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해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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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소설 / 칼럼 13번째 제자

2026.01.09 23:47

이산해 조회 수:28

▲▲스크린샷 2026-01-09 오후 5.16.20.jpeg

▲사진: 프리츠 폰 우데(Carl Fritz Von Uhde 1848~1911)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1886년 作

 

13번째 제자(弟子)

1

광문서원(廣問書院)

 

 (千年)고도(古都경주(慶州) 위치한 광문서원(廣問書院) 대대적인 마루교체 작업이 실시됐다

국가유산인 광문서원  쪽마루가 부식(腐蝕) 교체가 불가피해 졌다는 것이다.

부식된 쪽마루에는 고서(古書) 가득 채운 서고(書庫) 빼곡히 들어선 자리여서 교체작업이 시급한 것으로 진단됐다.

사안(事案)의 심각성을 인지(認知)한 경주시 문화재관리국은 쪽마루 교체작업에 소요될 지방세비를 긴급 편성했다..

()는 이와 함께 문화재 수리에 필요한 전문가를 물색, 무형문화재 출신인 고가(古家)수리 대장인(大匠人)을 선정한 뒤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시에서 공사계약을 맺은70대 중반의 대장인은 지난 50년 여간 다양한 국가 문화재를 수리 또는 신축을 해온 베테랑으로 알려졌다.

​그는 현장인 광문서원을 둘러본 뒤,  1백여  규모의 쪽마루를 교체하기 위해서는 대략 보름정도의 시공(施工)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진단하고 전통가옥수리 전문 기술자들을 동원했다.

서원의 쪽마루는 바람과 사람의 발길을 기억하고 있었다. 켜켜이 밟힌 시간은 나무의 결을 부드럽게 만들었지만, 결국 부식을 피하지는 못했다.

날카로운 햇볕이 스며든 , 서원으로 무형문화재인 대장인과 전통 기술자 열두명이 들어왔다. 공사의 시작을 알리는 낮은 망치 소리와 함께.

이들은 적게는 10년에서 오래되기는 35년이상의 노하우를 축적한 베테랑들이었다.

쪽마루 교체작업은 서원내  밖이 서고 책꽂이를 임시 보관장소인 컨테이너로 옮기고 난  시작됐다.

쪽마루는 조심스럽게, 마치 잠든 이를 깨우지 않듯 하나하나 뜯겨 나갔다.

나무를 들어 올릴 때마다 먼지와 오래된 냄새가 피어올랐다.

 

쪽마루는 참나무를 직사각형으로 반듯하게   아주까리 기름을 먹인 것이었다.

길이는 1미터30센티너비는 30센티두께는  7센티였다

나무는 오랜 기간 습기와 먼지 그리고 차광(遮光) 고루지 않은 계절풍() 절어 뒤틀리고 금이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쪽마루를 들어내는 작업은 녹녹치 않았다.

상판(上板)

깔려 있는 나무 가운데 재생(再生) 용이한 것들을 고르느라 신중을 기했기 때문이다.

수십년에 걸쳐 리페어(재생)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기술자들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난관(難關)에 부딪혔다

쪽나무를 고정시키기 위해 박은 대못이 녹이 슬어 부러지거나 나무가 여러 조각으로 파편화(破片化)되는 등 어려움에 직면했다.

이렇듯 서고 전체에 깔린 쪽마루 다수가 작업의 걸림돌이 됐다.

때문에경험이 풍부하고 노련한 기술자도 혀를 내둘렀다.

물론 문화재 또는 고가(古家) 관련된 수리(修理)  골치거리를 동반(同伴)하는 것이 사실이다.

오랜 세월 켜켜이 쌓여 온 물리적 현상이 온전 할리가 있겠는가.

아무튼 기술자들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결국 사흘만에 쪽마루를 제거했다.

쪽마루가 펼쳐 있던 자리 밑으로 음습(陰濕) 바닥이 드러났다.

바닥은 깊었고, 시야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두웠다.

그로데스크  호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을씨년스런 분위기 였다.

