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 화석
이월란(2011-8)
짐승의 몸을 빠져나와 신에게로 가고 있네
밟아도 자국이 남지 않는 구름 같은 땅
진화보다 빠른 세월 탓이라고
거울 한 쪽 없이는 나를 보는 눈 하나 없어
남을 가리키는 열 손가락만 키웠네
눈 뜨면 마음의 병을 앓되
남을 헤아릴 때는 마음 위로 솟는 셈법
서로의 마이크를 빼앗아
내가 발 디딘 곳이 똑같지 않은 곳임을
구구절절 털어 놓고 있지만
서로의 늪에 빠지고서야 똑같은, 아주
똑같은 늪이었음을 아네
자로 잰 듯 똑같은 눈 코 입 달린 땅 위에서
하늘을 향해 직립 보행하는 우스운 흥정으로
밖에 변명하지 못하는 이승의 초짜들
서로의 치부를 들여다보고서야 맘이 놓이는
묻혀서도 유적이 되지 못하는 사람의 자리
오늘밤이라도 눈처럼 녹아 없어질까
그림자와 포개어 눕는 순간까지
눈물로밖에 값 치르지 못하는
사라지는 것들의 증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