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16 02:24
▲사진: 지우메 위게트(Jaume Huguet)作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 / 1470년 대 / 스페인 무세우 나시오날 카달무나 박물관 소장
두번째 서한(書翰)
나는 스승인 라비샹카와 학우(學友)유대인 스알 야숩과 아쉬운 작별을 고한 뒤 행장(行漿)을 꾸려 몸바이를 떠났다.
인도 몸바이에서 유대 땅 예루살렘까지는 약 4.010킬로미터.
인도와 인접한 파키스탄과 페르시아(이란)를 거쳐 이라크,시리아를 경유하는 멀고도 지루한 여정이다.
다행히 출발에 앞서 스승 라비샹카가 젊고 건강한 필마(匹馬) 두 마리를 선뜻 내주었다,
그런 가 하면, 친우 스알 야숩은 여정 경로(經路)를 무탈하고 빠르게 갈 수 있도록 상세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뿐만 아니었다.
우연인지, 아니면 하늘의 누군가의 보살핌 때문인지, 이란의 수도(首都) 테헤란 인근 라가이(Rhagai)지방으로 대상무역(隊商貿易)을 떠나는 인도상인들이 자신들과 합류할 것을 권유해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나에게 호의를 베푼 상인들의 수는 모두 40명이었고 낙타와 말을 이끌었다.
상인들 대부분은 나이가 많았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는 혈기왕성한 젊은이들도 섞여 있었다.
낙타와 말에는 엄청난 물건들이 실려 있었다.
물건들 상당수는 음식 자재(資材)인 향료(香料)와 후추, 그리고 계피, 비단 등이었다.
특이한 것은 극소수 품목이기는 하나 코끼리 상아로 만든 ‘딜도’도 포함돼 있었다.
이 제품은 성인여성의 쾌락(快樂)을 극대화 시키는 기구였다.
한편, 여로(旅路)에 나선 때는 초겨울로 접어드는 한절기(寒節期)였다.
은둔(隱遁)의 땅 파키스탄에 들어서자 아침저녁으로 찬기운이 뼛속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상인들은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다.
묵묵히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오히려 그들은 나의 체온을 걱정했다.”버틸 수 있겠느냐?”고 몇 번이나 확인을 거듭했다.
인도 상인들은 친절했다. 그리고 진심을 다해 나를 생각했다.
특히 대상(隊商)을 이끄는 우두머리가 스승인 라비샹카에게 학문을 수료(修了)했고 적으로도 친교(親交)가 두터운 사이여서 나를 정성껏 대한 것이다.
팔레스탄의 작은 마을과 북적이는 도시를 지나칠 때 마다 새로운 풍물(風物)을 접하고 많은 것을 깨우쳤다.
손바닥만한 소국가(小國家)에 지나지 않는 신라국(新羅國)은 지금 생각해보니 ‘우물 안 개구리’였다.
지식도 우리 동방지국보다 월등했다.
수학과 천문학, 의학, 수리학, 인문학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때문에 나는 중국에서 인도에서 새로운 문물을 접하며 곤혹스러워 했다.
모든 것이 미지(未知)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중국과 인도에서 다양한 신(新)학문을 섭렵하며 꿈에 나타난 천사 장 가브리엘에게 여러차례 감사를 거듭 했다.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으나 그의 요구에 이끌려 팔레스타인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
또 한가지 의아해 하는 것은 고향을 떠나 온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단 한번도 사고(事故)생기거나 몸이 아픈 적이 없었다.
불행한 일은 커녕, 오히려 뛰어난 스승을 만나 ‘내재(內在)하는 목마름을 해갈’하는 행운을 누렸다.
상인들은 매일 어김없이 5시간 동안 숙면(熟眠)을 취했다.
그러고는 매끼 식사는 양과 염소고기를 양념해 말린 육포(肉脯)로 해결했다.
육포는 펄펄 끓는 물에 넣어 죽처럼 걸쭉하게 만들어서 먹었다.
식후에 마시는 음료는 마른 우유덩이를 뜨거운 물에 풀어 마셨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젊은 상인이 식후에 벌건 가루를 찻잔에 타서 마셨는데, 호기심에 물어보니 차(茶)의 원액이 양귀비에서 축출한 아편(阿片)이었다.
아편차를 마시고 있던 청년은 내가 호기심을 드러내자 찻잔을 들이대며 마셔보라고 종용했다.
청년 상인은 “아편 차를 마시면 하루 종일 힘이 생긴다.”며 엄지척을 해 보였다.
상인들이 매끼마다 건네 준 육포는 맛이 일미(一味)였다.
경주에서 먹은 삶은 소고기와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물에 탄 우유도 형용(形容)할 수 없는 맛이었다.
고향에서 소젖을 여러차례 맛보았으나, 이 우유는 양과 염소에서 짜낸 것이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청년의 집요한 권유로 한모금을 들이킨 양귀비 아편은 마치 독약처럼 쓴데다 냄새도 역해 두 번 다시 호기심을 나타내지 않았다.
상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그들은 나의 조국인 신라국에 대해서 넘치는 관심을 표명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신라국의 찬란한 역사에 대해 가감 없이 들려주었다.
이들은 미지의 세계에 대해 진심으로 경의를 표했다.
그러면서 ‘언젠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동방의 나라 신라국에 교역을 떠나고 싶다’는 속내를 비췄다.
한편 상인들과 지루하지 않은 여정은 페르시아에서 멈췄다.
목적지에 도착한 인도 상인들은 어느새 정이 들었는지 매우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나의 남은 여정을 위로했다.
작별에 앞서 상인 우두머리는 ‘시리아까지는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니다’며 중간중간에 머물 여관과 말먹이를 제공하는 장소 등을 도표(道標)를 인용하며 알려주었다.
상인 우두머리가 알려준 도표를 따라 길에 나선 나는 젊고 튼튼한 말 등에 올라 하루빨리 예루살렘이 다가오길 염원(念願)했다.
페르시아의 기후도 파키스탄처럼 냉혹했다.
날마다 강풍을 동반한 토사(土沙)가 시야를 방해했다.
두 마리의 말도 환경 탓에 곤혹스런 몸짓이었다.
