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아- 뉴 올리안스
2015.11.14 08:53
단편소설:
아-, 뉴 올리언스(New Orleans)
1.
23년 만에 다시 찾아 온 미국 남부, 항구도시 뉴 올리언스는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참상에서 몰라볼 정도로 복구돼 모양새가 좋아졌으나 도시를 통째로 꿀꺽 삼켜버렸던 거대한 미시시피강은 오늘도 변함없이 능구렁이가 도시 허리를 감싸 안은 듯이 유유히 멕시코 만으로 흘러들어간다.
흥청거리는 환락의 거리, 후렌치쿼터에는 오늘도 남부특유의 향 냄새나는 요리와 요염하게 울긋불긋 선무당처럼 치장한 밤여인들의 웃음이 밤하늘에서 악령들이 모여 저녁 파티를 즐기는 듯 요란하다.
산프란시스코와 아틀란트에 버금가는 동성연애자들의 도시이기에 후천성면역결핍증, 에이즈 환자도 가면을 쓰고 야릇한 웃음을 지으며 번화한 거리를 나 다니고 있으니 “ 리차드! 제발 조심해!“라고 나에게 주의를 주었던 옛 여자 친구가 그리워 오늘 이렇게 찾아 왔는데, 과연 만날 수 있을까? 내가 다시 찾아 올 때까지 평생이라도 기다린다고 했는데, 정말 그녀는 나를 기다리고 있을 까?
내 나이 어느새 50세, 5살 연하인 한국인 아내와 더불어 ‘뉴저지 변호사 협회’가 주관하는 학술-관광 팀에 속해 뉴저지 뉴악(Newark)공항에서 단체로 비행기를 타고 루이 암스트롱을 기념한다는 뉴올리안스 국제공항에 내린 것이 오후 세시, 여행사에서 제공한 50인승 대형버스로 하얏트 호텔에 도착한 것이 4시 반이었다.
생각해 보면, 1992년 6월, 세계적으로 유명한 뉴 올리안스 수퍼 돔 근처에 있는 고급 호텔 하얏트(Hyatt)에서 변호사 시험 공부(BAR)를 하려고 8일을 묵었었는데 세월이 어찌나 빠른지 엊그제 같은 느낌이든다.
그 때, 이곳에서 있었던 뜻밖의 사건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기에 지난 23년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엉겨 붙어 떨어지지 않고 나를 조종하고 있었다.
마치 미시시피강을 오르내리는 증기유람선(steam boat)의 조타실처럼 나의 인생을 꽉 틀어 쥐고 있었다.
하야트(Hyatt)란 유명 호텔의 이름 뿐만 아니라 내 가슴속에서 아직도 살아 나를 움직이는
유태인 여자 친구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궁굼했지만
서로 잊고 살자고 했으니 굳이 알아 볼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아련한 추억으로 가슴에 묻고 살아 왔었다.
3개월 전, 뉴저지주 변호사 협회에서 보낸 광고문에 “개편된 국세법 세미나 겸 관광”을 뉴 올리안스 하얏트 호텔에서 9월 중순에 개최하니 흥미 있으면 속히 신청하라고 했다.
“뭐시! 뉴 올리안스, 하얏트?” 나는 문득 1992년 6월이 생각났다. 만사 제치고 가고 싶었다. 일방적으로 신청을 한 후 아내에게는 “뉴 올리안스에서 하는 세미나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뜻밖에도 “나도 가고 싶어.”라고 동의 했다.
그날 저녁, 밤새 가슴이 설랬다. 23년 전의 그 아련했던 기억들이 겨울을 이겨낸 보리싹처럼 딱딱한 땅을 비집고 올라 오는 듯했다.
‘이번에 가면 하얏트를 만나 보리라.’ 나는 아내 몰래 마음 속에 새겨 두었다.
*
호텔방 배정을 받고 저녁 첫 모임에서 붉은 와인을 몇 잔 마신 것이 다소 취하는 듯했다. 새로 개정된 세법은 몰라도 되었으며 관심도 없었다. 오로지 어떻게 그녀를 만날 수가 있을까 마음 조릴 뿐이었다. 막연했기 때문이었다.
