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 라이너 마리아 릴케

2004.09.01 17:42

강학희 조회 수:275 추천:16




    ♤ 가을날 - 라이너 마리아 릴케 ♤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

    마지막 열매를 알차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녘의 빛을 주시어
    무르익도록 재촉하시고
    마지막 단맛이
    무거워져 가는 포도에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깨어서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바람에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 사이를 헤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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