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가락과 포크
2003.08.20 00:40
지난 6월 8일 박찬호 선수는 미 프로야구 내셔널리그 회장으로부터 '7게임 출장 정지, 벌금 3000불'의 중징계를 받았다. 5일 있었던 애너하임 앤젤스와의 시합에서 박 선수는 강한 태클과 욕설을 한 상대 투수 팀 벨처를 팔뚝과 발로 가격했었기 때문이다.
경기중 흔히 일어나는 몸싸움에 보통 3-5회의 출장 정지를 징계로 내리는 관례에 비추어 비교적 무거운 징계를 받은 박 선수는 기자 회견을 통해 억울하고 서운한 감정을 표출했다. 원인을 제공한 팀 벨처에게는 아무런 징계가 없는 것 또한 박 선수의 섭섭함을 깊게 해준 모양이다.
박 선수는 스파이크를 신은 상태에서 상대를 가격한 것이 악재가 됐다는 기자의 얘기에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과 포크를 사용하는 게 무엇이 다른가"하고 반문했다. 발을 쓰나 손을 쓰나 사람을 때리기는 마찬가지인데 유독 발을 썼다고 중징계를 하는 것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겪는 차별이라는 것이 박 선수의 생각이다.
또 박 선수는 회견 중에 "한국에서 찬반 양론이 분분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동안 내가 당한 일을 안다면 내 행동을 이해할 것이다"라는 말도 했다. 물론 나는, 박 선수가 왜 그런 폭력을 썼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 동안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당해 왔으면 그렇게 폭발했을까. 박 선수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그 동안 내가 당한 일"을 듣지 않아도 다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어디에나 있기 마련인 우월주의자들의 은근한 멸시와 질시도 있었을 것이고, 영어에 서툴러 억울한 일을 당해도 변변히 대꾸도 못하고 넘어간 일도 많았을 것이다.
박 선수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니 지나간 일 하나가 떠올랐다.
몇 년 전 내가 스왑밑에서 장사를 하고 있던 때였다. 중학생쯤 돼 보이는 애들이 여럿이서 한참 떠들다 일부가 먼저 나갔다. 옆 가게 아주머니가 방금 나간 애들이 물건을 훔쳐 가는 것 같다고 빨리 쫓아 가보라고 했다. 가게에서 손님들에게 상품을 팔면 꼭 봉투에 넣어 주기 때문에 봉투에 담기지 않은 상품을 들고 나가니까 수상해서 내게 알려주신 것이다. 쫓아가 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한 계집아이가 훔친 물건을 들고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내 물건을 낚아챘다.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말라"는 단 한마디 충고만 남기고 또 다른 패거리들이 남아 있는 가게로 급히 돌아 왔다. 조금 있으니 그 녀석들이 돌아 와서 나를 보고 밖으로 나와 자기들과 싸우자고 했다. 자기의 여자 친구를 내가 폭행했다는 것이다. 맹세코 나는 그 아이들에게 폭행은커녕 폭언조차 하지 않았던 터라 정말 '환장할' 일이었다. 그 때 달려온 경비원도 '아무런 폭력도 당하지 않았다면 도둑질까지 한 약점이 있는 놈들이 저렇게까지 날뛸까' 하는 눈치로 은근히 중립적인 위치를 취했다.
이 일은 내가 당했던 한가지 작은 예에 불과하다. 이렇게 답답하고 황당한 일을 무수하게 겪은 우리 이민자들이 왜 박 선수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그러나 박 선수는 미국 사람들과 미국 팬들의 규칙과 법, 그리고 그들의 기준에 따라야 하는 미국 프로 야구 선수이다. '우리'가 아닌 '그들'의 이해와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우리 이민자들과 박 선수 자신이 해온 것처럼 참고 또 참아야 한다. 박 선수는 한국 사람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위대한 선수가 될 사람이 아닌가.
앞에 얘기한 내 사건도 당시에는 너무나 화가 나 참기 힘들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주위 사람들과 경비원이 말려서 그 정도로 끝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내 아들 뻘인 아이들과 주먹다짐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생각해 보면 정말 끔찍하다. 싸워서 이긴다 해도 미성년자 폭행으로 구속되었을 것이고, 십중팔구 그렇게 됐겠지만 그 아이들에게 맞았더라면 또 얼마나 억울하고 속상했겠는가.