15층 창문을 통해 밖을 보니 슈퍼돔과 미시시피강의 모습이 휘황찬란했다. 마치 구렁이가 꿈틀 거리듯이 내 눈에 보였다. 강가에 늘어선 강한 등불과 풍차 같은 바퀴를 돌려가며 움직이는 증기유람선이 어서 밖으로 나오라고 나를 유혹하는 듯했으나 잠자는 아내를 두고 혼자 나갈 수는 없었다. 더운 물로 샤워를 한 후 잠을 청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당신 잠을 못자는 구먼....” 잠시 깨어난 아내는 몇 마디 물어 보는 듯 하더니 코를 골기 시작했다.
‘하얏트! 당신은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를 보면 알아 볼까?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데. 그래, 그 때, 내 나이 27세, 네 나이 26세였어. 장가도 시집도 안 갔었지......’
그리고 나는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다. 미시시피 강을 오르내리고 프랜치 쿼터에 가고 슈퍼돔에도 가는 꿈을 꾸었다.
2.
아침 일찍, 구수한 커피 한잔에 따끈하게 구운 머핀에 쨈을 발라 먹은 후 흥미도 없는 “법률 세미나를 ”2시간에 걸쳐 청강을 하였다.
그 후, 50여명의 변호사들은 골프 치는 그릅과 관광 구릅으로 나뉘어 바쁘게 흩어졌다. 나는 아내와 더불어 뉴올리안스 관광을 시작하였다. 뉴저지 출신의 변호사와 부인들 대부분은 백인었으며 그들의 관심은 불란서와 스페인풍의 옛 역사속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몹시 친절한 흑인 운전사겸 관광 가이드의 설명이 아주 구수했으며 이곳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을 쉽게 설명해 주었다.
옛 불란서 풍의 건물들은 이미 사라져 버렸으며 대신 스페인 풍의 건물과 풍습이 이채로웠다.
옛날 흑인 노예들을 부려먹었던 큰 농장들과 대 저택에서 빈부의 차와 유린됐던 그들의 인권을 느껴 보는 듯했다.
강(江)이 도심보다 높아 견고한 강뚝에 의해 도시가 위태롭게 존재하고 있었다. 그만큼 미시시피강의 큰 위력를 느꼈다.
멀리 옐로우스톤에서 흘러 내려온 미쥬리강이 미네소타에서 발원된 미시시피강을 만나 엄청난 강을 만들었는데 중간에 오하이오강을 만나 더 큰 강이 되었다.
아칸소와 텍사스에서 흘러나온 홍강(洪江) 마저 합류한 거대한 미시시피강을 오고가는 스팀보트(증기선)에는 아직도 톰 소여와 헉클베리핀이 살아 돌아 다닌다고 느꼈다.
흑인 가이드는 생각지도 못한 곳, 성 루이스 공동묘지(St.Luis Cemetery)로 일행을 데리고 갔다.
‘갈 데가 없어 공동묘지를 구경시키는 구먼?’ 약간의 불만이 있었다.
그런데 뜻밖의 풍습을 알게 됐다. 강이 도심보다 높기에 공동묘지에 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돌로 지어 강뚝보다 높게 만들었으며 가족묘, 일반묘등에는 시체를 넣은 관을 작은 구멍을 통해 밀어 넣은 후 땅 속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다. 결국 시체를 넣은 관들이 차곡차곡 쌓여 죽은 후 그들과 뒤 엉겨 살게 된다고 한다.
뉴저지나 한국에서 본 묘지와 너무나 다르기에 못 볼 것을 본 듯 불쾌했다.
그 후, 프렌치 쿼터를 경유해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 후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잠시 아내가 샤워를 하는 사이 나는 호텔 카운터로 와 직원을 만났다.
“혹시 하얏트 마고르스키(Hyatt Magorski)를 만날 수 있을까요?” 나는 너무 흥분 돼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 듯했다.
“하얏트 골드버그가 아니고요? 혹시, 호텔 전무를 만나보시죠? 아! 저 방에 계신 저분에게!”
나는 몸이 바짝 마른 60대 나이의 전무를 만나 더 떨리는 마음으로 물었다.
