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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춘문예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작품 마무리 잘 되어가고 있습니까? 제가 1995년엔가, '대학 시절의 신춘문예 응모'를 소재로 소설을 쓴 적이 있습니다. 좋은 결과 있기를 바라는 축원의 마음으로 미주문학 카페에 올립니다. 이 소설은 상당 부분 사실입니다.

                                    우리들의 대학 시절
                                                                    

  경호야, 편지 잘 받았다. 위문 편지를 보내야 할 사람은 나인데 네가 먼저 편지를 보내 왔으니, 미안한 마음 답장으로나마 전한다. 사촌형의 무심함을 탓하여 다오. 이 편지가 도착할 즈음엔 그곳 전방에는 무서리가 내리겠구나. 너는 부모님 속을 꽤나 썩히더니 군에 들어가서 비로소 철이 드는 모양이다. 제대하고 나서 대학에 들어갈 공부를 해보겠다구? 짜식, 그렇게 생각한 것만으로도 기특한 일이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실은 제일 빠른 때이니 그 마음 제대할 때까지 변치 말아라. 제대한 이후의 공부는 나도 힘닿는 대로 도와주마. 사실 내가 나온 문예창작학과라는 데는 학과의 특성 때문인지 군 제대 후 공부를 해 대학생이 된 만학도가 한 해에 한두 명은 꼭 들어오더라구. 그러니 네가 마음만 굳게 먹으면 이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너는 편지에서 문예창작학과를 선망하면서 문학을 공부해보겠다는 뜻을 비쳤는데, 네가 궁금하게 여기고 있는 것들---이곳에서는 무슨 공부를 하며, 학과의 분위기는 어떠한지, 졸업하면 어떤 직종을 갖게 되는지 등---에 관한 얘기는 편지로 하기 어려우니 훗날 술잔이나 기울이면서 해주기로 약속하지. 그래서 나는 그야말로 위문 편지를 쓰기로 했다. 위문 편지가 입시 요강처럼 딱딱하면 되겠니? 내가 문학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 대학 시절을 소재로 한 한 편의 회상기는 너에게 작은 위문과 격려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앞으로 몇 차례의 편지로 나누어 보내겠으니, 가벼운 소설 한 편 읽는 셈치고 읽어주기 바란다.
  너도 잘 알다시피 이 형의 사춘기 시절은 참으로 어두웠다.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집안 분위기가 싫어 가출을 주기적으로 한 영향을 엉뚱하게 네가 이어받아 내가 삼촌한테 꾸중을 자주 들었었지. 경호야, 그래도 나는 너처럼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말썽을 피우진 않았었다구. 비록 영등포와 안양 일대에서 술집 웨이터를 했었지만 내 용돈은 내가 벌어 썼었지. 본드 마시고 사고 친 적도 없었구. 어머니가 안정제 과다 복용으로 돌아가신 이후 정신을 차려 공부를 했고,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들어간 것까지는 너도 잘 알 것이다. 입학금은 친척들이 마련해주어 간신히 한 학기 다닐 수 있었으나 다음 학기는 도저히 내 힘으로 다닐 재간이 없었다. 나는 휴학계를 내고 밥과 옷과 잠자리를 무료로 제공해주는 군대에 들어갔었지. 아내와 직장을 거의 동시에 잃고 자포자기의 상태가 되어 술이나 퍼마시는 아버지와 한 지붕 아래 기거하기가 지겹기도 했고. 여상을 나와 기업체 경리사원이 된 누이동생에게 아버지를 부탁하고 군문에 들어간 것은 또 한 번의 가출인 셈이었다. 이야기는 제대한 그해 가을부터 시작된다.
  제대는 했지만 다음 학기 등록금은커녕 생활비도 마련하지 못했던 나는 학교 근처에서 포장마차를 시작하였다. 가정교사나 학원강사를 할 실력은 안 되고 군에 가기 전 보고 배운 것은 술에 관련된 것뿐이었기 때문이었어. 군에서도 내내 취사병을 해 소질(?)을 살려보기로 한 거지. 소설가를 꿈꾸던 백면서생의 내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경구만 믿고 이리저리 돈을 변통해 경험도 없이 개업을 하지 않았겠니.
  흑석동 성모병원 근처에는 이른바 먹자골목이란 곳이 있지. 그 골목 어귀에서 시작한 포장마차는 수입이 그런대로 괜찮았어. 문창과 복학 예정 학생이라고 떠벌렸더니 호주머니 사정이 좋은 연극영화과나 회화과 애들도 사주고, 소문을 듣고 찾아온 과 후배 녀석들도 대개들 외상 긋지 않고 소주잔을 비워주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이었지.
  대학 축제라는 것이 한창일 때였으니 시월 초순이 아니었나 생각되는군. 해가 뉘엿뉘엿 질 때 산동네 자취방에서 준비한 안주감을 포장마차에 싣고 흑석동에 진출하면 어느덧 거리에는 밤의 수호신인 가로등이 켜져 있지. 그래도 본격적인 영업은 술집을 한두 군데 전전한 학생들이 헤어지기 아쉬워서 들르는 시각부터였으므로 초저녁에야 날벌레나 쫓고 있기 십상이야. 먹자골목이 온통 갈비며 삼겹살 굽는 냄새로 진동하는 초저녁이라 나도 물을 끓이고 술잔을 마른 수건으로 닦으며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지. 그렇게 마수걸이를 할 시간에 웬 꼬질꼬질 땟국이 흐르는 야전잠바를 걸친 사내가 포장마차 천을 들치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겠니. 세상 고민은 혼자서 하고 있다는 듯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기에 영 기분이 안 좋더군. 너도 첫인상이 왠지 안 좋은 놈은 끝끝내 밥맛이잖니. 노동판에서 막걸리 마시고 있으면 딱 어울릴 행색을 하고서 대학가까지 진출해 소주를 마시려고 들어온 것이 우선 불쾌했고, 엉뚱한 잔을 요구한 것이 또한 불쾌했어.
  "소주 큰잔으로 딱 한 잔만 주쇼."
  소주잔이 커봐야 얼마나 크겠니.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지.
  "맥주 잔이면 되겠습니까?"
  "예, 바로 그 잔이요."
  그는 놀랍게도 맥주 잔에 따라준 소주를 쉬지도 않고 들이마시는 것이었어. 더욱 놀라운 일은 소금 종지에 손을 뻗어 조금 집어내더니 입에 틀어넣는 거야. 안주를 소금으로 한 사람을 내 난생 처음으로 보는 순간이었지. 그는 휘둥그래지는 내 눈을 짐짓 외면하고는 벌떡 일어서서 몸을 뒤로 홱 돌리는 것이 아니겠니.
