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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금관
2007.02.06 21:08
가을금관
정 목 일
1.
언젠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신라 금관을 보는 순간, 오랫동안 나는 한 그루 황금빛 나무를 연상했다.
박물관 유리 진열대 안에 들어 있는 천년 신라 유물들은 대개 시간의 침식에 못 이겨 퀴퀴한 죽음의 냄새를 풍기며 망각 속에 덩그렇게 놓여 있었지만 금관만큼은 어둠 속에 촛불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생명의 빛깔로 너무나 선명한 모습으로 살아 있어서 천년 신라를 말해주는 촛불처럼 느껴지기만 했다.
나는 우두커니 이 천년 신라의 황금빛 촛불 앞에서 서서 한 그루 나무를 바라보았다. 금관의 출자형(出字型)은 그 형태가 나무의 가지를 본뜬 것처럼 보였다. 어떤 학자는 사슴의 뿔을 형상화시킨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나에겐 나뭇가지처럼 여겨졌다. 그냥 나무가 아니라, 항상 새롭게 싹터서 영원 속에 가지를 뻗는 무성한 생명력의 나무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황금빛 나뭇가지에 심엽형(心葉型) 영락(瓔珞)이 달려 별빛처럼 눈부셨다. 황금빛 가지는 푸른 하늘을 향해 뻗어 있고, 그 가지 끝에 심엽형 영락이 달려 영원의 노래를 뿌려주고 있었다.
순금 빛 나무, 영원히 시들지 않는 생명의 나무야말로 신라인들이 염원했던 마음의 상징이 아니었을까. 신라금관을 보는 순간, 영원 속에 뿌리를 내리고 마음껏 하늘로 가지를 뻗고 싶은 신라인의 마음의 금관에 피어있음을 느꼈다.
이미 왕조와 임금은 사라지고 없으나 신라 금관은 유리 진열대 속에서 심엽형 영락을 번쩍거리면서 숨 쉬고 있었다. 그 영락들이 내는 순금빛살에 천년 세월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2.
어느 날, 나는 뜻밖에도 박물관이 아닌 장소에서 금관을 보았다. 황금빛 가지들을 하늘 높이 뻗친 세 개의 금관-. 그것도 놀랍게도 아직 내가 보지 못했던 살아있는 금관이었다. 황금빛 가지가 청명한 하늘로 뻗어나가 마치 수천 개 아니, 수만 개 출(出)자형을 이루었고, 순금 빛 나비 형 영락을 달고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하늘이 너무 맑게 열려 있어서 피리를 불면 가장 잘 퍼져나갈 듯한 가을날이었다. 가을의 한복판에 세 그루의 금관이 하늘 높이 서 있었다. 6백년 수령의 세 그루 은행나무-살아 있는 가을의 금관이었다. 가을의 찬양이었고 극치였다.
세 그루 은행나무는 황금빛깔로 가을의 절정을 그 자신이 가을 금관이 되어 번쩍거리고 있었다. 아직 그토록 장엄하고 화려한 가을 빛깔을 바라본 적이 없었다. 몇 해 전 계룡산 동학사에서 한 그루 느티나무와 만난 적이 있는데, 붉은 느티나무 단풍과는 또 다른 느낌이 가슴속으로 물결쳐왔다. 서녘 하늘로 막 사라지려는 놀처럼 선홍빛의 단풍은 섬뜩한 아름다움으로 가슴을 적셔주었지만 순금빛 은행나무들은 황홀하고 장엄한 신비와 어떤 자비(慈悲)로운 품마저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육백 년쯤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가을을 맞고 있는 은행나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누가 이보다 더 선명히 가을의 극치감을 그려놓을 수 있단 말인가.
신라 금관의 영락이 흔들리듯 수많은 순금빛 잎사귀들을 영겁 속에 달고 우뚝 서 있었다. 그렇다. 이 세그루 은행나무는 가을 금관이 되어 빛나고 있었다.
육백 년의 은행나무가 빚어내는 가을의 황홀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무는 은행잎을 바람에 날리며 영원 속에 가을의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가을 연주에 취한 듯 은행나무 잎들이 나비가 되어 떨어지고 있었다. 은행알들이 저절로 툭툭 가을의 한복판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농한 가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 육백 년 세월 속으로 한 해의 가을이 가고 있었다. 그것은 영원 속을 물들여놓은 찰나의 빛깔이었다. 은행나무 잎을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육백 년 은행나무의 삶이 잎맥 속에 물들어 있었다. 육백 년의 햇살과 바람과 빗방울의 말들이 순금빛 단풍 되어 떨어져 있었다.
3.
온양에서 열린 수필문학 세미나를 마치고 인근에 있는 맹씨행단(孟氏杏壇)을 찾기로 했다. 내가 시간을 내어 문학 세미나에 참가하는 것은 평소 글로만 익혀오던 필자들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맹씨행단은 조선시대 명재상(名宰相)이며 청백리(淸白吏)로 알려진 맹사성(孟思誠)의 고택(古宅)이 있는 곳이다. 이곳엔 수백 년 자란 은행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쌓은 단(壇)이 있기 때문에 맹씨행단이라 부르고 있다.
맹사성의 고택을 본다는 기대도 있었지만 수백 년 자란 은행나무와 대면한다는 기대는 자못 설렘까지 동반하고 있었다. 수백 년 자란 은행나무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은 한순간의 황홀한 환상이 아닐 수 없었다.
맹씨행단에 도착하여 육백 년 수령의 세 그루 은행나무와 만났다. 이 은행나무들은 조선 세종 때 좌의정을 지낸 맹사성이 심은 나무들로서 오른편의 두 그루는 마치 쌍둥이처럼 하늘 높이 치솟았는데 약 육백 년의 수령에 높이 35m, 나무의 둘레가 약 10m되는 거목이었다. 왼편으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한 그루 은행나무가 서 있어 쌍벽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 나무의 수령은 570년인데 오른쪽의 은행나무와 비슷한 높이로 서 있었다.
고택을 지키며 살고 있는 후손의 살림집이 있어서 맹사성의 유물을 볼 수 있었다. 옥피리 한 개와 벼루였다. 당대의 시인이요 음악가였던 맹사성이 평소에 아꼈던 옥피리와 벼루를 보면서 밖에 그가 심어놓은 은행나무가 떠올랐다. 생전에 가을의 이맘때쯤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멀리 영원의 하늘에도 옥피리를 불었을 것이다. 또 불현듯 먹을 갈아 시를 쓰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했으리라. 아깝게도 맹사성의 유물인 옥피리의 중간 부분이 부러져 아쉬움을 남겨주었다.
옥피리를 보고 다시 마당에 나오니 세 그루 은행나무가 만드는 황금빛 가을 풍경 위로 어디서 옥피리 소리가 은은히 울리고 있었다. 그것은 육백 년 은행나무가 해마다 가을을 맞으면서 가슴속에 간직해 두었던 악상 한 부분을 끄집어내어 영원의 하늘에 불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맹씨행단에 와서 세 그루 은행나무가 빚는 가을 교향악을 들었다. 나에게도 한 순간이나마 은행나무와 같은 아름다운 삶의 순간이 있기를 바랐다.
은행나무는 가을 금관이 되어 육백년의 명상과 노래를 천지 사방에 마구 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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