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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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수필
2003.09.17 05:22

너무맑아 슬픈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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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카톨릭 묘지인 Holy Cross 공원이 있다. 추석이라 가까이 사는 오빠네 집에서 차례를 드리고 두 가정이 함께 오빠가 잠자고 있는 공원묘지로 갔다. 하늘은 맑고 공원 잔디는 그린 색 비로드 천을 깔아 놓은 듯이 고왔다.

이 공원은 카톨릭교인과 그 가족들이 묻히는데 한국인들 묘지는 저 위쪽 한 구탱이에 몰려있고 조금 내려 오다 보면 중국인들의 묘지도 보인다. 한국인 묘지는 외국인들처럼 비석을 그냥 땅에 눕혀 놓았는데 비해 중국인들의 묘지는 예전에 한국에서 보았던 것처럼 위로 세워져 있다.

한국의 명절인 추석이어서인지 한인묘지가 몰려있는 곳엔 차를 댈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은 한인 성묘객들로 붐볐다. 김대건신부 동상이 있는 옆자리엔 오늘 장례식을 하는지 검은 옷을 입은 한인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장례미사를 드리고 있었고 그 옆쪽으로는 미국인들의 장례행렬이 몇 군데 보였다.

갈 때마다 오빠 묘자리 근처에서 만나는 어느 아버지와 그의 장성한 아들,딸의 모습이 보였다. 멀찍이서 서로를 알아차리고 눈인사를 나눴다. 매 토요일 마다 온다는 그 가족과는 서로의 아픔이 통하는 공원친구가 되었다. 아내가 이 땅을 떠난 지 2년이 되었다며 주위 분들이 이젠 그만 잊으라고 하지만 그럴수가 없다며 그의 눈에 눈물이 그렁거리고 목소리가 떨렸다.

아들은 변호사고 딸은 학교 선생님이며 둘 다 서른이 넘었는데 아직 미혼이라며 아내가 없는 자리를 애들이 매꾸고 있지만 여러모로 힘들다고 했다. 아내와의 지난날이 너무 그립다며 어린아이처럼 울먹이는 모습을 보니 나도 울음이 목구멍까지 가득 차 올랐다.

근처 묘자리 중에서도 유난히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곳이 있다. 보통은 묘하나에 화병 놓는 자리가 하나인데 비해 그 묘위엔 세 개의 화병에 화려한 꽃들이 늘 꽂혀있다. 공원친구가 되신 그분의 말에 의하면 그 묘는 20대에 하늘나라로 떠난 아들을 둔 한 어머니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번도 꽃병에 꽃이 빈적이 없도록 정성을 다한다는 것이었다. 그 가이없는 어머니의 슬픔과 사랑이 가슴에 와 닿아 다시 목이 메였다.

부부 중 한쪽이 먼저가면 묻힌 자리 위에 나중에 가는 분의 관을 올리게 되어있다. 하지만 어떤 분은 살 때도 지긋지긋 했는데 죽어서 까지 가슴 답답하게 같은 곳에 묻히기 싫다며 굳이 다른 묘를 주장하는 분도 있다는 소릴 듣고 한참을 웃었다. 웃다가 생각해 보니 가슴이 아려왔다.

묘 자리는 한 사람당 보통 $3000~$4000 정도이며 월부로 구입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고 한다. 가끔은 일찌감치 자신의 묘를 구입해 놓으신 분이 사정이 딱한 망자를 위해서 자신의 묘를 도네이션 하는 경우도 있다는 말에 조용한 감동이 일었다.

나도 묘자리 하나 사놓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혼자서 씩 웃으니까 남편이 힐끗 쳐다보았다. "아! 이세상은 나그네 인생이니까 그냥 렌트살고 영원히 살 집부터 장만하는 것도 좋잖아요!" 한마디 했더니 남편도 피식 웃는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 하더라도 누군가는 먼저 이 땅을 떠난다. 산 자에게 가끔이라도 그리움의 존재로 남는다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난 진정 사랑한다면 그 마음에 늘 사랑하는 사람으로 가득 차야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순간은 너무도 잠깐 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았다.

어쩌면 잊고 살기에 살아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 사랑했던 나날들. 미워했던 순간들, 가슴저리게 아팠던 나날들이 모두 나의 기억의 창고에 당시의 감정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면 우리의 가슴은 아마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렸을 지도 모른다.

더 많은 내일이 흐르면 떠난 자에 대한 기억은 엷어져 가고 그냥 잊혀진 존재들로 남는다. 잊혀진다는 것은 서글프다. 그냥 모두 서서히 잊혀지는 존재들끼리 알뜰하게 사랑하며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너무 맑아 슬펐다.




2003년 미주문학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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