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맹과 함께 생각한다
2003.05.30 11:24
컴퓨터가 2000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이변이 생길 것이라고 작년말에 우려하던 일이 조용히, 무사히 지나갔다.
'Y2K 문제'라고 불리던 위험이 아직도 완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남아 있다고는 하지만 크게 걱정한 것에 비해 너무나 조용히 2000년을 맞았다. 준비를 철저히 한 덕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지나치게 걱정을 해서 국가 예산만 날렸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튼 전쟁도 없고, 전기와 물도 전과 같이 사용할 수 있으니 다행스럽고 새해가 더욱 희망에 차 보인다.
'Y2K 문제'는 해결이 되어 잘 지나가고 있지만 'Y2K 문제'가 나에게 던진 충격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나는 컴퓨터란 우주의 신비를 밝히는 우주선이나, 첨단 공학 기술을 개발하는 데 쓰이거나,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전자 계산기나 워드 프로세서와 같은 도구 정도로만 여겨왔었다. 그러나 컴퓨터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 보다 수만 배나 큰 괴물이 되어 우리의 일상 생활 곁에 도사리고 있었다. 나는 이번 'Y2K 문제'로 잠깐 몸뚱이를 드러낸 컴퓨터의 실체를 꿈인 듯 힐끗 보게 된 것이다.
나는 왜 학자들이 새로운 세기, 새로운 천년을 얘기할 때마다 컴퓨터와 사이버의 세계를 들먹이는지 실감했다. 왜 컴퓨터와 인터넷 관련 산업들의 주가가 하늘 높은지 모르고 올라가는지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컴퓨터는 다가올 세상의 문제이고, 미래의 주인공이 아니라 바로 현재의 세상을 이미 지배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Y2K 문제'가 나에게 던진 충격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이러한 사실을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서 생긴 것이다.
컴퓨터가 2000년을 0년으로 계산해버려서 생길 수 있는 문제가 얼마나 다양하고 큰지만 보아도 컴퓨터의 영향력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컴퓨터는 미사일에서부터 비행기, 전화, 엘리베이터를 움직이고 있으며 은행, 관공서, 전기, 수도 회사의 업무를 장악하고 있다. 주유소는 물론 마켓까지도 예외일 수 없다. 매상 및 직원들의 인사 관리는 물론이고 마켓 공급되는 물건들의 생산 및 유통 과정에서도 컴퓨터는 일일이 간여하고 있다. 컴퓨터의 발달은 곧 정보 통신의 발달이라고 달리 말할 수 있다. 세계의 어느 한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 동시(real time)에 지구의 극과 극을 달린다. 지구촌에 사는 사람들끼리 단추 하나로 컴퓨터를 통해 연결된다. 지구는 좁아지고 쏟아지는 정보를 컴퓨터를 통해 받아들이고, 정리하고, 사용한다.
나는 그런 세상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나는 가라오케나 노래방에서 기계에 맞춰 개성이 없이 부르는 노래보다는 비록 음정 박자는 틀리더라도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정서가 느껴지는 무반주 노래가 더 듣기 좋다. 인간과 인간의 체온이 느껴지지 않는 사이버의 세계는 무서워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내 취향만을 고집하며 컴퓨터를 멀리하고 있다가는 패잔병이 될 것 같다. 세상은 2000년대로 급변하고 있는데 나 혼자 석기시대에 머물 순 없다. 컴퓨터를 보다 가까이 하자. 이 생각이 바로 'Y2K 문제'를 보면서 내가 갖게 된 결론이다.
그런데 컴퓨터가 그렇게 어렵고, 가까이 할 수 없는 두려운 것일까. 컴퓨터는 관련된 하드웨어와 함께 소프트웨어도 발달하여 보다 대중화되고 실용화되어 있다. 소위 '컴맹'이라 자처하는 사람들도 실제로는 생활 중에 컴퓨터를 꽤 사용하고 있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워드 프로세서나 은행의 자동인출기 등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은 이미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고, 인터넷이라든가 다른 프로그램 등을 사용하는 방법도 절대로 더 어렵지 않다.
물론 직접 프로그램을 만든다던가, 컴퓨터를 조립하고 전문적인 분야에 이용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한인 컴퓨터 상점에 가면 컴퓨터를 조립해서 적당한 소프트웨어까지 담아 준다. 전기 밥솥을 사용하는 것처럼 사용법만 익히면 된다.
혹은 자녀들이 컴퓨터를 다 갖고 있으니 살 필요 없이 그걸 사용하면 된다.
컴퓨터가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은 이론으로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세탁기 사용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세탁기 사용법을 안내 책자만 보고 배우려 하면 상당히 어렵다. 그러나 실제로 사용하는 것을 옆에서 보고 배우면 그것처럼 쉬운 일도 없다. 컴퓨터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시작'이다. '컴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컴퓨터를 좀 아는 사람과 함께 단 30분만 시간을 투자하면 컴맹을 면할 수 있다. 일단 컴맹을 면하면 경험을 통해 익숙해지기만 하면 된다. 내가 보장하지만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은 단 10분이면 인터넷 사용법도 알게 될 것이다.
희망찬 새해를 맞아서일까. 나처럼 컴퓨터에 익숙하지 사람들과 함께 좀 낡은 방식이긴 하지만 이런 구호를 씩씩하게 외쳐보고 싶다.
"우리 함께 정보 사회 건설에 참여합시다."
