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가는 먼 집 / 허수경]

2011.05.08 01:00

강학희 조회 수:328 추천:8




혼자 가는 먼 집 


 


                            허수경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 출처 :『혼자 가는 먼 집』, 문학과지성사 1992


 


● 시 - 허수경 : 196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1987년『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혼자 가는 먼 집』『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등이 있으며, 동서문학상 등을 수상함.
 
● 낭송 - 이금희: KBS 아나운서. <6시 내고향>등에 출연했으며, 현재 <아침마당> 등 진행중.





허수경, 그녀의 ‘불우한 악기’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 악기가 내는 울음소리 같은 시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 악기는 울지 않습니다. 엉엉 소리 내어 울어야 할 자리에 들어가 있는 것은 말줄임표이거나, 잦은 쉼표이거나, ‘킥킥’이라는 짓궂은 듯한 웃음입니다. 울음은 또한 문장의 도치와 어휘의 반복, 그리고 이미지의 건너뜀을 통해 행간 속에 숨어 있습니다. 이 시가 아름다운 것은 울음소리를 내지 않고도 독자를 울게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이지요. 당신, 이라는 그 흔한 2인칭 대명사가 이렇게 절실해서 아픈 시를 나는 본 적 없습니다. 당신, 킥킥 당신도 그리 생각하시는지요?


 


2007. 12. 17. 문학집배원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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