“신(야훼)과 예언자의 도시” 예루살렘
한편, 오랜 기간 길 위에 선 나는 여독(旅毒)과 고향에 있는 가족들 생각에 수차례 마음이 흔들렸다.
두 마리의 애마(愛馬)와 함께 페르시아의 변덕스런 일기(日氣)를 헤쳐 나간 뒤,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사막과 불모지(不毛地)로 형성된 이라크와 시리아를 횡단한 끝에 팔레스타인 땅으로 들어섰다.
셈하기 조차 아득한 4.010킬로미터를 필마와 함께 종지부(終止符)를 찍은 것이다.
사방이 온통 화강암(花崗岩)장벽으로 둘러 쌓인 예루살렘은 엄청난 인파로 어지러울 정도였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마구 뒤섞인 채 북적거렸다.
인구가 넘쳐나는 중국의 청두에서도, 인도의 몸바이에서도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예루살렘은 국제화 된 도시였다.
이 곳에도 패르시안 상인과 인도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건너 온 무역상들이 득실거렸다.
그런 가 하면, 머리를 짧게 자른 희랍청년들과 머리부분에 깃털이 달린 투구와 무릎위까지 올라오는 치마처럼 생긴 군복을 입은 로마군인들도 현지인인 유대인들과 뒤섞여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두 마리의 말을 이끌고 있는 나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인파속에 이리저리 휩쓸리다 곁에서 걸음을 하고 있는 행인을 붙들어 세웠다.
사내였고,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통 자루 옷을 걸치고 있었다.
내가 아람어로 말하자 사내가 휘둥그레 뜬 눈으로 나의 전신을 훑었다.
그러고는 밑을 수 없다는 듯 그도 아람어로 질문했다.
“당신, 어느 나라에서 왔소? 어찌도 그리 우리나라 말을 잘하시는가?”
내가 말했다.
“말씀을 드려도 이해하지 못하실 겁니다. 여기에서 동쪽 끝인 동방국에서 왔습니다.”
내가 동방국 운운하자 사재의 호기심이 더욱 증폭됐다.
그는 나의 신상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고는 대충 호기심이 가신 탓인지 비로소 경계심과 호기심을 내려 놓았다.
입가에 엷은 미소를 드리운 사내가 말했다.
“그런데, 지금 어디로 가는 길이요?”
내가 말했다.
“여관을 찾고 있습니다.“
“여관이라….”
사내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이곳은 성안이라 여관은 없소. 성밖으로 나가야 찾을 수 있을거요.북쪽 문으로 나가면 베다니라는 고을로 갈 수 있소. 말을 타고 가면 금방 도착할 수 있을 거요. 그곳에는 주막과 말먹이도 주는 여관이 여러 곳이 있소.”
사내는 퉁명스런 말투와는 달리 매우 친절한 태도로 나왔다.
나는 허리를 굽혀 사내에게 예를 표하고 자리를 뜰 순간이었다.
사내가 한 발 앞으로 디뎠던 걸음을 거두며 말했다.
“헌데, 당신은 무슨 일로 그토록 먼 길을 떠나 온거요? 그리고 무슨 일을 합니까?”
내가 말했다.
“나는 동방국 신라에서 왕의 심부름을 하는 신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꿈에 가브리엘이라는 천사장이 나타나 이스라엘로 가라는 계시(啓示)를 받았습니다.”
순간 사내가 격하게 반응했다.
“방금 뭐라 했소? 천사장 가브리엘의 계시를 받았다고…?”
“그렇습니다. 그가 나에게 이러더군요. 팔레스타인에 가면 갈릴리에서 사역하는 분이 계시다. 그분의 이름은 예수이며,삼위일체(三位一體)라고 했습니다.”
사내는 내가 삼위일체 운운한 대목에 집중했다.
그가 다시 나의 전신을 훑으며 말했다.
“당신이 말한 예수라는 분,지금 갈릴리라는 촌동네에서 자신을 따르는 어부 출신 등 촌놈들을 제자로 삼고 전도에 나섰소. 그 양반이 마술로 사람들을 미혹(迷惑)속으로 빠트리고 교묘한 선동(煽動)으로 구체제를 무너뜨리려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오. 어디 그 뿐인가, 최근 들어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적자(嫡子)라고 구라를 쳐서 특히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의 심기를 극도로 악화 시켰다고 했소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예수라는 그 양반은 혼란시대에 한번씩 등장하는 요괴(妖怪)임에 틀림없소.아무튼 당신이 무슨 이유에서 예수를 찾는지 상관할 바 아니지만 조심하시요. 잘못하면 비명횡사(非命橫死)할 수 있으니…”
진지한 어투로 나에게 충고한 사내는 이내 걸음을 옮겨 군중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사내가 조언한 예수의 인물평에 대해 이리저리 곱씹으며 말을 이끌고 북문 성을 벗어나 베다니로 향했다.
나는 사내가 가리켜 준 여관을 수소문한 끝에 간신히 찾아낸 뒤 여장을 풀었다.
펑퍼짐한 허리춤에 더럽게 보이는 행주를 찔러 넣은 늙은 노파가 마치 꿈이라도 꾸는 듯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입맛을 다시며 아람어로 말했다.
“낯선 얼굴이구랴! 어디서 온거요?”
내가 말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말씀을 드려도 모르실 겁니다만,여기에서 아주 멀고도 먼 동방지국에서 왔습니다. 신라라는 나라입니다.”
여자 주인장이 허리춤에 찬 더러운 행주를 잡아챈 뒤 손바닥을 문지르며 말했다.
“신라…?발음도 하기가 어렵네. 아무튼 그런 나라도 있수?”
“물론입니다.매우 아름답고, 친절한데다 사람들 또 한 영명(英明
)합니다.”
노파는 내가 아람어를 고급지게 구사하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올리브 나무 가지가 어지럽게 펼쳐진 앞마당에서 손님을 맞고 있는 노파는 나의 인적사항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는지 대뜸 이같이 물었다.
“내 여관은 외상은 절대 안된 다오. 아시겠소, 젊은 미남 양반.”
내가 허리에 찬 전대를 손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방을 주시면 즉시 지불하겠습니다.”
나는 솔로몬 성전 인근에 위치한 중앙시장(헤롯과 바리새인이 운영하는 재래식 시장)에서 금붙이를 로마의 화폐인 데나리온과 유대인이 통용하는 화폐인 달란트로 이미 환전해 놓은 터 여서 숙박비 지불에는 문제가 없었다.