너무 어두운 탓에 60대의 무형문화재가 곁에선 안경을 쓴 젊은이를 가리키며 창고에서 할로겐 램프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가져 온 램프는 모두 4개였다.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흔히 사용하는 5000왓트 밝기의 할로겐 램프였다.램프를 건네 받은 대장인이 재빠른 손놀림으로 플러그를 연결하자 눈이 부실정도로 밝은 빛이 쏟아져 나왔다

대장인이 양손에 할로겐 램프를 집어 들고 바닥을 살폈다

빛을 삼킨 바닥은 온통 검은 재로 뒤덮여 있었다.

조심스레 바닥으로 내려선 기술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주변을 살피고 쪽마루 상판을 받치고 있던 수십개의 주춧돌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기존에 설치되 있던 낡은 지지대 원통 나무를 제거하고 주춧돌에  나무를 설치하기 위해서 였다.

두께 50센티가로세로 20센티 크기의 화강암(花崗巖) 정사각형으로 다듬어 고정시킨 주춧돌은 가로 세로로 3미터에 하나씩 놓여 있었다.

기술자들은 기존에 설치해 있던 원통 지지대 참나무를 모두 제거하고 길이 2미터 둘레 20센티 크기의 새나무를 주춧돌 위에 고정시키는 작업에 착수했다.

기술자들은 쪽마루를 뜯어낼 때와는 달리 재빠른 손놀림을 구사하며 일사천리로 공정(工程) 이어갔다.

특히 안경을 쓴 젊은 기술자손놀림이 빠르고 눈빛이 맑아, 선배 기술자들은 그를나무가 좋아하는 이라고 불렀다.

그는 동료 기술자들로부터 다소 먼 위치에서 주춧돌에 새 원통 지지대를 고정시키고 있었다.

헌데,얼마 지나지 않아 짧은 외마디와 함께 몸이 아래로 사라졌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광경이었다.

찢어질 듯한 비명에 화들짝 놀란 주변의 동료 기술자들이 모두 입을  벌린  황당한 표정으로 젊은이가 사라진 곳으로 재빨리 다가갔다.

대장인이 램프로 젊은이가 있던 주변을 비추자  앞에 시커먼 구덩이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마치 싱크  같았다.

대장인이 허리를 굽혀 할로겐 램프를 구덩이 안에 비추며 소리쳤다.

“이봐미스터 괜찮나?

구덩이에서 두려움에 찬 목소리가 위로 솟구쳤다.

“저는 괜찮습니다.그런데   밑에 무슨 궤짝 같은 물건이 있네요.

“뭐 궤짝이라고?

대장인이 젊은이의 얼굴에 램프를 비추며 묻자 상대가 말했다.

“그래요궤짝인  같은데 자세이는 모르겠습니다.

대장인이 말했다.

“이봐미스터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게내가 밧줄을 가져올 테니 잠깐만 기다려.

3 .

젊은이는 밧줄을 이용해 궤짝을 위로 올리고 뒤이어 밖으로 나왔다.

그는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다만 놀랐을 뿐이었다

젊은이가 구덩이에서 발견한 궤짝은 나무로 제작된 것이었다.

궤짝은 단단하기로 정평이  도토리과 상수리 나무로 정교하게 만들었다.

형태는 가로 1.5미터 세로 1미터 높이 60센티 크기였다.

기술자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지켜보는 가운데 손에 면장갑을 낀 대장인이 궤짝 뚜껑에 달라붙은 재와 먼지를 조심스레 쓸어냈다.

순간, 두껑에는 순금으로 세공(細工) 문양(文樣)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지의 시간이 동시에 다가왔다.

두껑 정 중앙 오른쪽에는 열 십자 나무에 손과 발이 박히고, 짧은 머리에 가시관을 쓴 사람 형상이 양각(陽刻)돼 있었고, 왼편에는 손바닥 크기만 한 물고기 한 마리가 새겨져 있었다.

놀랍게도 궤짝은 부식이 거의 안된 상태였다.

낯선 문양(文樣) 장식도 푸른 이끼가 끼었을   특유의 황금 빛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었다.

