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윤후명의 거제ㆍ지심도 사랑
2009.08.04 16:24
소설가 윤후명의 거제ㆍ지심도 사랑
등단 42년을 맞은 윤씨는 문학단체 문학사랑(이사장 김주영)과 거제문화예술재단(이사장 김한겸 거제시장)이 마련한 전시회와 문학그림집, 문학기행을 통해 거제도와 거제 지심도를 다시 찾아 떠난다.
2009.7. 연합뉴스
(사진 설명 = '지심도 사랑을 품다' 표지, 윤후명 그림 '엉겅퀴꽃' <<문학사랑 제공>>)
<<소설가 윤후명>> 소설속에서 잃어버린 내 꿈★이 이루어진다 마라토너가 달리는 걸 보면 가슴이 뛴다. 한때 나는 마라토너의 삶을 꿈꾸었다. 중학교 때는 방과후에 홀로 남아 운동장을 돌았고, 고등학교 때는 학교인 서울역 근처에서 노량진 장승백이까지 뛰어 돌아오기도 했다. 그런 내가 이렇듯 ‘토굴’ 속에 들어앉게 된 게 언제부터인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나는 ‘새다리’인내 다리를 안쓰럽게 내려다본다. 문학을 한다고 나는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식물학자가 되고 싶은 꿈도 있었고, 역사학자가 도대체 문학이 무엇이건대 내 꿈뿐만 아니라 나를 키워준 아버지의 꿈, 법조인을 만들고 나는 지금도 식물과 함께 있고자 애쓰며, 가야 역사를 되풀이 음미하며, 플라톤과 장자를 그것들을 내 문학 속에 어떻게 녹여 넣을지 골몰한다. 그러니까 나는 잃어버린 게 아니라 고등학교 때 내가 처음 택한 특별활동은 문예반이 아니라 원예반이었다. 그리고 싫증을 잘 흔한 것, 안 흔한 것, 이를테면 이름부터 미나리아재비같이 잘 알려진 것에서 참배암차즈기나 놋젓가락나물같이 잘 안 알려진 것까지…그리고 관찰하고 기록한다. 그리하여 어느덧 소설에서 묘사 부분에 식물을 갖다놓는 게 버릇이 되었다. 그건 바라던 바이기도 했다. 이때 나는 식물학자가 되는 게 아니고 무엇이랴. 비록 아니, 무엇보다도 먼저인 것은 신목(神木)으로 표징되듯이 기도드리는 대상으로서의 식물이다. 내 고향 땅 대관령의 산신제에서 한 줄기 물푸레나무는 어떻게 몸을 떨어서 신을, 하늘을 맞이하는가. 이토록 영검스럽고 아름다운 식물들이 문화가 되어 함께 숨쉬는 이 나라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같은 사실은 그 어떤 ‘거대담론’보다 거대담론이다. 자연, 이른바 환경 앞에 누가 다음에 역사학자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게 ‘역사란 무엇인가?’ 하는 식으로 묻지는 말기 바란다. 생각하기로, 역사는 진보하는 것도, 반복되는 것도 아닐 듯한데, 이에 관해서는 여기서 말할 계제가 아니다. 다만 나는 소박한 사실들에 눈길이 쏠려서, 특히 가야국을 중심으로 돌아보기를 게을리하지 얼마 전에 경북 군위에 있는 인각사라는 절에 다녀온 것도 그래서였다. 그곳은 고려 충렬왕 30년도 더 지난 날에 우연히 이 책을 집어든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 책은 그러나 더 예전, 우리의 시조 단군임금의 이야기를 비롯하여 여러 나라의 건국 이야기와 옛 이 책에 따르면, 가야국의 왕인 수로는 ‘구지가(龜旨歌)’라는 이상한 노래 속에서 하늘에서 내려온다. 무슨 뜻일까. 이어서 ‘여뀌 잎사귀같이 좁은 땅’을 수도로 정한다. 무슨 뜻일까. 그리고 인도에서 왔다는 허왕후를 맞아들인다. 무슨 뜻일까. 그는 임금인 데도 그녀를 왕후로 맞기까지 왜 4년 동안이나 홀로 살았을까. 그때가 서기 그녀의 아들들이 들어간 지리산 칠불사의 이야기는? 함께 온 삼촌의 이름이 지금도 김해에 많은 의문들이 소설 속에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핏속을 흐르는 옛 사람의 정신이 그 뿌리를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나는, 그것이 비록 혁명과 같이 엄청난 그러기 위해서는 ‘뿌리’로 가야 한다. 내가 20년 전에 돈황으로 간 것도 실크로드와 우리의 아픈 이야기, 깊은 이야기가 얽혀 있는 곳, 그곳에서 우리와 나를 접합시키는 이쯤해서 철학을 등장시켜도 좋을 듯하다. 무슨 거창한 철학은 결코 아니다. 단순히 ‘나’에 대한 몇 마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예컨대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는 말을 끌어다 쓰면 어떨까. 아무려나 소설가가 되고 나서 우리에게 참으로 부족한 게 ‘나’ 의식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요즘과는 달리 3인칭 소설이 주류였던 시절이었다. ‘나’를 써서 확립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여기에는 데카르트의 ‘코기토 에르고 ‘나’는 ‘자아’이다. 자아를 확립하지 않으면 세상을 인식할 수 없다. 오늘날 소설이 그 지름길이 ‘나’를 확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를 사인(私人) 윤후명으로만 읽어서는 곤란하다. ‘나’는 세계를, 우주를 인식하는 깨달음의 주체로서의 ‘나’일 뿐이다. 그렇다면 소설이란 무엇인가. 소설이란 ‘소설이란 이러이러하다’는 고정 관념을 깨는 것이다. 많은 독자들이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수구적일 때 소설은 발전하지 못한다. 소설은 날로 새로워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단순한 ‘이야기로서의 소설의 다양성과 아울러 ‘내적 서사’의 중요성은 어디에서 찾는단 말인가. 세계의 문이 활짝 열리고 있다고 하나, 의식은 뒤쳐져 그에 따라가기 힘겨운 모습이 소설에서도 역력하다. 나는 내 인생에서 잃어버렸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을 소설 속에서 다시 찾는다. 그러므로 소설 속에 가상 공간이 등장한다 하더라도 내게는 현실 공간이 된다. 환상이 살아나 실현되는 공간이다. 소설 속에서 내 ‘꿈★은 이루어진다.’ 오늘도 ‘새다리 마라토너’는 학교 운동장을 몇 바퀴째 홀로 달린다. 절대 고독이 밀려와 내 소설을 바라보는 편견이 있다면, 나를 바라보는 오해가 있다면 그 절대 고독의 심연에서 그리하여 ‘나’를 찾는 길이다. 그것이 비록 ‘가장 멀리 있는 나’일지라도 이 세상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내가 추구하는 ‘사랑’의 완성은 어디에 언제까지든, 어디까지든 찾아가는 고행(苦行)의 길이다. 2002. 한국일보 • 1946년 강원 강릉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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