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국밥과 손 글씨 - 김영교

 

지난여름에는 여럿 만남의 꽃이 아름답게 피었다. 덥지만 푸른 하늘이었다. 문학 강의 바람이 불어와 시원하게 더위를 식혀주었다. 시아틀에 사는 문우가 세미나 참석차 엘에이에 온 것은 덤이었다. 남편 선교사 따라 외지에 오래 가 있었던 동부 매리랜드의 손아래 소설가와 합류, 아주 오랜만에 우리는 무척 반가운 해후를 즐겼다. 모두 자기 자리에서 문학의 향기를 내뿜고 있는 청청한 모습이 고무적이었다.


오전 9시 행사 전 새벽같이 호텔로 달려갔다. 우리는 따끈한 전통 콩나물국밥 아침상을 앞에 놓고 여독을 풀고 회포를 풀었다. 이야기는 계속 되고 귀는 듣고 있는데 다행히 국밥은 뚝배기에 담겨져 식지 않았다. 지난번 스타인백(John Steinbeck) 생가 방문 문학기행 때였다. 토랜스 카풀 팀에게 그것도 투고로 주어진 아침식사가 이 콩나물국밥이었다. 그 때 따끈하게 먹은 투어버스 뒷좌석 국밥조찬은 맛도 맛이지만 그 배려를 잊을 수가 없었다. 모두 공복이었을 테니깐 말이다. 음유시객 의사 조만철 선생님 얘기를 하며 우리는 한참을 웃어재낀, 바로 그 미아리 콩나물국밥이었다.


콩나물국밥 그 이후 안착 댕큐카드 한 장이 배달되었다. 스케치한 콩나물 한 올 길게 그린 그림과 함께 귀한 손 글씨로 감사가 정갈하게 쓰여 있었다. 카드나 우편 편지는 늘 반갑다. 열었을 때 따뜻한 마음이 먼저 다가오기 때문이다. 다정한 손 글씨가 주는 정감은 유별나다. 가슴마저 두근거려지는 육필이 명필이면 그 느낌은 금상첨화, 정상온도 이상이 된다.


카톡이나 이멜, SNS가 대신 할 수도 있는 지금은 속도 세상, 감사표시도 그렇게 할 수 있는 편리, 간단, 약식ㅡ그런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인사를 꼭 해야 할 때가 있다. 처음에 계획하고 생각한 여러 감흥이 풀리지 않고 막히기도 한다. 손으로 써 내려가면 느낌이 살아나고 내 경우는 생각이 이어지고 잘 간추려 진다. 글자 하나하나가 숨을 쉬고 의미가 있기때문이다.


'목이 시린 그 때가 오면’ 나의 손 글씨는 악필이다. 정성껏 썼다. 헤어질 때 선물로 전해준 똑 같은 긴 스카프, 두 문인후배를 감싸리라. 그 안에 든 손 글씨에 더 내 마음을 담았다. 정성을 담고 속정을 숨겼다. 행사에 달려온 타주의 후배작가를 환영해준 것이었다. 이럴 때 감동의 초인종이 딩동 울려 건강에 우리는 발 돋음 하게 된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각박한 세상이다. 손 글씨 편지가 사라지고 있다. 서로의 안부를 전할 때 손 글씨로 하면 격이 있고 받으면 흐뭇하고 참 기쁘다. 이런 기쁨이 넉넉한 이웃관계를 이어간다.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손 글씨 편지쓰기, 손이 굳기 전에 마음이 먼저 굳어지면 어쩌나! 손 글씨 언문 마을 가까이 살고 싶다.


중앙일보 < 이 아침에 > 9-1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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