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8 02:49

▲사진 서울 시청 광장(겨울 축제) / 소니a7M4 카메라-소니24~70 줌 렌즈 : S1/125 f5 iso 200
13번쩨 제자(弟子)
촉(觸)의 중심부 청두(成都)로
국내성을 벗어난 조갑재는 소수의 수행원도 두지 않았다.
대무신왕이 하사한 명마 두 마리와 함께 걸었다.
몸집이 웅장하고 깃털이 붉은 적토마(赤兎馬)의 등에는 좌우에 소가죽으로 만든 바랑을 얹혔다.
물과 습기가 스며들지 않는 바랑에는 봄,여름, 가을용 바지와 위저고리, 그리고 비단으로 만든 장포와 바지, 가죽신 세 켤레를 넣어 두었다.
다른 한 켠에는 필묵(筆墨)과 흰 비단필첩(筆帖)등 기록용 문방제구(文房諸具)와, 응급시 사용할 약초와 침술도구, 그리고 왕께서 하사한 금,은괴(塊)와 한나라에서 유통되는 오수전(五銖錢)을 실었다.
요동으로 향하는 길은 산과 늪, 그리고 군사 도로가 교차하는 땅이었다.
거리는 약 600여리.
한나라와 경계를 이룬 국경에 가까워질수록 고구려 병졸들의 시선은 무거워졌다.
그들은 말없이 창을 세웠고, 조갑재는 그들 사이를 지나며 고개를 숙였다. 이 땅은 아직 고구려의 숨결이 남아 있었으나, 서쪽 바람에는 이미 한나라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한나라의 땅은 넓고, 그들의 법은 냉혹하다.
조갑재는 고구려로 귀화한 한나라 출신 대학자로부터 그들의 정치,사회제도와 문사철(文史哲), 지리 등을 숙지(熟知)한 탓에 미지(未知)의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고구려 국내성에서 중국의 촉(蜀)나라 수도 청두(成都)까지는 대략 5,200여 리(里). 걸어서 150여일.
청두로 향하는 여정(旅程)은, 국내성을 출발해 요동(遼東)
과 요서(遼西)를 거쳐 하서회랑(河西回廊),관중(關中),한중(漢中),청두(成都)로 이어진다.
20일을 걸어 요동성(城) 인근에서 처음으로 한(漢)나라 상인을 만났다. 비단을 실은 수레, 조악한 고구려 말을 흉내 내는 통역, 그리고 은화의 냉한 빛.
“고구려에서 나왔소?”
“그렇다.”
“어디로 가시는가?”
“서쪽으로, 빛을 찾아서.”
빛이라는 말 때문에 상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서쪽으로 가는 이는 드물지. 돌아오는 이는 더 드물고.”
그 말은 예언처럼 남았다.
요동을 지나 5일만에 요서에 들어섰다.
벌판으로부터 봄이 왔다.
산은 낮아지고, 길은 곧아졌다.
이는 자연의 길이 아니라 제국(帝國)이 만든 길이었다. 장성(長城)의 그림자가 땅 위에 길게 드리워졌고, 관문(關門)마다 한나라 병졸들이 창과 노(弩)를 들고 서 있었다.
관문에서 조갑재는 철저히 검사 받았다.
병졸은, 한어(漢語)발음의 지역 방언(사투리)을 구사했다.
“이름.”
“조갑재”
“소속.”
“고구려.”
병졸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그는 놀라지 않았다. 고구려 사신이나 상인은 드물지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왜 촉으로 가는가?”
“서쪽으로 가기 위해서.”
“무엇 때문에?”
“그곳에 빛이 육신이 돼 말씀이 되신 분이 계시기 때문이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의 병졸은 잠시 그를 째렸으나 통과를 허락했다.
이곳에서 조갑재는 처음으로 한나라의 군사력을 실감했다. 병졸들은 무질서하지 않았고, 교대는 정확했으며, 보급은 끊기지 않았다. 그 질서가 곧 공포였다.
조갑재는 적토마와 또 다른 애마(愛馬)와 함께 봄을 마시며 끝없이 펼쳐진 푸른 들판을 지났다.요서에서 50여 일을 걸어 화서에 들어섰다.
하서회랑은 세상의 등뼈 같았다. 북쪽에는 사막, 남쪽에는 산맥. 길은 하나뿐이었고, 그 길을 벗어나면 죽음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한나라 사람들은 다양했다.
둔전(屯田)병사, 죄를 속죄하러 온 유배인, 장사를 따라다니는 노예, 서역의 혼혈 상인.
밤마다 모닥불 옆에서는 말이 오갔다.
“고구려는 정말 춥다지?”
“한나라 황제는 천자의 자식인가?”
“서쪽 끝에는 갈릴리라는 바다가 있다는 데.”