  "잘 마셨소. 마침 돈이 없군요. 이 술값 외상으로 달아놓읍시다."
  이 말을 남긴 그의 몸은 벌써 포장 바깥에 나가 있었지. 나는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하면서 그를 좇아 포장 바깥으로 나갔지. 천하의 날강도 같으니라구. 그 사내의 앞을 가로막고 서서 어필하는 야구 감독처럼 폼을 잡았것다.
  "술값은 어떡하시구요?"
  "많지는 않을 테니 외상으로 달아놓았으면 좋겠소."
  "생면부지의 사람에게는 외상을 주지 않습니다."
  "내 내일 다시 오죠. 그럼 되겠소?"
  "내가 바보요, 그 말을 믿게."
  "술은 마시고 싶었고, 마침 돈은 없고. 돈이 없는 걸 알았다면 들어오지 않았을 텐데. 술을 마신 뒤에야 옷을 갈아입고 나오지 않은 걸 알았소. 안주는 축내지 않았으니 좀 봐주쇼. 어쨌든 미안하오."
  "나 참 기가 막히는구만."
  "학생인 것 같은데 한 번만 봐주쇼. 나도 학생이오."
  학생이라구? 학생 모독하는 거짓말 작작 하시라고 소리를 지르려다가 사람이 죽으면 아무나 지방에다 학생부군신위 어쩌구 쓰는 것이 생각나 입을 다물었지. 나는 그가 값나가는 안주를 먹은 것도 아니고 고작 술 한 잔 값을 받으려고 한길에서 실랑이하고 싶지 않아 아래위를 사나운 눈으로 훑어보고는 보내버리기로 했지. 그 험한 입성이라니. 그의 의복은 깡통만 들면 거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꾀죄죄했어. 얼굴도 30대 초반인 것은 알겠는데 겉늙어 있었고. 그 얼굴을 보니 멱살이라도 잡아 흔들고 싶던 마음이 싹 사라지더군. 그런데 눈에서는 이상한 빛이 내비쳤어. 불가사의한 광기랄까, 쏘아보는 안광이 사람을 섬뜩하게 하더군.
  "잘 마셨고, 은혜는 내 잊지 않으리다."
  손을 흔들더니 그는 힘없이 발걸음을 어두운 골목 쪽으로 옮겨놓았어.
  "마수걸이 손님이 저러니 오늘 영업은 해보나마나 쫄딱 망했다."
  내 말을 들었는지 어쨌는지 그는 뒤도 안 보고 손을 흔들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어. 손을 흔든 것은 미안하다는 뜻이었겠지. 그런데 그는 공언했던 대로 그 다음날 그 시간에 또 나타난 것이었어. 이번에는 사람이 완전히 달라 보일 정도로 차림이 말쑥했고,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아주 아리따운 아가씨와 함께였어.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지.
  어디서 봤더라. 그 아가씨는 차림새로 보나 들고 있는 책으로 보나 분명히 학생이었어. 그 사내에게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자색이었고. 옛날 같았으면 메이 퀸 같은 것으로 뽑히거나 미스 코리아 대회에 나가도 될 정도의 용모였지. 그런데 캠퍼스 어디에선가 본 적은 없는 것 같았어. 군에 가기 전 교양 과목을 배울 때, 같은 강의실에서 공부한 적이 있는 다른 학과의 여학생인가? 글쎄, 그런 기억도 나지 않고 단지 어디선가 본 기억만 뇌리에서 맴돌지 않겠어. 학교 앞 다방이나 서점 같은 데서 스쳐 지나간 적이 있었던가? 친구 따라 우리 학교에 놀러온 적이 있는 다른 학교 학생? 나는 금방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이러 저리 더듬느라 술 팔 생각도 않고 말문을 잃고 있었지.
  "어제 외상값 이 학생이 갚아줄 거요. 내 그러게 약속을 하지 않았소. 내일 다시 오겠다고. 우선 소주 한 잔씩만 주쇼. 나는 역시 어제 그 컵으로."
  "어제는 옷이 험하더니 오늘은 말쑥해지셨습니다."
  "어제는 분장을 지우지 않고 나와서 술을 마셨는데 이 친구 전혀 눈치채질 못하두만."
  "네? 분장이라뇨?"
  "숯검정을 발랐던 얼굴을 대충 수건으로 닦고 나와봤더니 완전히 속아넘어가더라구. 그래도 주인이 문전박대는 하지 않아서 술은 마실 수 있었지."
  동행한 아가씨는 깔깔 웃으며 즐거워하더군.
  "완벽한 연기였군요. 화장품을 거의 안 썼으니 냄새가 났을 리두 없구."
  얘기를 듣고 보니 노동판에서 온 것 같던 녀석은 우리 학교 학생이었고, 대학극장에서 공연을 마치고 나와 술 생각이 나서 나의 포장마차에 들어왔던 모양이야. 그러고 보니 녀석의 얼굴이 10년은 젊어 있더라구. 우리는 비로소 통성명을 하고 악수를 했지.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우리 과 선배라는 것이었어.
  "저 문창과 사학년 남경환입니다. 어제는 초면에 실례가 많았습니다."
  "뭐라구요? 문창과라구요? 저 ○○학번으로 내년에 복학할 박정현입니다. 선배님 이름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젠 어떻게 그런 복장으로?"
  "우리 대학 연극반 연출을 맡아서 하고 있는데 단역 한 사람이 공연 시작 하루 전에 사고가 나서 못 나오게 됐지. 그래서 대사를 웬만큼 알고 있는 내가 그 역을 맡게 되었다고. 부랑자 역이어서 옷이 좀 험했지."
  그 선배는 내가 3년 후배인 것을 알고 바로 말을 놓더군.
  "연극반이야 아마추어들 모임이고, 연기자는 바로 여기에 있지. 이쪽은 연극영화과의 박은영이라고, 몇 군데 출연도 하면서 학교 수업에도 충실해서 교수님들이 무척 아끼지. 타의 모범이요 이 선배의 귀감이 되는 재원이랄까. 정현이 첫인상이 좋아 앞으로 매상 좀 올려주라고 데려왔지."
  그 여학생의 섬섬옥수를 내 안주 냄새 배인 손으로 잡고 싶지 않아 목례만 했지.
  "우리 과 후배라니 참 잘됐구먼. 은영 씨 과 애들한테 이 술집 소금 맛이 꽤 짠데 먹을 만하다고 얘기해줘요."
  "소금 맛이 짜다뇨?"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고, 선배는 회심의 미소를 띠며 나를 바라보더군.
  "어제 선배님이 술안주는 안 들고 소금만 먹고 갔습니다."
  "아니, 왜 그랬죠?"