박 선수가 지적한 대로 젓가락과 포크는 똑 같다. 발로 차거나 손으로 치거나 폭행은 폭행이다. 그렇기 때문에 똑같이 참고 피해야 할 일이다.
------- 미주 중앙일보 칼럼 <이 아침에> 1999년 6월 16일자
경기중 흔히 일어나는 몸싸움에 보통 3-5회의 출장 정지를 징계로 내리는 관례에 비추어 비교적 무거운 징계를 받은 박 선수는 기자 회견을 통해 억울하고 서운한 감정을 표출했다. 원인을 제공한 팀 벨처에게는 아무런 징계가 없는 것 또한 박 선수의 섭섭함을 깊게 해준 모양이다.
박 선수는 스파이크를 신은 상태에서 상대를 가격한 것이 악재가 됐다는 기자의 얘기에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과 포크를 사용하는 게 무엇이 다른가"하고 반문했다. 발을 쓰나 손을 쓰나 사람을 때리기는 마찬가지인데 유독 발을 썼다고 중징계를 하는 것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겪는 차별이라는 것이 박 선수의 생각이다.
또 박 선수는 회견 중에 "한국에서 찬반 양론이 분분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동안 내가 당한 일을 안다면 내 행동을 이해할 것이다"라는 말도 했다. 물론 나는, 박 선수가 왜 그런 폭력을 썼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 동안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당해 왔으면 그렇게 폭발했을까. 박 선수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그 동안 내가 당한 일"을 듣지 않아도 다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어디에나 있기 마련인 우월주의자들의 은근한 멸시와 질시도 있었을 것이고, 영어에 서툴러 억울한 일을 당해도 변변히 대꾸도 못하고 넘어간 일도 많았을 것이다.
박 선수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니 지나간 일 하나가 떠올랐다.
몇 년 전 내가 스왑밑에서 장사를 하고 있던 때였다. 중학생쯤 돼 보이는 애들이 여럿이서 한참 떠들다 일부가 먼저 나갔다. 옆 가게 아주머니가 방금 나간 애들이 물건을 훔쳐 가는 것 같다고 빨리 쫓아 가보라고 했다. 가게에서 손님들에게 상품을 팔면 꼭 봉투에 넣어 주기 때문에 봉투에 담기지 않은 상품을 들고 나가니까 수상해서 내게 알려주신 것이다. 쫓아가 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한 계집아이가 훔친 물건을 들고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내 물건을 낚아챘다.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말라"는 단 한마디 충고만 남기고 또 다른 패거리들이 남아 있는 가게로 급히 돌아 왔다. 조금 있으니 그 녀석들이 돌아 와서 나를 보고 밖으로 나와 자기들과 싸우자고 했다. 자기의 여자 친구를 내가 폭행했다는 것이다. 맹세코 나는 그 아이들에게 폭행은커녕 폭언조차 하지 않았던 터라 정말 '환장할' 일이었다. 그 때 달려온 경비원도 '아무런 폭력도 당하지 않았다면 도둑질까지 한 약점이 있는 놈들이 저렇게까지 날뛸까' 하는 눈치로 은근히 중립적인 위치를 취했다.
이 일은 내가 당했던 한가지 작은 예에 불과하다. 이렇게 답답하고 황당한 일을 무수하게 겪은 우리 이민자들이 왜 박 선수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그러나 박 선수는 미국 사람들과 미국 팬들의 규칙과 법, 그리고 그들의 기준에 따라야 하는 미국 프로 야구 선수이다. '우리'가 아닌 '그들'의 이해와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우리 이민자들과 박 선수 자신이 해온 것처럼 참고 또 참아야 한다. 박 선수는 한국 사람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위대한 선수가 될 사람이 아닌가.
앞에 얘기한 내 사건도 당시에는 너무나 화가 나 참기 힘들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주위 사람들과 경비원이 말려서 그 정도로 끝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내 아들 뻘인 아이들과 주먹다짐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생각해 보면 정말 끔찍하다. 싸워서 이긴다 해도 미성년자 폭행으로 구속되었을 것이고, 십중팔구 그렇게 됐겠지만 그 아이들에게 맞았더라면 또 얼마나 억울하고 속상했겠는가.
박 선수가 지적한 대로 젓가락과 포크는 똑 같다. 발로 차거나 손으로 치거나 폭행은 폭행이다. 그렇기 때문에 똑같이 참고 피해야 할 일이다.
------- 미주 중앙일보 칼럼 <이 아침에> 1999년 6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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