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엽(蓮葉)에게 : 시-송수권/낭송-전향미

2004.09.03 18:45

강학희 조회 수:328 추천: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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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엽(蓮葉)에게
      시-송수권/낭송-전향미


      그녀의 피 순결하던 열 몇 살 때 있었다
      한 이불 속에서 사랑을 속삭이던 때 있었다
      연(蓮) 잎새 같은 발바닥에 간지럼 먹이며
      철없이 놀던 때 있었다
      그녀 발바닥을 핥고 싶어 먼저 간지럼 먹이면
      간지럼 타는 나무처럼 깔깔거려
      끝내 발바닥은 핥지 못하고 간지럼만 타던
      때 있었다.

      이제 그 짓도 그만두자하여 그만두고
      나이 쉰 셋
      정정한 자작나무, 백혈병을 몸을 부리고
      여의도 성모병원 1205호실
      1번 침대에 누워
      그녀는 깊이 잠들었다
      혈소판이 깨지고 면역체계가 무너져 몇 개월 째
      마스크를 쓴 채, 남의 피로 연명하며 살아간다

      나는 어느 날 밤
      그녀의 발이 침상 밖으로 흘러나온 것을 보았다
      그때처럼 놀라 간지럼을 먹였던 것인데
      발바닥은 움쩍도 않는다.
      발아 발아 까치마늘 같던 발아!
      蓮잎새 맑은 이슬에 씻긴 발아
      지금은 진흙밭 삭은 잎새 다 된 발아!
      말굽쇠 같은 발, 무쇠솥 같은 발아
      잠든 네 발바닥을 핥으며 이 밤은
      캄캄한 뻘밭을 내가 헤매며 운다.

      그 蓮잎새 속에서 숨은 민달팽이처럼
      너의 피를 먹고 자란 詩人, 더는 늙어서
      피 한 방울 줄 수도 없는 빈 껍데기 언어로
      부질없는 詩를 쓰는 구나

      오, 하느님
      이 덧없는 말의 교예
      짐승의 피!
      거두어 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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