----- 미주 중앙일보 칼럼 <이 아침에> 2000년 1월 12일자
'Y2K 문제'라고 불리던 위험이 아직도 완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남아 있다고는 하지만 크게 걱정한 것에 비해 너무나 조용히 2000년을 맞았다. 준비를 철저히 한 덕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지나치게 걱정을 해서 국가 예산만 날렸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튼 전쟁도 없고, 전기와 물도 전과 같이 사용할 수 있으니 다행스럽고 새해가 더욱 희망에 차 보인다.
'Y2K 문제'는 해결이 되어 잘 지나가고 있지만 'Y2K 문제'가 나에게 던진 충격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나는 컴퓨터란 우주의 신비를 밝히는 우주선이나, 첨단 공학 기술을 개발하는 데 쓰이거나,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전자 계산기나 워드 프로세서와 같은 도구 정도로만 여겨왔었다. 그러나 컴퓨터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 보다 수만 배나 큰 괴물이 되어 우리의 일상 생활 곁에 도사리고 있었다. 나는 이번 'Y2K 문제'로 잠깐 몸뚱이를 드러낸 컴퓨터의 실체를 꿈인 듯 힐끗 보게 된 것이다.
나는 왜 학자들이 새로운 세기, 새로운 천년을 얘기할 때마다 컴퓨터와 사이버의 세계를 들먹이는지 실감했다. 왜 컴퓨터와 인터넷 관련 산업들의 주가가 하늘 높은지 모르고 올라가는지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컴퓨터는 다가올 세상의 문제이고, 미래의 주인공이 아니라 바로 현재의 세상을 이미 지배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Y2K 문제'가 나에게 던진 충격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이러한 사실을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서 생긴 것이다.
컴퓨터가 2000년을 0년으로 계산해버려서 생길 수 있는 문제가 얼마나 다양하고 큰지만 보아도 컴퓨터의 영향력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컴퓨터는 미사일에서부터 비행기, 전화, 엘리베이터를 움직이고 있으며 은행, 관공서, 전기, 수도 회사의 업무를 장악하고 있다. 주유소는 물론 마켓까지도 예외일 수 없다. 매상 및 직원들의 인사 관리는 물론이고 마켓 공급되는 물건들의 생산 및 유통 과정에서도 컴퓨터는 일일이 간여하고 있다. 컴퓨터의 발달은 곧 정보 통신의 발달이라고 달리 말할 수 있다. 세계의 어느 한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 동시(real time)에 지구의 극과 극을 달린다. 지구촌에 사는 사람들끼리 단추 하나로 컴퓨터를 통해 연결된다. 지구는 좁아지고 쏟아지는 정보를 컴퓨터를 통해 받아들이고, 정리하고, 사용한다.
나는 그런 세상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나는 가라오케나 노래방에서 기계에 맞춰 개성이 없이 부르는 노래보다는 비록 음정 박자는 틀리더라도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정서가 느껴지는 무반주 노래가 더 듣기 좋다. 인간과 인간의 체온이 느껴지지 않는 사이버의 세계는 무서워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내 취향만을 고집하며 컴퓨터를 멀리하고 있다가는 패잔병이 될 것 같다. 세상은 2000년대로 급변하고 있는데 나 혼자 석기시대에 머물 순 없다. 컴퓨터를 보다 가까이 하자. 이 생각이 바로 'Y2K 문제'를 보면서 내가 갖게 된 결론이다.
그런데 컴퓨터가 그렇게 어렵고, 가까이 할 수 없는 두려운 것일까. 컴퓨터는 관련된 하드웨어와 함께 소프트웨어도 발달하여 보다 대중화되고 실용화되어 있다. 소위 '컴맹'이라 자처하는 사람들도 실제로는 생활 중에 컴퓨터를 꽤 사용하고 있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워드 프로세서나 은행의 자동인출기 등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은 이미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고, 인터넷이라든가 다른 프로그램 등을 사용하는 방법도 절대로 더 어렵지 않다.
물론 직접 프로그램을 만든다던가, 컴퓨터를 조립하고 전문적인 분야에 이용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한인 컴퓨터 상점에 가면 컴퓨터를 조립해서 적당한 소프트웨어까지 담아 준다. 전기 밥솥을 사용하는 것처럼 사용법만 익히면 된다.
혹은 자녀들이 컴퓨터를 다 갖고 있으니 살 필요 없이 그걸 사용하면 된다.
컴퓨터가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은 이론으로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세탁기 사용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세탁기 사용법을 안내 책자만 보고 배우려 하면 상당히 어렵다. 그러나 실제로 사용하는 것을 옆에서 보고 배우면 그것처럼 쉬운 일도 없다. 컴퓨터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시작'이다. '컴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컴퓨터를 좀 아는 사람과 함께 단 30분만 시간을 투자하면 컴맹을 면할 수 있다. 일단 컴맹을 면하면 경험을 통해 익숙해지기만 하면 된다. 내가 보장하지만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은 단 10분이면 인터넷 사용법도 알게 될 것이다.
희망찬 새해를 맞아서일까. 나처럼 컴퓨터에 익숙하지 사람들과 함께 좀 낡은 방식이긴 하지만 이런 구호를 씩씩하게 외쳐보고 싶다.
"우리 함께 정보 사회 건설에 참여합시다."
----- 미주 중앙일보 칼럼 <이 아침에> 2000년 1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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