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집 여자
이월란
세상이 할랑할랑 놀 때마다 소방서 옆 수선집으로 간다
철거되기 위해 지은 집처럼 매일 허물어지고 있는 그 집엔
요오드 과잉의 바세도우씨병에 걸린 주인여자가 영상처럼 서 있다
지구본처럼 둥근 그녀의 얼굴 위에 나란히 선 등대처럼 튀어나온 그녀의 두 눈
썩은 장기를 잘라내고 다시 감쪽같이 꿰매어 주는 외과의사의 당당함으로
새생명을 점지해 주는 신내린 암무당의 옷맵시로
저무는 건물을 버팀목처럼 떠받치고 있다
몸이 오늘 내일 불었다 줄었다 하는 것도 아닌데
딱 맞는 옷 하나를 제대로 고르지 못하는 나는
딱 맞는 옷 하나를 만들어주지 않는 세상 속에 굳세게 서 있는
그녀 앞에서 늘 주눅이 든다
다 자란 몸의 투정을 받아주지 않는 항간의 홈질은 땀조차 고르지 못하다
거울 없인 나의 실루엣조차 그림자로 밖에 감지 할 수 없는
나는 종종 그녀에게 뛰어 간다
그녀의 흐린 형광등 밑엔 사람들의 오류가 산더미처럼 늘 쌓여 있다
경박한 선택의 잔해들이 피란지의 홑청처럼 쌓여 있다
몸마디마다 박힐 구슬침들은 색색가지 당세기 속에 고슴돛처럼 앉아 있다
그녀가 흐린 형광등 불빛 아래 드럭드럭 재봉틀을 밟고 있을 때면
가끔씩 옆건물의 소방차가 웽웽 정신없이 달려나간다
어디선가 활활 타오르고 있을 재앙의 불길조차 이 집으로 걷어오면
결코 불붙지 않는 뜨거운 옷을 수선떨지 않고 숭덩숭덩 만들어 줄 것 같은 여자
아직도 이 땅의 장사치들은 나의 치수에 냉담하다
자기네 치수도 모르는 판국에 남의 은밀한 치수까지 어떻게 알까만
십인십색인 이 땅엔 아직도 대, 중, 소만의 빅세일이 한창이다
옷의 인격을 존중하여 그 때 그 때 몸을 수선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지만
난 애매모호한 수치로 태어나 맘대로 진화하고 퇴화하며
변형을 시도하는, 막가는 몸뚱이일지언정 조작하긴 싫은 것
매일 탈색되고 있는 혈색마저 염색 한 방울로 은폐될 순 없잖은가
헐렁한 세상을 또 한 뼘 조이러 간다
질질 끌리는 인연을 잘라내고 감치러 간다
어림짐작 재어보는 사지는 늘 깡똥해 휘갑쳐버린 바짓단에
죽은 버러지처럼 붙어있는 실밥을 털어내는 백미러 속
오늘도 그녀는 교교한 달빛을 뽑아 속박음질로 세상을 수선하고 있다
2008-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