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의 소중함을 알다/김득수
2013.10.19 17:38
한글의 소중함을 알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김득수
수필 공부를 시작하기 불과 두 달 전의 일이다. 낚시를 좋아하여 들락거리던 사이트에 한글 맞춤법에 관한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요약하면 이렇다.
컴퓨터 자판에 음식물이 들어가 된소리 기능에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ㄲ’ 받침이 잘 써지질 않았다. 당연히 '낚시'가 '낙시'로 되었다. 자판을 바로 고치질 않아 여러 번 '낙시'라고 쓰게 되었고 자주 쓰다 보니 친숙해졌다. 시프트(shift)를 누르지 않아도 되니 글쓰기에도 편하고 소리 나는 대로 적으니 헷갈리지도 않는다. 게다가 ‘낙시’로 의사소통이 충분한데 ‘ㄱ’ 자를 굳이 두 개씩이나 붙일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서 앞으로 ‘낙시’로 하면 좋겠다는 뜻으로 글을 썼다. 말미에 세종대왕님께 감사드린다는 능청맞은 인사까지 곁들였다. 낚시꾼들끼리의 농담이 섞인 우스갯소리였지만 어느 정도 나의 진심이 담겨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무식한데다가 이기적이며 얄팍한 잔꾀가 드러나는 글이다. 그 글을 세종대왕이 읽었다면 얼마나 속이 상하셨을까. 맞춤법, 띄어쓰기, 철자법은 교통신호등과 같은 것이다. 파란불이 켜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도 있지만 질서를 지켜주는 등 유익함이 훨씬 더 많다. 위반은 불법이며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이다. 나는 그 고마운 신호등을 위반하자고 꼬드긴 것이다. 맞춤법, 띄어쓰기, 철자법 역시 규칙이요, 하나의 사회적 합의다. 어법에 맞지 않게 사용하고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결국 혼란이 온다. '낚시'가 '낙시'가 되고 '낙수'가 되고 '낙스'가 되고 '나스'가 되어 결국 모든 글자가 뒤죽박죽되고 말 것이다. 그 못된 글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 사과하고 삭제해야 마땅하나 이미 지나버린 일이고 타산지석으로 삼고자 남겨두었다.
나는 이러한 실수를 잘못인 줄 모른 채 지나갈 뻔했다. 훗날 어느 모임에서 국어교사인 친구 아내에게 낚시를 ‘낙시’로 하면 어떻겠냐고 자랑삼아 묻고서야 나의 잘못을 알게 되었다. 낚시는 원형 '낚다'에서 비롯되었고 어법에 맞게 쓰는 것이 옳다고 가르쳐 주셨다. 내게 창피를 주거나 나무라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얼마나 씁쓸해했을까. 그렇지만 그날도 내 마음속에는 수긍하고 싶지 않은 일말의 반발이 있었다. 글은 의사소통과 편리함이 중요하니 '낙시'면 어떠냐는 생각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 실용성과 이기주의에 함몰되어 빨강 신호등의 참뜻을 깨닫지 못했다.
그런 일이 있고나서 한 달쯤 지나 평생교육원 수필반에 등록하게 되었다. 제대로 배워 멋지게 글을 잘 써보려는 생각이었다. 어쩌면 도둑이 제 발로 경찰서에 찾아간 꼴이다. 나는 제대로 걸려들었다. 맞춤법에 관한 이론 강의가 지루하게 이어졌고 감상평을 나누는 시간에도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대한 지적이 곧잘 등장했다. 처음 몇 주 동안 나는 '그깟 띄어쓰기로 따분하게 왜 저러실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중요함은 알겠으나 참말로 쩨쩨한 감상평이라고 구시렁거렸다. 그때까지도 나는 그 문제의 인터넷 '낙시글‘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수강 한 달쯤 될 무렵이었다. 배웠으니 작품을 내놓으라는 교수님의 명령이 떨어지고 난생처음 수필습작을 하면서 생각이 크게 달라졌다. 마음은 더 솔직해지고 글의 품위와 격식을 생각하게 되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부족하니 글을 제대로 내놓을 수가 없었다. 검색기가 있는 줄도 몰랐다.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엉터리면 읽기도 전에 짜증부터 난다는 교수님의 말씀이 내 무지를 할퀴었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형식과 규칙에 맞게 써야 하며 이는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도 발목을 잡았다. 그제야 '낙시글’이 부끄럽게 떠오르고 한글 맞춤법의 여러 규정을 보며 복잡한 네거리의 교통 신호등이 생각났다.