내가 허리에 찬 전대(轉貸)를 풀고 돈을 보이자 노파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내 여관은 숙식을 함께 제공한다오. 뿐만 아니라 말에게도 풀과 당근을 먹이지.말먹이까지 포함할 거요?”
“그렇게 해주십시오.”
거래가 끝나자 노파는 ‘몇일을 묶을 거냐?’고 물었고 사흘치 숙박비를 계산했다.
노파는 유대 돈인 달란트보다 로마 화폐인 데나리온을 선호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로마 돈을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데나리온을 받아 쥔 노파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우선 뒤뜰로 가 씻으라’고 말하고 말 두 마리는 객장(客莊)곁에 위치한 마구간으로 데
가라고 일러주었다.
여관에서 제공한 양고기와 콩죽으로 허기를 채 운 나는 마구간에서 긴 여정을 싫은 기색 하나 없이 참아내 준 두 말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하고 얼굴과 등을 다독였다.
장장 4.010킬로미터를 함께 해 준 친구들.
말들도 나의 마음을 알아챈 듯 얼굴로 나의 가슴을 비비며 응답했다.
이스라엘에 첫 발을 디딘 이 날 나는 밥상을 물리고 이내 깊은 잠 속에 빨려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니 이미 동이 튼 후였다.
노파는 때마침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요란스런 아침인사를 나누고 주방으로 오라는 시늉을 해 보였다.
나는 간단히 세면을 하고 주방으로 갔다.
주방에는 나 말고도 숙박객이 많았다.
이제는 낯설지 않은 페르시아 상인들과 인도와 아프리카에서 건너 온 무역상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이들과 짧게 목례를 나누고 노파가 질그릇에 가득 담아 낸 양고기 스프와 누룩을 섞지 않은 맛짜라는 넓죽한 빵을 맛있게 먹었다.
식사 후 노파가 끓여 내온 계피 차를 마시며 고향의 가족들을 떠 올렸다.
그러고 보니 가족들의 안부를 생각한지 꽤나 오래 되었다.
나는 방으로 돌아 와 어젯밤 흩트려 놓은 짐 보따리에서 인도에서 가져 온 독수리 깃 촉과 검은색 염료를 꺼내 물에 푼 뒤 이를 촉에 찍어 파피루스에 글로 옮겼다.
나는 일기를 쓸 때마다 너무나 많은 생각이 떠올라서 비명을 지르곤 했다.
특히 극한 외로움이 쓰나미처럼 몰려와 영혼을 혼미(昏迷)하게 뒤흔들 때면 어찌할 바를 몰랐다.
‘괜한 고생을 사서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자책도 거듭했다.
헌데, 어찌된 영문인지 마음이 심하게 동요(動搖)할 때면 어김없이 천사 장 가브리엘이 나타나 다독이며 위로했다.
“이제 너의 긴 여정이 끝나는 단계다. 스스로를 책망하는 어리석은 생각은 버려라. 네가 향하는 길은 너 자신만의 길이 아니다. 그리 알고 정진(精進)해라.”
나는 얼마전부터 잠버릇을 뜯어고쳤다.
인도 상인들처럼 수면시간을 4시간으로 단축시켰다.
이 같은 버릇은 상인들로부터 비롯됐다.
그들은 먼 거리를 횡단하며 지쳐 있었으나 결코 오랫동안 잠 속에 빠지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숙면(熟眠)을 취했다.
때문인가!
낮 시간 내내 걸으면서도 전혀 지친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여, 나도 오랜 고정관념이었던 수면 시간을 줄이고 남은 시간을 여정에 투자했다.
예루살렘 전경(全景)
베다니에 위치한 여관에서 숙식을 해결한 첫 날 나는 두 마리의 말과인사를 나누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향했다.
예루살렘 성 안은 첫발을 디딘 때처럼 군중들로 넘쳐났다.
지혜의 군주(君主)로 불린 솔로몬 왕이 ‘언약(십계명)의 궤’를 신성한 장소에 보관키 위해 심혈을 기우려 건축한 예루살렘 성전과 폭압(暴壓)정치로 악명을 떨친 헤롯 대왕(헤롯 안티파스의 아버지)이 지은 헤롯 성전이 위용(偉容)을 드러내고 있었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웅장하고 화려하게 치장한 지성소(至聖所)가 있고 그곳에 언약궤가 봉인(封印)돼 있다고 들었다.
친우(親友)스알 야숩에 따르면 성전을 관리하고 제사 또는 기도하는 이들은 오로지 대제사장과 사두개인, 그리고 바리새인 뿐이었다.
일반인들에게는 신성한 장소인 성전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내세(來世)를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은 성전에서 기일(期日)에 제사를 올렸고, 내세를 확고부당한 것으로 믿고 율법을 중요시 하는 바리새인들은 날마다 성전에서 성대한 제사를 올렸다.
현세(現世)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두개인들이 기득권(밥그릇)을 사수하는데 주력하는 세속주의(世俗主義)였다면, 율법(토라)을 중시하고 자기세(勢)를 과시하는 것을 즐긴 바리새인들은 보수적 가치를 중요시 하는 율법주의(律法主義)자들이었다.
내가 갈릴리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된 후 우연히 예루살렘에서 마주친 유대 역사가 요셉(로마식 이름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은 바리새인의 숫자는 경건주의(敬虔主義)를 지향하는 에세네파와 비슷한 대략 6천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훗날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신성모독죄와 반란혐의를 뒤집어 씌어 빌라도 총독으로부터 십자가 형을 끌어낸 장본인이었다.
그런 가 하면,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유대 청년들은 시시각각 적군(로마군)과 대치하며 폭력사태를 유발했다.
열심당원이라 일컫는 이들의 상당수는 고등(高等)교욱을 받은 재원(才媛)들이었다.
열심당원들은 로마의 압제(壓制)가 언제 끝날지 희망이 보이질 않자 폭력을 동원해 무력시위를 펼쳤다.
때문에, 로마군은 거대한 화강암 암석을 일정한 크기로 잘라 쌓아 올린 예루살렘 성벽 주변에 4개조(組)단위로 병졸을 편성해 삼엄한 경계근무를 펼치고 있었다.