“아! 하얏트, 골드버그 마그로스키를 찾는 군요? ”
“예, 마그로스키!” 나는 대답했다.
“어떻게 아시는지요? 남편 성이 골드버그랍니다.” 전무는 나를 위아래로 처다보며 물었다.
“예, 뉴저지에서부터 알고 지낸 학교 동창입니다.”
“저런. 어쩌나? 하얏트는 작년에 죽었습니다.”
“예? 죽었다고요? 죽다니. 어떻게. 아니죠?” 나는 소스라쳤다.
“우울증이 심해, 자살해 죽었습니다. 겨우 48세의 젊은 나이로....그리고 유태인 공동묘지(Hebrew Rest)에 있습니다.”
-아! 하얏트가 죽다니, 그리고 유태인 묘지에 있다니.... 낮에 관광으로 찾아갔던 성 루이스(St. Louis) 공동묘지가 눈에서 아른 거렸다.
갑자기 굵은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리고 그녀의 활짝 웃던 옛 모습이 보였다.
어느듯 23년 전, 1992년 6월 어느날, 하얏트 호텔에서 만났던 그녀의 젊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늦은 저녁, 내가 머문 호텔방문을 두드리던 그녀의 손이 나의 어깨를 잡는 듯했다. 그리고 그녀와 보낸 꿈같았던 일주일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15층 호텔방으로 돌아오니 아내는 벌서 샤워를 마치고 저녁 모임을 위해 화장을 하고 있었다.
“어딜 다녀왔어?” 그녀는 내가 방을 비운 것에 대한 질문을 하였다.
“어, 잠시 카페테리아에 가서 커피를 마셧어....”
그날 저녁, 50여명의 변호사 부부를 위한 파티에 나온 음식들이 아주 특별했다. 최고급으로 나온 와인은 감미로웠다고 하나 내게는 쓴 포도주였다.
“하얏트가 죽다니....우울증으로 자살을 하다니.....”
나는 밤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모처럼 고급 호텔 침대에 같이 누운 아내에게는 미안했다.
아내도 모처럼의 나들이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은 지 다소 짙은 향수를 뿌리고 핑크 잠옷을 입고 나에게 꼭 안겼으나 내게는 혼돈의 시간이었다.
나에게 꼭 안긴 여자는 한국인 아내가 아니고 이미 죽어 묘지에 누어있다는 그녀, 하얏트라고 착각을 하고 있었다.
3.
생각이 난다.
-23년 전, 6월, 펜 대학 법대(UP.Law School)를 가까스레 졸업 했다. 단 번에 ‘바’ 시험에 합격을 하려면 뉴 올리안스에서 가 “변호사 시험 준비 과정”을 이수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선배들이 충고해 주었다. 그런데 그 장소가 바로 수퍼돔 옆에 있는 최고급, 하얏트 호텔이었다.
첫날 아주 바쁘게 공부를 하고 다음날, 동료들과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데, 윤기가 있는 검은 머릿칼의 어느 미인이 나를 유심히 처다보고 있었다.
“리차드! 리차드! 맞죠?”
“맞아! 하얏트?” 뜻밖의 아니 필연적인 만남이 이루어 졌다.
-내 나이 27세, 그녀 나이 26세였다. 우린 뉴저지에 있는 포트 .리(Fort Lee)에서 고등학교 동기 동창으로 지낸 이웃이었다. 졸업 후 그녀는 프린스톤 대학으로 나는 럿거스 대학으로 각각 갈 길을 찾아 간 후부터 만날 수가 없는 운명이었다.
그녀는 고교 졸업 때 풀럼파티의 파트너로 나를 선택했듯이 그녀는 나의 첫 사랑이었다. 우리 인생의 첫 키스를 한 것 까지는 좋았으나, 완고한 유태인 아버지는 보잘 것 없는 한국인 1.5세 인 나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 졸업 후에는 만나지 말라! 유태인은 유태인의 길로 가느니라. 한국사람과 유태인은 다른 민족이여. 우리는 선택받은 민족이란 말여. 알겠어!”라는 경고를 했었다.
마음 약한 나는 그녀를 단념하고 살아왔는 데 오늘 막상 만나고 보니 감미로웠던 그녀와의 첫 포옹 그리고 키스의 아련함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나도 곧 변호사가 됐는데..’