손에 든 할로겐 램프를 이리저리 비추며 궤짝을 살핀 대장인은 예사 물건이 아님을 직감했다.

그동안 다양한 현장에서 예상치 않은 보물(寶物)들을 발견한 경험 때문이었다.

미스테리한 궤짝에 호기심을 증폭시킨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기술자들에게 궤짝을 컨테이너로 옮길 것을 지시했다.

그러고는 즉시 삼성 갤럭시 폰을 꺼내 비밀번호를 해제한  어디론  전화를 걸었다.

3초가 지나자 상대가 반응했다.

“국장님광문서원 현장이오.

“어이쿠반장님 고생이 많지요헌데 무슨 일로....

대장인이 허리를 굽실거리며 큰소리로 말했다

“다름아니라마루를 모두 뜯어낸  아래 바닥 주춧돌에서 작업을 하다가 전혀 뜻하지 않은 궤짝을 발견했습니다.

궤짝 운운에 상대가 바짝 반응했다.

“궤짝이라... 무슨 말씀이신 ?

대장인이 소리쳤다.

“젊은 기술자 친구가 일을 하다가 구덩이에 빠졌어요그런데  구덩이에서 커다란 궤짝을 발견했고요.궤짝 두껑에는 순금으로 만든 십자 나무. 문양에 사람의 형상을 한 장식이 붙어 있네요. 그리고 한가지 더. 순금으로 만든 손바닥만한 물고기 한 마리가 마주 보고 있고요.

대장인이 순금으로 세공(細工) 십자 장식과 물고기 장식 운운하자 상대가 바짝 달아올랐다.

“여보세요반장님혹시 궤짝은 열어 보셨습니까?

대장인 펄쩍 뛰며 말했다. “무슨 말씀을… 우리가 어찌 함부로 열어볼  있겠습니까혹시나 해서 제가 궤짝을 그늘만 있는 컨테이너 한 켠에 모셔(?) 놓았습니다.

상대가 말했다.

“그럼 말입니다거기서 꼼짝 말고 그대로 계세요무엇 하나 손을 대시면 절대  됩니다제가 화급히 문화재 관리위원들을 모시게  테니 그리 아세요알았죠?

대장인은 상대가 허둥대는 모습을 상상하며 입맛을 다셨다.

​정확히 45 .

광문서원 현장에서 간단한 약식 절차를 밟은 고위 관계자는 문제의 궤짝을 경주 문화재관리국으로 옮겼다.

그러고는 궤짝은 천에 싸인 문화재관리국의 보존처리실로 옮겨졌다.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보존처리실에는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운 정적이 내려앉아 있었다.

궤짝

 

유리 너머로 문화재 전문위원들이 반원형으로 자리했고, 그들의 눈길은 모두 중앙의 작업대에 놓인 궤짝에 고정됐다.

마치 상자가 아니라, 안에 잠들어 있을 시간 자체를 바라보는 듯했다.

급전(急傳)을 듣고 달려온 8명의 보존전문위원 가운데 눈매가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외모의 50대 중반 여성위원이 궤짝에 다가섰다. 손에는 수술용 라텍스 고무 장갑을 끼고 있었다.

방금이라도 무슨 이야기를 털어놓을 것만 같은 궤짝을 노려본 여위원은 소지한 가방을 열고 커다란 돋보기를 꺼내 들었다.

안경과 카메라 렌즈를 생산하는 독일회사 자이즈 제품인 특수 돋보기였다.  

여위원은 움켜쥔 돋보기로 궤짝의 곳곳을 관찰하며 간간이 마른 침을 삼켰다.

뿐만 아니라 내뱉듯 혼잣말을 중얼거리기도 해 주위 사람들의 의아함을 자아냈다.

10분여 동안 궤짝을 살핀 여성위원이 상기된 표정으로 돋보기를 작업대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예단(豫斷)하기는 이르나, 궤짝은 아주 오래전에 제작되었어요.천년 전아니, 그보다 더 오래된, 아무튼 형태로 보건 데, 최고의 장인(匠人)이 만든 솜씨네요. 물고기를 형상(形象)화 한 좌물쇠 역시 유럽 쪽 디자인이예요.”

