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에서
이월란(2011-7)
그가 무대 위로 올라간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그런 우연, 그래서 그의 대사는 필연이라는 단어로 시작되었다 때론 너무 초라해 보이기도, 치졸해 보이기도 하는 무대장치가 늘 눈에 거슬렸지만 하나같이 붙박이였다 배우의 몫으로 남은 건 오직 성대와 몸짓이었다 관중석의 누군가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애드리브를 치고 싶었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무너진 바벨탑에서 떨어진 사람들이었다 공용어를 사칭한 대본들이 거리를 쏘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를 팔팔 끓일 수 있는 조리법은 출판금지 상태였다 붉은 조명 아래서 더욱 편안해지는 건 무덤 속을 닮아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의 배역을 좀먹는 박테리아가 장기마다 살고 있지만 공연마다 알맞은 DNA가 생산지에서 정확히 조립되어 운반되어 온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오늘도 꽉 찬 관중석에서는 음향효과로 만든 박수 소리가 제법 감동적이다 연극은 건달처럼 껄렁한데 무대 뒤 노을이 목젖으로 넘어가고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