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섬,울릉도
2007.11.10 18:12
신비의 섬, 울릉도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임두환
꿈과 낭만이 서려있는 신비의 섬, 울릉도를 다시 찾은 지 25년만이다. 세월이 두 번 반은 변했다지만 울릉도는 너무나 다른 세상이 되어버렸다. 예전에 없던 해안일주도로가 개설되었고, 독도박물관과 독도전망대, 봉래폭포와 도동약수관광지구는 또 다른 볼거리였다. 휘황찬란한 불빛아래 울릉도는 발 빠르게 약진하고 있었다.
내가 울릉도를 처음 찾았을 때는 1982년이었다. 몇 몇 동료들과 함께한 배낭여행이었다. 지금에야 승용차와 관광버스가 쑥쑥 드나들지만, 그때만 해도 도로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아 경운기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오솔길을 따라서 성인봉(984m)을 올라야 했고, 해상관광으로만 울릉도 비경을 맛보아야 했다.
이번 울릉도 여행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우리나라를 지키고 선 동쪽의 외로운 섬, 독도에도 가보고, 울릉도해안일주도로가 개설됐기 때문이다. 모임에서는 2박 3일 일정으로 부부동반 울릉도관광길에 올랐다. 1,394톤급 썬플라워호로 포항에서 울릉도까지 3시간 30분이 걸렸다. 울릉도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우리를 반기는 것은 도동항의 ‘울릉도개척사’였다. 석조물에는
“신라 22대 지증왕(512년)때 이사부는 우산국을 조용히 흔들어 깨워서 영원히 신라에 귀속시켰다. 조선 26대 고종 19년(1882년) 개척령반포로 국토수호의 의지를 발현시켰고, 1960년대 근대화의 물결로 이어져 동해의 어업전진기지와 천혜의 관광지로 탈바꿈시키다.”
라고, 새겨져 있었다.
울릉도는 행정구역상으로 경상북도 울릉군이었다. 울릉군은 1읍 2개면으로 상주인구는 약 8천명에 달했지만, 갈매기까지 합치면 1만 명은 되리라 싶었다. 울릉도에는 육, 해, 공군기지가 들어서 있었고, 군청, 경찰서, 교육청, 농수협, 우체국 등 군단위기관이 다 갖추어져 있었다. 중학교 5개와 고등학교 1개도 있었다. 봉래폭포를 이용한 저동항의 수력발전소와 안용복 울릉도해양과학기지는 더욱 빛을 발하였고, 도동에서 저동을 지나는 길에는 2007년 12월 준공예정이라며 문화예술회관 신축공사가 한창이었다.
첫날이었다. 오전 10시에 포항을 출항한 여객선은 오후 1시 30분에야 울릉도에 도착했다. 배 멀미에 지친 일행들이었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허기진 배를 달래고자 울릉도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음식점을 찾았다. 홍합 밥에다 더덕무침, 삼나물 무침, 오징어불고기는 울릉도에서 처음 맛보는 진수성찬이었다. 입맛 까다롭기로 이름난 전주사람들이었지만, 아무도 불평하는 이는 없었다.
오후에는 피로했던 몸을 풀면서 독도박물관과 독도전망대를 찾았다. 1997년 8월 8일 국내유일의 영토박물관으로 개관된 독도박물관에는 독도가 우리의 고유영토임을 증명하는 각종자료〔옛날지도, 문서〕가 전시되어 있었고, 자연생태 영상실에는 독도의 식물과 조류, 어류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독도전망대주변 경관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케이블카 밑으로는 형형색색 수를 놓은 듯하여 마치 바다 속의 산호 군락을 연상케 하였다. 독도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도동 일대와 선착장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둘째 날이었다. 해안일주도로를 따라 울릉도 관광길에 나섰다. 관광버스운전기사는 프로급 가이드였다. 두 시간을 함께하는 동안에도 울릉도를 알리는데 열심이었다. 도동을 출발해서 흑비둘기 서식지인 사동항과 천연기념물 48호로 지정된 통구미향나무 자생지를 거쳐 사자암, 곰바위, 만물상 등을 구경하며 나리분지까지 돌아보았다. 나리분지는 울릉도에서 유일한 평지를 이루고 있었고, 투막집과 너와집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해안일주도로에는 터널이 6곳이나 있었고 8자형 고가도로까지 있어서 지형의 험준함을 말해주었다. 울릉도에는 3무 5다가 있다고 하였다. 3무는 도둑, 공해, 뱀이 없고, 5다는 향나무, 바람, 미인, 물, 돌이 많다는 것이다. 다른 것에는 수긍이 갔지만 뱀이 없다는 게 궁금하였다. 운전기사의 말에 따르면 울릉군에서 300마리의 뱀을 풀어 놓았는데 지금은 한 마리도 없다고 하였다. 그 이유로는 울릉도는 화산섬이어서 유황성분이 많고, 향나무의 향과 뱀은 상극이라서 살 수 없다는 답변이었다.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내수전에서 섬목마을까지 미 개설구간 4,4km 때문에 해안일주를 하지 못하고 지나갔던 39.8km를 되돌아와야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오후 2시30분, 민족의 혼, 독도를 향하여 106톤급 삼봉호가 힘차게 물길을 갈랐다. 넘실거리는 검푸른 바다였지만, 파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도동항을 출발한지 2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였다. 누군가가
“아, 독도다!”