나의 첫 습작은 역시 맞춤법, 띄어쓰기, 외래어 표기 등 여러 가지 규칙을 위반하였다. 감상평에서도 지적이 뒤따랐다. 내 글이 남에게 읽히고 평가받으면서 여러모로 글에 대한 책임감이 더해졌다. 크게 깨달은 것이다. 그 뒤로 나는 빠르게 적응해갔다. 검색기를 돌려 맞춤법, 철자법, 띄어쓰기를 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물론 뜻이 애매한 단어는 국어사전을 찾아보게 되었다. 순수 우리말에 대한 애정도 생겨났다. 뜻 모를 순수 우리말을 만나면 마치 새로운 장난감을 손에 쥔 어린이처럼 기뻤다. 이렇듯 나는 수필 습작과정을 거치면서 새삼 규칙의 중요성과 한글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선배작가의 한글에 대한 사랑은 아마도 음악 연주자의 악기에 대한 애정과 같은 것이 아닐까? '작가는 우리말 우리글 전도사'란 말의 뜻도 이해하게 되었다.
이러한 것들을 알고 깨우치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6개월 글공부를 하는 동안 배운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생각한다. 만약 수필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평생 내 의지와는 다르게 ‘한글 훼손범’, ‘한글 파괴자’로 살았을 것이다. 요즘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은어와 속어, 축약어들도 아무런 비판 없이 따라서 흉내 냈을 것이다.
대학도 다니고 공부도 할 만큼 한 사람이 한글에 대해 이런 엉터리 견해와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나 자신이 정말 실망스럽다. 그러나 내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면, 예전의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 수 있다. 나는 그들에게 나의 경험담을 꼭 들려주고 싶고 권하고 싶다.
“일기든 편지든 수필이든 일단 글 한 편 써보시라! 한글을 사랑하는 마음이 저절로 피어날 것입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차차 바르게 고쳐집니다.”
아직도 나는 맞춤법에 자신이 없다. 띄어쓰기는 말할 것도 없다. 자주 틀리고 반복하여 틀린다. 그러나 생각을 깨우쳤으니 노력하면 언젠가 궤도에 오를 것이다. 이제 나는 간단한 인터넷 댓글이나 휴대폰 문자나 편지글도 규칙에 맞게 썼는지 더욱 주의를 기울인다. 글쓰기 공부하는 내가 앞장서 노력해야지 누가 하겠는가! 단어의 뜻도 정확히 알고 바르게 사용해야 하고, 가능하면 비속어와 사투리, 외래어는 줄이고 바른말, 고운 말, 우리말을 사용해야겠다. 한글을 바르게 쓰는 것이 한글사랑, 나라사랑이다.
(2013. 10. 9. 김 학 교수님의 한글날 권장 숙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김득수
수필 공부를 시작하기 불과 두 달 전의 일이다. 낚시를 좋아하여 들락거리던 사이트에 한글 맞춤법에 관한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요약하면 이렇다.
컴퓨터 자판에 음식물이 들어가 된소리 기능에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ㄲ’ 받침이 잘 써지질 않았다. 당연히 '낚시'가 '낙시'로 되었다. 자판을 바로 고치질 않아 여러 번 '낙시'라고 쓰게 되었고 자주 쓰다 보니 친숙해졌다. 시프트(shift)를 누르지 않아도 되니 글쓰기에도 편하고 소리 나는 대로 적으니 헷갈리지도 않는다. 게다가 ‘낙시’로 의사소통이 충분한데 ‘ㄱ’ 자를 굳이 두 개씩이나 붙일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서 앞으로 ‘낙시’로 하면 좋겠다는 뜻으로 글을 썼다. 말미에 세종대왕님께 감사드린다는 능청맞은 인사까지 곁들였다. 낚시꾼들끼리의 농담이 섞인 우스갯소리였지만 어느 정도 나의 진심이 담겨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무식한데다가 이기적이며 얄팍한 잔꾀가 드러나는 글이다. 그 글을 세종대왕이 읽었다면 얼마나 속이 상하셨을까. 맞춤법, 띄어쓰기, 철자법은 교통신호등과 같은 것이다. 파란불이 켜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도 있지만 질서를 지켜주는 등 유익함이 훨씬 더 많다. 위반은 불법이며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이다. 나는 그 고마운 신호등을 위반하자고 꼬드긴 것이다. 맞춤법, 띄어쓰기, 철자법 역시 규칙이요, 하나의 사회적 합의다. 어법에 맞지 않게 사용하고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결국 혼란이 온다. '낚시'가 '낙시'가 되고 '낙수'가 되고 '낙스'가 되고 '나스'가 되어 결국 모든 글자가 뒤죽박죽되고 말 것이다. 그 못된 글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 사과하고 삭제해야 마땅하나 이미 지나버린 일이고 타산지석으로 삼고자 남겨두었다.