여위원은 덧붙여 두껑을 열기 위해서는 특수한 화공약품이 필요하다며 메모지에 약품명을 휘갈겼다.

곁에서 그녀의 일거 수 일 투족을 지켜보던 청년 인턴이 메모지를 건 네 받고 등을 보이며 사라졌다.

동시에 여위원이 작업대에서 한 발 물러서자 이번에는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는 대머리 사내가 궤짝으로 다가서며 눈빛을 쏟아냈다.

대머리 역시 이 방면의 전문가였다.

침묵하고 있는 궤짝을 주위 깊게 살핀 대머리는 어깨에 걸친 가방을 작업대에 내려놓고 그 안에서 다양한 도구를 꺼내기 시작했다.

예리한 수술용 칼을 비롯한 소형 렌치와 드라이버 면봉 등 마치 시계수리점을 연상케 하는 공구들이 스테인리스 작업대에 가지런히 놓였다.

대머리가 공구를 만지작거리는 사이 메모지를 건네 받은 인턴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여위원이 주문한 약품을 작업대에 내려 놓았다.

대머리는 오래된 궤짝을 열기 위해서는 어떤 메뉴얼을 적용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의 손놀림은 계산기처럼 움직였다.

잔뜩 긴장이 실린 주변의 시선들도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대머리는 우선 궤짝의 잠근 장치인 자물쇠를 풀기 위해 핀셋처럼 생긴 철핀과 불순물을 녹이는 제거 제 WD를 집어 들었다.

그는 스프레이 형의 불순물 제거 제를 자물쇠 구멍에 분사한 뒤 철 핀으로 잠긴 자물쇠를 풀기 시작했다.

중간크기의 붕어만한 자물쇠는 처음에는 완강했다.

절대 물리지 않겠다는 듯 철 핀을 피했다.

하지만 대머리도 노련했다.

구멍 곳곳을 건드리자 잠금 장치가 해제됐다.

자물쇠가 풀리자 누군가가 손뼉을 치기도 했다.    

다음으론 두껑을 열 차례였다.

대머리는 손바닥 크기만 한 공업용 붓에 약품을 적셔 궤짝의 두껑 가장자리를 적셨다.

한번으로는 부족한 듯 연거푸 되풀이 했다.

약품이 스며들자 궤짝이 반응했다.

과거의 시간을 허락하는 순간이었다.

궤짝의 두껑을 단단히 접하고 있던 물질이 녹아 내렸다.

순간, 대머리 곁에서 기웃거리던 전문가들이 궤짝으로 바짝 다가섰다.

대머리가 이번에는 예리한 수술용 칼을 집어 들었다.

칼날이 두껑의 결합부에 닿을 때 마다 나무가 내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침묵이 오히려 긴장을 불러왔다.

궤짝 두껑은 생각보다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접착제로 여겨지는 아교가 단단히 달라붙어 이를 제거하는데 애를 태웠다.

하지만 대머리의 노련미에 결국 천천히 아주 천천히 두껑이 들렸다.

순간,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2천년 전의 역사를 들이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뚜껑 안에는 붉은 비단천이 덮여 있었다

피륙 위에는 길이 30센티 너비 10센티 크기의 금패(金牌) 놓였다.

금패에는 선명한 간체자로 “高句麗閔中王元年 春(고구려민중왕원년 봄 44 조갑재)”라고 새겼다.

금패 한 켠에는 ‘태대형왕명출납인(太大兄王命出納人)이라 덧붙였다.

왕명출납인이라는 직책으로 보아 고위직 관료이자 귀족출신인 임에 틀림없었다.

 

금패를 읽어 내린 모두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었다.

더욱이 궤짝이 2   고구려때 유물이라는 것에 놀라움은 더욱 컸다.

궤짝이 품고 있는 신비가 더해가자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던

보존전문위원 총괄 책임자인 위원장이 입맛을 다시며 궤짝으로 다가섰다.

