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편지
2002.12.11 09:36
시카고에 사는 고향 선배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그 도시에 연극 공연을 갔던 친구가 소식을 전해주어서 서로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고는 있었지만 편지는 처음이었다. 봉투 속에는 편지뿐만 아니라 더 늙기 전에 보낸다며 독사진과 가족 사진이 여러 장 있었고, 그가 신문과 문학지에 발표했던 산문들의 복사본이 함께 들어있었다.
비록 사진으로 만나긴 했지만 그 형과 30여 년만의 상봉은 깊은 감회를 불러 일으켰다. 이 선배는 내가 초등학교 때 우리 집과 울타리도 없이 붙어있는 이웃집에서 노모와 손아래 누이랑 셋이서 살던 젊은 형이었다. 그 때는 제임스 딘처럼 반항아적 모습을 가진 멋진 청년이었는데 사진 속에는 초로의 중년 신사가 눈 덮인 창밖의 풍경을 배경으로 하고 점잖게 앉아 있었다.
오랜 시간을 건너뛰어서 다시 이어진 인연 때문에 그 형과 전화로 나눈 주된 화제는 함께 공유했던, 오래 전 고향에서 가진 기억들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내게 온 편지는 내가 펴낸 산문집을 보내준 데 대한 답장이어서 책과 문학에 대한 얘기가 많았다. 형 또한 글을 쓰고 있는 분으로서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단순한 고향 동생을 넘어 동반자 같은 반가움을 느꼈나 보다.
그가 보내준 산문들은 휘갈겨 쓴 초서를 보는 것처럼 시원하고, 감성이 예리하게 날이 서 있어서 무딘 내 글들과 대조가 돼 보였다. 나에게는 하나의 충격처럼 다가온 그의 글들이 갖고 있는 신선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는 편지의 마지막 구절인 "한가지, 겨울도 없는 LA에 사는 네가 조금은 안쓰럽고 아쉽구나." 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펑펑 내리는 백설이 기다려진다. 정말 올 겨울에는 먼데서 찾아올 손님도 없고 또 나이 한 살 더 하는 것이 유난히 서러울 것도 같다"란 대목도 눈에 띤다.
내가 사는 LA 일대는 눈이 오지 않는다. 두 시간쯤 운전을 하고 산에나 가야 눈구경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겨울에 "펑펑 내리는 백설"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형은 그 아름다운 풍경을 놓치고 지내는 후배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 사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시카고에도 아직 눈이 오지 않았을 텐데 작년 사진인지 눈을 배경으로 한 사진이 세 장이나 되었다.
LA는 겨울에도 사철 푸른 골프장이 있고 좀처럼 영하로 내려가서 얼음이 어는 일조차 없이 따뜻하다. 살얼음이라도 어는 날에는 몇십 년만의 추위라며 언론에서 엄살을 떤다. 따로 특별한 월동준비가 필요 없다. LA의 겨울은 견뎌내야 할 시련의 계절이 아니다. 건조한 여름과 달리 비가 많이 와, 농작물이 오히려 더 잘 자라는 소생의 시간이다. 시카고의 혹독한 추위와 비교하면 LA엔 겨울이 없는 셈이다.
나는 형의 글이 갖고 있는 생동감의 비밀과 내가 요즘 통 시를 못쓰고 있는 이유를 동시에 찾아낼 수 있었다. 바로 '겨울'이었다. 형의 글이 온통 눈으로 잠겨버린, 오직 하얀 세상과 대면하면서 시린 가슴을 눈밭에 단련시킨 영혼의 떨림이 느껴지는 반면에 내 글은 그런 긴장과 깊은 맛이 없다. 경제적인 형편 또한 나아진 요즈음, 겨울이 없이 지내며 내 몸과 마음이 비만해졌다. 세상사는 재미에 너무 빠져 지내다보니 사물의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진실이나 감동이 보이지 않는다. 한 숟갈의 밥을 보면서도 그냥 밥일 뿐이다. 그것이 눈물로도 보이고, 돌아가신 이들의 현신으로도 보여야 시가 나오고 문학이 숨을 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시는 억지로 쓸려고 해서 써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내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내 마음이 사물의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치열한 단련이 있어야만 할 것 같다.
그 선배는 내가 겨울이 없는 곳에서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못내 안타까워하며 편지와 사진을 보내주었다. 편지의 구절 구절마다 배어 있는 따뜻한 마음이 전해온다. 그 온기를 가지고 올 겨울에는 추운 곳에도 찾아갈 작정이다. 한국의 눈 덮인 고향 들판이 그립다. 눈밭을 쓸고 오는 차가운 바람에 내 영혼의 얼굴을 오랫동안 맡겨 보고 싶다.
