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내 차를 산 다음날

2003.08.20 00:42

김동찬 조회 수:923 추천:35

미국으로 이민 와서 내 차를 처음 갖게 되었을 때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내가 미국으로 이민오던 1985년만 해도 한국에서는 승용차란 주로 고위 관리나 사장님들이 타고 다니는 고급 사치품이었다. 직장 초년생이었던 내가 차를 갖는다는 일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잘 사는 나라에 이민 온 덕택으로 비록 소형차이긴 하지만 내가 미제 자가용을 몰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으니 그 날 저녁의 황홀함이야 말해 무엇하랴.
그 다음 날 아침, 평소에 잘 안 마시던 우유를 사러 간다고 아파트 주차장으로 내려 왔다. 밤새 차가 잘 있었는지 궁금하고 내 차를 운전해보고도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시동을 걸고 차가 데워지기를 기다린 후에 서서히 차를 후진시켰다. 차를 조금 뺀 다음, 손잡이를 오른 쪽으로 꺾는데 차가 갑자기 뿌욱 소리를 내면서 움직이지를 않았다. 왼쪽에 아파트를 받히고 있는 쇠기둥에 내 차가 걸린 것이었다. 기둥에 걸리며 생긴 페인트 자국을 대충 지우고 보니 다행히 정비소에 갈 정도로 그리 크게 찌그러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긁히고 푹 들어간 부분이 새차를 산 감격을 무너트리고 있었다.
이 때의 상실감은 대단한 것이어서 말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심지어 내가 미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은 무력감까지도 느껴졌다. 찬란해 보였던 아메리칸 드림마저도 사막의 건조한 태양처럼 잔인해 보였다.
그러나 그런 절망감도 바쁜 이민 생활 중에 먹고사는 일에 밀려 하나의 사치스런 감정에 불과하게 되었다. 복잡한 도시에 살다보니 좁은 주차장에서는 옆 차의 문에 부딪힌 자국이 생겼다. 도둑도 수시로 들어서 유리창도 깨지고 문의 잠금 장치도 곧잘 부서졌다. 접촉사고도 빈번하게 일어났지만 나는 예전처럼 놀라지 않고 덤덤하게 되었다.
가난했던 한국에서와는 달리 차란 사람이 편리하게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하고, 세상의 모든 도구가 그렇듯이 자꾸 사용하다보면 흠집도 나고 낡아질 수밖에 없다는 아주 평범한 사실을 깨달았다. 차를 산 다음 날 아침부터 접촉 사고가 일어나기 시작했으니 내가 그런 깨달음을 얻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일찍이 '깨끗한 차'가 내 팔자에 없다는 걸 깨닫게 해준 그 차도 두 번이나 사고가 난 후 결국 폐차 처리되었다.
이제 나는 차 사고가 나도 사람만 무사하면 차의 손상에 대해서는 그리 가슴 아파하지 않는다. 크게 부서졌으면 보험으로 고치면 되고 작은 흠집이라면 그냥 타고 다니면 그만이다. 오히려 올 것이 왔다는 편안한 마음까지 들기도 한다.
사실 차를 운전하고 다니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너무나 오랫동안 사고가 없으면 그것을 망각하고 다니기 쉽다.
나는 차에 생긴 손상된 부분을 하나님이 내게 주신 하나의 경고-더 큰 사고가 생길 수 있으니 조심하라 -로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내 차는 다른 사람의 차에 비해 늘 지저분하다. 나는 내 차의 여기저기에 흠집이 있는데도 고치지 않고 타고 다닌다. 앞 유리창엔 돌멩이가 튀어와 만든 방사선형 상처가 있다. 내 아내가 후진시키다 다른 차와 부딪쳐서, 뒤 트렁크는 움푹 패인 지 몇 년이 됐다. 물론 좌우 측면에도 여러 군데 긁힌 자국이 있다. 거기다 차도 자주 닦아주지 않는다. 누군가 장난 삼아 손가락으로 먼지 낀 차창 위에 "WASHME"라고 차를 대신해 호소해주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자주 차를 닦다보면 차가 닳을까봐 차도 아끼고 물도 아끼느라 세차하지 않는다"고 나는 변명하기도 한다. 내 차가 지저분한 것은 비난받아야 마땅할 내 게으름 때문이고, 차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습관은 아름답고 청결한 생활을 원하는 좋은 습관이라는 데는 아무런 이의가 없다. 그러나 지나치게 작은 흠집에도 민감한 사람을 만나면 나는 불안하고 불편해 진다. 그 사람이 예기치 못한 사고를 만났을 때 큰 실망과 혼란을 겪게될 것 같아 안쓰러워 보이기도 한다.
내 한 친구는 남의 차에서는 담배를 피워도 자기 차에서는 피우지 않아 친구들의 눈총을 샀다. 수시로 세차를 하고 날아가는 새가 오물이라도 떨어트리면 큰 일이라도 난 것처럼 법석을 떨었다. 또 차에 들어가기 전에는 꼭 신발을 털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것을 강요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애지중지 아끼던 그 차가 도난을 당했다. 며칠 후에 경찰로부터 연락이 와서 찾으러 갔더니 그 차가 타다만 새까만 고철로 되어 있었다. 도둑들이 중요한 것을 다 떼내고 증거를 없애려 그 차에 불을 질러 버렸기 때문이란다.
허탈해 하던 그 친구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얘기지만, 차 도난 사건은 그 친구에게 손해만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의 그럴듯해 보이는 모든 것들이 그렇게 '하루아침에' 쓸모 없는 것으로 변해버릴 수 있다는 값진 교훈을 그 친구가 얻게 되지 않았을까. 내가 차를 아파트 기둥에 부딪혔을 때 가졌던 그 느낌도, 이제와 생각하니 내 이민 생활의 소중한 편력으로 느껴지듯이 말이다.


------- 미주 중앙일보 칼럼 <이 아침에> 1999년 12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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