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희진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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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경계인

2025.02.22 22:08

전희진 조회 수:276

경계인

전희진

비 오는 날 푹신한 소파에서 싸움질한다

오늘은 맷 데이먼이 나오는 할리우드 영화를 볼까

현빈이 나오는 케이팝 드라마를 볼까

국경을 허물기는 간단해

리모트 컨트롤 단 한 번의 클릭, 저격이면 돼

너와 나의 경계를 지우기도 간단해서

나는 한 포기 나파배추 키 작고 젓가락처럼 휘어지지 않는 눈매의 아시안

얼굴과 가슴을 뜯어고치고 블론드로 머리 염색한 너는

볼륨감 넘치는 아메리칸 뷰티

어제 아침과 밤 사이엔

벨벳 정장 차림을 한 이방인이 다녀가서

옷장 안 뒤틀린 옷들의 목을 가지런히 정리하다

바닥에 헝클어져 누워있는 나를 보았네

허름한 시골 헛간건초더미에 앉아

할머니 나를 안고 노래를 불렀지

내 새끼 내 새끼 토끼 같은 내 새끼 쑥쑥 크거라 노래를 불렀지

초록색 코끼리 열두 마리가 여름의 녹음 속을 장엄하게 지나가고 있었어

흑백의 체크무늬 토끼들이 그 사이로 간간이 지나갔지

사람들은 머릿속에 누구를 먼저 떠올릴까

코끼리일까 토끼일까

나는 단 한 번의 저격도 꿈꾸지 못했지

그 일이* 있을 때 우린

윌셔와 노르만디 길이 교차하는 지점의 칼숙수집을 평화롭게 지나는

보통의 토끼였지

* 미 전역에서 발생한 반아시안 인종혐오 범죄 행위. 코로나- 19 으로 촉발된 이 사건은 수많은 아시안계 사람들, 특히 신체적으로 약한 여성들이 희생되었다. 한 예로 뉴욕의 한 아시안 노인에게 산을(acid) 붓는 사건이 있었으며 오클랜드의 한 아시안 여인이 땅바닥에 던져지는 폭력 사건도 있었다. ‘Stop AAPI Hate’의 데이터에 따르면 팬데믹 기간 약 1년 동안에 보고된 사건만 거의 3,800건에 달했다.

계간< 상징학 연구소>   2024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