나는 갑자기 용감해 졌다. 그 때에 비해 변호사가 됐으니 더 이상 꿀릴 것이 없다고 생각하니 대담해 졌다. 용감해 졋다.-
그녀는 그녀의 희망대로 프린스턴과 NYU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하고 그녀가 꿈꾸었던 호텔 하얏트에서 매니저의 일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아직은 미혼이나 그녀는 유태인의 전통대로 재력이 빵빵한 유태인 약혼자가 있음을 알게 됐다.
하루 공부가 힘들었지만 밤늦게 까지 호텔방에 앉아 시험공부를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밤중 늦게. 누가?’ 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방문을 열었다.
놀랍게도 점심 때 만났던 하얏트였는 데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얏트!” 나는 그녀를 와락 포옹하고 말았다. 마치 플럼파티에서 못 해 봣던 그 포옹이었다.
그녀도 스스럼 없이 나를 받아 주었다. 그리고 말이 없었으나 그녀의 얼굴을 통해 그녀를 읽을 수가 있었다.
‘그리움, 호기심 그리고 위험’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진정 서로 사랑했었는 데 인종, 종교, 문화의 차이 때문에 18살 때는 어쩔 수가 없이 포기했었으나 27살의 지금 나이로는 결코 포기 할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약혼자가 있음도 잊어버렸다.
-그녀는 나를 사랑했다고 말하면서 울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더 강하게 포옹했다.
나도 그녀를 사랑했기에 그녀를 내 곁에 두고 싶었다. 약혼자는 바로 나요 우리의 만남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녀와 더불어 보낸 밤은 마치 신혼으로 찾아 온듯했다.
아침, 새벽녘에 그녀는 살며시 방을 빠져 나갔다. 변호사 시험준비를 위해서 나에게 시간을 준 셈이었다.
그날 저녁 그녀와 같이 하얏트 호텔 18층에 있는 고급 레스트랑에서 바라다 본 미시시피강은 정말 거대한 공룡의 움직임이었다.
시험준비 중에라도 잠시 그녀와 같이 시간을 내어 즐겨본 증기유람선 관광은 마치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밤 강바람이 제법 차거웠기에 우리는 자연스레 꼭 끌어 안았다.
“우린 불륜을 하고 있는 게 아냐! 우린 사랑하는 사이였어. 단지 못 다했던 그 사랑을 실현해 보는 것일 뿐이야...”
우린 사랑하기에 모든 것이 당연하며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밤마다 같이 누어 잠을 잔 일주일이 마치 천국의 예행이라고 생각했었다.
혜어지기 전날 밤, 그녀는 마크 골드버그란 부잣집 아들과 약혼을 했으며 가을에 여기 하얏트에서 결혼을 한다고 알려줬다.
“그럼 하얏트 골드버그가 되네?”
“그래. 리차드, 부디 좋은 여자 만나 결혼해 행복하기 바래....”
“다음에 여기 오면 만날 수가 있을까?” 나는 조심해서 물었다.
“글세.... 또 오려고?”
“엉 반드시 찾아 오마....... 기다려! 하얏트!”
“그래......기다릴게. 리차드! 언제까지라도....”
그리고 그녀와 나는 혜어졌다. 그것이 어느새 23년의 긴 세월이었다.
4.
세미나, 3일 째 날이 되었다. 아침 일찍 국제 상법 강의 2시간이 끝난 후 골프와 관광의 시간이 됐으나 나는 일행에서 이탈해 개인 행동을 하게 됐다.
“여보 어째서 유태인 묘지를 찾아 간단 말요. 어제 우리, 성 루이스 가족묘지에 가지 않았어. 그런데 왜? 유태인 묘지를 간단 말여! 보기도 싫은 무덤에!” 아내는 몹시 화가 나 있었다.
“가서 꼭 봐야 할 것이 있어서....가서 말해 줄게...”
가까스레 아내를 설득해 택시를 타고 유태인 묘지(HEBREW REST"로 가게 됐다.
