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끌고 가는 차
이월란
아들아이가 운전연습을 시작했다
허가증을 가지고 직접 운전을 할 때마다 난 조수석의 잔소리꾼이 된다
길이 늘 평탄한 것은 아니다
비포장 도로가 갑자기 이어질 수도 있고
차선이 상식 이하로 좁아질 수도 있다
앞 차가 돌연 속력을 줄일 수도 있고
푸른 신호등으로 바뀌자마자 사선으로 돌진해 오는 차가 있을 수도 있다
브레이크도 없는 조수석 바닥에서 자꾸만 발에 힘이 간다
발등에 내린 작은 각도에 따라 차는 정직한 속력을 낸다
정지 사인이 보인다고 갑자기 브레이크를 걸 일도 아니다
세상이 흔들릴 땐 차도 따라 흔들린다는 것을
내가 흔들릴 땐 핸들도 따라 흔들린다는 것을
두려움과 원망 속에선 핸들 잡은 손등까지 푸르게 변한다는 것을
두 손에 쥐어보고, 핸들 아래 앉아 보아야 알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아직 말해주지 않았다
아이를 내려주고 핸들을 잡아 의자를 다시 조정하며
액셀을 밟았던 그 아이의 다리와 핸들을 잡았던 두 팔의 길이를 가늠해 본다
사거리 신호등과 정지사인 아래서 잠시 두리번거리던 그 아이의 가슴을 짚어본다
어릴 때처럼 많이 안아 주지도, 업어주지도, 쓰다듬어 주지도 못했고
어른이 되어가는 두 볼에, 고집이 늘어가는 이마에, 섣부른 의지로 굳어지는 입술에
키스를 해 준지도 오래 되었다
팔씨름을 하며 웃어본지가 언제였던가
실루엣표적같은 도착지를 향해 화살처럼 달려야만 하는 삶이란 것을
출발지로 되돌아오는 길을 늘 익혀 두어야 한다는 것을
제한속도 안에서만 달려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아직 말해주지 않았다
세상을 반 이상 살아왔어도 아직 가보지 않은 길들이
세상엔 더 많다는 것을
세상의 수많은 길보다 더 많은 길들이 핸들 앞에 수평으로 앉은
작은 가슴 속에 있다는 것을
나는 아직 말해주지 않았다
그 아인 세상 밖으로 이미 나가버렸는데
아직도 난 그 아이 속에 앉아 있다
열 여섯 해 동안 부모가 데려다 준 선물가게같은 공간 속에서만
물끄러니 앉아 있더니 이젠 스스로 세상을 끌고 다니겠단다
이 무거운 세상을
2008-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