조갑재는 대답하기도, 침묵하기도 했다. 그는 점점 말이 아닌 눈으로 세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관중 평야에 들어서자 세상은 다시 변했다. 땅은 기름졌고, 사람은 많았으며, 권력의 냄새가 짙었다. 장안은 멀리서도 보이지 않았지만, 모든 길이 그곳을 향하고 있었다.
조갑재는 장안(長安)에 머물지 않았다. 대신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중으로 향하는 길, 산을 가르는 협곡.
이곳의 병졸들은 더 날카로웠다. 반란과 도적, 그리고 촉을 경계하는 눈빛.
“청두로 가는가?”
“그렇다.”
“그곳은 땅은 비옥하나, 마음은 험하다.”
묻지도 않은 말을 병졸이 했다.
한중에서 촉으로 넘어가는 길은 험준했다. 잔도(棧道)는 절벽에 매달린 나무 길이었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깊이를 알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었다.
여기서 조갑재는 여러 번 멈춰 섰다. 두려워서 가 아니라, 돌아갈 수 없음을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촉의 관문을 지나자, 공기는 달라졌다. 습하고 따뜻했으며, 흙은 붉었다.
청두
청두는 예상보다 조용했다. 그러나 그 고요 속에는 부유함이 있었다. 물길은 정교했고, 시장에는 비단과 소금, 차가 넘쳤다.
조갑재는 성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여기까지 왔구나.”
고구려 국내성에서 청두까지 5천여 리.도보(徒步)로 140일.
그는 고구려의 신하였으나, 지금은 아무 나라에도 속하지 않은 인간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그의 여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되었다.
서쪽의 빛은 그를 부르고 있었다.
청두의 관청은 화려하지 않았다. 장안처럼 위압적이지도, 요동의 성채처럼 거칠지도 않았다. 대신 질서정연했다. 물길처럼. 촉의 도시는 물로 유지되고, 물로 다스려지고 있었다.
조갑재가 처음 만난 이는 비서랑(秘書郞) 허담이었다. 중년의 관리로, 관복은 낡았으나 때가 없었다. 그의 손에는 죽간이 아닌 수리(水利) 도면이 들려 있었다.
“고구려에서 왔다 했소?”
“그렇소.”
장윤은 놀라지 않았다. 대신 조갑재를 청두성 남쪽의 수로로 데려갔다. 이빙(李冰)의 도강언에서 이어진 물길이 도시 곳곳으로 갈라져 흐르고 있었다.
“촉은 검으로 유지되지 않소. 물로 유지되지.”
그는 말없이 물을 가리켰다.
“장안의 정치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 그러나 촉은 땅에서 올라온다. 물이 먼저 흐르고, 백성이 살고, 그 위에 법이 놓이지.”
조갑재는 고구려를 떠올렸다. 왕의 명이 곧 법이었고, 국경은 피로 지켜졌다.
“그대 나라의 왕은 강한가?”
“강합니다.”
“강한 왕은 필요하오. 그러나 오래 가려면, 강한 길이 있어야 하오.”
장윤의 말은 비판이 아니었다. 체제의 차이에 대한 관찰이었다. 조갑재는 처음으로 다스림에도 지형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비서랑 장윤이 알려준 대학자 곽인(郭隱)은 서원(書院)에 있었다. 대숲에 둘러싸인 작은 정원, 바람에 흔들리는 죽간의 소리.
대학자의 허리는 곧았고, 눈빛은 오래된 별처럼 맑았다.
그는 중국 최고의 시가집(詩歌集)인 시경(詩經)을 펼쳐 놓고 있었으나, 읽고 있지는 않았다.
조갑재는 대학자에게 추천서를 건넸다.
빠르게 추천서를 읽은 그가 말했다.
“그대는 경전을 믿소?”
“나는 경전을 의심함으로써 믿습니다.”
조갑재의 말은 도발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존의 방식이었다.
“경전이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면, 현실이 경전을 찢어야 하오.”
그날 밤, 조갑재는 지필묵을 꺼내 글을 썼다. 견문록(見聞錄)이 아닌, 질문으로 가득 찬 기록을.
사흘을 곽인의 서원에서 신세진 조갑재가 이른 아침, 차가 식어갈 무렵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은사(恩師)님의 배려를 잊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이곳에 오래 머물 수 없습니다.서쪽 바다의 항구, 인도의 소파라로 가려 합니다.”
곽인은 고개를 들었다. 놀람은 없었다. 마치 이미 예상한 질문처럼.
“바다로 가는 길은 많지만,”
그가 천천히 말했다.
“무사히 도착하는 길은 많지 않네.”
그는 일어나 서가에서 낡은 상자를 꺼냈다.
상장 안에는 말린 양피지와 먹, 얇은 자가 들어 있었다.
곽인은. 바닥에 자리를 펴고, 양피지를 펼쳐 놓았다.
그의 손은 떨리지 않았다.
“먼저,”
그는 먹을 찍어 선을 그었다.
