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속의 소입자
김인자

   지난 12월에는 성탄절에 맞추어 동부에 사는 딸집에 선물을 부치고, 가까이 사는 큰아들 가족과 샌프란시스코에서 오는 둘째아들부부의 선물을 사느라 샤핑몰을 돌아다녔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우리 집에 다 모여 손주들의 재롱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지만 나이 탓인지 몸이 좀 피곤했다. 둘째아들부부는 엘에이에 오면 큰아들 집에 머물며 지냈는데 그 날밤은 우리 집에서 잠을 자게 되어 은연중 긴장하고 신경을 썼던 것 같다. 그리곤 세밑의 바쁜 일정이 지나자마자 나는 감기몸살로 2주가 넘게 앓았다.  

   2012년 새해의 정월인데 외출도 못하고, 책도 못 읽고, 아무 것에도 집중하지 못한 채 감기를 끌어안고 미열에 시달리며 집안에 갇혀있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밤하늘의 별들이 유난히 맑고 푸르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보면 동심으로 돌아가서 유년의 추억이 달려온다.

   정신을 가다듬고 친구가 보낸 이 메일 '허불만원경이 본 우주'라는 영상을 보았다. 허불씨의 만원경은 무한대한 우주의 신비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어 감탄과 두려움과 더불어 창조주와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온몸으로 전해온다. 이 작은 땅 위에 두발 딛고 사는 인간존재의 실상이, 재물과 권력을 위해 이전 투구하는 인간생존경쟁이 가소롭고 안타깝다. 그래 동물 중 가장 위대하다는 인간의 지혜가 고작 이 정도인가...

   검은 우주 속 인식의 차원을 넘는 곳에서 '별이 총총히 빛나는 밤'이라는 성운을 지나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미성운과 오리온성운을 지나서 화면에 온통 쏟아지는 별빛으로 환상적으로 붓 칠이 된 은하수가 보인다. 그 옆에 잘못 찍어진 것 같은 붉은 색의 한 점이 우리의 태양계란다. 검붉고 둥근 소용돌이의 블랙홀의 무시무시한 위용, 그리고 지구에서 1000광년이나 떨어져있다는 전갈자리의 붉은 일등성인 안타레스(Antares)별, 아...그 별! 밤하늘에서 15번째로 밝은 별인 안타레스별에 비하면 70억의 인간들이 사는 태양계는 먼지 같은 크기로 지구는 점으로도 찍을 수 없는, 존재조차 아득한 소립자다.

   그러나 인간존재의 모든 문제들, 정치, 경제, 종교, 문화와 인권, 기아와 자연재해들, 국가와 민족간의 갈등, 끝없는 경쟁과 슬픔과 불평등으로 불안한 환경 속에서, 흔적 없는 시간 속에서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우듯 와우각상지쟁( 蝸牛角相之爭)을 일삼는 우리 70억의 영혼들... 생자필멸의 인생을, 기껏 100년을 넘지 못하는 순간의 인생을 우리는 먼지보다 작은 이 극입자에서 살고있다.

   "이것이 우주의 끝일까요? 모르죠 아닐지도..." 화면은 묻고있다. 허불만원경에 보이는 것이 우주의 전부가 아닐 것이라는, 무한에 대한 인간의 무지한 한계에 두려운 전율이 엄습한다. 그런데도 우리에겐 현재 우리가 사는 모래알갱이 같이 작은 지구와 그 위에서 마야의 베일이 씌워진 인간 생존의 현상이 우리가 가진 전부이다.

   근래에 세계를 휩쓴 혼미한 경제와 화산폭발과 쓰나미와 이상기온과 전쟁과 카오스의 정치실상이 신문을 도배해도, 이젠 일상으로 느껴진다. 누군가의 실수로 판도라 상자를 화들짝 열어 재킨것 같았던 2011년은 힘겹게 지나갔다. 우주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별이 빛나는 우리의 안식처는 우리가 가진 이 작은 지구뿐이다. 이 작은 지구,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유일한 우리의 행성을 우리스스로 보살피며 잘 간직해야 하는 이유를 허불만원경은 극명하게 보여준다.

   "어디까지 방황하며 멀리 가려느냐? / 보아라, 좋은 것은 여기 가까이 있다. / 행복을 잡는 방법을 알아두어라 / 행복이란 언제나 네 곁에 있다...독일의 낭만파 시인이며 소설가인 괴테가 그의 시 <경고>에서 일러주고 있다.

1/16/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