좋은시를 읽으며 / 홍인숙(Grace)
시집(詩集) 진열대 앞에 서면
전주호
시의 가지를 잡고
삼나무 숲처럼 울창한 서점 진열대 앞에 서면
삼림욕을 하는 기분이 든다.
펼칠 때마다
곧게 뻗은 나무들이
단 고로쇠나무 즙을 내게 건네주기도 하고
다정하게
잎맥이 그려나간 길들을 펼쳐 보이기도 하는
시집 속에는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시인의
하얀 돌배나무 꽃잎 같은 사랑과
그리움의 날들이 화석처럼 찍혀있다.
낮은 물소리 같은 언어들은 아래로, 아래로
흘러 막다른 골목에서
길을 찾아 서성이는 사람들의 메마른 가슴을
적시고
그 행간과 행간 사이를 비집고 자라난
시어들은 어느새 울창한 숲이 된다.
은사시나무, 산사나무, 주엽나무, 윤노리나무
작은 콩배나무, 팥배나무, 아그배나무...
이따금 흙 속에서
실눈을 떴다 감은 작은 풀뿌리의
작은 속삭임까지도
잡아당기면
넌출넌출 넝쿨째 뽑힐 듯한
서점 안 시집 진열대 앞에 서면
내 시들도 싹트고 자라서
어린 참나무가 된다.
* * * * * * *
나는 전주호 시인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다.
그럼에도, 언젠가 우연히 만난 그의 시 한편에 마음을 사로잡혀
지금까지 '시집(詩集) 진열대 앞에 서면'을 곱게 간직하며 애송하고 있다.
하지만 시인을 안다는 것이 무엇이 그리 중요하랴.
그의 시가 있고, 그 시를 내 안에 담고 있는 것을..
어느 시의 대가 못지 않게 신선한 언어 감각으로
맑은 날 개울물이 졸졸 흐르는 청랑한 소리를 낸 눈부신 이 시를 읽으면
시를 읽는 자세와 시를 쓰는 자세를 한순간에 배울 수가 있다.
시가 갖출 본분과 시인의 사명감을 은유로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시창작의 고뇌에 풋풋한 희망을 달아준 시인,
시가 많아도 좋은 시를 만나기 힘든 요즘에
시 읽기에 행복을 안겨준 전주호 시인에게 감사를 보내며,
'삶 지키기'란 명분아래 퇴색 되어가는 시심으로 마음이 공허해질 때마다
좋은 시 한편을 마음에 간직하고 부끄럽지 않은 시인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