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미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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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앙꼬없는 찐빵

2007.06.20 14:55

최향미 조회 수:795 추천:65

        

        아침은, 비교적 여유 있게시작해야 하루가 부드러워지는 것 같다. 그래서 늘 아침 신문도 읽고 뉴스도 보며 아침을 상쾌하게 보내려고 애를쓴다. 하지만 맘먹은 대로 늘 느긋한 아침을 보내지는 못한다.

        어제 아침도 그런 대로 조간 신문도 읽고 모닝 뉴스도 TV에서 보며아침 출근을 서둘렀다. 그러다가 문득 아침 커피 생각이 나는 것이다. 요즘 위가 불편해서 가능한 한 이른 아침 커피는 피하고 있다. 하지만 오래간만에 구미가 땡기는 커피생각이 나자 들었던 자동차 열쇠를 내려놓고 급한 김에전자 레인지에 물을 데웠다. 집을 나서려다 시작한 '커피 만들기'로 인해 마음이 갑자기 급해지기 시작했다. 물이 적당히 데워지기를 기다리며 신발을 찾아 신고 가방을 어깨에 둘러 맺다.

       '땡 땡 땡'하며 다 됐다는 레인지 의 신호음을 듣자 부랴부랴 부엌으로 달려와 커피 잔을 꺼냈다. 급한김에 설탕과 크림을 서둘러 먼저 넣고 스푼으로 휘이 휘이 저었다. 그런데 아무리 저어도 커피 색이 이상하다. 뭐가 빠진 거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냉장고를 다시 한번 열어 보고, 설탕 통도 또 다시 쳐다보고, 그렇게 확인을 해봐도 빠진 게 하나도 없는 것이다. 너무 황당해서 커피 잔 속의 멀건 커피 물을 한참 내려다보니, 세상에... 정작 커피를 넣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기가 막힐 수가....

       출근 후 바쁜 일을 대강 정리하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다가 어제 아침의황당한 기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뿌연 물을 내려다보면서도 뭐가 빠진지 한동안 생각해 내지 못해 당황한 모습이라니. 요즘 건망증에 얽힌 실수담이 안줏감으로 종종 올라와 사람들을 웃기곤 한다. 어제 일도 일종의 건망증이리라.'치매가 벌써 오는 거 아냐' 하면서 웃음으로 흘려 버리기에는 짧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순간이었다.

         어렸을 적에 '앙꼬 없는 찐빵', '고무줄 없는 빤쯔' 하며 우스개 소리를 하던 기억이 난다. 찐빵에는 당연히 달짝지근한 '앙꼬'라는 것이 들어 있어야 하는 거고,'빤쯔'에는 고무줄이 없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꼭 들어 있어야 하는 것, 그런 뜻 의말이다. 어제 아침에 급히 탄 커피 빠진 커피(?)를 생각하니,정말 '앙꼬 없는 찐빵'이었다

        요즘 깜빡 깜빡 잊어버리기를 잘한다. 해야 할 일도 잊어버리고, 하려고 하던 말도 잊고 딴소리만 하다가 낭패를 본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냉장고 문을 열고 '이걸 왜 열었지?' 한 적은 또 얼마나 많은지. 너무 바빠서...라며 스스로 위로하기에는 사실 그다지 바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른들 앞에서 이런 실수를 하면 '요즘 젊은것들이 좀 부실해서요' 하며 실실 웃어 보이는 것으로 모면을 해본다. 그런데 정말 부실하긴 한 것 같다. 아직은 흰머리가 새치로만 보일 나이 아닌가.

        진하게 끓여진 오늘 아침 커피 향이 정말 좋다. 마지막 한 모금을 입안에 홀짝 털어 삼킨다. 그러다 문득 앙꼬 없는 찐빵처럼 살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스친다.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것도 잊은 채, 제 맛도 못 내고 사는 맹탕 빵 조각은 아닌지. 그 '당연함'조차 분실하고 붕붕 떠돌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고무줄 없는 빤쯔 입고 창피 한 줄 도 모르고 그냥 그렇게 다니고 있는 적은 없었을까?

        커피 빠진 멀건 물이 '왜 이렇지' 하고 한참 고민한 그 정신이 그나마 대견해 진다. 그냥 그대로 마시면서 '오늘 커피 맛이 참 희안 하네' 그렇게 끝났으면 얼마나 더 기가 막힌 일일까 말이다.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들을 챙기며 사는 사람정도는 되어야겠다.

        정신 바짝 차리고 오늘도 무사히 그리고 열심히...살자. 아-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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