  "어제 소주를 한 잔 시켜놓고 나서야 돈이 한 푼도 없음을 알았죠. 그런데 어떻게 안주를 주문합니까? 소금 몇 개 입에 틀어넣고 얼른 튀었죠."
  박은영이라는 아가씨는 놀라는 모습도 연극적으로 하두만. 내가 말을 걸었지.
  "그런데 몇 군데 출연하고 계시다니요?"
  "씨 에프. 티브이 드라마에도 조연급으로 여러 편 출연했지. 정현이는 박은영씨를 전혀 본 적이 없었나?"
  나는 사실 그 이름이야 처음 들어봤지만 왜 그렇게 낯익은 얼굴이었는지는 그제서야 알게 되었지. 그녀는 재학 중에 이미 방송가와 광고계에서 조금씩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탤런트 겸 모델이었어. 그녀는 내 포장마차의 단골손님이 되지는 않았지만 학교에 가 선전을 많이 해줬는지 그날 이후 연극영화과 학생들이 심심찮게 찾아오더군. 박은영씨는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은 미인이었지만 나와는 신분이 다른 사람이므로 흑심 따위는 눈곱만큼도 품지 않았었다고, 너한테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있다.
  그는 그 다음날부터도 매일 공연을 끝내고는 내 포장마차에 들러 공짜 술을 마셨어. 그 미모의 탤런트 여학생이 다시 나타나 술값을 내주는 일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둘 사이는 그다지 돈독한 것이 아니었던가봐. 알고 보니 돈독하기는커녕 군에 있을 때 절친했던 전우의 누이동생이라, 면회차 왔을 때 딱 두 번 본 적이 있었던 게 전부라더군. 그럼 그렇지 서로 높임말을 하는 것이 이상하더라니.
  미인에 관련된 일은 이 정도에서 각설하고, 남경환이라는 우리 과 선배와 내가 어떻게 동업을 하게 되었는지는 다음 편지에서 얘기해주마.

  내 편지가 내무반에서 한동안 돌고 인기도 좋았다니 영 쑥스럽구만. 거기선 읽을거리가 마땅히 없어서 그랬던 것이겠지. 아무튼 제2탄을 보낸다. 박은영씨에 대한 얘기가 그렇게 끝나버려 다들 아쉬워하더라고 했는데 소설을 쓸 수도 없고 해서 사실대로 얘기했지. 졸업 후 지금은 꽤 유명세를 누리는가 보더라.
  연극은 일주일 정도 공연했지. 그 선배가 연출한 연극이 끝나는 날도 나는 포장마차의 사장으로 출근해 술을 팔고 있었어. 선배가 나한테 초대권은 줬건만 대목이랄 수 있는 축제 기간의 마지막 날 연극이나 보고 있을 한가한 처지가 아니었거든. 으레 그런 날은 쫑파티라는 것이 있어 그 선배가 나의 포장마차에는 안 나타날 줄 알았는데 그는 어디서 일차를 거나하게 했는지 홍시가 다 된 얼굴로 파장 무렵에 고개를 들이미는 것이었어.
  "어, 선배님. 오늘은 안 오실 줄 알았습니다. 꽃다발은 못 전하더라도 공연은 봤어야 하는데. 자취방 월세 낼 날이 되어 부득이…… 입고 갈 옷도 변변치 않고……"
  "그 야전잠바가 어때서 그래."
  "술 냄새, 고기 냄새, 어묵 냄새에 절어 있어서요."
  "야 정현아. 난 오늘부터 갈 데가 없다. 이제까지 연습하고 공연하는 기간에는 대학극장 한 귀퉁이에서 대충 담요 덮고 잤는데 날도 추워지고 거기는 더 이상 사용할 수가 없어서…… 너 저기 흑석동 산동네에서 자취한댔지? 네 자취방에 동거인이 없으면 내가 당분간 기거해도 되겠니? 최소한 밥값은 할 테니까."
  그의 요청은 사뭇 강압적이었어. 나는 아무 말 없이 술이나 깨시라고 조개 국물을 내밀었지. 나는 그 선배의 강압적인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는데, 그것은 그가 풍기는 묘한 분위기 때문이었어. 각종 운동으로 단련된 근육질의 내가 꾀죄죄하고 허리도 구부정하게 해서 다니는 볼품없는 그 선배를 두려워했다는 말이 너는 믿어지지 않겠지만 그의 눈빛은 아무튼 사람을 위압하는 묘한 기운이 있었단다. 몇몇 후배들한테 남경환이란 인물에 대해 물어봤더니 군에 있을 때 사고를 쳐 군대 감방에서 1년 반이나 복역하고 나온 자라더군. 너도 거기서 들어 알고 있겠지만 군대 감방이란 데에 비해 이 사회의 교도소는 천국이나 다름없는 곳이지. 산전수전 다 겪었을 그가 친구네 집도 더 이상 전전하기 미안하고 신세 좀 졌으면 좋겠다고 요청해오는데 의리상 차마 거절할 수가 없더라. 그와의 상부상조는 그렇게 해서 시작되었지.
  포장마차의 전성 시절은 뭐니뭐니 해도 늦가을과 겨울이야. 늦게까지 도서관에 남아서 취직 공부며 기말고사 공부를 하다 귀가하는 상당수 학생들의 잠자리는 썰렁한 자취방이 아니니? 배도 출출한 터에 꼼장어 안주에 소주 한두 잔 걸치고 들어가면 기분만은 훈훈하게 마련이지. 나는 밤늦도록 포장마차 주인 노릇을 하다보니 늦잠 자기가 일쑤여서 아침을 차려 먹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이 선배가 오고 나서부터는 따뜻한 아침밥을 먹게 되었지.
  내가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 싱싱한 해물을 사 가지고 오면 그 선배는 그 동안 일어나 시래기죽을 끓여놓고 나를 기다렸지. 내가 늦도록 술손님들을 상대하느라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면 그는 빨래를 해놓고 잠들어 있기도 했고. 이를테면 그 선배의 내조로 내가 꽤 편해진 셈이었지. 그런데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보면 잠든 그의 머리맡에는 언제나 원고지의 파지가 수북히 쌓여 있는 것이었어. 나도 선배의 끈질긴 습작에 고무되어 구상해두었던 몇 편의 얘깃거리에 살을 붙여나갈 결심을 했지.