그는 젊은 여성 인턴이 건네주는 라텍스 고무 장갑을 황급히 끼고 붉은 색 비단을 걷어냈다.

아래에는 양피지(羊皮紙)두루마리가 정확히 열세 , 질서정연하게 나란히 놓여 있었다.

양피지는 세월을 머금은 빛을 띠고 있었다, 표면에는 금속으로 눌러 듯한 문자들의 음영(陰影) 희미하게 비쳤다. 누군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양피지라는 사실만으로도 땅의 역사에는 쉽사리 끼워 넣기 힘든 물건이었다.

아래에는 낯선 것들이 있었다. 금으로 세공한 물고기 마리. 크지는 않았지만, 비늘 하나하나가 정교하게 살아 있었고, 꼬리는 마치 물속을 가르듯 휘어 있었다. 금은 탁하지 않았고, 오히려 시간이 그것을 깊은 빛으로 만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두 마리의 물고기 옆에 붉은 비단으로 정성껏 쌓인 조각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무게가 나가는 순금이었다.

크기는 정확히 30센티미터였다.

십자 형상 위에 사람이 매달려 있었다. 팔은 양옆으로 벌어져 있었고, 고개는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몸의 윤곽은 단순했으나, 얼굴에는 고통과 체념이 동시에 새겨져 있었다. 양각으로 표현된 인물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시선을 피할 없게 만들었다. 모습이 너무나 선명했기 때문이었다.

작업대 주변이 술렁였다. “이건설명이 필요합니다.”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위원은 안경을 고쳐 쓰며 양피지의 수를 다시 세었다. 열셋.

다른 이는 십자형에 매달린 인간형상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손을 모았다가, 이내 스스로를 의식하고 급히 내렸다.

위원들의 얼굴에는 경악(驚愕)과 존경(尊敬) 동시에 드러나 있었다. 땅의 서원, 불교와 유교적 공간의 심장부에서 나온 물건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상징들이었다. 기록과, 전승을 뛰어넘은 흔적. 마치 역사의 틈새에 끼어 들어온 무한 신앙의 그림자 같았다.

누가, 이런 것을 이곳에 두었을까요.”

질문은 공중에 있었고, 아무도 쉽게 답하지 못했다.

궤짝은 다시 닫히지 않았다. 안의 물건들은 이미 열려버린 시간을 대신해, 침묵으로 모든 시선을 붙잡고 있었다.

유리 너머에서 위원이 공사중인 서원의 현장 사진을 내려다 보았다.

천년을 버틴 마루 아래,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가 묻혀 있었다는 사실이, 안의 공기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그리고 모두가 직감했다. 발견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역사 자체의 방향을 다시 묻게 질문이라는 것을.

비단을 걷어내자 드러난 첫 번째 양피지 문서는 다른 것들과 달리 붉은 실로 13 감겨 있었다.

보존위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를 보조하는 젊은 여성 인턴이 기다렸다는 듯 라텍스 고무 장갑을 끼고 숨을 고르며 조심스레 실을 풀었다. 양피지는 마치 오래 기다렸다는 , 아주 천천히 스스로 펼쳐졌다.

무비스타 독고성과 남궁원, 신성일, 허장강을 섞어놓은 듯한 얼굴인 남성 보존위원이 갓난아이를 다루 듯 조심스레 양피지를 펼쳤다.

 

갈릴리 라바이(선생)

서문은 단정한 한문 필체로 시작됐다.

그는 버림받고,외면 당하는 이들의 선생이었다. 그는 하늘나라를 말했고, 폭력을 증오했다.유대사회의 절대 기득권 층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그를 정치적으로 모함하려 했으나, 그는 오히려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는 지혜를 보여주었다. 그는 교활한 가야바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의회 소속 바리새인 서기관과, 아는 것은 많지만 정치적인 인물이었던 로마출신 유대 총독 필라투스 폰티우스의 우유부단으로 정치적 징계를 받고 인간의 대속물로 나무에 달리셨다. 그가 운명하자 사람들은 비로소 그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았다고 말했다.물론 로마 병사들 역시.