-‘하얏트, 넌 나를 기다린다고 했어. 그런데, 이게 뭐야. 묘지에 있다니. 네가 믿는 유태인의 여호와는 왜 그리도 잔인할까... 내가 믿는 하나님은 긍율하시고 사랑 그 자체라고 했는데....’
마그로스키에서 골드버그로 이름이 바뀐 그 후, 그녀의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감이 오질 않았다. 그녀와 같이 보낸 고등학교 시절 과 그녀가 26살이었던 그 때, 여기 하얏트 호텔에서 같이 보낸 일주일이 신기루처럼 아른 거렸다. 아니 그 후의 얼굴은 보고 싶지도 않았다. 늙었을 테고, 당연히 얼굴에는 주름살 지도를 그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뿐인가, 머리는 희고 눈은 침침해 안경을 썻을 테니까....
죽은 모습은 평화로웠을까? 왜 그녀는 그토록 우울했었나? 자살해 죽으면 지옥에 간다는데, 그토록 힘들었으면 나를 부르지. 그녀 가는 길에 내가 동행을 해 주었을 텐데...-
마침내 택시는 유태인 묘지에 도착했다. 못마땅하다는 듯이 킁킁거리는 아내를 뒤로하고 묘지 안내소로 찾아갔다.
“하얏트 마그로스키 골드버그의 무덤을 찾고 싶은데 어디에 있는지요?”
“어! 하얏트 골드버그 여사. 하얏트호텔의 실질적인 소유자였죠. 저기에 뵈는 큰 돌무덤이 바로 골드버그 가족묘가 됩니다.”
하얏트는 결국 그녀의 원대로 호텔경영을 했으며 그녀의 이름과 같은 뉴 올리안스의 명물 하얏트 호텔의 실질적인 소유자가 됐음을 알아냈다. 그런데 실질적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남편 가족, 골드버그의 소유란 말이겠지.....나는 이곳 특유의 묘지에 앞에 서서 잠시 그녀를 위해 묵념을 했다.
“당신 무얼 하는 거요? 여기엔 왜 온 거요?” 아내는 참다 못해 나를 다구쳤다.
“당신에게 숨기려는 것이 아니고 아주 우연이었어...들어 보오..”
- 내나이 16살 되던 해 군대에서 불명예 제대를 당한 아버지는 홧김에 미국 이민으로 뉴저지 포트,.리(Fort Lee)로 왔다. 이 도시는 뉴욕 만하탄으로 들어가는 와싱톤 다리가 보이며 허드슨 강을 앞으로 하여 경치가 아주 좋은 곳인데 유태인들이 꽤 많이 살고 있었다.
학교가 문제였다. 한국에서 고 1을 거의 마치고 왔는데, 이곳에 와서 영어 때문에 다시 고1(10학년)로 한 학년을 낮춰 입학을 했다.
그러나 영어, 습관등에 서툴다 보니 학교에 가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학교 성적도 바닥이었으며 우선 이해를 못해 백인들로부터 조롱을 당하기도 했다.
뜻밖의 친구가 바로 하얏트란 소녀였다. 내가 살던 아파트에서 빤히 뵈는 맨션에 살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머리에 검은 빵떡 모자를 쓰고 검은 양복을 주로 입고 다니는 전형적인 유태인 사업가로 한국인과는 아예 상종을 하지 않았다.
하얏트는 어머니가 태어주는 자가용으로 학교에 왔으나 나는 차가 없어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
그녀는 나를 여러모로 도와 주었기에 겨우겨우 고등학교 과정을 마칠 수가 있었다.
영어, 사회 역사 과학을 친절하게 도와 줬으나 수학만은 나 혼자 더 잘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비교적 덩치가 크며 다른 학생들보다 한 두 살 더 많았기에 하얏트를 보호해 주는 일을 가끔 했기에 그나마 빗을 갚는 마음으로 지냈다.
몇차례 그녀의 집에 간 일이 있었는데 한국사람과는 아주 다른 집안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생각보다 냉정했었다. 우리에게 무관심했으며 그녀의 아버지는 내가 한국사람인 것이 못마땅해 집에 오지도 말고 딸과 친하지도 말라고 우박지르기도 했었다.
반대로 하얏트는 비록 초라하나 우리 아파트로 가끔 찾아와 공부를 하기도 하였다.