4대 성문 입구에는 외국인을 상대로 통행세를 징수하는 세리(稅吏)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세리에게 통행세를 바치는 이방인들 대부분은 희랍과 로마, 아프리카(애굽), 시리아 등지에서 건너 온 이들이었다.
여담(餘談)한가지를 첨언 하자.
나는 팔레스타인 땅을 처음 밟은 날, 4대 성문가운데 하나인 제1성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섰다.
헌데, 갑자기 엄청난 거구의 배불뚝이 유대인 세리가 탁자를 밀치고 일어나 큰소리로 통행세를 요구하며 가로막았다.
두 마리의 말과 함께 한 나를 향해 세리는 “이봐, 당신 어느 나라 사람인가?”하고 고압적으로 물었고, 내가 히브리어로 “동방의 신라국에서 왔다”고 하자 배불뚝이와 어깨를 나란히 한 또 다른 유대인 세리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당신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 수 없으나 히브리어로 말할 줄 아는구먼. 하지만 우리는 아람어가 편해. 당신, 아람어도 할 줄 알아?”
나는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물론이요. 그것도 존대말로…”
내가 히브리어와 아람어를 동시에 구사하자 배불뚝이가 동료를 곁눈질하며 소근거렸다.
나는 이들이 소통이 편하다는 아람어로 “주머니에 셰켈은 물론 데나리온도 가진 것이 없다.”고 말하고 “이 근처에 환전상이 있다면 가리켜 달라.”고 덧붙였다.
내 가 진지하게 나오자 배불뚝이가 손바닥을 비비며 입술을 움직였다.
“아무튼 좋아.돈을 바꾸려면 성전 옆에 ‘이방인의 뜰’로 가야 돼. 거기가 장터 거든. 로마 돈과 에굽 돈 등 여러 나라의 돈을 바꿔주는 환전상이 있지. 우리나라 돈(셰켈) 아니면 로마 돈(데나리온)으로 바꿔. 그리고 양심이 살아 있다면 통행세 잊지 말고 나에게 지불하라고.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지?”
세리들은 나를 향해 시종일관 반말로 지껄였다.
나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이고 가리켜 준 이방인의 뜰로 향했다.
이 날 나의 선한 양심대로 환전한 셰켈로 통행세를 지불했다.
이것이 팔레스타인 땅을 밟은 첫날 일상이었다.
예루살렘 전경 두번째
베다니에 위치한 여관에 짐을 푼 나는 여독(旅毒)이 가시자 두번째로 예루살렘 성전 주변을 돌아다녔다.
한창 동안 성안을 이리저리 배회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 인근 이방인의 뜰에서 소란스런 파열음(破裂音)이 퍼져 나왔다.
둥글게 둘러싼 무리였고 무리속에는 튜닉 복장에 겉옷인 미트파하트 망토를 걸친 두명의 젊은 사내가 무리들 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런 가 하면, 두 젊은이를 감싸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은 노년들이었다.
이들은 화려한 복장을 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이었다.
내가 이들 곁으로 다가가자 침을 튀기며 쏟아냈던 격한 논쟁을 순간적으로 멈추고 모두가 나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러고는 바리새인 복장을 한 노장이 고개를 고추 세우고 나에게 말했다.
“당신 누구야, 어디서 왔지, 혹시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왔나?”
그가 따지듯 묻자 약 20여명의 시선이 나에게 꽃혔다.
나는 절제된 아람어로 말했다.
“당신들은 내가 말해도 이해하지 못할 나라에서 왔습니다. 동방이란 곳이고요,그곳 영토에 신라국이라는 곳 출신입니다.”
이렇게 말하자 모두가 어리둥절하는 표정이었다.
무리 가운데 이번에는 사구개인 복장을 한 늙은 사내가 입술을 움직였다.
“헌데, 아람어가 유창하구먼. 우리 말은 어디서 배웠나?”
나는 아람어를 배운 배경을 대충 설명하며 학우이자 친우인 사두개인 스알 야숩의 이름을 알렸다.
순간, 사두개인은 물론 바리새인들도 이구동성으로 ‘당신이 그와 함께 동문수학을 했다고’ 하면서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이들은 손짓으로 잠시 함께 하자면서 나를 이끌었다.
그러고는 나로 인해 중단된 대화의 물꼬를 다시 이었다.
다른 이에 비해 비교적 나이가 적게 보이는 바리새인 복장이 두 젊은이를 향해 말했다.
“당신이 조금전에 나사렛 예수를 메시아라고 했는데, 도대체 누가 그 따위 소리를 함부로 지껄이던가?”
상대의 질문을 받은 두 젊은이 가운데 다듬지 않은 새카만 곱슬 수염의 사내가 거만을 덜고 있는 바리새인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말했다.
“우리 예수님을 메시아라 부르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니고 수천 명이입니다.”
“뭐라고 수천 명씩이나?!”
바리새인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동시에 주위를 감싸고 있는 무리들도 빌어먹을 등 육두문자를 쏟아내며 발끈했다.
얼굴에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바리새인이 다시 물었다.
“내가 알기로는 예수라는 라바이가 갈릴리 나사렛 출신으로 알고 있는데, 그 애비가 목수인 요셉이고 동생이 야고보 아닌가? 그리고, 또 내가 일찍부터 알기로 그 자는 아예 교육도 받지 못한데다 자기 이름 석자조차 쓸 수 없는 무식쟁이가 아닌가! 그처럼 비루한 인생이 뭐, 메시아라고… 그자 혹시 사기꾼 아냐? 혹세무민(惑世誣民)으로 가난한 사람들 등쳐 먹는 사기꾼!”
우쭐해 진 바리새인이 막말을 마구 퍼붓자 이번에는 무리 가운데 허름한 옷차림을 한 중년의 사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내가 알기로는 예수라는 그 분께서 좋은 일을 많이 하십니다.뿐만 아니라, 제가 직접 목격하지는 않았지만 가나에서 펼쳐진 제자의 결혼식에서 포도주가 다 떨어지자 즉석에서 맹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놀라운 이적(異蹟)을 보이시기도 했어요.예수님께서는 제자 가운데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고생한다는 소리를 듣고 단지 손을 머리에 얹으시고 축복을 하자 병이 씻은듯이 낳았답니다. 이는 결코 사기가 아닙니다. 직접 확인해 보세요.메시아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내가 차분한 어조로 전언(傳言)을 들려주자 또 다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경 끼를 일으키며 펄쩍 뛰었다.
