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없어졌다!
2003.03.16 00:21
"Dog's Missing!(개가 없어졌다!)"
내 조카 잔(John)이 초등 학교 다닐 때, 옆집 꼬마 녀석이 큰 소리로 외치고 다녔다. 물론 잔을 놀리기 위한 수작이었다. 의역하자면 "너희 한국 사람들은 개고기를 먹는다지. 우리 동네에 개가 간혹 없어지는데 너희가 잡아먹은 거 아냐?"란 말이다.
똘똘하던 잔은 그 녀석이 독일계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Jew's missing!(유대인이 없어졌다!)"이라고 큰 소리로 응수했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들은 어른들은 모두 통쾌하게 생각했다. 조카의 짧은 말을 모두들 길게 풀어 이렇게 해석했던 것 같다. "소나 말처럼 개도 짐승에 불과할 뿐인데 개고기 먹는 게 뭐가 어떻단 말이냐. 너희들은 박애주의자인 양 행세하지만 정작 사람을 노예로 부리고 유대인을 육백만 명씩이나 죽인 잔인한 자들이 아닌가."
'이에는 이' 식으로, 자기를 화나게 하려던 아이를 오히려 화나게 만들었던 잔은 다행히 백인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학교생활을 하다가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미식축구 선수로 뛰었고 학교 전체의 인기투표에서 2년 연속 '올해의 왕자'로 뽑혀 백인 집중 거주지인 트레이시 시내를 시가 행진하기도 했다. 이웃 꼬마와 싸웠던 얘기는 늠름한 청년이 된 잔에게 이제 한낱 어린 시절의 지나간 일일뿐이고 어쩌면 당사자 잔은 잊어버렸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얘기를 생각나게 한 신문 기사가 있었다. 캐나다 토론토에 거주하는 송형승씨가 모 본국지에 투고한 "보신탕 이슈화 해외동포들 곤혹"이란 제목의 글이었다. 그 글에 따르면 "지난 7월 26일 캐나다 한국공관 앞에서 보신탕 반대 시위"가 있었으며 "개를 축산물에 포함시키려는 우리 나라 국회의원들의 발의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 시위는 캐나다의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에까지 보도되고 있고 한국산 불매운동도 함께 벌이고 있으니 결국 피해는 동포들은 물론 한국에까지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이제는 세계가 정보 통신의 발달로 더욱 좁아지고 있다. 단추 몇 번만 누르면 인터넷을 통해 국경을 넘어 사람을 만나고, 정보를 교환하고, 물건을 거래한다. 세계는 이제 바야흐로 '지구촌'이 되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는 일을 '어느 한 나라의 음식 문화'로만 내버려두지 않는다. 한국의 국회에서 논의 단계에 있는 안건이 캐나다 사람들의 시위 대상이 되고 있지 않은가...
친한 친구가 유학생 시절에 창난젓을 냉장고 안에 넣어 두고 별미 음식으로 아껴 먹고 있었다. 함께 방을 쓰던 백인 학생이 그 병의 내용물이 생선의 창자인 것을 알고 거의 기절할 정도로 놀라더라고 했다. 나도 몇 번 본 적이 있는 그 백인 학생은 자신도 인디안 피가 4분의 1이 섞인 혼혈이어서인지 김치도 자꾸 먹어 보려고 하는 등 한국 사람과 한국 문화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그런 그도 어떤 부분에 이르르면 노력과는 달리 어쩔 수 없는 문화적 충격을 갖게 되는 모양이었다. 결국 내 친구는 그 아까운 창난젓을 버리고 말았다.
창난젓을 버리고 먹지 않았던 친구처럼, 그리고 자식들이 구역질을 한다면 식탁에 개고기를 올리지 않을 대부분의 부모처럼 이 지구촌을 함께 살아가야 할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대부분의 나라 사람들이 개고기 먹는 것을 혐오스러워 하는 분위기 속에서 먹는 것이라면 개고기를 먹을 때 굳이 소문까지 낼 필요는 없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개고기를 축산물에 집어넣어 위생적 도축과 판매 과정을 입법화시켜 불법 도축과 판매 과정상의 불결함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겠다는 입법 추진 의원의 생각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개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면서 개의 도축과 관리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지금 있는 법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시행 법령을 최소한으로 개정 보충하고, 유추 해석한 판례를 남겨 그것을 통해 개고기의 유통과정을 통제하고 양성화시킬 수는 없을까. 이를테면 "모든 판매를 위한 육류" (물론 이는 법에 대한 문외한인 내가 만들 수 있는 하나의 유치한 예이고 법전문가가 만든다면 적절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정도의 상위 개념으로 개고기를 포함시키면 가능하지는 않을까. 인간 자율의 폭이 적어진 세분화된 법, 구체적이고 다양해진 법을 가진 사회
가 더욱 이상적인 사회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까마귀, 지렁이, 그리고 사슴의 피를 먹는다고 해서 각각의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는 더더구나 생각지 않는다.
미국 사람들의 개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는 것은 새삼스레 말할 필요가 없다. 개와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한다. 그런 개를 먹는다는 것은 미국인들에게 도무지 용인할 수 없는 야만의 극치로 보일 것이다.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가난한 지난날 국민건강을 오랫동안 지켜 준 음식 문화를 버리지 않겠다는 우리 나라 사람들의 꿋꿋함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보는 우리 이민자들의 느낌은 좀 다르다. 한국이 국회에서 법으로 개를 축산물에 포함시킨 유일한 나라가 된다면 미국인들은 우리의 귀에다 대고 더욱 큰 소리로 "개가 없어졌다!"고 떠들어 댈 것이기 때문이다.
