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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송곳과 골풀무

2007.02.05 14:06

김학 조회 수:84 추천:3

                   *살 송곳과 골풀무


                                                  김 학

  옥(玉)이 옥(玉)이라커늘 번옥(燔玉)으로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眞玉)일시 분명하다
  나에게 살 송곳 있으니 뚫어볼까 하노라
                                    <松江 鄭澈 지음>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대가인 송강 정철(松江 鄭澈)이 높은 벼슬자리에서 쫓겨나 평안도 강계로 귀양살이 갔을 때의 일이다. 달 밝은 어느 가을밤, 송강은 쓸쓸한 유배지처소에서 혼자 팔베개를 하고 누워있었다. 오동잎 떨어지는 소리에 송강의 마음은 더 스산해지는데 귀뚜라미마저 청아한 목소리로 마구 울어대니 그 때 송강의 심사가 어떠했을까?
그 순간 인기척이 나더니 누군가가 송강의 방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송강이 헛기침을 하자 스르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여인, 장옷으로 얼굴을 가린 그 여인이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며 들어섰으니, 송강의 가슴은 얼마나 콩닥콩닥 뛰었을꼬?

박꽃처럼 고운 그 여인은 바로 강계기생 진옥(眞玉)이었다. 한창 잘 나갈 때의 송강이었다면 이런 시골 기생쯤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귀양살이 온 처지에 송강인들 어찌 찬밥 더운밥을 가리겠는가? 진옥이 마련해온 안주로 술상을 차리고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기울이니 흥이 도도해졌을 터. 송강은 넌지시 진옥에게 입을 열었다. 달빛은 치렁치렁하고 풀벌레들이 감미로운 음악까지 연주하는 분위기 좋은 그 가을밤에 남녀가 술까지 마셨으니 어찌 본능이 잠자코 있을 것인가? 그렇다고 지체 높고 덕망을 지닌 송강이 어찌 마구잡이로 등잔불부터 끄겠는가?

“진옥아, 내가 시조 한 수를 읊을 테니 네가 그 노래에 화답을 하겠느냐?”
작심하고 밤에 송강의 처소를 찾은 진옥이가 어찌 마다할 리 있으랴. 진옥의 가야금 반주에 맞춰 송강이 목청을 가다듬고 즉흥시 한 수를 읊었으니, 그게 바로 이 서두의 그 시다.

“…살 송곳으로 뚫어볼까 하노라!”
송강의 시조가사가 너무 직설적이고 외설스럽다. 사미인곡, 속미인곡, 관동별곡 같은 천하의 명문장을 남긴 송강도 외로울 때 만난 젊은 여인 앞에서는 이성보다 본능을 앞세울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데도 어쩐 일인지 밉지가 않다. 송강 같은 이도 이럴진대 필부필부라면 오죽하랴. 진옥 역시 기다렸다는 듯 바로 화답의 시 한 수를 읊었다.

  철(鐵)이 철(鐵)이라커늘 섭철(攝鐵)로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정철(正鐵)일시 분명하다
  나에게 골풀무 있으니 녹여볼까 하노라
                                     <강계기생 眞玉 지음>

송강과 진옥의 구애시(求愛詩)는 피장파장이요, 장군멍군이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남긴 도끼와 도끼자루 이야기와 오십보백보가 아닌가? 얼마나 운치 있고 멋진 사랑의 유희인가 말이다. 송강이 자기의 남성 상징인 ‘살 송곳’을 들먹이자 진옥 역시 자신의 여성 상징인 ‘골풀무’를 내세운다. 이쯤 되면 두 남녀의 의기가 투합된 것이니 오직 등잔불 끌 일만 남았지 싶다. 이들 두 시조가 모두 외설(猥褻)이지만 문학적 구애(求愛)이기에 그렇게 남세스럽지 않아서 좋다.