나는 이러한 실수를 잘못인 줄 모른 채 지나갈 뻔했다. 훗날 어느 모임에서 국어교사인 친구 아내에게 낚시를 ‘낙시’로 하면 어떻겠냐고 자랑삼아 묻고서야 나의 잘못을 알게 되었다. 낚시는 원형 '낚다'에서 비롯되었고 어법에 맞게 쓰는 것이 옳다고 가르쳐 주셨다. 내게 창피를 주거나 나무라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얼마나 씁쓸해했을까. 그렇지만 그날도 내 마음속에는 수긍하고 싶지 않은 일말의 반발이 있었다. 글은 의사소통과 편리함이 중요하니 '낙시'면 어떠냐는 생각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 실용성과 이기주의에 함몰되어 빨강 신호등의 참뜻을 깨닫지 못했다.
그런 일이 있고나서 한 달쯤 지나 평생교육원 수필반에 등록하게 되었다. 제대로 배워 멋지게 글을 잘 써보려는 생각이었다. 어쩌면 도둑이 제 발로 경찰서에 찾아간 꼴이다. 나는 제대로 걸려들었다. 맞춤법에 관한 이론 강의가 지루하게 이어졌고 감상평을 나누는 시간에도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대한 지적이 곧잘 등장했다. 처음 몇 주 동안 나는 '그깟 띄어쓰기로 따분하게 왜 저러실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중요함은 알겠으나 참말로 쩨쩨한 감상평이라고 구시렁거렸다. 그때까지도 나는 그 문제의 인터넷 '낙시글‘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수강 한 달쯤 될 무렵이었다. 배웠으니 작품을 내놓으라는 교수님의 명령이 떨어지고 난생처음 수필습작을 하면서 생각이 크게 달라졌다. 마음은 더 솔직해지고 글의 품위와 격식을 생각하게 되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부족하니 글을 제대로 내놓을 수가 없었다. 검색기가 있는 줄도 몰랐다.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엉터리면 읽기도 전에 짜증부터 난다는 교수님의 말씀이 내 무지를 할퀴었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형식과 규칙에 맞게 써야 하며 이는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도 발목을 잡았다. 그제야 '낙시글’이 부끄럽게 떠오르고 한글 맞춤법의 여러 규정을 보며 복잡한 네거리의 교통 신호등이 생각났다.
나의 첫 습작은 역시 맞춤법, 띄어쓰기, 외래어 표기 등 여러 가지 규칙을 위반하였다. 감상평에서도 지적이 뒤따랐다. 내 글이 남에게 읽히고 평가받으면서 여러모로 글에 대한 책임감이 더해졌다. 크게 깨달은 것이다. 그 뒤로 나는 빠르게 적응해갔다. 검색기를 돌려 맞춤법, 철자법, 띄어쓰기를 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물론 뜻이 애매한 단어는 국어사전을 찾아보게 되었다. 순수 우리말에 대한 애정도 생겨났다. 뜻 모를 순수 우리말을 만나면 마치 새로운 장난감을 손에 쥔 어린이처럼 기뻤다. 이렇듯 나는 수필 습작과정을 거치면서 새삼 규칙의 중요성과 한글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선배작가의 한글에 대한 사랑은 아마도 음악 연주자의 악기에 대한 애정과 같은 것이 아닐까? '작가는 우리말 우리글 전도사'란 말의 뜻도 이해하게 되었다.
이러한 것들을 알고 깨우치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6개월 글공부를 하는 동안 배운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생각한다. 만약 수필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평생 내 의지와는 다르게 ‘한글 훼손범’, ‘한글 파괴자’로 살았을 것이다. 요즘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은어와 속어, 축약어들도 아무런 비판 없이 따라서 흉내 냈을 것이다.
대학도 다니고 공부도 할 만큼 한 사람이 한글에 대해 이런 엉터리 견해와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나 자신이 정말 실망스럽다. 그러나 내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면, 예전의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 수 있다. 나는 그들에게 나의 경험담을 꼭 들려주고 싶고 권하고 싶다.
“일기든 편지든 수필이든 일단 글 한 편 써보시라! 한글을 사랑하는 마음이 저절로 피어날 것입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차차 바르게 고쳐집니다.”
아직도 나는 맞춤법에 자신이 없다. 띄어쓰기는 말할 것도 없다. 자주 틀리고 반복하여 틀린다. 그러나 생각을 깨우쳤으니 노력하면 언젠가 궤도에 오를 것이다. 이제 나는 간단한 인터넷 댓글이나 휴대폰 문자나 편지글도 규칙에 맞게 썼는지 더욱 주의를 기울인다. 글쓰기 공부하는 내가 앞장서 노력해야지 누가 하겠는가! 단어의 뜻도 정확히 알고 바르게 사용해야 하고, 가능하면 비속어와 사투리, 외래어는 줄이고 바른말, 고운 말, 우리말을 사용해야겠다. 한글을 바르게 쓰는 것이 한글사랑, 나라사랑이다.
(2013. 10. 9. 김 학 교수님의 한글날 권장 숙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