뜻밖에도 하얏트는 내 어머니를 좋아했다. 한국음식도 같이 먹기도 하고 한국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묻곤했다.
어머니가 보여준 한복을 신기하게 만져보기도 했고 한국국악을 들으면서 유태인들의 음악과도 흡사한 면이 있다고 했다.
너무나 의아한 것은 어머니가 갖고 온 한복에 붙어 있는 노리개와 은비녀를 만지작 거리면서 갖고 싶어했다.
“하얏트? 내가 선물로 줄까? 은비녀는 머리에 꽂는 거고 노리개는 저고리 앞에 붙은 장식이지....자 갖어. 선물로 줄게...”
“리차드 맘! 정말로 내게 주는 거요? 아-예쁘기도 하지. 옛날 솔로몬 왕비도 갖지 못한 장식인데...” 그녀는 선물을 받아 가방에 넣었다.
10학년, 11학년 그리고 12학년, 졸업을 하게 되면서 공부를 잘한 하얏트는 프린스톤 대학에 나는 그보다 훨씬 못한 뉴저지 랏거스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마침내 졸업식을 며칠 앞두고 졸업파티(Plum Party)가 가까웠다.
성적이 좋은 많은 남학생들은 당연히 하얏트를 파트너로 원했다. 부잣집 딸에 공부도 잘하고 미모였으니 당연했다.
나는 경제적인 부담과 솔직히 같이 가자고 할 파트너도 없었기에 풀럼파티를 단념하기로 했다. 차라리 그 돈을 등록금에 보태기로 하니 마음이 가벼웠다. 그리고 대학에 가기 전에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시작했다.
놀라운 것은 하얏트가 나를 그녀의 풀럼 파티의 파트너로 초대했으며 내가 그녀의 손을 잡고 리무진을 타고 파티장에 나타났을 때, 학생들과 선생은 물론 더 놀란 것은 하얏트의 부모였다.
“뭐라고! 한국녀석을 파트너로? 안돼! ”
풀럼파티가 끝난 후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다시는 더 만나지 마라! 댐! ”이라는 경고를 받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결국 여자 고등학교 동창이었구먼. 그야 있을 수 있지. 나도 풀럼 파티에 백인 학생을 초대 했었지.” 아내는 나와 같은 1.5세로 역시 13살 때 미국으로 이민 왔기에 이해 한다고 했으나 속으로는 씁쓰름한 눈치였다.
가까스레 묘지 직원에 의해 그녀의 이름을 비석에서 찾을 수가 있었다.
“Hyatt Magoroski Goldberg (1965-2013)'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 나는 신음을 하며 그녀의 이름이 쓰인 비석의 부분을 손으로 살며시 만졌다.
마치 그녀의 불룩했던 가슴을 쓰담는다고 생각했다. 마치 그녀가 무덤에서 불쑥 튀어 나와 나의 목에 감기는 듯했다.
‘우울증이 얼마나 심했으면 이렇게 목숨을 끊었구먼....얼마나 힘들었을까?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천국에 들어 가지 못한다고 배웠는데... 말도 안되지...
아냐 그녀는 자살한 것이 아니고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심장마비로 죽었을 거야....
내가 곁에 있었더라면 죽지 않았을 텐데. 내가 비록 돈 없고 공부가 딸렸어도 학교 다닐 때 그녀를 위해 기꺼이 친구가 됐었는데. 그리고 사랑의 파트너였었는데....‘
생각해 보니 풀럼 파티에서 그녀의 손을 잡고 춤을 추다가 나도 모르게 키스를 했던 것이 큰 추억이 됐다.
“여보! 이제 그만 갑시다. 좋은 추억은 가슴에 간직하고.. 그런데 왜 이런 얘기는 하지 않았지? ” 아내는 짜증을 내며 불만을 토했으나 질투의 감정은 없는 듯했다. 아마도 하얏트가 이미 죽어 저 돌로 된 무덤 속에 같혀 있기에 더 이상의 적수는 아니라고 생각한 듯했다.
5.
