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

2011.12.31 13:06

김인자 조회 수:538 추천:40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니코라에비치 톨스토이 작)
김인자

    지난 2세기동안 이어온 러시아문학은 깊은 인본주의 사상이 담겨있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문학이라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사실이다. 러시아문학은 푸쉬킨 사망 후로 지적 주도권이 귀족층 중심에서 인텔리겐챠 층으로 넘어가며 볼셰비키혁명을 거치면서 오늘에까지 이어져왔다. 러시아문학은 결국 인텔리겐챠의 산물인데 그 시대의 사회비판인 동시에 참담한 사회상과 부조리에 대한 고발이었다.

    톨스토이는 도스도엡스키와 같이 사랑에 입각한 문학에서 출발하여 종교적 구원으로 들어간 작가이다. 대문호, 대사상가이며 대종교가이다. 무저항주의, 반전주의, 인도주의 작가인 그는 예술은 그 자체가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에 이르는 한 과정으로서 의의가 있다 고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도 결국 그 맥락에서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톨스토이는 1877년 "안나 카레니나"를 탈고한 후 인생의 절망감과 죽음에 대한 공포로 그의 영혼의 투쟁이 시작됐다. 54세에 "My confession"을 쓴 이후에는 작품들이 정신적이고 종교적 경향으로 편향되었으며 그후 30년동안 고향에서 수많은 종교, 도덕, 교육에 관한 논문을 썼다. 당시 러시아인과 전세계인의 정신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독일의 시성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살로메(니체의 애인)와 함께 야스나야 풀랴나에 있는 톨스토이를 2번이나 방문해서 깊은 영감을 받았으며, 불란서 문호 로망 로랑 역시 젊었을 때 자살까지 생각한 인생의 번민에서 그의 편지를 받고 생의 긍정적인 가치를 찾게되어 소생할 수 있었다.

    "예술은 그 자체가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에 이르는 한 과정으로서 의의가 있다. 인생의 의의는 선을 향한 노력이다. 선이 인생의 목적이며 사랑에 의해서 선을 실행해야한다"고 했다.

    톨스토이는 기독교, 불교, 유교, 유태교 등을 탐구해서 그 모든 종교의 근원적인 교리를 합하여 한 종교를 만들려 고했다. 그의 무저항주의나 무교회주의는 러시아 민중의 정신생활의 중심이 되었고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토마스 만은 그의 죽음은 '유럽이 정신적 주인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까지 말했다.

    그는 20세 전후해서 영과 육의 치열한 투쟁을 체험했다. 즉 시간과 영원의 세계, 제한된 자아와 확대된 자아의 세계, 즉 인간의 세계와 하나님의 세계에 대하여 치열한 번민을 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죽음의 공포를 가지고있었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다 죽음이 오는데 사는 동안에는 이상하게도 거의 잊고 살다가 죽음이 가까이 오게될때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죽음에 처했을 때 오는 심리적 종교적 사상적 변화를 그의 소설에서 진지하게 다루었다.

    그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란 소설에서 보면 1880년대의 지극히 평범하고 세속적인 이반 일리치는 어느 날 병이 났다. 여러 의사들이 진찰했으나 아무도 시원하게 병명과 처방을 내리지 못하여 결국 심한 고통을 거쳐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반 일리치는 삶에 대한 집착 때문에 그것을 용납할 수가 없다. 그는 인간은 결국 죽는다. 그러므로 나도 죽는다는 삼단론법식의 경우는 일반적이고 평범한 인간에게만 적용하지 자기는 다른 사람과는 다른 존재라고 생각했다.

    괴로운 망아의 경지에서 절망의 병으로 고민했다. 자신의 무서운 고독을, 인간의 잔인함을, 신이 이 세상에 있지 않음을 한탄하며 울었다. 무엇 때문에 이런 괴로움을 주시는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괴로움 끝에 그는 울음을 그치고 내부에서 발생한 신비의 흐름, 영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우렷다.

    혼수상태에서 고통에 짓이겨 소리지르고 있을 때 그의 손에 키스하며 슬픔에 젖어 울고있는 아들을 보았다. 그 때 그는 아들의 순수한 마음을 보고 광명을 발견했다. 그렇게도 냉혹하고 가식에 차있다고 미워했던 아내가 진정으로 슬피 울고있는 것도 이제야 보였다. 지나간 그의 생활이 무의미하고 잘못되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사랑과 선이 부족했던 과거의 생활을 뉘우쳤다. 모두를 사랑하게됨으로서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광명을 찾았다.

    이것은 톨스토이 자신의 고민이었다. 하이덱커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영감을 얻어 죽음과 존재에 관한 글을 썼다고 한다. 주검을 대했을 때 진정한 삶을 알게되며 삶을 참으로 배우지 못한 자에게는 죽음은 다만 공포이다.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생명은 아무 것도 없다. 인간의 삶은 살아있으나 한편으로는 죽어가고 있는 과정이다. 톨스토이는 사랑과 선의 실행으로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되는 길을 보여주므로 서 참 사는 방법을 가르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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