문장은 지점에서 잠시 끊겨 있었다. 그러나 공백조차 의도된 보였다. 위원들 누구도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땅의 고문헌에서 등장하지 않는 이름들과 사상들이, 너무도 정확한 문맥으로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양피지 두루마리를 양손에 펼쳐 든 보존위원은 손을 떨며 다음 줄을 읽어 내려갔다.

로마 병사들 역시 그 앞에서 흔들렸다. 명령에 따라 채찍을 들었으나, 그의 침묵은 그 어떤 외침보다 컸다. 피가 흐르는 와중에도 그는 주저하지 않았고, 눈을 든 자를 향해 연민을 보냈다. 그 순간, 병사 하나가 속삭였다고 전해진다. “이 사람은 죄인이 아니다.”’

”’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누군가는 무의식적으로 의자에 등을 기댔고, 다른 이는 손에 펜을 내려놓았다. 글은 단순한 신앙 고백이 아니었다. 전도문도, 교리서도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가직접 기록한 증언처럼 생생했다.

그는 왕이기를 거부했다. 군중이. 그를 밀어 올리려 할 때. 그는 산으로 물러났다. 그는 칼을 들지 않았고, 칼을 든 자의 끝을 경고했다. 그의 나라는 이 세상의 방식으로 세워지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양피지의 가장자리는 여러 펼쳐지고, 여러 접혔던 흔적. 누군가는 글을 읽으며 결정을 내렸고, 누군가는 이것을 지키기 위해 숨겼을 것이다. 그것이 하필 천년 서원의 마루 아래였는지는 아직 없었지만, 최소한 가지는 분명했다.

글을 이는 절박하게 전하려 하고 있었다.

서문의 마지막 문장은 다른 부분보다 글씨가 깊게 눌려 있었다.

그를 죽인 것은 로마의 못이었으나, 그를 외면한 것은 침묵이었다.

나는 그것을 기록함으로써, 침묵하지 않으려 한다.’

기록은 신화(神話), 교리(敎理)도 아니었다.

한 어부의 시선, 한 여인의 증언, 먼지 날리는 길 위에서 들은 말들이 이어졌다.

기록자는 자신을, ‘예수님의 13번째 제자라고 썼다.

조갑재(趙甲濟)

궤짝의 주인이며, 양피지의 기록자.

갈릴리 호숫가의 저녁은 유난히 고요했다.
해는 서쪽 언덕 너머로 기울고 있었고, 물결은 하루의 소란을 잊은 잔잔했다. 열 두 제자는 모닥불 둘레에 앉아 있었으나, 그날만큼은 서로 말을 아꼈다. 예수의 시선이 그들 너머, 낯선 사내에게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조갑재는 물러서 있었다.
동방의 옷차림, 바다와 사막과 산맥을 건너온 사람의 얼굴. 그는 자신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조차 믿기 어려웠다. 아람어와 히브리어를 배웠고, 수많은 소문으로만 듣던 인물을 마침내 눈앞에 두었으나, 지금의 침묵은 어떤 학문보다 무거웠다.

예수는 그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대는 곳에서 왔구나.”

음성은 크지 않았으나, 바람처럼 분명했다.
조갑재는 고개를 숙였다.

갈릴리에서 보면, 나라가 세상의 끝이라 들었습니다.”
예수의 말에 제자들 몇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동방의 끝에, 아직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땅이 있음을.”

베드로가 조심스레 물었다.
주여, 이는 누구입니까.”

예수는 대답하지 않고 조갑재에게 다가갔다. 모닥불의 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대의 나라에서는,”
예수가 물었다.
강과 산이 사람을 단련하는가.”

조갑재는 잠시 머뭇거리다 답했다.
단련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없습니다. 싸움은 선택이 아니라 운명입니다.”

예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므로 그대는 들을 있다. 힘이 무엇이며, 동시에 한계가 무엇인지.”

그는 제자들을 둘러보았다.

내가 열두를 택한 것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위함이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복음은 지파에 머물지 않는다. 나라에 머물지 않고, 시간에도 머물지 않는다.”

