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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룡 kzl0917@naver.com 방송이나 출판매체가 발달하지 못했던 옛날 당송시(唐宋詩)와 같은 유명한 작품들이 어떻게 사회에 널리 전파될 수 있었을까? 중국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기녀들이 유명작품을 널리 전파하는데 크게 한몫을 했다고 한다. 성당(盛唐)시대의 유명한 시인이었던 왕창령(王昌齡), 고적(高適), 왕지환(王之煥) 세 사람이 함께 청루에 들렀다. 그때 마침 10여 명의 궁중악사가 네 명의 예기와 함께 주연을 열고 있었다. 네 명의 예기는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세 시인은 기생들이 부르는 노래 가운데서 누구의 노래가 많은지 내기를 하기로 했다. 당시 세 시인의 작품은 노래로 많이 불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먼저 한 예기가 왕창령의 작품을 노래했다. 왕창령이 기뻐했다. 다음의 예기는 고적의 작품을 노래하자 고적이 기뻐했다. 또 다른 예기가 다시 왕창령의 작품을 노래했다. 왕창령이 더욱 기뻐했다. 그러자 왕지환이 네 명의 예기 중에서 가장 용모가 뛰어난 한 명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만약 저 예기가 나의 작품을 노래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평생 당신들과 시의 우열을 논하지 않겠소.”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 예기는 과연 왕지환의 <양주사(凉州詞)>를 부르기 시작했다. “황하는 멀리 흰 구름 사이로 올라가고, 만 길의 높은 산에 외로운 성 하나. 오랑캐 피리의 ‘절양류(折楊柳)’ 이별가를 어찌 원망하랴? 봄바람은 아직 옥문관을 넘지도 않았거늘! 청루의 여인들은 시를 읊었을 뿐만 아니라 남송의 명기 엄예(嚴蘂)와 같은 기녀는 춤과 노래는 물론이고 거문고, 바둑, 글씨, 그림 등 문인들이 좋아하는 분야까지 두루 통달했으며 시도 잘 짓는 재녀였다. 그녀가 지은 <복산자(卜算子)>란 시를 감상해보자. “풍진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전생의 인연이 잘못된 때문인가 보오. 꽃이 지고 꽃이 피는 것은 자연히 때가 있으니, 모두 봄의 신에게 맡겨두세요. 가는 것은 끝내 가야하겠지만, 멈추는 것은 어떻게 멈추어야 할까요? 산에 핀 꽃을 머리에 가득 꽂을 수 있다면, 이 몸이 돌아간 곳은 묻지도 마오.” 청루여인들이 이렇듯 다재다능했기 때문에 풍류문인들은 그들을 지음(知音)으로 삼았다. 그리고 풍류문인들이 청루에 드나든 것은 단순히 그녀들과 잠자리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의 안식처로 여겼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청루는 고객들로 하여금 심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휴식공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기도 했다. 청루여인들의 품위가 높았기 때문에 황제조차 그녀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북송말기 풍류황제였던 휘종(徽宗)이 처음 이사사(李師師:당대의 가장 유명한 기생)의 집을 찾아가서 그녀의 얼굴을 한번 보기까지에는 상당히 많은 절차를 거쳐야 했다. 도착하자마자 먼저 차가 나왔고, 차를 다 마시자 다시 과일이 나왔다. 과일을 먹고 난 뒤에는 산보를 하면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 다음에는 시장해져서 다시 야식을 먹었다. 야식 뒤에는 향을 섞은 물에 목욕을 했으며, 목욕을 끝내고 한참 동안을 쉬고 나서야 이사사가 나타났다. 그러나 이사사를 만나고 나서도 휘종은 그녀와 잠시 대화를 나누고 노래를 한 곡조 들었을 뿐, 이사사의 손가락 하나 만져보지도 못하고 궁궐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런데도 휘종은 이와 같은 이사사와의 만남이 대단히 즐거워 만족스러워 했다고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휘종은 이사사를 만나기 위해 지존의 체면을 무릅쓰고 궁궐부터 그녀의 집까지 땅굴을 팠다고 한다. 풍류문인과 고관대작들은 물론이고 황제조차 기생들을 품위 있게 대했다는 것은 그녀들이 도도한 기품과 다재다능한 소질을 갖추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서양기생문화는 남자들이 화대를 지불하고 옷 벗고 섹스만 하면 끝인데 반해, 중국의 청루와 같은 기생문화는 남녀가 서로 육체보다 마음의 소통에 비중을 더 두었다는 것이다. 허나 중국도 명나라 때부터 청루의 여인들과 같은 예기(藝妓)가 사라지고 색기(色妓)만 남게 되었다. 이는 기생문화의 퇴화이다. [출처:조글로포럼 www.zoglo.net] [조글로 www.zoglo.net 공지: 저작권자(c) 제공사&저자.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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