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시인이 쓰는 시 이야기
2011.05.14 05:18
시집 <바닷가 우체국> 시인이 쓰는 시 이야기 - 안도현
내 시는 아무래도 가을날 볕 잘 드는 사랑방에서 댓살을 다듬고 한지를 자르며
싸드락싸드락 만드는 연 같은 것이어야겠다.
어린 아들놈은 목을 몇 자나 빼고서는 내 무릎 앞을 지키고 앉아 있겠지.
어린 아들놈이나 아들놈의 동무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내가 옛날에 웃어른들에게 배워 지금 어린것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연을
만드는 일이니,
시를 쓰듯이 즐겁게 나는 연을 만들어야겠다.
물론 돈을 내고 사서 띄우기만 하면 되는,
비닐로 만든 가오리연은 동네 문방구점에 가면 얼마든지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아비가 직접 풀을 바르고 꽁숫구멍을 뚫어
상하 좌우의 균형을 맞춘 방패연에 비길 바가 아니다.
제 잘난 멋에 요리조리 공중을 헤엄쳐 다니며 까부는 가오리연 같은 시들이
결국은 바람 앞에 오래 살아남지 못하고 땅바닥에 내리꽂히는 것을
그 동안 자주 목격하였거니와 공중으로 상승하는 속도는 느리되
그 유장한 몸짓으로 떠오른 뒤에는 스스로 흔쾌히 겨울 하늘의 창문이 되는
방패연 같은 시가 그리워지는 시절인 까닭이다.
적어도 시인이라 하면 언어를 갈고 다듬으며 살리는 데 공력을 들여야지
언어를 흔들고 내팽개치며 혹사시키는 일에 나서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시란 언제까지나 언어의 게임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내 시쓰기는,
지상과 천상의 다리를 놓는 바람의 게임, 즉 연날리기와 같은 것이어야겠다.
연을 날릴 때는 당연히 얼레를 잡은 손은 연줄을 풀어야 할 때 풀고
당겨야 할 때 당길 줄 알아야 하는 법,
그렇다면 나도 내 손에서 언어를 풀 때는 풀고 당길 때는 당길 줄 아는 시인
이어야겠다.
한때 나는 그 긴장의 끈을 지나치게 잡아당겨 팍팍한 고구마 같은 시를 썼는가 하면,
또한 그것을 지나치게 풀어놓아 헛헛한 무 같은 시를 쓰기도 하였으니
살펴 경계해야 할 일이다. 세계와 나 사이의 거리는 연과 나 사이의 거리처럼 아득한 것.
그것을 굳이 자를 끄집어내 한 치 두 치 재야 할 일은 아니며,
그 아득함에 취해 함부로 이 세상 밖을 동경하는 일은 더욱 아니 될 일이다.
연을 날리는 일과 시를 쓰는 일과 그리고 살아가는 일이 결국은 따로 있지 않으므로
매사에 지극 정성을 다하는 도리밖에 없겠다.
다만 연을 날리다가 보면 연줄을 뚝,
끊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연을 날려보내야 할 때가 있는 것처럼
시의 언어가 문득 나를 떠나가려 한다면 미련 없이 떠나보낼 줄도 알아야 하겠다.
내 시는 아무래도 가을날 볕 잘 드는 사랑방에서 댓살을 다듬고 한지를 자르며
싸드락싸드락 만드는 연 같은 것이어야겠다.
어린 아들놈은 목을 몇 자나 빼고서는 내 무릎 앞을 지키고 앉아 있겠지.
어린 아들놈이나 아들놈의 동무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내가 옛날에 웃어른들에게 배워 지금 어린것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연을
만드는 일이니,
시를 쓰듯이 즐겁게 나는 연을 만들어야겠다.
물론 돈을 내고 사서 띄우기만 하면 되는,
비닐로 만든 가오리연은 동네 문방구점에 가면 얼마든지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아비가 직접 풀을 바르고 꽁숫구멍을 뚫어
상하 좌우의 균형을 맞춘 방패연에 비길 바가 아니다.
제 잘난 멋에 요리조리 공중을 헤엄쳐 다니며 까부는 가오리연 같은 시들이
결국은 바람 앞에 오래 살아남지 못하고 땅바닥에 내리꽂히는 것을
그 동안 자주 목격하였거니와 공중으로 상승하는 속도는 느리되
그 유장한 몸짓으로 떠오른 뒤에는 스스로 흔쾌히 겨울 하늘의 창문이 되는
방패연 같은 시가 그리워지는 시절인 까닭이다.
적어도 시인이라 하면 언어를 갈고 다듬으며 살리는 데 공력을 들여야지
언어를 흔들고 내팽개치며 혹사시키는 일에 나서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시란 언제까지나 언어의 게임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내 시쓰기는,
지상과 천상의 다리를 놓는 바람의 게임, 즉 연날리기와 같은 것이어야겠다.
연을 날릴 때는 당연히 얼레를 잡은 손은 연줄을 풀어야 할 때 풀고
당겨야 할 때 당길 줄 알아야 하는 법,
그렇다면 나도 내 손에서 언어를 풀 때는 풀고 당길 때는 당길 줄 아는 시인
이어야겠다.
한때 나는 그 긴장의 끈을 지나치게 잡아당겨 팍팍한 고구마 같은 시를 썼는가 하면,
또한 그것을 지나치게 풀어놓아 헛헛한 무 같은 시를 쓰기도 하였으니
살펴 경계해야 할 일이다. 세계와 나 사이의 거리는 연과 나 사이의 거리처럼 아득한 것.
그것을 굳이 자를 끄집어내 한 치 두 치 재야 할 일은 아니며,
그 아득함에 취해 함부로 이 세상 밖을 동경하는 일은 더욱 아니 될 일이다.
연을 날리는 일과 시를 쓰는 일과 그리고 살아가는 일이 결국은 따로 있지 않으므로
매사에 지극 정성을 다하는 도리밖에 없겠다.
다만 연을 날리다가 보면 연줄을 뚝,
끊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연을 날려보내야 할 때가 있는 것처럼
시의 언어가 문득 나를 떠나가려 한다면 미련 없이 떠나보낼 줄도 알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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