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 문정희]

2011.05.08 00:49

강학희 조회 수:719 추천:8





 


문정희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라
심장 저 깊은 곳으로부터
눈물 냄새가 차오르고
이내 두 눈이 젖어온다


흙은 생명의 태반이며
또한 귀의처인 것을 나는 모른다
다만 그를 사랑한 도공이 밤낮으로
그를 주물러서 달덩이를 낳는 것을 본 일이 있다
또한 그의 가슴에 한 줌의 씨앗을 뿌리면
철 되어 한 가마의 곡식이 돌아오는 것도 보았다
흙의 일이므로
농부는 그것을 기적이라 부르지 않고
겸허하게 농사라고 불렀다


그래도 나는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면
눈물샘 저 깊은 곳으로부터
슬프고 아름다운 목숨의 메아리가 들려온다
하늘이 우물을 파놓고 두레박으로
자신을 퍼 올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  시․낭송


문정희 - 1947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났으며, 1969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새떼』『남자를 위하여』『오라, 거짓 사랑아』『양귀비꽃 머리에 꽂고』『나는 문이다』 등이 있음.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함.


출전 /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민음사)
음악 /  Enna
애니메이션 /  박상혁


프로듀서 /  김태형





흙에서 어떻게 울음소리가 들릴까요? 내주기만 하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점에서, 흙은 어머니를 닮았습니다. 열매와 짐승과 사람에게 다 퍼주고도 밟히기만 한다는 점에서도, 그들의 똥오줌을 받아내 제 안에서 삭히기만 한다는 점에서도, 흙은 어머니를 닮았습니다. 이 시인은 어머니이기 때문에 흙이라는 이름에서 “흙 흙 흙” 하는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고, 심장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눈물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겁니다. 제 몸의 양분과 정기를 씨앗에게 부어 아이를 낳고, 제 몸과 영혼을 팔아 아이를 기르고도, 받을 것은 거의 없고 줄 것은 많이 남은 어머니이기 때문에.



문학집배원 김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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