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로병사에 대한 단상 (부제 -아버지와 지팡이)
아버지의 단장(短杖)
홍인숙(Grace)
70kg 체중을 받아 안는다
85년 세월이 말없이 실려온다
침묵하는 상념의 보따리를 짊어지고
한 발자국씩 내딛는 굽은 다리를
묵묵히 반겨주는 검은 단장
12월 바람도 햇살 뒤로 숨은 날
조심조심 세 발로 새 세상을 향한 날
고집스레 거부하던 단장을 짚고
"난 이제 멋쟁이 노신사다"
헛웃음에 발걸음 모아보지만
늙는다는 건
햇살 뒤로 숨은 섣달 바람 같은 것
아버지 눈동자에 담겨진
쓸쓸한 노을 같은 것
방문을 열어보니 주무시는 것 같아 살그머니 물 한 컵 들여놓고 나온 것이 화근이었다.
인기척에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에서 손이라도 씻으시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움직이지 못하는 아버지를 내려다보는 가슴에는 하염없이 겨울비가 쏟아져 내린다.
아버지의 방에는 거동하시는데 필요한 보조기구들이 완벽하게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모두 벽장 속으로 밀어넣고 지팡이조차 짚기를 거부하시는 아버지와
매일 신경전을 벌인다. 무슨 자존심일까...
노인분들이 넘어지시다 잘 못되면 생명까지 위험하다는 것을 알기게 아무리 사정을 하고,
설명을 드려도 점점 퇴화 되어가는 자신의 신체적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은 채
한사코 보조기구에 의존하기를 거부하신다.
오늘 아침에 TV 뉴스를 보니 92세의 할아버지가 78년을 해로해 온
93세의 할머니를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은 가슴 아픈 사건이 있었다.
막내아들에게 얹혀 살던 노부부가 할머니의 치매로 할아버지가 간호를 하다 더 이상
자식에게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아 '우리는 살 만큼 살고 둘이서 같이 세상을 떠나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유서와 함께 250만원의 장례비가 든 하얀 봉투를 남기곤
세상을 하직한 슬픈 뉴스이다.
흔히 생각하기를 90이 넘게 사셨으니 살만큼 사셨다 하겠지만
아내의 목숨을 끊어놓고 자신의 목숨도 버린 그 순간의 아픔이 얼마나 처절했을까..
생각할 수록 눈시울이 젖는다.
정말 죽음은 피해갈 수는 없는 인간의 마지막 지점일까..
연꽃은 더러운 물에서도 만 년을 호흡한다는데 만물의 영장인 우린
연꽃의 한 이파리만도 못한 생을 살면서도 편하지만은 않은 인생을 살아간다.
나도 벌써 친구들과 모이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나이가 되었다.
어떤 친구는 어느 한 날 잠자듯 떠나는 것이 기도 제목이라고 한다.
또 어떤 친구는 너무 갑자기 떠나면 자식도 놀라고 본인 스스로도 주변정리에
시간이 필요하니 더도 덜로 말고 일 주일만 앓다 가면 좋겠다고 한다.
이제 언제일지 모르지만 거부할 길 없이 닥쳐올 그 날을 생각하며 사는 나이가 되었으니
아버지의 눈동자에 담겨진 쓸쓸한 노을이 거울처럼 내 모습을 비쳐준다.
"아버지! 왜 지팡이를 짚지 않으셨어요?
자꾸 넘어지셔서 다쳐 병원에 가시면 다시는 제가 모시고 나올 수 없어요.
그러면 아버지는 말도 안 통하는 양로원에서 사셔야 해요."
속상한 마음에 다분히 협박 섞인 야박한 소리를 퍼분 것도,
딸에게 어린아이처럼 야단을 맞곤 아파도 아프시다는 말씀도 못하신채 퍼렇게 멍이든
무릎을 감추는 풀죽은 아버지의 모습도, 온종일 몹시도 마음을 흔들어 댄다.
어머니를 모시다 떠나보내고 나니 많은 한이 남기에 아버지에게만은 그런 한을
덜 남기려 애써보지만 아버지 역시 떠나보내고 나면 이렇게 한번 두번 뱉은
뼈아픈 소리가 천둥번개소리보다 더 크게 나의 가슴으로 돌아와 애통하게 할 것이리라.
우린 너무 하루하루에 집착하여 살고 있다.
조금만 멀리 바라보면 지금 이 순간의 모든 것이 행복이고 용서 못할 일이 없는 것을.
인생사 알고보면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것을..
삶의 완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불행도, 내 안에 있는 병까지도 축복이라지만
과연 이런 축복을 발견하는 삶의 눈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1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