  아아, 우리들의 젊은 영혼을 사로잡았던 문학의 위대한 정신을, 문학에의 무한한 열정을 빼놓고 무엇으로 그 을씨년스러웠던 대학 시절을 회상할 수 있으랴.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수업 시간에도 잘 안 들어오다가 낙엽처럼 하나 둘 어디론가 사라지는 우리 문예창작과 복학생 급우들. 취직 시험 치러, 혹은 취직 자리 알아보러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안 들어온다는 말을 믿는 교수님은 아무도 없었지. 신춘문예 당선이 뭔지 등단이 뭔지 그놈의 문학이 뭔지 그저 분홍색 꿈에 부풀어 절간으로 여관으로 자췻방으로 원고지를 싸 들고 들어가 칩거하는 우리 애송이 문학도들.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는 거리에서 우리들 대다수는 낙방거자(落榜擧子)의 갈지자걸음으로 해후하고, 이미 등단했거나 취직해 있는 선배가 사주는 술을 마시며 내심 심사위원의 착각에 분개하고…… 다시 겨울이 오기를 기다리며 원고지를 쓰고 찢고…… 선배도 문학병에 걸려 있는 그 무리 중의 한 사람이었고, 나도 꿈은 포장마차로 몇 학기 등록금을 마련해 졸업장을 타낸 뒤 회사원으로 입신출세하겠다는 데 있지 않은 놈이었으니 정신을 차려 원고지를 정리할 때였어. 장사가 비로소 궤도에 올라 통장에 돈이 조금씩이나마 쌓이던 11월에 들어서면서 나는 그 사업을 작파하고 말았지. 밤이 이슥하도록 취객의 헛소리를 흥겨운 음악으로 들어야 하는 그 사업은 각 일간지에 신춘문예 공고가 나자 순식간에 지겨워지더군. 선배는 학교 도서관에 나가 매일 시를, 나는 방구석 밥상머리에 앉아 소설을 썼지 뭐냐.
  경환 선배는 과거에 신춘문예며 문예지 신인상 공모에 응모했다가 최종심에 이름이 세 차례나 오른 적이 있어 기본기가 단단하다고 소문이 나 있었어. 나는 군에서 바쁜 틈틈이 책을 읽으려 애도 쓰고 말년에는 몇 편 초고도 만들어보기도 했지만 자신은 전혀 없었어. 그래도 이 기회에 나 자신의 능력을 가늠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재학 중에 최대한 시도해보고 싹수가 영 안 보이면 포기할 각오를 하는 게 자신과 주변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이니까. 이건 졸업 후 몇 년 동안 자신의 역량을 헤아리지 못하고 취직도 보류한 채 문학 견습공으로 빌빌대는 선배들을 내가 아주 많이 보아와서 하는 얘기야. 졸업한 선배가 찻값도 못 내는 것을 보면 기분이 블랙커피처럼 씁쓸해지더군. 물론 취직해서 월급쟁이의 신분으로, 더구나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고 나서 다시 원고지와 싸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 그래도 그 나이가 되도록 누군가의 신세를 지면서 문학 견습공 시절을 연장하는 것에는 찬성할 수가 없더군. 그건 가혹하게 말해 철면피인 거지.
  마감 일자인 12월 10일까지 우리는 고시생들 이상의 열기에 휩싸여 원고지와 고투했지. 지금이야 워드 프로세스의 시대도 가고 컴퓨터로들 작업을 하지만 그때는 구식 타자기라도 있으면 다행이었어. 우리 처지에 그러한 문명의 이기는 언감생심이었고. 오자가 생기면 원고지 몇 칸을 오려 오자 위에 붙이며, 나와 선배는 여러 편의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어. 몇 군데 신문사에 투고한 날 밤 우리는 포장마차의 주인이 아니라 손님이 되었지. 움푹 들어간 눈으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건배를 했것다.
  "선배님, 아니 남경환 시인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번에 꼭 등단해서 하산하시길 기원합니다."
  "어 어, 내가 신세 지는 티를 안 내려고 했는데 그렇게 고까웠나, 소설가 박정현씨는. 시인보다 소설가의 수입이 월등 많으니 내가 신세를 당분간 더 져야겠는데. 그 대신 식탁 준비며 빨래는 이 몸이 계속하지. 나의 착실한 내조가 없었더라면 몸이 꽤 상했을걸. 소설은 감수성보단 체력이야."
  "선배님 파지 보니까 시인이 되는 길도 수월치 않던데요. 게다가 시 당선은 수천 편  중에 단 한 편 아닙니까."
  그런 농담을 주고받으며 회포를 푼 우리는 자췻방으로 향하는 비탈길을 올라갔지. 그 선배가 집에 가까이 왔을 때 이런 말을 하더군.
  "내일이 내 귀빠진 날인데 술타령하기는 주머니 사정이 그렇고, 어디 가서 영화라도 볼까?"
  "영화 좋죠.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가 보고 싶었는데."
  "정윤희가 몸으로 때웠다는 그 영화 무슨 상 탔지? 그런데 제목이 좀 야하지 않아?"
  "야한 제목으로야 '무릎과 무릎 사이'나 '뼈와 살이 타는 밤'보다 심한 게 있을려구요."
  "하하 그렇군. 한국 영화의 앞날이 걱정되는 제목들이야."
  우리는 이런 농담을 주고받으며 자췻방으로 돌아왔지. 그런데 이상한 예감이 들었어. 쌀이 떨어졌으리라는.
  "선배님, 아침에 혹 쌀이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맞아, 빡빡 긁어 밥을 했지."
  "연탄은요?"
  "연탄? 연탄은 아직 한두 장 남아 있을걸 아마."
  외풍 센 부엌에 들어가 봤더니 쌀은 완전히 떨어졌고 연탄은 딱 한 장이 남아 있더군.
  "포장마차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쫄딱 굶을 뻔했다."
  우리는 동화 속 성냥팔이 소녀처럼 마지막 남은 한 장의 연탄을 갈아넣고 잠자리에 들었지. 그래도 기분은 좋았어. 술도 몇 잔 걸쳤겠다, 둘 다 시인과 소설가가 된 양 떠벌리면서 은근히 자신의 작품이 당선작이 될 거라는 희망을 품은 채 들어왔으니까. 사실 그 동안 집에 쌀이 떨어지는 것에도, 연탄이 떨어지는 것에도 신경이 가지 않을 정도로 둘은 작품 쓰는 데 열중해 있었던 거지. 아니, 그보다는 세상의 모든 잡사를 작품 탈고와 신문사 투고 이후로 미루었기 때문이었을 거야. 다음날은 일요일이어서 은행에 갈 수는 없었고, 우리의 생일 축하는 아쉽지만 훗날로 미룰 수밖에 없었지. 자, 그럼 뒷 이야기도 훗날로 미루고 이만 줄일까. 편지도 오래 쓰니까 팔이 다 아프구나.

