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미의 문학서재






오늘:
2
어제:
0
전체:
17,781

이달의 작가

더 가깝게

2008.05.27 12:09

최향미 조회 수:643 추천:94

    

                 운전석 옆 자리에 앉은 아들 녀석은 그새 이어폰을 끼고 눈을 감고 있다. 수업 끝나고 쉴 틈도 없이 바쁘게 움직여야하는 아이가 얼마나 피곤할까 싶어 말을 건넬 수도 없다. 힐끗 옆자리를 본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를 보니 오래전 생각이 난다.  
        
                 아빠가 없을 때면 운전석 옆자리는 늘 큰 딸아이가 앉았다. 그런데 뒷자리에 앉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아들 녀석이 언제 부터인가 운전석 옆자리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눈치가 보였다. 그러더니 어느 날인가 제 누나보다 먼저 앞자리에 올라앉는다. 한발 늦은 딸아이는 입에 물었던 사탕 뺏긴 아이처럼 팔딱팔딱 뛴다. 꼬마 녀석은 시치미를 뚝 떼고 얼마간 버티다가 씩 한번 웃고는 자리를 내준다. 재빨리 앞자리를 차지하곤 아예 차문을 잠궈 버리거나 가위 바위 보로 승부를 내보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자주 그렇게 티격태격 다퉜다. 앞자리는 당연히 제 몫으로 여기는 큰아이와 이제는 자기도 차지해 보려는 막내의 다툼이 내 눈에는 그리 밉게 보이지 않았다. 다툼 끝에 엄마의 옆자리를 차지한 아이의 얼굴은 세상을 다 얻은듯한 그런 만족스런 얼굴이었다. 그것은 내가 아이들로부터 엄마로 인정받거나, 내 옆에 가까이 있고 싶어 하는 마음을 느끼게 돼서인지 오히려 흐믓 하기도 했다.

        그런데 가끔씩 아이들이 가운데 자리도 건너뛰고 맨 뒷자리로 앉는 날이 있었다. 그리고는 책을 펴 들거나 자는 척을 하곤 했다. 주로 나한테 야단을 맞거나 뭔지 모르게 심통이 나 있을 때였던 것 같다.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서 저한테 말도 걸지 말라는 무언의 시위같이 보였다. 어린애다운 유치한 행동이지만 엄마에게 제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었으리라. 그럴 때 마다 어쭈...하는 마음 한켠엔 앉은 거리보다 천배는 더 멀리 아이와 떨어져 있는듯했다. 엄마란 존재가 거부당하는 서글픔도 슬쩍 느껴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키가 커 가면서 자리다툼도 조금씩 뜸해졌다.

        어느새 태권도 도장 앞에 도착했다. 가볍게 코를 고는 아들 녀석의 손을 가만히 잡아 깨운다. 문득 자리 뺏긴 딸아이의 어릴 적 얼굴이 떠오른다. 어느새 대학 졸업반이 되는 딸아이가 보고 싶다. 비록 아들 녀석처럼 손을 잡아 줄 수는 없지만 전화라도 한번 해야겠다. 내 사랑을 담아 말을 건네면 엄마 품에 안긴 것 같이 딸아이가 느껴줄까. 이제는 내가 그렇게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야겠다. 오월이 다 지나가기 전에 내 사랑을 한번 더 전해줘야겠다.



미주 한국일보 [여성의 창] 05-27-08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0 팥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최향미 2008.06.16 738
19 동방예의지국? 최향미 2008.06.09 609
18 창포물에 씻어내고 최향미 2008.06.03 613
» 더 가깝게 최향미 2008.05.27 643
16 묵은 값 최향미 2008.05.20 668
15 콩나물국 최향미 2008.05.13 807
14 대통령 되기 싫어요 최향미 2008.05.08 668
13 예쁘쟎아 최향미 2007.10.15 929
12 눈망울 최향미 2007.09.17 806
11 시원하다 최향미 2007.09.18 967
10 할머니 최향미 2007.09.17 874
9 너도 나중에 새끼 낳아봐. 최향미 2007.08.31 1096
8 참 깨 최향미 2007.07.13 795
7 보라꽃 쟈카란타 최향미 2007.07.13 902
6 앙꼬없는 찐빵 최향미 2007.06.20 795
5 아끼니까요 최향미 2007.05.24 638
4 봄이 오는 골목 최향미 2007.02.19 790
3 짝사랑 최향미 2007.02.14 635
2 안질뱅이 꽃 (2) 최향미 2007.02.10 876
1 사랑하기에 좋은 계절 최향미 2007.02.05 7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