이중에 도 다른 바리새인이 방금 예수의 이적담을 늘어놓은 사내에게 말했다.
“그래서, 당신은 예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가?말해 보시게.”
느닷없는 질문에 뻘쭉해진 사내가 좌우를 훑으며 생각하더니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선생들이 물어보니 답은 하겠습니다만, 오해는 하지 마세요. 저도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생각해요.”
순간, 무리의 균형이 깨지면서 발을 땅을 향해 걷어차거나 사방으로 침을 뱉고 욕설을 퍼붓는 등 괴상한 행동을 서슴지 않고 보였다.
예수가 ‘메시아’라는 주제를 놓고 갑론을박을 이어간 이들은 전혀 떠날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자기주장을 확고히 펴 나갔다.
예수와 관련된 논쟁이 비단 이들 뿐만이 아니었다.
저잣거리에서 삼삼오오 그룹을 지은 이들마다 예수의 신성(神性)과 메시아 진위여부를 놓고 격한 논쟁을 벌였다.
그런 가 하면, 폭력을 동반해 무력해방을 부르짖고 있는 열심당원들도 ‘갑자기 등장한 갈릴리 출신 예수가 자신들의 우두머리가 되주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 그의 초자연적 능력을 내세운다면, 로마군을 이스라엘에서 내쫓는 일은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염원(念願)는 단지 공염불(空念佛)에 지나지 않았다.
갈릴리에서 사역중인 예수는 정 반대의 길을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베다니에서
먹고 자고를 반복한 끝에 사흘 째 되던 날 나는 스알 야숩이 써준 추천서를 꺼내 다시 읽어 내렸다.
‘이봐, 친우 갑재. 예루살렘에 도착하면 잊지 말고 아리마태 출신 요셉을 꼭 찾아가시게. 그 분은 산헤드린의 공회 의원이자 나의 직속 상관이기도 하네. 또 한 그분은 아리마태 성주(城主)이기도 하고 엄청난 재력가일세. 내가 써 준 추천서를 보여드리면 매우 반가워 하실거야. 자네는 팔레스티나 땅을 처음 밟는 처지여서 현지인의 도움이 절실할 걸세. 그리고 이 분은 겉은 사두개인이지만, 실제 속은 예수를 무척 존경하고 계시네.다른 이들에게는 절대 비밀로 하시지만 나에게는 속마음을 가감 없이 털어놓으셨지. ‘예수님이야 말로 우리가 그토록 학수고대하던 메시아이시다’라고 말일세.그러한 분이니 꼭 찾아 뵙도록.’
나는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노파에게 산헤드린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물었다.
나의 질문을 귀담은 노파는 정색한 표정으로 말하기를 “나는 무식한 예편네라서 그런 것 몰라요. 정 알고 싶거든 우리 남편에게 물어봐.”
하며 큰 소리로 남편을 불렀다.
노파의 남편은 주방 옆에 설치된 나그네 휴게실에서 아람어를 구사하는 시리아 출신 무역상인들과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순간, 부인이 자신을 찾자 느린 걸음으로 주방에 왔다.
솔이 달린 튜닉을 걸친 남편은 나를 보자 반가운 채를 하며 다가와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고는 ‘숙박을 하는데 불만사항은 없느냐’고 묻고는 시선을 노파에게 돌렸다.
“마나님께서 대체 무슨 일로 나를 찾았나?”
노파가 턱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잘생긴 동방의 미남청년이 아리마태 성주이신 요셉 의원을 찾는다고 하네요.”
남편이 재빨리 말을 받았다.
“산헤드린 공회 의원이신 요셉 어른 말인가?”
노파가 다시 나에게 시선을 건네며 답했다.
“그렇다니 까요. 오늘 꼭 뵈었으면 한다면서 가는 길을 물었어요.”
남편이 나를 곁눈질 하며 말했다.
“어쩐 일로 그 어르신을 만나려 하나?”
내가 아람어로 말했다.
“인도 대학에서 동문수학(同門修學)한 유대인 출신 학우가 예루살렘에 가거든 잊지 말고 그 분을 만나 뵈라는 청을 받았습니다.그분의 명성이 이곳에서 자자하다 들었습니다만.”
남편이 흐트러진 자세를 고치고 내 곁으로 바짝 다가서며 말했다.
“요셉 어르신의 인품이야 말로 우리 집 삽살개도 인정하는 터 아닌가! 비록 그분이 사두개인이기는 하나 유대사회에서는 모두가 존경하고 있지.암, 그렇고 말고.헌데 지금 당장 무작정 가겠다는 거요?”
“사흘 간 푹 쉬었으니 오늘부터 볼일을 시작하려고요.첫번째 일은 그분을 만나 뵙는 것입니다.”
내가 완곡히 표현하자 남편이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이마에 가져갔다.
“어디 보자. 누구하고 함께 보낸 면 아리마태 성을 쉽게 찾을 수 있겠나….?”
30초 후
남편이 노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마구간을 관리하는 사무엘을 이, 젊은이에게 딸려 보내지. 말을 타고 가면 얼마 걸리지 않을 거야.”
이렇게 말한 남편은 노파를 시켜 마구간 관리인을 오도록 했다.
영문을 몰라 해하는 관리인은 비교적 젊은이였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그는 이미 안면이 있는 터라 어색하지는 않았다.
나와 동행한 말을 살피며 ‘골격이 빼어난 훌륭한 말’이라고 칭찬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내 앞에 우두커니 선 그를 향해 남편이 미주알고주알 장황설을 늘어놓으며 요셉 어르신 댁까지 동행하라고 덧붙였다.
나는 노파와 남편에게 허리를 숙여 예를 다한 뒤 마구간 관리인을 따라 나섰다.
그는 자신의 나귀 등에 올랐고 나는 인도에서부터 함께한 애마 등에 올랐다.
그는 아리마태 성까지 가는 길위에서 나에게 수많은 질문을 퍼부었다.
물론 호기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때마다 아람어를 천천히 알아듣기 쉽게 발음하며 이해를 시켰다.