  유격 훈련을 받고 왔다구? 힘들었겠다. 나는 유격보다 구보가 더 힘들었는데, 한 번은 낙오까지 한 적이 있었지. 마음은 앞으로 달리고 싶은데 다리가 따라주지 않을 때의 절망감이라니. 구보 낙오는 그 분대의 공동 책임이라 분대장이 내 화기를 들어주고 고참이 내 철모를 들어주었는데도 거품을 물고 쓰러지고 말았지. 나는 샛노란 하늘을 그때 처음 보았어. 뭐 이래, 너한테 군대 얘기를 하다니. 걷어치우고, 저번 편지에서 하다 만 얘기를 계속하자.
  12월 11일 새벽이 되었지. 룸메이트 선배의 생일이라는데 집에 있는 돈은 동전 몇 개가 전부였으니 미치겠더군.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피워 물었지. 선배가 실눈을 하고선 날 보며 이렇게 묻더군.
  "오늘이 내 음력 생일인데……취소다. 이번 생일은 양력이다. 생일 잔치는 시인 남경환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미로 학교 앞 불갈비집에서 거과적(擧科的)으로 한다. 오늘 아침은 라면으로 때우고. 정현아, 돈 좀 주라."
  "선배님, 제가 사 오죠. 누워 계십시오."
  "아이구, 방바닥이 벌써 우리 신세를 질 생각을 하고 있구나이."
  나는 집에 있는 동전을 전부 모아보았어. 고작 라면 열 개 정도를 살 수 있는 돈이더군. 야전잠바를 걸치고서 구멍가게로 달려갔지. 가게에서 라면을 고르다 세 끼 전부 라면을 먹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 그래서 라면 네 개와 담배와 신문과 귤을 사 왔지. 선배는 나의 지혜를 칭찬해주더군.
  "디저트용 귤까지. 넌 역시 소설가가 되겠어. 구성을 할 줄 안단 말야."
  연탄 몇 장은 주인집에서 빌려쓰면 되었기에 우리는 비록 시내 영화관에는 갈 수 없었지만 등 따뜻하고 배부른(?) 일요일을 보낼 수 있게 된 거지. 막 펼쳐 드는 신문에 '新春'이라는 글자가 씌어져 있는 게 아니겠어?
  "어, 이 신문은 마감이 13일이네."
  "그래? 너 소설 마무리짓지 못한 거 한 편 있다고 했지? 빨리 마저 써. 하늘이 문호의 탄생을 도우시는 모양이다. 나는 쓸 만한 건 다 보내고 남아 있지 않지만."
  "무슨 말씀을. 시는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도 몇 편 쓸 수 있는 것이지만 소설은 달라요. 마감 이틀 전부터 밤새워 쓴다고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건 아녜요."
  "뭐가 불가능해? 낮잠이나 자고 있느니 한 번 시도해보겠다."
  "선배님이나 해보십시오. 습작품이 많으시니 몇 편 손질해서 보내면 양 신문 동시(同時) 당선으로 상금을 곱빼기로 탈 수도 있을 거예요. 저는 책이나 읽고 있겠습니다. 어차피 이번 투고는 벼락치기라서 자신이 없었는데요 뭘."
  "그래 네 생각이 정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나는 새로 몇 편 만들어볼란다."
  나는 라면 국물을 들이켜며 문득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을 했지. 내가 사온 몇 개의 자그마한 귤 때문이었어. 어머니의 죽음은 신경안정제의 과다 복용으로 인한 심장마비사였으니 어떻게 보면 자살이었지. 어머니는 아버지의 바람둥이 기질과 성격상의 부조화로 내가 어릴 때부터 늘 다투시고, 그러다 보니 두 자식에게 관심을 갖고 사랑을 베풀 심적 여유를 가져보지 못했어. 그래서 우리 집에 웃음꽃이 피는 날이 있으면 달력에 표시해두고서 두고두고 기념해야 될 정도였지. 한약도 자주 드시고, 신경정신과 병원에는 늘 다니다시피 했지만 어머니의 불면증은 좀처럼 치유되지 않았어. 나와 누이는 어머니의 숙면을 위해 밤에는 부엌에 가 무얼 찾아 먹지도 못했고, 기침이 나도 베개로 입을 막고 했고, 거실에서 텔레비전도 켤 수 없었다. 그야말로 쥐죽은듯이 침묵하며,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지낸 성장기의 어두웠던 지난날이었어.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숨이 턱턱 막히는 집안 분위기에 질려 가출을 몇 번이나 했었지. 그런데 내가 돈이 떨어져 집에 기어 들어온 적은 없었어. 뭐를 해서라도 밥은 굶지 않았으니까. 어디에 가서건 며칠 지내다보면 어머니가 불쌍해져서 미치겠는 거야. 그래서 걸레 씹은 표정으로 다시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르곤 했지.
  하루는 잠을 깊이 못 주무셔 늘 몸이 아프다는 어머니한테 귤을 사 드렸지. 딴 집에서는 과일을 어머니가 자식한테 사주겠지만 우리 집은 모든 살림을 일하는 아줌마가 도맡아 했어. 어머니는 어디가 아파도 늘 아프셨거든. 학교 갔다 오다 골목길 리어카상에서 파는 귤이 맛있어 보여 나는 있는 돈 다 털어 어머니께 사 드렸지. 귤 봉지를 내밀었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어머니는 고마워하셨어. 나는 "엄마 제발 아프지 마세요. 아무 걱정 마시고 잠 좀 푹 주무세요."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귤이 맛있어 보여서요."라는 말만 하고 안방을 나왔지. 아아, 어머니는 내가 사 드린 귤을 단 한 개도 드시지 못했어. 머리맡에 두고 여러 날 자식의 효성을 고마워하다 그만 곰팡이가 피어버린 것이야. 나는 이와 같은 귤과 내 어머니에 얽힌 중학교 때의 이야기를 선배한테 자못 감상적인 어조로 하지 않았겠니. 잠자코 듣고 있던 선배는 고개를 끄덕이더군.
  "귤과 병상의 어머니라. 그 얘기는 상황만 살짝 바꾸면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가 되겠다. 나는 산문은 거의 써본 적이 없지만 좋은 소재이니 동화로 써봐야겠다. 아니다 네가 써. 원고지 스무 장이니 금방 쓸 수 있을 거야."
  "아닙니다. 선배님이 쓰세요. 저는 학교 도서관에 가서 이번 달 문예지나 보다 오겠습니다."