“청두에서 남서(南西)로 내려가 야안(雅安)을 지나게. 비가 잦고 산길이 미끄럽다네. 봄철에는 산사태가 자주 일어 조심해야 해.”
선이 이어졌다.
“다두하(大渡河)를 건너 서창(西昌)으로 가게.이 구간은 토호(土豪)의 통행세가 빈번하니 밤을 피하고 낮에만 움직이게.”
조갑재는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지도는 단순한 길이 아니라 위험의 기록처럼 보였다.
대학자가 조갑재의 시선을 훔치며 덧붙였다.
“서창에서 운남(雲南)으로 꺽어 대리(大理)로 가 이곳에서 상단(商團)에 합류하게. 낮선 곳에선 혼자보다 무리가 안전하지.”
곽인은 벼루에 풀어놓은 먹에 붓을 적신 뒤 양피지로 가져가며 말했다.
“이후에는 미얀마 고원을 넘어 이리와디 강으로 내려가게. 강을 따라가면 아라칸 해안으로 닿는다.몬순(비가 집중적으로 내리는 계절풍季節風)을 피하려면 이 계절을 놓치지 말아야 하네.”
마지막으로 그는 바다를 그렸다.
파도처럼 완만한 곡선이었다.
“여기서 배를 타고 서해안 항로를 따라가면 소파라가 기다릴 걸세. 인도에서 가장 개화(開化)된 대도시일세. 로마, 페르시아, 애굽, 헬라, 중국 상인이 드나드는 항구지.”
대학자는 지도를 접어 조갑재에게 내밀었다.
“이 길을 평생 세번 오갔다.”
양피지에는 길뿐 아니라 머물 곳, 피해야 할 고개, 물이 마르는 달까지 상세히 기록됐다.
“선생님…”
조갑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합니까.”
곽인은 미소 지었다.
“길을 건너 살아 돌아오게. 그것이 가장 큰 보답이네.”
두 사람 사이로 침묵이 스쳤다.
조갑재는 마음속에 남아 있던 질문을 꺼냈다.
“선생님, 한 가지 더 여쭙고 싶습니다. 서쪽에서 들려오는 소문…갈릴리의 랍비에 대해.”
곽인의 눈빛이 바뀌었다.
학자의 호기심이 아니라, 사람의 주의가 깃들었다.
“나 역시 들었네.”
그가 말했다.
“유대의 변방(邊方)갈릴리에서 나타난 랍비라 하지. 병든 자를 고치고, 가난한 자와 식탁(食卓)을 나누며, 하나님의 나라를 말한다고.”
“그의 말은 율법(律法)을 부정합니까?”
“아닐세.”
곽인은 고개를 저었다.
“랍비는 율법을 파괴하지 않고, 그 목적을 드러낸다고 하더군. 정의(正義)를 계산으로 삼지 않고, 자비(慈悲)를 기준으로 삼는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 말을 이었다.
“겨자씨의 비유를 들고,탕자(蕩子)의 이야기를 말한다더군.”
조갑재의 가슴이 뛰었다.
“그렇다면 그는 철학자입니까?”
곽인은 웃었다.
“그보다 위험한 종류지.”
그러고는 덧붙였다.
“사유(思惟)를 이기는 삶을 보여주는 자. 논증(論證)으로 사람을 이기지 않고, 함께 살아 사람을 바꾸는 자.”
“비폭력을 말한다는 소문도 있습니다만.”
“그렇다네.”
대학자는 창밖을 보았다.
비가 그치고 있었다.
“폭력을 도덕으로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의 연쇄(連鎖)를 의미 없게 만드는 방식으로 거부한다더군.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윤리(倫理)가 아니라, 세계를 다른 방향으로 틀어버리는 선언이지.”
조갑재는 숨을 고르며 물었다.
“선생님은 갈릴리 랍비를 어떻게 보십니까.”
대학자는 잠시 침묵했다.
학자는 쉽게 결론을 말하지 않았다.
“나는 아직 판단하지 않네.다만, 이런 소문이 바닷길을 넘어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가 있겠지.”
그는 조갑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길은 지도 위에만 있지 않다네. 사람의 말(言)과 침묵 속에도 있지. 자네가 소파라로 가는 이유가 단지 학문이 아니라면, 그의 이름을 다시 만나게 될걸세.”
곽인은 양피지를 한 번 더 접어 매듭을 지어 주었다.
“이 지도를 절대 잃지 말게.그리고 혹여 그 랍비의 이야기를 더 듣게 되거든, 그가 무엇을 주장했는지가 아니라 그가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를 보게.”
조갑재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서원을 나설 때, 청두의 하늘은 맑아져 있었다.
그날 밤,
한사람의 손은 길을 그렸고, 한 사람의 입은 이름을 전했다.
그리고 조갑재는 알았다.
자신이 향하는 소파라는 단지 항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의 말들이 하나로 모이는 경계라는 것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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