내가 이 시조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이 베풀어준 시혜(施惠)다. 수백 년 전에 이런 시를 주고받았던 송강이나 진옥은 인터넷을 통해서 지금까지 이렇게 전해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 시조를 남긴 그들은 이미 백골이 진토 되었을 텐데 그들이 남긴 시조는 시공을 초월하여 전해지고 있다. 이게 바로 끈질긴 문학의 생명력이다.

나는 요즘 날마다 인터넷에서 메일을 받고 또 친지들에게 메일을 보내는 재미로 산다. 날마다 나에게 영상메일, 음악메일, 문자메일 등 다양한 메일을 보내주는 이들이 많다. 그 메일 중에서 나 혼자 보기 아까운 것들은 내용에 따라 분류하여 내 이웃들에게 보내준다. 이것도 내가 할 수 있는 인터넷시대의 보시(普施)요 적선(積善)이라고 여기면서 날마다 컴퓨터 앞에 앉는다.
내가 보내 준 메일을 받는 이들 중에는 즉각 감사의 답신을 보내주는 이도 있고, 묵묵부답인 이들도 많다. 메일을 주고받다 보니 덤으로 사람들은 얼굴이 다르듯 생각도 다르고 행동도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에게 좋은 내용의 메일을 보내주는 분들 중에는 젊은이들도 있지만 놀랍게도 80대 상노인으로부터 70대 전후의 노인들까지 다양하다.

내 문학서재(http://crane43.kll.co.kr) 연재코너의 <아름다운 세상>에는 무려 160여 가지의 영상자료가 저장되어 있다. 앞으로 더 불어날 것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를 비롯하여 ‘한국의 국보 100가지’, ‘르노와르 작품전’, ‘영상시’ ‘세계 50대 관광지’, ‘가고 싶은 북녘 땅 명소들’ 등 없는 게 없다. ‘여체의 아름다움’, ‘인류 역사상 5백 명의 집단섹스’, ‘조선시대의 예술-춘화도’, ‘사랑의 섹스 체위’ 등은 인기베스트 10에 들어갈 영상자료들인데, 특히 나이 지긋하신 남성들이 좋아하는 영상물들이다. 실행하기는 어렵겠지만 눈으로라도 보면서 젊은 시절의 사랑놀이를 회상하시라고 보내드리는 것이다. 먼 훗날 염라대왕도 마지막에 나를 심판할 때 나의 이 조그만 선행만큼은 높이 평가해 주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이번 송강과 진옥의 시조를 감상하면서 내가 보관하고 있는 그림 ‘조선의 예술’을 떠올렸다. 에로틱한 그 시조로 보아서 그 두 남녀가 멋대가리 없이 그냥 헤어졌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춘화도를 담은 ‘조선시대의 예술’이라는 영상물에는 상투쟁이와 쪽진 여인, 스님과 하녀의 정사장면들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그 그림들을 보면서 또 ‘사랑의 섹스체위’라는 현대판 영상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그림은 실제의 젊은 남녀가 아니라 그림으로 섹스행위를 묘사한 것이지만 참으로 실감나는 영상물이다. 그 자료에는 섹스체위 중 남성상위체위 6가지와 응용자세 6가지 그리고 여성상위체위 8가지와 응용자세 10가지를 보여주며 세밀한 설명까지 곁들이고 있다. 그런데 그 영상물들을 보면 조선시대나 현대, 그리고 동서고금의 섹스체위가 대동소이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저절로 터득하게 되는 것이 바로 그 행위가 아니던가.

송강과 진옥이 주고받은 외설시를 보면서 오히려 선인들의 풍류가 멋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과 돈과 일에 쫓기는 현대인들로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낭만이 아니겠는가? 그런 선인들의 로맨스가 무척이나 부럽다. 여름이 가고 또 가을이 오건만 그 멋진 조선시대의 풍류는 지금 어디쯤 오고 있을꼬?

*번옥(燔玉)-사람이 만든 옥 *살 송곳-남성의 성기 상징
*섭철(攝鐵)-잡다한 쇳가루가 섞인 쇠 *골풀무-여성의 성기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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