---- 미주 중앙일보 칼럼 <이 아침에> 1999년 8월 11일자
내 조카 잔(John)이 초등 학교 다닐 때, 옆집 꼬마 녀석이 큰 소리로 외치고 다녔다. 물론 잔을 놀리기 위한 수작이었다. 의역하자면 "너희 한국 사람들은 개고기를 먹는다지. 우리 동네에 개가 간혹 없어지는데 너희가 잡아먹은 거 아냐?"란 말이다.
똘똘하던 잔은 그 녀석이 독일계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Jew's missing!(유대인이 없어졌다!)"이라고 큰 소리로 응수했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들은 어른들은 모두 통쾌하게 생각했다. 조카의 짧은 말을 모두들 길게 풀어 이렇게 해석했던 것 같다. "소나 말처럼 개도 짐승에 불과할 뿐인데 개고기 먹는 게 뭐가 어떻단 말이냐. 너희들은 박애주의자인 양 행세하지만 정작 사람을 노예로 부리고 유대인을 육백만 명씩이나 죽인 잔인한 자들이 아닌가."
'이에는 이' 식으로, 자기를 화나게 하려던 아이를 오히려 화나게 만들었던 잔은 다행히 백인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학교생활을 하다가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미식축구 선수로 뛰었고 학교 전체의 인기투표에서 2년 연속 '올해의 왕자'로 뽑혀 백인 집중 거주지인 트레이시 시내를 시가 행진하기도 했다. 이웃 꼬마와 싸웠던 얘기는 늠름한 청년이 된 잔에게 이제 한낱 어린 시절의 지나간 일일뿐이고 어쩌면 당사자 잔은 잊어버렸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얘기를 생각나게 한 신문 기사가 있었다. 캐나다 토론토에 거주하는 송형승씨가 모 본국지에 투고한 "보신탕 이슈화 해외동포들 곤혹"이란 제목의 글이었다. 그 글에 따르면 "지난 7월 26일 캐나다 한국공관 앞에서 보신탕 반대 시위"가 있었으며 "개를 축산물에 포함시키려는 우리 나라 국회의원들의 발의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 시위는 캐나다의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에까지 보도되고 있고 한국산 불매운동도 함께 벌이고 있으니 결국 피해는 동포들은 물론 한국에까지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이제는 세계가 정보 통신의 발달로 더욱 좁아지고 있다. 단추 몇 번만 누르면 인터넷을 통해 국경을 넘어 사람을 만나고, 정보를 교환하고, 물건을 거래한다. 세계는 이제 바야흐로 '지구촌'이 되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는 일을 '어느 한 나라의 음식 문화'로만 내버려두지 않는다. 한국의 국회에서 논의 단계에 있는 안건이 캐나다 사람들의 시위 대상이 되고 있지 않은가...
친한 친구가 유학생 시절에 창난젓을 냉장고 안에 넣어 두고 별미 음식으로 아껴 먹고 있었다. 함께 방을 쓰던 백인 학생이 그 병의 내용물이 생선의 창자인 것을 알고 거의 기절할 정도로 놀라더라고 했다. 나도 몇 번 본 적이 있는 그 백인 학생은 자신도 인디안 피가 4분의 1이 섞인 혼혈이어서인지 김치도 자꾸 먹어 보려고 하는 등 한국 사람과 한국 문화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그런 그도 어떤 부분에 이르르면 노력과는 달리 어쩔 수 없는 문화적 충격을 갖게 되는 모양이었다. 결국 내 친구는 그 아까운 창난젓을 버리고 말았다.
창난젓을 버리고 먹지 않았던 친구처럼, 그리고 자식들이 구역질을 한다면 식탁에 개고기를 올리지 않을 대부분의 부모처럼 이 지구촌을 함께 살아가야 할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대부분의 나라 사람들이 개고기 먹는 것을 혐오스러워 하는 분위기 속에서 먹는 것이라면 개고기를 먹을 때 굳이 소문까지 낼 필요는 없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개고기를 축산물에 집어넣어 위생적 도축과 판매 과정을 입법화시켜 불법 도축과 판매 과정상의 불결함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겠다는 입법 추진 의원의 생각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개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면서 개의 도축과 관리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지금 있는 법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시행 법령을 최소한으로 개정 보충하고, 유추 해석한 판례를 남겨 그것을 통해 개고기의 유통과정을 통제하고 양성화시킬 수는 없을까. 이를테면 "모든 판매를 위한 육류" (물론 이는 법에 대한 문외한인 내가 만들 수 있는 하나의 유치한 예이고 법전문가가 만든다면 적절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정도의 상위 개념으로 개고기를 포함시키면 가능하지는 않을까. 인간 자율의 폭이 적어진 세분화된 법, 구체적이고 다양해진 법을 가진 사회
가 더욱 이상적인 사회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까마귀, 지렁이, 그리고 사슴의 피를 먹는다고 해서 각각의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는 더더구나 생각지 않는다.
미국 사람들의 개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는 것은 새삼스레 말할 필요가 없다. 개와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한다. 그런 개를 먹는다는 것은 미국인들에게 도무지 용인할 수 없는 야만의 극치로 보일 것이다.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가난한 지난날 국민건강을 오랫동안 지켜 준 음식 문화를 버리지 않겠다는 우리 나라 사람들의 꿋꿋함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보는 우리 이민자들의 느낌은 좀 다르다. 한국이 국회에서 법으로 개를 축산물에 포함시킨 유일한 나라가 된다면 미국인들은 우리의 귀에다 대고 더욱 큰 소리로 "개가 없어졌다!"고 떠들어 댈 것이기 때문이다.
---- 미주 중앙일보 칼럼 <이 아침에> 1999년 8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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