그는 나와 대화를 나누며 역시 감탄사를 연발했다.
나는 요셉의 성이 시야에 드러나기 시작할 즈음 한가지 궁금증을 그에게 털어놓았다.
“혹시 예수라는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내가 묻자 그가 장난끼서린 표정으로 말했다.
“선생도 예수를 아시오? ”
“내가 말했다.
“그분을 직접 뵌 적은 없습니다.제가 이스라엘에 온 목적은 다름아닌 그 분을 뵙기 위해 섭니다.”
관리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예수라는 라바이….그 사람은 마술사요, 결혼식에서 물을 포도주로 둔갑시키고 아픈 사람 병을 낳게 했답니다. 그를 따라다니는 12명인지, 13명인지 하는 제자들은 예수를 ‘메시아’라고 부른답니다. 원 세상. 당신은 메시아가 무슨 뜻인지 알고 있소?”
내가 말했다.
“물론입니다. 구세주(救世主)이죠. 다시 말해서 ‘세상을 구원해줄 하나님이십니다.”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서 온 젊은 양반이 어찌 그리도 잘 아시나? 그렇소. 소문에는 예수가 나사렛에 사는 숫처녀의 몸을 통해 유대 땅에 왔다는 구려. 미쳐도 보통 미친개 아니지! 형씨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하나님은 우리가 믿는 야훼 하나님 단 한분이신데, 지가 야훼라니, 구라를 쳐도 어느 정도껏 해야지….이건 ‘신성모독(神聖冒瀆)’이오. 댁은 그렇게 생각치 않으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침묵하자 관리인은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예수를 만나면 조심하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나는 미소만 지었다.
우리는 그렇게 사담(私談)을 주고 받다가 아리마태 성에 도착했다.
관리인은 이 곳의 분위기를 이미 파악하고 있는 듯 성 한 켠을 차지한 대저택 입구에서 나를 향해 말했다.
“임무를 마쳤으니 나는 이만 돌아 가겠소. 부디 무사히 어르신을 만나시요.”하고는 당나귀의 고삐를 틀어 오던 길을 향해 되돌아 갔다.
나는 그에게 허리를 굽혀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 화강암 돌로 전면을 장식한 저택 입구로 다가갔다.
아리마태 성(城) 요셉
육중한 출입문이 버티고 선 입구 옆으로는 긴 회랑이 이어졌다.
말고삐를 쥐고 출입문 입구에서 두리번거리자 젊은 여성이 시선을 건네며 놀라는 시늉을 했다.
역시 그녀도 동방인은 처음 대하는 것 같았다.
때문에 놀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오히려 차분한 것 은 나였다.
나의 옷차림새는 인도에서부터 입고 온 아즈칸이었다.
고향을 떠나 올 때 가져 온 신라의 제복은 모두 헤어지거나 닳아 없어져 부득이 인도 전통의상을 입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이제는 팔레스타인에 도착했으니 머지않아 튜닉을 구해 입을 것이다.
여성은 미모가 수려하고 기풍도 당당해 보였다.
차림새는 문양(文樣)이 화려한 튜닉 차림이었다.
튜닉은 발목까지 내려왔다.
겉옷은 이집트에서 수입한 값비싼 린넨 모직이었다.
린넨은 구약시대인 3.000년 경부터 이집트에서 생산한 모직제품으로 상류층들이 즐겨 입은 옷감이었다.
그녀가 입은 린넨은 깍지벌레 알을 빻아서 추출(抽出)한 진홍색과 석류껍질을 으깨어 짜낸 즙에서 얻은 푸른색, 그리고 뿔고등에서 추출한 자주색과 샤프란 꽃 암술머리에서 짜낸 노란색으로 염색한 것이었다.
신고 있는 가죽 샌들도 저자거리에서 눈 여겨 본 그런 것과는 달라 보였다.
신발 끈에도 다양한 문양을 새긴 주황색 샌들은 그녀의 엄지발가락과 두번째 발가락 사이에 단단한 끈으로 고정돼 있었는데, 앙증맞은 발과 잘 어울렸다.
샌들위에 얹혀진 발은 깨끗했고 발톱도 가지런히 정돈돼 있었다.
사족(蛇足)으로,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기층민(基層民) 상당수는 샌들을 구입할 여력이 없어 맨발로 다니는 경우가 허다했다.
까맣고 숱이 많은 생머리는 붉은색과 주황색 푸른색을 조합해 직조한 정사각형 천으로 가렸다.
천은,뜨거운 태양열을 피하는 역할 뿐만 아니라 먼지로부터 머리카락을 보호하는 기능을 함께한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여성은 평범하지 않았다.
티끌 하나 없는 고운 피부를 지닌 여자가 나를 향해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이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아람어로.
“실례합니다. 혹시 이 댁이 산헤드린 공회 요셉 의원님 댁인가요?”
내가 요셉 운운하자 여자가 바짝 다가서며 조그만 입술을 움직였다.
“그래요. 저의 아버님 댁이예요. 그런데 손님은 누구 시죠?”
나는 경계심을 한층 더 누그러트리기 위해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초면에 이야기가 매우 깁니다만, 저는 이곳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동방의 신라라는 나라에서 왔습니다.”
“……?”
여자는, 동방은 무엇이고 신라는 또 무엇인가? 하는 눈초리였다.
나는 개의치 않고 뒷말을 이었다.
“이스라엘에 오기 전에는 인도에서 대학 공부를 했고요. 같은 대학에서 유대인이자 산헤드린에서 서기관으로 근무한 학우 스알 야숩이 추천서를 써주면서 요셉의원을 찾아 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자택을 방문한 겁니다.
내가 스알 야숩의 이름을 들먹이자 여자는 한번 더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저도 그분을 잘 알아요. 저의 아버님을 보좌한 보좌관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유학을 가겠다고 한 뒤 인도로 떠났어요. 몸바이라 했던가요?”
“그렇습니다.그 곳에서 저와 1년여 동안 함께 공부한 사이였습니다.”
스알 야숩과의 관계를 명확히 드러내자 여자는 그제서야 경계심을 늦추고 안으로 들어오라는 시늉을 했다.
대저택은 몸바이의 라비샹카 저택처럼 화려하고 규모도 웅장했다.