예수는 다시 조갑재를 보았다.
눈빛에는 연민도, 시험도 아닌, 오래된 확신이 담겨 있었다.

동방의 사람아,”
그가 말했다.
그대의 나라는 지금은 칼로 나라를 지키는 곳이다. 그러나 때가 이르면, 땅은 칼이 아닌 말씀으로 기억될 것이다.”

제자들 사이에 낮은 술렁임이 일었다.

주여,” 요한이 물었다. “ 말씀이 무슨 뜻이옵니까.”

예수는 호수를 가리켰다.
물이 오늘 여기 있으나, 바람을 따라 다른 땅으로 가듯, 또한 세대를 건너갈 것이다. 땅에서 시작된 씨앗이, 이천 해를 지나 동방의 끝에서 숲이 것이다.”

조갑재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너의 나라는,”
예수는 분명히 말했다.
지금은 제국 사이에 끼어 있다. 그러나 훗날, 하늘의 복음이 가장 깊이 뿌리내리는 땅이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름으로 울고, 노래하고, 생명을 내놓을 것이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래서 나는 그대를 부른다.
그대는 다리를 아는 자다. 산과 강과 언어와 문명을 건넜다. 말이 예루살렘에만 머물지 않게 증인이다.”

예수는 조갑재 앞에 섰다.

열둘에 더하여,”
그가 말했다.
나는 그대를 받아들인다. 숫자가 아니라, 시간 때문이다.”

조갑재는 무릎을 꿇었다.
그의 이마가 땅에 닿았고, 오랜 여정이 순간 하나의 뜻으로 모였다.

나는 그대에게 왕좌를 약속하지 않는다.”
예수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박해와 침묵과 기다림을 약속한다.”

조갑재는 떨리는 음성으로 답했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그날 , 갈릴리의 별은 유난히 또렷했다.
제자들은 아직 알지 못했다.
동방의 끝나라가, 훗날 수많은 종소리와 기도로 하늘을 울리게 되리라는 것을.

그러나 예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열셋째 자리를 비워 두었다. 시간을 건너 올 한 사람을 위해서.

문장이 멈추자 전문위원 가운데 82로 가르마를 탄 50대 중반의 사내가 무릎을 꿇었다.

겹쳐진 두 손을 이마에 갖다 댄 그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주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돌발적인 행동을 바라보는 위원들 역시 경건한 분위기로 변했다.

무신론자(無神論者)도 이 순간은 흔들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양피지는 다른 말도 했다.

예수님은 스스로 왕이라 부르지 않으셨다. 하지만 우리가 그 분 앞에 서면, 마치 하늘이 낮아진 느낌이었다. 수많은 기적을 행하신 그분은 기적보다 침묵이 많으셨고, 분노보다 연민이 앞선 분이셨다.”

양피지의 기록에서 무엇보다 놀라운 대목은 따로 있었다.

(예수님)의 말은 서쪽으로도, 동쪽으로도 전해질 것이다.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고, 언젠가는 서원에 묻힐 것이다.”

모두의 시선이 궤짝을 향했다.

경주의 고택, 쪽마루 아래 구덩이.

두터운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사내 위원이 턱으로 양피지 문서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발견이 아니라, 도착이군요.”

바람이 건물 창문을 스치며 지나갔다.

마치 오래전 갈릴리의 목소리가 마침내 동쪽 끝에서 숨을 고르는 것처럼.

양피지 문서는 단순한 종교서가 아니었다.

13번째 제자라고 한 저자 조갑재는 예수의 행적을 전기(傳記)처럼 기록하면서도, 유교(儒敎)적 덕목(德目)과 불교적 자비(慈悲)를 가교(架橋)삼아 해석을 덧붙였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신을 하늘의 아들이라 했으나, 권좌를 탐하지 않으셨다.”

또 예수님은 침묵은 비겁이 아니라, 폭력에 대한 최후의 저항임을 깨우쳐 주셨다.”고 첨언(添言)했다.

그런 가 하면, 또 다른 행간(行間)에는 강한 법()은 약자를 보호할 때 빛난다고 썼다.     