  내가 소재를 제공한 귤에 얽힌 이야기는 그 선배가 살을 빼고 화장을 다시 해 한 편의 동화로 탄생시켰지. 나와 귤에 얽힌 사연은 병든 할아버지와 소년가장인 손자의 이야기로 탈바꿈했어. 거기다 아주 환상적인 분위기로 윤색까지 했는데, 시를 써온 선배의 작품인지라 문장이 더없이 아름답더군. 20매짜리 동화를 단 이틀 만에 완성해 우체국에 가 등기로 부치고 우리는 다시 포장마차의 문을 열기로 했어. 그런데 선배는 한사코 새벽시장을 같이 보고 장사도 같이 하겠다지 뭐냐. 집에서 책 읽고 글이나 쓰시라고 아무리 말려도 막무가내였어.
  "난 장사라는 걸 해본 적이 없어. 너랑 같이 다니며 좀 배울까 하니 많은 지도 편달이 있기 바란다."
  "선배님, 무슨 말씀을. 집에서 책 읽고 글이나 쓰세요. 술장사 아무나 하는 거 아닙니다."
  "그래서 이 기회에 요령을 배워두겠다는 것 아니냐. 너한테 배워 독립할 수도 있고. 장사는 경험이라며? 난 직장을 잡기엔 나이도 많고, 군에서 붉은 줄이 그어져 웬만한 빽 없이는 취직도 못해. 그놈의 빽이 되어줄 사람이 나한테는 하나도 없고."
  두 젊은 사내 녀석이 앞치마를 두르고 포장마차를 하는 광경을 상상해보렴. 한 사내는 안주감을 썰고 한 사내는 담배 심부름을 하고. 뒷날 이 땅의 내로라 하는 시인과 소설가가 될지도 모르는 두 사람의 젊은 날의 초상은 그렇게 우스꽝스러웠지. 포장마차는 중년의 부부가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젊은 사내 녀석 둘이 주인으로 있으니 손님들도 다들 궁금하게 생각되는 모양이야. 학비 운운하면 젊은 사람들이 고생이 많다고 술도 더 시키고 값비싼 안주도 서슴없이 시키더군. 우리야 거짓말한 것이 없었지.
  참, 그 무렵 우리들의 영업 장소는 학교 앞 먹자골목이 아니었어. 사내 둘이 장사를 하는데 학교 앞에서 전을 펴기는 왠지 남부끄럽더군. 또 방학중이라 예전 단골의 통행도 현저히 줄어 우리는 노량진 역 근처로 영업 장소를 옮겼어. 착실히 벌어 다음 학기에는 이 짓을 하지 않고 학업에 열중하자는 것이 우리들의 당면 목표였어. 문예창작과 학생인 우리들조차 사법고시에 비유하곤 하는 '신춘문예 당선'을 꿈꾸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라는 것이 우리들의 진단이었지. 투고한 직후에는 자신이 기성 문인이 된 양 우쭐했지만 여러 날 작품의 질을 놓고 생각해보니 이건 영 아니올시다였거든.
  별 사건 없이 어언 크리스마스가 그리 멀지 않은 20일경이었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괜히 싱숭생숭해지지 않니. 루돌프 사슴 코가 어쩌니 하는 흥겨운 캐럴도 거리마다 울려 퍼지고, 망년회 모임들을 갖는 연말과 명절인 신정도 다가오고, 나이도 한 살 더 먹고, 뭐 이런 이유들 때문일 거야. 그렇지만 이 땅의 문학인 지망생들의 기분은 그 누구보다 착잡한 시절이지. 1월 1일자 신문에 자신의 이름이 실리느냐 마느냐가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개별적으로 통보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야. 등단을 꿈꾸기엔 역부족임을 알고 있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또 묘한 것이 아니냐. 나도 선배도 요행을 바라며, 당선에 대한 기대를 했다가 말았다가 하며 착잡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던 20일경, 포장마차의 문을 들치고 들어온 손님은 놀랍게도 우리 과의 정 교수님이었어. 당신은 중견 소설가이기도 했어.
  이번 편지는 이쯤에서 끝을 맺어야겠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편지나 오기로 되어 있는 편지는 기다리는 재미도 있는 법이지. 휴가 나올 때가 되지 않았니?

  "어서 옵쇼."
  "여, 안녕들 한가?"
  "어, 선생님이 웬일로?"
  "다 소문을 듣고 있었지. 이 근처에 마침 볼일이 있어 나왔다가 너희들이 그렇게 안주를 잘 만든다고 하기에 맛이나 보고 가려구 들렀지. 그래, 학교 앞에서 할 때보다 수입이 좋은가?"
  우리 둘은 뒷머리를 긁으며, 앞치마를 매만지며 쑥스러워했지. 원 교수님도 소문을 듣고 계셨더라도 이렇게 불쑥 나타나 사람을 당황하게 할 게 뭐람. 나도 남 선배도 그런 마음에 몸둘 바를 모르겠더군. 무척 어색한 분위기를 깬 것은 역시 선생님이었어.
  "학비는 대강 마련이 되고 있나?"
  아아, 그때 선배와 나는 왜 그토록 자신의 행색이 부끄러웠던지.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다 들킨 초등학교 학생들처럼 말문을 잃고 어색한 웃음만 흘리고 있자 선생님은 정색을 하면서 자리에 앉더군.
  "손님 대응이 이런가. 고기 제일 맛있는 것으로 삼인분 굽고 소주 한 병 내놓게."
  우리는 교수님이 막무가내로 건네는 소주잔을 두 잔씩 비우고서야 말문을 열었지.
  "다음 학기 학비랑 생활비는 되겠습니다. 개학할 때까지 하다가 모자라면 융자를 받죠 뭐."
  "그래, 학자금 융자는 나도 힘을 써보지. 그런데 자네들 이번 신춘에는 응모를 했나? 우리 과의 기대주들이니 기대에 부응을 해야지. 물론 당선이 되면 좋지만 재학 중에야 꼭 당선이 되지 않더라도 최종심에 오르면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고 생각해.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은 것이니까."
  교수님은 어느 신문에 응모했는지를 물어보셨고, 우리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신춘문예 제도의 장점과 단점을 말씀해주시더군. 신년 벽두에 화려하게 등단할 수 있지만 신문사는 작품 활동에 대한 지원은 전혀 해주지를 않아 시상식 다음날부터 고군분투해야 한다나. 신문사에서 다시 연락이 오는 것은 다음해 신춘문예 시상식 때 와서 박수를 쳐달라는 것이고, 이 연락도 문화부 담당 기자가 바뀌거나 하면 오래지 않아 끊기고 만다지. 신문사는 낳아주고 버리는 비정한 부모이지만 문예지는 문을 닫지 않는 한 후원해주려 애쓰고, 작품 써 들고 찾아가도 별로 부끄러울 것이 없고.
  "난 니들 같은 놈들이 좋아. 문학은 배가 고파야 할 수 있는 거야. 지금의 고생이 훗날 좋은 글로 나오기 바란다."
