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08 20:24
빗소리를 담는 버릇이 있다
전희진
빗소리를 상자에 담는 것은
물푸레나무 너의 파란 등을 흘러내리는
여름의 얼굴을 만지는 것과 같다
손끝에 촉촉이 묻어날것 같은 파랑
우리는 덜 익어 시큼한 오디 계절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긴 여름은 아니었다
유리창살에 부딪히기 좋아하는 흥건한 것들이 차츰 말라갔다
불에 타서 바닷가 식당이 없어졌다고 까만 나비 넥타이 종업원이 말해 주었다
없어졌다고 슬로우댄스마저 없어진 건 아니라서
오랜 방학이 끝나고
우린 같은 날 같은 시각에 다른 하늘을 나는 비행기로 창공을 날았다 모든 연애는 하얀 빗금을 그으며 사라져가는 비행기를 닮아서
너는 104도 열이 오른다 했고 나는 104도 열이 올라보지 못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파란 수국을 닮은 필체를 읽으며 반복해서 읽으며 나는 수국의 마음이 되어갔다
가보지 못한 보스톤의 하늘을 서랍에서 꺼내 보았다
그무렵 우리는 키스로 편지를 닫기도 한다는걸 알았다
여름이 가고서
여름이 시작되었다
시집<나는 낯선 풍경 속으로 밀려가지 않는다>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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