----- <열린시조> 2002년 겨울호 권두칼럼
비록 사진으로 만나긴 했지만 그 형과 30여 년만의 상봉은 깊은 감회를 불러 일으켰다. 이 선배는 내가 초등학교 때 우리 집과 울타리도 없이 붙어있는 이웃집에서 노모와 손아래 누이랑 셋이서 살던 젊은 형이었다. 그 때는 제임스 딘처럼 반항아적 모습을 가진 멋진 청년이었는데 사진 속에는 초로의 중년 신사가 눈 덮인 창밖의 풍경을 배경으로 하고 점잖게 앉아 있었다.
오랜 시간을 건너뛰어서 다시 이어진 인연 때문에 그 형과 전화로 나눈 주된 화제는 함께 공유했던, 오래 전 고향에서 가진 기억들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내게 온 편지는 내가 펴낸 산문집을 보내준 데 대한 답장이어서 책과 문학에 대한 얘기가 많았다. 형 또한 글을 쓰고 있는 분으로서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단순한 고향 동생을 넘어 동반자 같은 반가움을 느꼈나 보다.
그가 보내준 산문들은 휘갈겨 쓴 초서를 보는 것처럼 시원하고, 감성이 예리하게 날이 서 있어서 무딘 내 글들과 대조가 돼 보였다. 나에게는 하나의 충격처럼 다가온 그의 글들이 갖고 있는 신선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는 편지의 마지막 구절인 "한가지, 겨울도 없는 LA에 사는 네가 조금은 안쓰럽고 아쉽구나." 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펑펑 내리는 백설이 기다려진다. 정말 올 겨울에는 먼데서 찾아올 손님도 없고 또 나이 한 살 더 하는 것이 유난히 서러울 것도 같다"란 대목도 눈에 띤다.
내가 사는 LA 일대는 눈이 오지 않는다. 두 시간쯤 운전을 하고 산에나 가야 눈구경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겨울에 "펑펑 내리는 백설"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형은 그 아름다운 풍경을 놓치고 지내는 후배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 사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시카고에도 아직 눈이 오지 않았을 텐데 작년 사진인지 눈을 배경으로 한 사진이 세 장이나 되었다.
LA는 겨울에도 사철 푸른 골프장이 있고 좀처럼 영하로 내려가서 얼음이 어는 일조차 없이 따뜻하다. 살얼음이라도 어는 날에는 몇십 년만의 추위라며 언론에서 엄살을 떤다. 따로 특별한 월동준비가 필요 없다. LA의 겨울은 견뎌내야 할 시련의 계절이 아니다. 건조한 여름과 달리 비가 많이 와, 농작물이 오히려 더 잘 자라는 소생의 시간이다. 시카고의 혹독한 추위와 비교하면 LA엔 겨울이 없는 셈이다.
나는 형의 글이 갖고 있는 생동감의 비밀과 내가 요즘 통 시를 못쓰고 있는 이유를 동시에 찾아낼 수 있었다. 바로 '겨울'이었다. 형의 글이 온통 눈으로 잠겨버린, 오직 하얀 세상과 대면하면서 시린 가슴을 눈밭에 단련시킨 영혼의 떨림이 느껴지는 반면에 내 글은 그런 긴장과 깊은 맛이 없다. 경제적인 형편 또한 나아진 요즈음, 겨울이 없이 지내며 내 몸과 마음이 비만해졌다. 세상사는 재미에 너무 빠져 지내다보니 사물의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진실이나 감동이 보이지 않는다. 한 숟갈의 밥을 보면서도 그냥 밥일 뿐이다. 그것이 눈물로도 보이고, 돌아가신 이들의 현신으로도 보여야 시가 나오고 문학이 숨을 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시는 억지로 쓸려고 해서 써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내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내 마음이 사물의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치열한 단련이 있어야만 할 것 같다.
그 선배는 내가 겨울이 없는 곳에서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못내 안타까워하며 편지와 사진을 보내주었다. 편지의 구절 구절마다 배어 있는 따뜻한 마음이 전해온다. 그 온기를 가지고 올 겨울에는 추운 곳에도 찾아갈 작정이다. 한국의 눈 덮인 고향 들판이 그립다. 눈밭을 쓸고 오는 차가운 바람에 내 영혼의 얼굴을 오랫동안 맡겨 보고 싶다.
----- <열린시조> 2002년 겨울호 권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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