   결론 삼아 이런 덕담으로 격려해주신 교수님은 한 잔 두 잔 계속 마시더니 그만 취하시고 말았어. 혀가 안으로 말리는 듯한 음성으로 문장이 안 되는 말씀을 하기 시작한 것은 교수님이 술에 취했다는 증거였어. 우리는 급거 택시를 잡았고, 기사에게 행선지를 알렸지. 그리곤 차비를 기사에게 내밀었어. 선생님은 그 돈을 낚아채시더니 분연히 차 문을 열고 내리시더군.
  "손님인 내가 술값을 아직 내지 않았는데 차비까지 받는다면 훗날 너희들을 무슨 낯으로 보겠느냐. 이 돈 받아."
  교수님은 술값보다 훨씬 많은 만원권 몇 장을 던지듯이 쥐어주고는 차에 오르셨지. 혼잣말처럼 이런 말을 하시면서.
  "정현이는 내가 소설 심사를 본 △△일보에는 최종심에는 못 올랐어. 최종심에 올랐더라도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의 작품인 것을 알았다면 뽑지 않았을 것이고. 시는 이미 당선작이 결정되었다고 하더군."
  그 말씀을 들으니 일말의 기대가 무너져 한편으로 김이 팍 샜지만 당연한 일이라고 여겨지더라. 그럼 그렇지 즉석요리 식으로 급작스레 만든 작품으로 등단을 꿈꾼 것이 잘못이지 그 누구를 탓하랴. 그런 설익은 작품이 뽑힌다면 제도에 문제가 있는 거지. 이윽고 크리스마스 이브의 새벽이 되었지.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야 될 시간이었어. 나의 동업자 경환 선배를 흔들어 깨웠지.
  "어, 벌써 일어났니? 나 오늘은 안 나갈란다. 좀더 누워 있게 내버려둬."
  "왜, 피곤해서 그래요?"
  선배의 얼굴이 영 안 좋아 보였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 수면 시간이란 것이 밤엔 고작 네댓 시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낮잠을 한두 시간 자긴 했지만 여러 달 밤잠을 푹 자지 못한 결과 몸 컨디션이 엉망이었지.
  "아니, 기분이 영 젬병이다. 이번에도 떨어지면 7년째 먹는 미역국이야. 정 교수님 말씀이 무슨 암시인 것 같아. 다른 신문에서도 다 떨어졌을 거야."
  "그럼 군에 있을 때도 투고하셨댔어요?"
  "물론이지. 군대서야 무슨 낙이 있니. 시간이 나면 수첩에다 긁적이고, 불침번 서면서는 달무리를 우러러보며 시상을 떠올리고."
  그때부터 선배는 쥐 오줌이 번져 있는 자췻방의 낮은 천장을 보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지 않았겠니.
  주로 군대 체험이었는데, 제대가 늦어진 것은 데모하다 강제로 징집 당한 졸병을 의도적으로 괴롭히는 상관을 흠씬 두들겨 패 영창까지 갔었기 때문이라더군. 얼어 터진 손으로 원고지를 메워나간 일, 근무 서면서 보름달 아래 시집을 품에서 꺼내 읽던 일, 전우신문에 시가 실려 별명이 '박 시인'으로 불린 일, 훈련 나가 10분간 휴식 때 군장에서 시집을 꺼내 읽다 소대장에게 혼난 일, 경환 선배는 한마디로 시에 목숨 건 사람이더군. 영창에 갇혀서도 시만 생각했었다니 원. 그런 얘기를 하더니 그는 자신의 시론을 펼쳐놓더군.
  "시를 읽고 쓰는 사람은 이십일 세기가 되면 지금보다 훨씬 줄겠지. 자본주의가 위세를 떨치는 서구에서 시인이 서 있을 자리는 이제 거의 없는 것으로 보여. 그래도 상상력이 봉쇄된 세계에서의 삶은 끔찍하지 않을까. 천문학자나 우주비행사가 아니면 우주와 교감할 수 없고, 군인이 아니면 혁명을 꿈꿀 수 없고, 정신과 의사가 아니면 인간의 심성에 대한 해부를 해볼 수 없다면 이승에서의 나날은 너무 무미건조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몽상가가 전부 시인이라는 얘기는 아냐. 지금 이곳에서의 삶을 부정하고 회의하고 개조해보려는 노력이 인간만의 발명품인 언어로써 행해진다면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사랑과 자유, 평화와 평등이 공존하는 세계에 대한 꿈, 혹은 지금 이곳에서의 삶을 어느 정도 긍정하지만 다 아름답게 만들려는 노력이 시인 각자의 상상력과 개성으로 행해진다면 그 자체가 보람있는 일이 아니겠니. 비록 자본주의 시장에서 소외되어 시가 저만치 혼자 피어 있을지라도 시인이 꾸는 꿈, 시인이 빚어내는 세계는 에스에프 소설과 에로물이 판을 치는 세계에서도 조금은, 아주 조금은 빛을 발할 거라고 나는 생각해. 시인이 어디 인기를 바랄 것인가, 재산을 바랄 것인가. 제왕도 제후도 마음만 독하게 먹으면 가능한 법, 마음으로 다스리고 마음으로 추스르는 시를 쓰다보니 난 제왕의 권력도 제후의 영토도 부럽지가 않더라구. 어디 권력자나 투기꾼의 마음에 시심이 깃들 수 있겠니."
  경환 선배는 이런 논조로 자신의 속내를 한참 털어놓더니 "그만 자자"는 말로 마무리를 짓더군. 밀린 잠을 보충한 그 해의 크리스마스 이브는 그렇게 지나갔어.
  자, 오늘은 이만 줄이자꾸나. 내 편지가 너에게 큰 힘이 되고, 문학을 공부하고픈 꿈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고 있다니 다행이다. 문학이 뭐 별것이겠니. 사람 살아가는 모습을 남들보다 좀더 유심히 관찰하여 정밀화 그리듯 세밀하게 그리면 그것이 소설이 되고, 다양하게 상상하되 압축해서 표현하면 시는 되는 거지. 일단 많은 독서는 기본이니 설사 네가 문학판을 기웃거리게 되더라도 세계의 고전과 국내 명작은 밤을 새며 읽을 각오를 하기 바란다. 이만 안녕.