호텔로 돌아 오니 오늘 저녁에는 미시시피강에 떠 있는 스팀보트(호와 유람선)에서 저녁 파티가 있을 예정이니 6시까지 호텔 앞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잠시 눈을 부친 후 호텔을 나와 선착장으로 걸어 와 줄을 서서 유람선에 오르니 상냥스러운 아가씨들이 자리를 앉혀 주었다. 그리고 붉은 와인, 흰 와인이 주어졌다. 날이 컴컴해 지면서 강변에 있는 전등과 형광등이 강바닥을 환하게 비치면서 하루를 마감하는 듯했다.
풍차 같은 큰 바퀴가 부지런히 돌면서 배는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흘러 가고 있었다.
남부 특유의 재즈 음악이 트럼벧, 섹스폰 그리고 현지 가수들를 통해 들려 왔다. 흥겨운 사람들은 홀로 나가 춤을 추었으나 나는 하얏트를 골똘이 생각하다보니 꼼짝을 못하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아내에게는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내도 으레 그렇다고 생각했는지 조용했다. 손에 든 삼성 아이 폰을 통해 뉴저지, 잉글우드에 살고 있는 아들과 허드슨 강건너 맨하탄에 살고 있는 딸에게 사진을 찍어 카카오 톡을 통해 사진을 보내고 그들에게서 온 반응을 드려다 보고 있었다.
어느새 밤 10시가 가까워 오자 유람선은 원점으로 돌아와 전원 다 하선 하여 역시 줄을 지어 호텔로 돌아왔다.
“여러분 내일도 골프와 관광이 있습니다. 물론 법률 공부 후에 말입니다. 10시에 호텔 앞에서 만나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가이드가 큰 소리로 일어 주며 사라졌다.
*
아침 일찍 일어나 법률공부에 참석했으나 머리가 아퍼 애꿎은 커피를 마시며 라운지에서 시간을 보냈다.
하얏트의 모습이 떠 올랐다. 고등학교 시절 마치 천사같았던 그녀의 모습, 그리고 23년전 그녀가 26살이었던 그 때, 성숙한 여성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하얏트, 너는 더 이상 여기에 없구나. 저세상 사람이여’ 나는 지긋이 눈을 감았다.
관광팀에 속해 다녔지만 나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생각도 나지 않았으며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너무나 피곤했다. 차라리 유태인 묘지에 다시 가서 그녀를 보고 싶었다.
저녁 6시, 습관에 따라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내려가려고 하는 데 호텔방 전화가 울렸다.
“무슨 전화일까” 곁에 있던 아내가 전화를 받았다.
“리차드 강! 호텔 전무입니다. 잠시 제 사무실로 와 주십시오. 드릴 것이 있어서...”라는 목소리가 내게도 들렷다.
“여보, 호텔 전무가 줄 것이 있다고 내려 오래. 무얼까?”
나와 아내는 로비에 있는 전무의 방으로 찾아 갔더니 제법 심각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리차드? 이 봉투를 받으시죠. 당신 친구 하얏트가 남겨 놓은 물건입니다.”
“하얏트가? 무엇을....”
“하얏트가 죽기 전에 내게 이 물건을 부탁하며 말 하던군요. 전무님, 언젠가 내가 사랑한 동양 남자가, 아니 리차드라는 변호사가 여기에 오면 꼭 전해 주소.‘라고 말했는데 지금 막 생각이 났습니다. 가만이 회고해 보니 그녀는 죽으면서도 리차드, 당신을 생각했던 것 같군요.”
“죽기 전에, 저를?.”
“그렇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하얏트가 왜 우울했던가를 알 것 같군요. 언젠가 내게 이런 말을 했죠. ‘전무님, 인간이 가장 필요한 것은 돈보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사랑이지요. 그렇죠?’”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사랑?”
“그렇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비록 하얏트의 남편이 호텔 주식을 50%이상 소유한 실직적인 주인이고 시아버지도 여기 뉴 올리안스의 부자라고는 하나 그들은 남남 이었지요. 자 여기 봉투를 드립니다.”
“아! 하얏트, 당신! 약속대로 나를 기다렸군.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해.” 나는 봉투를 꽉 잡았다. 라운지 의자에 털석 주저앉아 그녀가 남긴 봉투를 열었다.
“아니! 이건?.”
