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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우기

2007.02.07 04:58

하길남河吉男 조회 수:216 추천:4



지하철을 걸어나오다 보니 걸인이 연필을 들고 손님들에게 구걸을 하고 있었다. 뜻 있는 이들마다 지폐 한 장씩을 건네주면서 연필을 받지 않고 그냥 가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 걸인은 아예 돈 받을 생각만 할 뿐, 숫제 연필을 건네줄 생각은 않고 있었다. 그 때 같이 길을 걷던 미국의 기업가 카네기는 연필을 한 자루를 사면서, 연필은 물론 정확하게 거스름돈까지 챙기며,

‘당신도 연필을 파는 사람이니 당당한 장사꾼이요, 말하자면 한 사람의 기업인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이요’, 하고 어깨를 툭 치면서 웃으며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때 그 걸인은 멈칫하면서 ‘그렇다. 나도 명색이 연필을 팔고 있으니, 그 사람 말대로 장사꾼이 분명하지 않는가. 구걸을 한다고 생각하면 걸인이요 장사를 한다고 생각하면 장사꾼이니...’하고 그 이튿날부터 그는 정장을 하고 연필을 팔았다. 말할 것도 없이 그는 훗날 세계 굴지의 기업가가 되었다.

평소에 ‘응, 그래’라는 말밖에 하지 않는 스님이 있었다. 어느 집에 시집도 안 간 처녀가 아이를 낳았다. 그녀는 ‘네 신랑이 누구냐?’고 다그치는 아버지의 분노에 혼비백산하여 그만 그 말없는 스님의 이름을 대고 말았다. 그 길로 아이를 안은 채 절에 도착한 아버지는 스님에게 분풀이를 한 후 아이를 맡기고 왔다.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나자 처녀는 그 스님에게 지은 죄 책감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여 자초지종을 아버지에게 털어놓고 죄를 빌었다.

끝내 절을 다시 찾게 된 그 부녀에게 스님은 또 ‘응, 그래’하고 말하면서 다 키운 아들을 돌려주는 것이었다.

수필 한 편을 쓰기 위해 골몰한 탓인지, 잠결에 수필의 착상이 될만한 꿈을 꾸었다. 꿈에서 나는 꽃을 든 채 자유자재로 하늘을 날고 있었다. 지상의 많은 사람들이 나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그 때 누군가가,

‘사람이 하늘을 나는 것은 대지가 꽃을 피우는 것과 같다. 수필은 꽃을 피우는 일이 아니냐’고 넌지시 부러워하는 듯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구름을 피해 가지만, 나는 구름을 불러 같이 노닐었다’면서 잠을 깼다.

글쎄, 이 세 가지 이야기들은 서로 상관이 없다. 상관이 없는 것을 묶는 것을 문학에서는 ‘폭력적 결합’이라고 한다. 내가 수필 한 편을 쓸 인연이 닿았을 때, 사실은 급히 끝내야 할 어떤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 일을 마무리해 놓고 수필을 쓰느냐 아니면 수필부터 써놓고 일을 끝내느냐 하고 잠시 망설이게 되었다. 그 때 문득 일을 하면서도 수필을 구상할 수 있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두 가지 일을 같이 할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오늘날 우리는 인위적으로 분업이다, 단순 기계 조작이다, 반복의 연속이다  하여 일을 놀이와 분리시킨 결과를 초래한 까닭에 문제가 생긴 것을 알 수 있다. 저 유명한 경주의 불국사나 그 당시의 생활 용품이라고 할 수 있는 이조의 백자, 고려의 청자 등을 생각해 보면 알게 된다. 예술품을 빚는 그 장인정신 앞에 어찌 고된 노역이 고통을 수반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승화의 예술혼은 바로 영혼의 법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다시 옛날로 돌아가 도형과 문자, 만화 캐릭터 등을 활용한 ‘재미와 기능 즉 일과 놀이를 겸한’ 이른바 퍼놀로지(Fun+Technology) 상품이 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처럼 백화점이다, 찜질방이다 하는 곳들이 사실상 놀이공간을 겸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노동자들이 그처럼 무리를 지어 함성을 지르고 분신까지 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노동에서 재미를 빼앗아버렸기 때문이다. 고통만 안겨준 까닭이다. 수필이 변해야 하는 까닭도 알만하다. 재미없는 수필 또한 읽는 고통만 안겨준 꼴이 된 것이다. 우리 인류가 버려야 할 가장 위험한 유산은 ‘인생은 고해’라는 망언이다. 인생은 고해가 아니라 ‘환희’인 것이다. 나는 꿈에 하늘을 날면서 얼마나 기분이 좋고 즐거웠는지 모른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축복해 주었을 뿐 아니라, 하늘에 나는 새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삼라만상이 모두 성원해 주었다.

비렁뱅이에서 일약 세계적 거부가 된 이는 얼마나 기쁘겠는가. 마음을 비운 스님도 즐겁겠지만, 고통을 비운 마음보다 즐거움을 채운 마음이 더 아름다울 것이다.

우리가 만약 진화론의 입장이 된다면, 생명의 각 개체마다 쉼 없이 머물러왔을 것이니 그들은 두루 나의 형제들인 것이다. 역시 창조론적 처지에 선다면 같이 신의 품에서 선택받은 목숨들이니 우리 또한 같은 형제들이 아닌가. 지금은 분열의 시대가 아니라 통합의 시대다. 인터넷 난센스 퀴즈 중 교수와 거지, 아줌마와 조폭처럼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것들 사이에서 찾은 공통점을 보면, 재치가 넘치고 나름대로 철학이 느껴지기도 한다. 세상 만물의 분류체계는 발상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과 놀이는 둘이 아니다. 개의 불알을 닮은 큰개불알풀꽃도 봄까치꽃이라는 이름을 하나 더 가지고 있다.

작년 봄에 이 긴 이름의 꽃과, 책 한 권을 나에게 전해주면서 귀밑 볼을 붉히던 그녀에게  오늘은 봄소식이라도 전해주고 싶다. ‘황소걸음사’에서 펴낸 “풀꽃 친구야 안녕?”’이란 이 책표지를 볼 때마다 늘 미소짓게 되고 마침내 행복해진다. 나는 꽃들이 수놓은 뜰 안을 거닐듯, 한 걸음 한 걸음 황소걸음으로 서정주의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 리’까지 걷는다. 가다가 날 저물면, 거기 카네기의 절종(寺鐘)소리 여승의 애틋한 후렴처럼 듣나니.

주소; 경남 마산시 월포동 2-11번지 월영맨션 503호.

전화; (055) 243-3455. H.P 016-879-0551.
이메일;hagilnam@hanmail.net.
등단;1978년 <수필문학> 천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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