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수필 - 쪽배 달님

2023.04.13 13:10

서경 조회 수:38

푸른 쪽배 2.jpg

 

쪽배 달님 
 
오, 저것은 망망대해
위태로운 쪽배로다 
 
살려 달라 소리쳐도
달려갈 수 없는 먼 거리 
 
생목숨
지던 그날도 우린
발만 동동 굴렀지 

 
( 플러튼, 오렌지 카운티 ) 

 

  늦은 밤 퇴근 시간. 하늘을 보니, 벌써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뭉게뭉게 피어 오르는 먹구름. 맑은 날 피어 오르던 솜사탕 캔디도 아니고 목화솜 꽃구름도 아니다. 점점 짙은 색을 더하는 저 몹쓸 구름들.
  오늘따라, 검은 밤 하늘엔 별 하나 없다. 달랑, 쪽배 달님 하나 뿐이다. 깜빡이던 야간 비행기마저 보이지 않는다. 일엽편주는 이를 두고 하는 말. 오, 위태롭다! 빠른 속도로 쪽배 달님을 향해 달려가는 저 먹구름. 사위를 둘러 싸고 노도와 같이 굽이친다. 먹이를 앞둔 맹수처럼 달려드는 저들을 어찌 하나.
  먹구름과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정월 대보름 달이라면 마음 아프지 않겠다. 한가위 달이나 세상 훤히 밝히는 시월 상달이래도 걱정하지 않겠다. 오늘은 계묘년 윤이월 초이레. 아, 저 여리디 여린 아기 달님을 어찌 하나. 새파랗게 질린 채 떨고 있는 쪽배 달님. 달려가 구해주고 싶지만 왜 이리 멀기만 하나.
  그래, 누군가 도움을 청할 때 우리는 언제나 멀리 있었다. 물리적 거리, 마음의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너무 비약된 상상일까. 아니면, 그 날이 가까이 오고 있기 때문일까. 갑자기 세월호 사건과 겹친다.
  ‘당국’의 지시로 구조 헬리콥터는 하늘만 맴돌고 달려간 민간 구조원은 발만 굴렀다. 그동안 아이들은 친구에게 구명 조끼를 벗어 주고, 다른 아이는 엄마에게 혈서를 쓰듯 전화기에 유언을 남겼다. ”엄마, 사랑해! 다시는 이 말 못할까 봐 지금 말하는 거야!” 물에 잠긴 아이는 그의 예감대로 다시는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줄 수 없었다. 극도의 공포감에 떨며 죽어 가면서도 그들은 서로 챙기며 사랑의 말을 남기고 갔다.
  뱀처럼 혀를 날름거리며 아이들을 삼켜버린 파도는 다시 잠잠해졌다. 노도와 같이 출렁대던 민심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잦아 들었다. 단장의 슬픔을 지닌 부모들만이 평생의 한을 지닌 채 울부짖고 있다. ‘10.29’ 이태원 압사 사고처럼 ”시체팔이 그만 하라!“는 비정한 욕을 들어가며.
  아, 사람들은 얼마만큼 악해질 수 있을까. 뛰는 심장과 뜨거운 피를 지닌 사람들이 그토록 모질고 잔인한 말을 할 수 있을까. 자식 잃은 부모들의 절규가 ‘죽음’그 자체만은 아니지 않는가.
  나도 오빠를 11월 찬 바다에 묻었다. 일곱 살 딸아이를 둔 서른 일곱살의 젊은 오빠였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해 준 하나 뿐인 오빠. 배가 파선되고 선장이던 오빠는 비행기와 함께 추락한 기장처럼 애선과 함께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어머니가 바다를 향해 오빠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을 때, 오빠 때문에 목숨을 건진 선원은 모래 바닥을 치며 통곡했다. 주검을 찾지 못해 꽃상여는커녕 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슬픈 장례식을 치루었다. 졸지에, 나도 ‘미수습자 가족’이 되었다. 한 맺힌 죽음이지만, 억울한 죽음은 아니었다. 대자연 앞에서 당한 해상사고였을 뿐이다.
  하지만, 세월호는 아니지 않는가. 출발부터 시작된 인재가 낳은 참사가 아닌가. 그야말로 ‘억울한 죽음’이다. 죽음 앞에 붙는 이 ‘억울한’이란 관형어. 이 관형어 하나 풀어 달라고 단식을 하고 통곡하는 거 아닌가. 창자가 잘게 끊어져 나가는 이 슬픔을 진정어린 태도로 달래 달라는 거 아닌가. 이게 과연 ‘시체팔이’라고 지탄 받아야할 일인가. 처신머리 없는 ‘무능력 당국’과 제 자식 아니면 괜찮다는 ’비정한 인심‘을 개탄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인생엔 가정법이 없다지만, 인명을 중시 여기는 신속한 판단력과 구조력만 있었다면 생목숨을 그토록 많이 잃지는 않았을 게다. 한 줌의 사과와 위로마저 인색했던 ’당국‘과 익명의 이웃들. 우리 민족이 ’정의 민족‘이란 칭송을 듣는 게 과연 맞나 싶다. 해결하지 못한 이 병폐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행복은 현재진행형이 없는데 불행만은 왜 이다지도 끝나지 않는 현재진행형일까.
  오늘도 인생의 먹구름은 처처에 무시로 밀려 든다. 언제 내게 들이 닥칠지 모르는 먹구름. 내가 사면초가에 막히고 일엽편주가 되어 떠돌 때, 역시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건 인정이다. 동물이 아닌 사람에게만 기댈 수 있는 희망이다.
  쪽배 달님을 삼키려는 저 먹구름. 우리 삶에서도 흔치 않는 일이다. 운명이란 녀석은 보름달이거나 반달이거나 눈썹같은 초승달이거나 형태를 가리지 않고 덤빈다. 그러고 보면, 몰려오는 먹구름을 탓할  게 아니라 그 먹구름을 옅게 해 줄 손풍기라도 지녀야 하는 거 아닐까.
  생각이 너무 깊어졌다. 혼자 떠돌던 구름도 가끔은 외로워 서로를 부른다. 불러 모아선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린다. 감격스런 눈물이면 단비가 되고 분노의 눈물이면 세상 뒤집는 폭우가 되겠지. 내일 부터 다시 연이틀 비가 온다는 예고다.
  내일 비는 어떤 비가 올까. 먹구름 속에 점점 잠겨가는 쪽배 달님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알 수 없는 먹구름은 호시탐탐 쪽배를 노리는데, 윤이월 초이레 밤은 벚꽃처럼 지고 있다.

                                                                                                            (032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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