여자는 종종 걸음으로 긴 회랑과 파석(跛石)이 깔린 넓다 란 마당을 지나 저택 안으로 들어선 뒤 나를 안내했다.
여자를 따라 들어 선 곳은 고급스런 대청마루로 연결된 서재였다.
여자는 이곳에 놓인 의자를 가리키며 잠시만 기다리라고 양해를 구한 뒤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초로(初老)의 사내가 절제된 걸음으로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의 차림새 역시 상류층에게 어울리는 그런 복장이었다.
내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자 그가 성큼 다가서며 나의 팔을 잡고 말했다.
“내가 요셉이요.산헤드린에서 법을 담당하는 의원입니다.”
나도 즉시 신분을 밝혔다.
그러고는 품 안에 간직한 추천서를 꺼내 의원에게 건넸다.
스알 야숩이 정성을 다해 기술(記述)한 소개서였다.
얼굴에 노련함이 베인 요셉 의원은 추천서를 읽어 내리며 엷은 신음을 토해냈다.
동시에 내가 의식하지 않도록 슬쩍 곁눈질을 하기도 했다.
꼼꼼하게 추천서를 읽어 내린 요셉 의원이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스알 야숩과 동문수학(同門修學)을 했다니 더 무슨 말이 필요한가! 더욱이 모든 학문에서 으뜸이라고 소개한 자네가 아람어와 히브리어도 막힘 없이 구사하다니 이는 야훼께서 주신 축복이 아닌가….”
의원의 과찬이 쑥스러워 나는 그를 향해 연거푸 손사래를 쳤다.
그는 틈이 날 때마다 나의 외모를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셉 의원은 나의 부친 연령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수염을 길게 기르고 양쪽의 긴 머리를 새끼줄처럼 꼬아 내렸으며 솔이 주렁주렁한 모직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요셉 의원이 서재로 들어올 때 바라본 키는 큰 편이었고 체구 또한 우람했다.
의자에 기대어 앉은 모습 역시 당당해 보였다.
우람한 체격 때문일 것이다..
얼굴 피부는 노화 탓도 있겠 으나 붉은 홍조(紅潮)를 띄고 있어 평소술을 즐기는 것 같았다.
억양은 대체로 딱딱했고 느린 편이었다.
그는 아람어와 히브리어를 섞어가며 말했는데, 나의 언어 능력을 시험하느라 그리 하는 것 같았다.
대화가 점점 무르익자 요셉 의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로마의 정치가이자 문장가(文章家)인 세네카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자네가 인도에서 희랍과 로마 역사에 대해 수료(修了)했다 하니 묻는걸세..
“스승 라비샹카께서 유럽의 문사철(文/史/哲)을 전수해 주셨습니다.동시에 희랍어와 라틴어도 병행(竝行)해 공부했구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과 세네카의 ”인생론”을 청강(聽講)을 통해 숙지(熟知)하고 있습니다.”
나의 견해를 토씨 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귀담은 사두개인은 입가에 커다란 미소를 담으며 찬탄사를 연발했다.
“내가 이 때까지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동방에서 온 청년이 이토록 영명(英明)할줄이야.자네를 보니 스알 야숩이 마치 내 앞에 있는 듯 착각이 드네.그 아이도 야훼의 은총을 입어 이스라엘에서 두 손가락 안에 드는 천재인데, 자네도 그에 못지않아.”
요셉 의원은 나와 대화의 깊이가 점점 더 깊어질 수록 친밀감을 더 했다.
그는 스알 야숩의 표현대로 철저한 극우 사두개인 이었으나 한편으론 탁 트인 사고(私考)도 지니고 있었다.
나와 그의 대화가 점입가경(漸入佳境)으로 빠져들 즈음 나를 저택안으로 안내한 아가씨가 유리 쟁반에 음식을 가득 내왔다.
두 사람 곁에 다가선 여자는 다소곳한 자세로 탁자위에 차와 과일 과자를 조심스레 내려 놓고 허리를 굽혀 예를 차린 뒤 물러서려는 순간이었다..
요셉 의원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
그러고는 나에게 그녀를 소개했다.
“내 여식(女息)일세.막내 딸이야.나이는 16세.이름은 라헬일세. 집에서 내 잔심부름과 번역일을 돕고 있지. 라헬이 일찍부터 희랍어와 라틴어에 눈을 떠 지금은 수준급이네.따라서 내가 하는 일이 산헤드린의 법무(法務)여서 다양한 송사(訟事)업무를 옆에서 돕고 있네.이를테면 희랍청년이 에루살렘에서 폭력을 휘둘러 입건되면 내가 재판을 맡게 되지. 그럴 때 저 아이가 통역을 돕는 다네.”
아버지의 칭찬 때문인가 두 손을 앞으로 모은 딸이 부끄러운 표정으로 내게 시선을 드리웠다.
그녀를 의식한 내가 말했다.
“저도 입구에서 따님을 뵙고 여러모로 감복(感服)했습니다. 눈이 부실정도로 수려(秀麗)하고, 또박또박 구사하는 언어도 정제(精製)돼 예사롭지 않게 여긴 것이 사실입니다.”
내가 여자에게 느낀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자 요셉 의원이 큰소리로 껄껄거리며 말했다.
“내 여식이 정말 아름답다고 느끼시나?”
“물론입니다!”
“아름다움은 동서양이 관계없이 똑같이 느끼는 구먼. 그건 그렇고…. 자네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알고 있나?”
“스알 야숩을 통해 대충 알고 있습니다만,”
“기왕에 인연이 됐으니 소개하겠네. 산헤드린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법과 종교 기관일세.”
그는 산헤들린의 역할에 대해 상세히 기승전결(起承轉結)을 폈다.
그러고는 나를 바라보며 도 다른 질문을 던졌다.
“추천서에 자네가 천사장 가브리엘의 환영을 보았고, 그의 예시(豫示)를 좇아 예수님을 만나러 이 곳에 왔다는 데, 사실인가?”
내가 단호히 말했다.
“그렇습니다.제가 4천킬로 미터의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예루살렘에 온 것은 순전히 그 분 때문입니다.꿈에서 조차 뵙지는 못했으나 저의 가슴속에 굳건히 자리한 그 무엇이 이토록 저를 이끌고 있습니다.”