  25일엔 우리 둘 다 오랜만에 시내에 나가 각자 볼일을 봤지. 친구도 몇 놈 만나고 책도 몇 권 사고. 학교 앞 단골 찻집에서 같은 과의 복학생 둘을 만났는데 아니나다를까 꽤 들떠 있더군. 크리스마스 때문이 아니라 투고한 작품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지. 결과에 대해 무관심한 듯 시치미를 떼고 있지만 크리스마스 아침까지 연락이 없자 과의 다른 녀석들한테는 무슨 소식이 갔을까 궁금해서 수시로 여기저기 전화를 하며, 엽차를 축내며 노닥거리고 있었던 거지. 사실 크리스마스 전후의 며칠은 신문사에 작품을 던져놓은 노익장들(?)에게는 피를 말리는 나날이지. 졸업은 코앞에 닥쳤고, 기업체 채용 시험이나 국가공무원 시험 준비는 해본 적이 없이 오로지 원고지만 붙들고 살았으니 신춘문예 투고는 곧 취업 준비이기도 한 것이야. 소설가에의 문이, 시인에의 문이 열리느냐 닫히느냐 하는 기로이기에 얼마나 많은 예비 문인들이 성탄 축하의 분위기와는 아랑곳없이 절망해야 하는지 너는 잘 모를 거다. 학교 앞 찻집에서 만난 두 학우한테서 올해는 재학생이 거의 전멸한 것 같다는 불길하고도 불확실한 정보만 듣고 집에 돌아왔지. 선배는 내 말을 듣더니 아주 늦게, 거의 연말에 임박해서 소식이 전해지는 경우도 없잖아  있고, 지방에 내려가 있어 우리가 모를 수도 있다며 이제는 축하를 받을 생각은 버리고 축하를 해줄 생각이나 하고 있자고 말하더군.
  크리스마스 다음날 눈을 떴더니 선배는 메모만 남겨놓고 나가고 없더군. '멀리 가지 않는다. 저녁에 보자.'
  오늘은 장사를 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동업자가 새벽같이 없어져 기운이 빠지더군. 에라, 라면이나 끓여 먹고 어제 사 온 소설책이나 읽자. 마음 느긋하게 먹고 게으름을 피우기로 했지.
  늦은 아침을 먹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번 겨울 나기가 참 막막해지는 것이었어. 선생님께는 다음 학기 두 사람 학비와 생활비까지 포장마차 수입으로 될 거라고 말씀드렸지만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었거든. 개학 날까지 열심히 벌면 한 사람 등록금은 될 수 있었지만 두 사람 등록금은 어려워 보였고, 다음 학기 생활비까지 조달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니 맥이 더 빠지는 거 있지. 포장마차 운영을 위한 재료비도 적지는 않았지만 연탄 값이며 쌀 값, 부식비 등 두 사람의 생활비도 만만치 않더라구.
  부엌에 가봤더니 연탄과 쌀이 예상했던 대로 간당간당하잖아. 신정 연휴에 쌀가게랑 연탄가게가 놀면 냉방에서 밥도 굶어야 하지 않니? 방학이 끝날 때까지 열심히 술과 안주를 팔아본들 최대치의 마진이 두 사람 등록금이란 계산은 나를 우울하게 했어. 학교에 겨우내 모은 돈을 납부하고 나면 다음 학기엔 뭘 갖고 사느냐 말야. 내년 봄에도 이 생활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다면 공부는 완전히 뒷전이 될 테고. 지금이야 논술이니 수능이니 하는 것 덕분에 글짓기 학원이라도 생겨 우리의 얄팍한 글재주를 어린 학생들에게 써먹기도 하지만 그땐 문학한다는 사람을 누가 가정교사나 학원강사로 써줬어야 말이지. 애들한테 이상한 사상이나 집어넣을 운동권 학생으로 안 봐주면 다행이었다구. 군에 가기 전에 떠돌던 술집을 찾아가 웨이터 자리라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어. 어디서 내 이름을 부르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니겠어. 가만히 귀를 기울여 들어봤지.
  "정현아― 정현아― 야 임마, 박정현―."
  분명히 그건 내 이름이었어. 문을 열어봤더니 비탈길을 올라오며 선배가 손나팔을 만들어 나를 부르고 있었어. 나를 보더니 손을 흔들더군. 그런데 그의 옆에는 자루를 짊어진 쌀가게 아저씨가, 그의 뒤에는 연탄을 진 연탄가게 아저씨가 따라오고 있는 게 아니겠어. 나는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지.
  "정현아, 기뻐해다오. 내가 난생 처음 써본 동화 있잖니. 네가 어머니한테 귤을 선물했다는 얘기를 듣고 썼던 것 말야."
  "네, 그래서요?"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뽑혔단다. 확인이나 하자고 오늘 아침 신문사로 전화를 해봤잖니. 전화번호도 써놓지 않았고, 주소도 고향집으로 써놓아 나한테 연락이 안 될 수도 있었거든. 아닌게아니라 신문사에선 날 찾으려고 애를 먹고 있었대. 그런데 당선이면 당선이고 낙선이면 낙선이지 가작은 또 뭐냐. 상금도 반액이고. 상금 타면 당장 갚기로 하고 돈은 일단 아는 사람한테 가서 꿨다. 어쨌거나 오늘은 너한테 진 신세의 일부를 갚는구나. 그 글은 네 덕에 쓴 거니까 공동작이지 뭐. 어쨌든 우린 살았다. 이 겨울을 등 따시고 배부르게 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우리 재미 삼아 포장마차 방학 끝날 때까지 계속할까?"
  "네, 선배님."
  나는 마구 웃고 있었지. 축하한다는 말도 못하고서 선배의 손을 잡고 그냥 소리내어 웃기만 했던 거야. 환한 웃음으로 축하를 해주고 있었다고 할까. 그런데 오래 웃다가 보면 눈에 눈물이 어리는 경우가 있지. 어럽쇼, 느닷없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잖아. 돈이 생기자마자 쌀과 연탄을 사서 산동네 비탈길을 올라온 선배의 정에 나는 그만 감격했던 모양이야.
  그 동안 내 얘기 재미있었니? 지금 그 선배는 출판사의 편집장이 되어 있고, 물론 시단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지. 너도 알다시피 나 역시 재작년에 문단 말석에 끼게 되어 말도 안 되는 것을 소설이라고 발표하고 있고.
  겨울이 다가오니까 그 겨울 흑석동 골목과 노량진 수산시장 일대에 불던 바람이 생각난다. 나는 언제까지나 그 매서운 겨울 바람을 잊지 못할 거다. 문학이 뭔지 아직도 잘 모르지만 그 겨울의 바람만 생각하면 온몸에 힘이 솟구치는 걸 느껴.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하고 시인 랭보는 노래했었지만 '시련 없는 영광이 어디 있으랴' 하고 나는 너에게 말해주고 싶다. 경호야, 이것으로 여러 차례 위문의 뜻으로 들려준 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아무쪼록 고된 병영 생활, 자중 자애하며 극복해나가거라. 예비군복을 입은 네 모습을 어서 보고 싶구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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