양피지의 해설을 귀담고 있던 누군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것은 유물의 발견이 아니었다. 증언의 귀환이었다. 그리고 열세 개의 양피지 번째는, 이미 나머지 열둘이 결코 가볍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예고하고 있었다.

양피지 기록에 함몰(陷沒)돼 연신 감탄사를 자아낸 위원들이 잠시 조갑재로부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이들은 저마다 작업대에 허리를 기댄 채 서로를 곁눈질하며 물었다.

희귀한 이 문서가 어찌해서 신라(新羅)의 고택(古宅:현재는 서원)숨겨졌는지를 추리(推理)했다.

위원들 저마다 뒤엉킨 견해로 갑론을박이 지속되다 결론은 하나로 귀결(歸結)됐다.

고구려 출신 조갑재의 후손이 자국(自國)이 망하자 조상의 궤짝과 함께 신라로 망명한 뒤 자신의 저택 마루 아래 구덩이를 깊게 파고 감춘 것으로 매듭지었다.

한편. 광문서원의 쪽마루 교체 작업은 성공리에 끝났다.

궤짝이 발견된 구덩이는 재와 찰흙으로 다시 메워졌지만,양피지 문서의 말씀은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옮겨졌다.

예수를 나무에 매달아 못박았던 로마는 3백년여 만에 그를 진정한 성령(聖靈)삼위일체(三位一體)로 공식화 했다.

자신들의 말아래에 뭉갰던 일개 나사렛 출신 라아비가 아닌, 하나님으로 아들로 받든 것이었다.

성전(헤롯)을 허물라. 내가 사흘안에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다.”

고구려에서 무려 12.000킬로미터 거리인 팔레스타인 내 갈릴리에서 시작된 예수의 복음(福音)’이 압록(鴨綠)을 건너 경주(慶州)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은. 그 누구의 공식 연대기(年代記)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다만, 고구려의 밤, 국내성(國內城)내 환도산(丸都山)바람속에서 한 문장(文章)이 오래도록 맴돌았을 것이다.

침묵으로 세상을 흔든 이가 있었다.”

양피를 꼬아 만든 끈으로 가장자리를 촘촘하게 묶은 양피지는 권당 1백페이지 분량이었다.

책의 크기는 오늘 날의 A4 용지만  했고 글은 모두 갈색 양피지에 작고 일정한 붓글씨로  내렸다.

특이한 것은  13권 모두 한자(漢字) 기록했고여백을 둔 공간에 히브리어로 번역해 첨가(添加)했다.

궤짝속의 내용물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문화재 보존전문위원들은 여전히 신음만 토해냈다. 경이로움 때문이었다

양피지에 반듯하게 쓰인 한자(漢字) 해석이 가능한데난생처음 대하는 히브리어는 도무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그림 같기도  글씨체는 해석이 불가능해  방면의 전문가를 신속히 접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다행히 경주와 가까운 부산에서 과거 이스라엘 유학을 통해 히브리어와 아람어를 마스터한 교회 목사를 초청할 수 있었다.

그런 가 하면, 문제의 궤짝이 엄청난 보물임을 인지한 문화재 국장은 서울로 전화를 걸었다

그는 눈앞에 펼쳐진 현재 상황을 피력(披瀝)하고 종교와 이스라엘 역사에 해박한 박사들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궤짝을 두고 여전히 흥분 상태인 보존위원들은 궤짝에서 들어낸 13개의 양피지 문서와 부장물품들을 다시 제자리에 넣어 밀봉한 뒤 습기제거용 안전금고로 옮겼다.

한편, 광문서원 현장에서 궤짝을 발견한 기술자들도그 속에 엄청난 보물이 담겨있다는 전언(傳言) 듣고 서로가 자신들의 일처럼 기뻐했다.

특히 구덩이에 빠졌던 안경  젊은 기술자는 기쁨을 더욱 배가(倍加)시켰다.

마치 팔레스타인에 위치한 와디 쿰란 동굴에서 양치기 소년이 파피루스 문서(사해문서(死海文書구약사본)를 발견한 것처럼.(계속)

 이산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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