나의 가감 없는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의원은 한동안 입술을 꾹 다물고 나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볼 뿐이었다.
나 역시 상대의 시선을 맞받아내고 있었다.
짧은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
하지만 침묵은 이내 깨졌다.
의원의 딸이 과일을 푸짐하게 썰어 내왔기 때문이었다.
라헬은 두 사람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자 알듯 모를 듯 한 묘한 미소를 남기고 등을 보이며 사라졌다.
요셉이 먹음직스러운 과일을 내려다 보며 말했다.
“어여 드시게.”
그러고는 자신도 과일 한조각을 베어 물고 우물거리며 말문을 텄다.
“예수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내가 답했다.
“야숩에게 전해들은 것이 전부입니다.”
“예수님이 마술을 부려서 물을 포도주로 만들었다는 이적담을 말하는건가?”
“그렇습니다. 예수가 마술쟁이라는 것과 한편으론 갈릴리라는 이스라엘의 변방지역에서 하늘 나라 사역(使役)을 한다 기에 혹시 몽상가(夢想家)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같고 있습니다 만.”
의원이 정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수님의 정체에 대해 모르고 있는 자네가 그런 식의 평가를 할 수 있지. 충분히 이해하네. 그런데 한가지 간과하고 있는 대목이 있어요. 다름이 아니라, 그 분의 가르침이 천지창조 이후 그 누구도 하지 않았다는 것일세.희랍의 대철학자 소크라테스도 플라톤도 아리스토텔레스도 예수님의 말씀을 뛰어넘는 경구(警句)는 단 한단어도 없지.그래서 예수님의 비유말씀을 ‘하늘의 소리’라고 하는 걸세.비단 그 뿐인가! 예수님은 우주만물을 다스릴 권세(權勢)도 지니셨네. 그럼에도 완전히 무소유(無所有)일세.있으면 잡수시고,어느 누구라도 원하면 가셔서 함께 식사를 하시지. 그가 누구이건 상관하지 않으시네.그리고 한가지 더.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만능(萬能)의 힘일세. 앞서도 언급했지만, 그 분께서 마음만 먹는다면, 로마 황제도 될 수 있지.”
의원이 다소 흥분한 탓인지 목소리가 점점 커져가기 시작했다.
순간, 내가 그의 말을 자르고 끼어들었다.
“의원님께서 말씀하신 내용들이 정말 사실입니까?”
“사람하구는….자네가 알다시피 내가 누구인가,함부로 허튼 소리를 지껄여 댈 그런 인간으로 보이나?”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단지, 예수라는 분이 전지전능하다는 부분을 의심하는 겁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네. 그분에 대해 모르면 당연히 자네처럼 반응하지. 하지만 예수님의 호흡과도 같은 ‘진리’를 깨닫는 순간 그분이 진정 메시아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네.”
요셉 의원은 말로 납득하기보다는 직접 경험하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라며 ‘자네는 천재이며, 또 한 운명적으로 예수님을 모실 형제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의원이 헤어지기 직전 덧붙였다.
오늘은 자네가 묵는 여관으로 돌아가시게. 그리고 내일 일찌감치 짐을 모두 챙겨 말에 싣고 우리집으로 오시게. 내 집에 하루 이틀 머문 뒤 예수님이 사역하시는 갈릴리로 가시게. 물론 내가 추천서를 작성해 놓겠네. 그리 아시게.”
요셉 의원에게 후한 대접을 받은 나는 그와 따님인 라헬에게 인사를 하고 대저택을 나섰다.
말 잔등에 올라 하늘을 보니 저편에 커다란 무지개가 휘영청 걸려 있었다.
좋은 징조(徵兆)였다.(계속)
이산해 / 글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34 |
4번째 서한(書翰) / 조갑재의 "예수 이야기"
![]() | 이산해 | 2025.05.03 | 44 |
133 |
3번째 서한(書翰) / 조갑재의 "예수 이야기"
![]() | 이산해 | 2025.04.27 | 52 |
» |
조갑재의 "예수 이야기" 두번 째 서한(書翰)
![]() | 이산해 | 2025.04.16 | 65 |
131 |
조갑재(曹鉀材)의 "예수 이야기" 1편
![]() | 이산해 | 2025.04.05 | 115 |
130 |
하여가(何如歌)
![]() | 이산해 | 2025.03.23 | 50 |
129 |
내전(內戰)...하지만 우려할 상황은 결코 아니다.
![]() | 이산해 | 2025.03.22 | 48 |
128 |
LA 변방(邊方)에 묻힌 문장가(文章家)오연희 시인
![]() | 이산해 | 2024.12.14 | 95 |
127 |
이월난과 한강, 두 천재의 만남
![]() | 이산해 | 2024.12.04 | 149 |
126 |
미주 한국문인협회 소속 극히 일부 L,J,O,K 시인 노벨문학상 수상 자격 있다
![]() | 이산해 | 2024.11.18 | 93 |
125 |
오연희회장에게 바란다
![]() | 이산해 | 2024.11.04 | 154 |
124 |
한강과 정국희....고수(高手)끼리 만났다
![]() | 이산해 | 2024.11.01 | 83 |
123 |
미주 한국문인협회에서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다
![]() | 이산해 | 2024.10.22 | 125 |
122 |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 | 이산해 | 2024.10.15 | 77 |
121 |
제578돌 한글날 광화문과 교보문고 책방 카메라 스케치
![]() | 이산해 | 2024.10.09 | 96 |
120 |
독서인을 유혹하라
![]() | 이산해 | 2024.09.21 | 89 |
119 |
인간은 책을 만들고, 책은 인간을 만든다
![]() | 이산해 | 2024.09.08 | 163 |
118 |
세계적인 도시 서울
![]() | 이산해 | 2024.07.23 | 89 |
117 |
서울야외도서관 "책읽는 맑은냇가" 청계천 수로(水路)
![]() | 이산해 | 2024.07.13 | 110 |
116 |
장편 추리소설 "코드원" 出刊 / 이산해 作 (교보문고 / Yes24 / 알라딘 등 :ebook)
![]() | 이산해 | 2023.12.20 | 199 |
115 |
"絶唱(빼어난 詩文)" 지하철 驛舍에 내 걸린 傑作 시
![]() | 이산해 | 2023.12.16 | 1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