라고 환성을 질렀다. 저 멀리 눈앞에는 꿈에만 그리던 독도가 가물거렸다. 설레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옆자리 다섯 살쯤 먹어 보이는 어린아이가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꼬마야! 독도는 누구네 땅이지?
하고 물었더니,
“우리나라 땅!”
이라고, 서슴없이 대답하였다. 그렇다. 독도는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보아 엄연히 우리나라 땅이다. 말로만 들어왔던 국토의 자존심, 독도에 다다랐다. 남들은 몇 번씩이나 독도를 찾았지만 사나운 파도에 밀려 접안조차 어려웠다는데, 나로서는 축복이자 행운이었다. 독도 첫머리에는
“대한민국 동쪽 땅 끝”
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정말 감개무량하였다. 한줌의 흙이라도 담아오고 싶었지만 이 섬에 오를 수 없어 아쉬웠다. 언제 또 올지 기약이 없어 바위섬에 입맞춤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독도 등허리에는 하얀 들국화가 만발하였고, 갈매기들은 끼룩~ 끼룩~소리를 지르며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 누가 독도를 가리켜 외로운 섬이라고 했던가! 이제는 흘러간 옛 노래에 불과하구나 싶었다. 독도는 동도와 서도 두 형제가 마주보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물새들의 따뜻한 보금자리였다. 이들 곁에는 수많은 경비대가 있었고, 매일 찾아드는 관광객이 함께해서 외롭지 않았다. 또, 이들 뒤에서는 7천만 겨레가 지켜보고 있지 않는가. 약속된 시간에 맞춰 기념촬영을 하다 보니 떠날 시간이 되었다. 독도를 뒤로하고 떠나오는 우리들에게 경비대가 한 줄로 도열하여,
“독도를 사랑해 주십시오. 또, 오십시오.”
하면서, 손을 흔들어주었다. 갑자기 내 마음이 뭉클했다.
마지막 날이었다. 울릉도 해돋이를 보려고 아침 일찍 도동항 산책길에 나섰다. 오징어잡이 나갔던 크고 작은 배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려는지 도동항 어귀에 도열해 있었다. 흑비둘기들은 아침 햇살을 타고 푸른 바다 위를 여유롭게 비행하였고, 오징어를 손질하는 아낙네들의 바쁜 손놀림에서 새벽하늘은 열리고 있었다. 일정에 따라 쾌속유람선으로 해상관광길에 나섰다. 육상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장관이었다. 한마디로 기분 만점이었다. 도동항을 출발하여 저동항까지 해안을 일주하는 동안, 섬 주변에는 동물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여 거북바위, 사자바위, 곰바위, 코끼리바위가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여러 형상을 닮았다고 하여 만물상, 세 선녀가 바위로 변했다는 삼선바위가 전설을 말해주는 듯하였다. 통구미에 있는 향나무 자생지는 천연기념물 제48호로, 수천 년 동안 해풍에 시달리면서도 기암절벽에서 꿋꿋이 수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자생 향나무의 끈질긴 생명력에서 지나온 우리민족의 수난사를 읽을 수 있었다.
울릉도는 제일가는 천혜의 해상관광지였다. 각종 레포츠와 문화축제가 열리고 특산물과 먹을거리가 풍부한 곳이었다. 750여 종의 식물이 자생할 정도로 천연기념물이 많은 울릉도였다. 웅장한 성인봉은 아버지의 가슴이었고,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해상의 비경은 어머니 품속 같았다. 교통의 요람지 도동항과 경제중심지 저동항의 꺼지지 않은 불빛에서 신비의 섬, 울릉도는 서서히 눈을 떠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 2007. 10. 15. 울릉도 관광을 마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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