그것은 분명 어머니가 그녀에게 고등학교 때, 뉴저지 포트.리에서 선물로 주었던 어머니의 한복에서 떼 낸 노리개와 옥비녀 그리고 깨알같이 쓴 편지 한통이었다.
“여보, 그건 노리개하고 옥비녀 아녀?” 아내는 의아한 듯이 나를 처다 보았다.
“어-그렀네. 하얏트는 우리 동네에 살았어. 어머니가 언젠가 집에 놀러온 그녀에게 선물로 준건데...아직까지 간직했구먼....”
“시어머니가 선물로 줬다고? 왜?” 아내는 다소 큰 소리로 물었으나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그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편지:
사랑하는 리차드, 그 때 1992년이었지. 우린 여기, 하얏트에서 만났었지. 그리고 혜어졌었지. 리차드! 당신은 내게 약속했어. 다시 찾아 오겠다고....
언제 올까? 나는 기다렸어. 혹시 안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도 했지만, 나는 당신이 꼭 올거라고 믿고 있어. 비록 늙어 할아버지가 된다고 해도, 나는 당신이 여기에 나를 찾아 올거라고 믿으며 이 편지를 호텔 전무에게 맡겨 놓았어.
나, 당신에게 많은 빚을 졌어. 그리고 당신과 당신 가족을 사랑해.
우린 폴란드에서 온 유태이민 가정이었어.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홀로코스트에서 겨우 살아 난 후 가까스레 피난민으로 뉴욕의 게토에서 살다가 돈 좀 벌어 뉴저지에 정착했어. 그런데 미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엄마가 속절없이 죽었지. 그리고 다음해에 아버지는 결혼을 했어. 그 결과 나는 새 엄마를 맞았지. 그런데 나와 새엄마는 별 대화가 없이 살았지. 결국 우리, ‘마그로스키’ 가족은 대화도 없이 오로지 돈만 밝히는 전형적인 유태인 가정이었어. 그 무렵 리차드 당신 가족은 우리 동네로 이민 왔어. 이민초기 리차드, 당신은 적응에 힘들어 고생을 했지만 당신 가정은 너무나 행복해 보였어. 아주 인간적이었어. 특히 리차드, 당신 어머니는 마치 죽은 내 어머니 같았어. 도리켜보면 나는 어머니의 정이 그리웠었지. 어머니가 보고 싶었지. 한국에 대한 호기심도 갖게 되었고 당신을 좋아 하게 되었지. 비록 진하게 표현은 못했었지만....
리차드, 당신에게 너무나 미안했던 것은 우리 아버지의 막말이었어. 당신에게 너무나 심한 욕을 하며 경멸했지만 당신은 잘 참아 줬었지.
당신과의 풀럼 파티는 내 인생의 시작이었으며 남성에 대한 나의 첫 경험이었어. 그러기에 나는 그 추억을 그리고 당신 어머니가 내게 준 ‘노리개와 옥 비녀’를 잘 간직하며 살았지.
외로울 때 만져보고 슬플 때 당신을 생각하면서......
당신 가족을 보면서 나는 기독교를 이해하고 신봉하게 됐었지. 비록 겉으로는 유태교 신도였지만, 내 마음 속에는 예수를 모시고 살았어.
리차드, 나 너무 외로워서 견디기 힘들었어요. 혹시 나를 못 보더라도 나를 위해 울지 마소.
어머니가 준 선물은 다시 돌려 드리니 어머니의 옷에 다시 달아 드리소서. 그동안 수백 번 수천 번 만졌어. 그 결과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내 마음 속에 쓸어 넣었어요.
이젠 돌아가신 내 엄마를 만나려고, 나도, 리차드, 당신을 기다리다 먼저 가요. 엄마가 보고 싶어서.
리차드 난 당신을 사랑했어요. 앞으로도 사랑할 거요. 안녕.
당신의 하얏트.
“ 하얏트! 미안해, 내가 당신 곁에 같이 있었어야 했는데. 그래, 어머니를 만나면 덜 외롭겠지. 안녕. 당신의 사랑, 리차드.”
소설 끝
저자: 소설가, 연규호(延圭昊)
내과 의사
연세의대 졸업
펜. 문협. 소설가 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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