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이 된 빈대 이야기

2007.11.13 17:44

신기정 조회 수:428 추천:4

전설이 된 빈대 이야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신기정



국어사전을 펼쳐들고 빈대를 찾아 보았다.
빈대는 빈대과의 곤충. 몸은 동글납작하며 길이는 5mm 내외임. 몸빛은 갈색으로 앞날개는 아주 짧고 뒷날개는 퇴화했음.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사람의 피를 빨아먹음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흔히 한몫 끼어 불로소득을 얻는 것을 ‘빈대 붙는다’라고 한다. 빈대하면 왠지 가난한 느낌과 함께 ‘빈들거리다’, ‘빈둥거리다’ 등 좋지 않은 이미지만 연상된다. 거기에 맛좋은 빈대떡까지 싸구려의 대명사로도 쓰였으니 빈대의 신세가 참 가련하다. 요즘 기준으로 한다면 녹두로 만든 빈대떡은 다시없는 건강식인데. 그러나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으라는 노래 '빈대떡 신사'로 미루어 빈대에 대한 예전의 처우를 짐작할 수 있겠다.

이런 빈대도 현대 정주영 회장의 자서전에서 만큼은 투지의 결정체로 나온다. 정회장이 인천부두 노동자시절 그 합숙소에 빈대가 많았다. 이를 피하려고 탁자를 겹쳐놓고 그 위에서 잠을 잤는데도 빈대는 탁자다리를 타고 올라와서 물었다. 다시 탁자다리 밑에 물을 채운 세숫대야를 설치하였다. 그랬더니 빈대들이 천장으로 기어 올라간 뒤 사람의 몸에 떨어져 물었다고 한다. 하찮은 미물이지만 뜻을 이루려고 애쓰는 빈대의 모습을 교훈삼아 이후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 빈대의 교훈에서 이겨낼 힘을 얻었다는 이야기다.

빈대는 벽지가 들뜬 벽체의 기둥 틈새나 가구 밑 등 집안의 은밀한 곳에서 산다. 낮에는 숨어 있다가 밤에 나와서 피를 빠는 야행성이다. 한꺼번에 몸무게의 몇 배나 되는 사람의 피를 빤다. 또 흡혈 중에 배설하여 이부자리나 벽지에 역겨운 냄새가 나는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처럼 실제 빈대 때문에 사찰을 폐가한 기록도 있다고 한다. 시멘트를 사용하고 주택을 개량하면서 그 빈대가 설자리를 잃어버렸다. 갈라진 벽지 틈을 들추면 무더기로 엉겨있던 빈대들의 모습이 우리의 기억에서조차 멀어지고 있다.

요즘 법정스님의 수필을 읽다가 어떤 한 구절에 나의 시선이 머물렀다.
‘고소의 씨앗을 뿌리고…….’
오래 전에 비구니가 주지로 있던 절에서 공부를 할 때 이 '고소'라는 식물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스님들은 텃밭에서 가꾼 고소를 약간의 된장만 버무려 생나물로 먹곤 했었다. 하루는 스님의 권유로 고소를 먹어보았다.  아, 그 맛. 그 냄새! 그건 바로 오래 전에 잊었던 빈대 냄새였다. 다들 징그러운 벌레를 씹은 듯한 표정으로 바로 뱉어냈다. 스님은 고소가 정력감퇴 효과가 있다고 귀띔해 주었다. 공부하는 스님들이 번뇌를 더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때의 기억으로 사전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웬걸? 고소라는 식물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인터넷의 식물관련 사이트를 몇 군데 뒤진 끝에 간신히 단서를 찾았다. '고소'의 정식 이름은 '고수'였다. 약간 의심이 갔지만 설명문의 다음 구절이 '고수'가 '고소'임을 확신하게 했다.
‘일년생 초본, 높이 30~60㎝, 빈대냄새가 남.’
다른 자료에는 ‘빈대풀’이나 ‘호유실’로도 부른다는 설명이 있었다. 그런데 용도를 보니 그때 들었던 정력감퇴와는 무관한 듯했다.

‘식용-(열매) 간장의 향료로 사용한다. (잎) 향료로 쓰거나 채소로 사용한다. / 약용-(뿌리, 지상부) 건위, 소화작용이 있다. (종자) 건위, 소화, 항진균 작용이 있다.’['한국민속자원식물 데이터베이스'중에서 발췌]

아마도 역겨운 빈대냄새를 참고 먹는 것만으로도 수행의 효과는 충분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기적이긴 하지만 '빈대라도 붙어' 아껴보려는 절약정신 만큼은 빈대의 좋은 의미로 봐주면 어떨까? 추억 속의 전설이 되어 사라져가는 곤충에 대한 작은 예우차원에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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