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바이*
이월란
땡 처리 후 남은 것들을 바퀴 달린 트렁크에 차곡차곡 집어 넣습니다
계절 따라 날씨 따라 부채로도 장갑으로도 혁대로도 둔갑하는
체언 같은 내 몸에 따라붙는 씨알같은 장식품들입니다
교환이나 환불이 불가능한 내 생의 구매품들처럼
누군가 A/S 유령번호를 친절히도 새겨 놓았습니다
지상에서 망가진 에프터 서비스는 저 천국에서나 보상 받으십시오
유언비어처럼 묘한 신빙성을 풍기는 당신의 목숨을 나눠 주십시오
나도, 탯줄 잘리면서부터 얼굴에 철판 깔려
<생명의 삶>과 <톰슨주석성경>을 읽고 계시는, 카타콤처럼 신성한
땅속 터널에서 소음공해로 낙찰된 모리배는 아니었습니다
오늘은 비가 옵니다 하지만 지하세계엔 결코 비가 오지 않습니다
우산으로 채워진 내 요술가방은 결코 나보다 더 무거울 수 없습니다
비의 무대가 차려진 지상으로 승천할 장애 없는 승객들에게
오늘의 히트상품을 연기하러 갑니다
IMF로 길들여진 평생의 실전, 똥개도 집 앞에선 반 먹고 들어간다지요
주먹다짐으로 터놓은 나의 성스러운 구역으로 행군 중입니다
무서운 속도가 지배하는 지하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나는, 백화점 성능에 단가는 낮아도 50%의 마진율을 자랑하는
유령업체에서 인증 받은 최신 유행상품이어야 합니다
바람잡이처럼 유창한 멘트보다는 동정심을 유발하는
어리버리 순진한 말투가 한 수 위랍니다
CCTV 증거물로 플랫폼에서 단속요원과 승강이를 벌일지라도
007 판매시대를 달리는 폭주족 같은 삶의 현장에서
장애를 마이크처럼 안고 구걸을 연설하는, 나는 선발된 명연기자
언젠가 저 빗속에서 라도 하늘같은 천막아래 노바이**를 꿈꾸는
불구의 다리를 끌고 줄행랑도 즐거운 베테랑 기아바이
무대 위엔 비가 더 억세게 내리고 있답니다
2009-02-14
* 지하철 행상을 일컫는 은어, (기아-바퀴달린 버스나 전철,
바이-배(輩), 폭력배, 모리배처럼 낮은 사람의 표현.
** 터잡고 앉은 장사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