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파트너

2002.11.17 04:09

조정희 조회 수:812 추천:77

제대로 잘 만났구나,라는 생각이 든 것은 엘에이를 떠나던 날, 아침 공항에서였다. 여행사 직원이 비행기 표를 건네주면서 내게 지나 박을 소개했다. 그녀의 소박한 차림새와 얼굴하며 몸 전체에서 흐르는 푸근한 분위기에 나는 일단 안심했다. 소리 없이 웃고 있는 눈가와 입매는 그녀의 너그러운 성품을 말해 주는 것이라 믿었다.
비록 여행사를 통한 길떠남이라 할지라도, 여자 혼자서 해외여행을 시도하려면 여간한 대담성이 없이는 할 수 없다. 특히 밤을 지내야 하는 며칠간의 여행에서 2인 1실의 방을 정하는데 룸메이트는 같은 여자이어야 함은 물론이고, 서로 어울릴 수 있고 통할 수 있어야 좋은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에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를 만나면 돈 들여 고생하며 사람 단련까지 해야 하는 고행길이 되고 마는 것을 알기에, 혼자 길 떠나는 것을 나는 많이 주저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동반자를 정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여행사로 가느냐는 나중 문제다. 먼저 가고 싶은 나라를 정하고, 그리로 향하는 관광단에 혼자 가는 여자가 있는지 알아봐야 했다.
"네, 50대 초반인 여성 한 분이 예약을 했습니다." 담당자의 이 말 한마디로 일본 완주 여행을 결정 내렸다. 도쿄에서 출발해 하코네, 교토, 나라, 오사카, 고베, 벳부와 아소산을 거쳐 후쿠오카까지 다녀오는 여정이니 천 이삼백 킬로는 족히 되는 꽤 강행군이 될 여정이었다. 말이 일본 완주지, 홋카이도는 빼고 혼슈와 규슈의 큰 도시만 거쳐가는 수박 겉 핥기 식의 여행인 셈이다.
왜 하필이면 일본일까? 한국과 인접한 나라이지만 뭔가 많이 다른 곳, 역사적으로 한국으로서는 맺힌 한이 끝까지 풀릴 것 같지 않은 나라, 그러면서도 많은 학자나 지성인들이 이르기를 한인이 가장 배워야 할 점들을 지녔다는 결코 곱게 봐지지 않는 나라, 일본을 오래 전부터 나는 가보고 싶었다. 가보고 알아야 계속 미워하든가 본받든가 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언제고 형편이 되면 일본을 꼭 다녀오리라 생각했었다. 일본을 아는 일은 남편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아니 그가 왜 그다지 일본 여성에게 집착하는지 알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늘 내 머릿속을 지배했기 때문일 게다.

남편은 일본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호의를 갖고 있다. 일본 국민들의 질서의식 내지 깨끗하고 청결한 문화, 어쩌다 엘에이 다운타운에 있는 리틀 도쿄를 들르면 그들의 상품 전시나 세일즈 매너에 그는 홀딱 넘어가곤 한다. 특히 그 나라 여자들의 다소곳하고 애교 넘치는 여성다움은 숭배의 대상이 되기까지 한다나. 조용조용하면서도 리듬 있게 말하는 일본 여자들의 말씨가 나오는 TV 화면 앞에선 늘 혼이 빠져 있다. 한 마디도 못 알아듣고 이해 못하는 주제에 여자는 모름지기 저래야 한다는 신념 비슷한 것을 내비치곤 했다.
좋아하는 것까지는 용납이 되는데, 사사건건 한국 여자를 빗대어 비교하는 데는 정말 참기 어려웠고 나로선 몹시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한국 여자는 상냥한 구석이 없어! 게다가 목소리는 왜 그렇게 큰지' 툭하면 '일본 여자처럼 나긋나긋한 데가 있어야 하는데, 드세긴 어디서 그런 기가 뻗치는지…' 마치 일본 여자와 살지 못하는 것이 평생의 한이라도 되는 것처럼 남편은 씹고 되씹었다. 내게 대놓고 무뚝뚝한 여자라거나 목소리 큰 여편네라는 소리를 할 수 없으니, 그런 식으로 공연히 '한국 여자'를 들먹이는 것인 줄 나는 알고 있다.
저 남자가 정말 일본 여성을 사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무튼 남편의 일본과 그 나라 여자들에 대한 극찬이 나 혼자 여행 떠날 결심을 하게 만든 것이다. 일본 여자들의 진정한 마음이 그들의 언행에 나타나는 것인지 알고 싶기도 했다. 하나 그런 것들은 다 작은 구실일 뿐이다. 그냥 혼자서 떠나고 싶었다. 남편이 없는 곳으로.

그의 일본 여자 찬양론은 내겐 비웃음의 대상일 뿐이었다. '지가 일본 여자랑 살아봤나? 어떻게 그리 잘 알어, 그래 내가 네 앞에서 사라져 줄 테니, 일본 게이샤 데려다 잘 살아봐라! 한 번 크게 다칠 때가 있을 테니…' 소리 없이 속마음을 내뱉자니, 늘 분통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시간이 흐르면 잊기도 하면서 화내고 삭이기를 그네 줄이 왔다갔다하듯이 사는 삶.
당신은 집안일을 도와주지 않는 남자다. 여자는 일인 몇 역을 해야 만족하겠느냐? 나가면 회사 일에 묻힌 사무원이고, 집에 들어오면 청소와 밥짓는 일, 빨랫감 등이 기다리고 있어 쉼 없이 일해봤자 표도 나지 않고 끝도 없는 일, 당신과 좀 나눠하면 안돼?! 남편은 지지 않고 받아낸다. 더 기세가 등등해서 목청을 한층 돋운다. 너는 남편의 위신을 한번이나 세워준 때가 있느냐? 세워주긴 고사하고 깎아내리지 못 해 안달이지. 남편의 마음을 전혀 헤아릴 줄 모르는 여자, 한마디로 넌 건방져! 일본 여자처럼 곱살맞게 굴어도 모르겠는데, 뻣뻣하긴 쇠심보다 더 하다니까.
나를 알아달라는 악다구니는 서로 한치도 지지 않았다. 자신을 상대에게 주입시키려는 미련한 욕망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커졌다. 이젠 쉽게 허물어뜨릴 수 없고, 좁은 문조차 낼 수 없는 두터운 담벼락이 서로를 답답하게 누르고 있다.
친정 부모님이나 형제들은 내가 속을 드러내 보일 때마다 '부부싸움 칼로 물 베기지. 많이 싸워야 정 드는 법이야.'라면서 전혀 내 심중을 이해하지 못했다. 친구들도 그냥 재미삼아 하는 아내의 남편 흉보기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그러니 자연 우리 부부에 관해서는 아무런 말이나 겉으로 내색할 수 없게 되었다. 바깥으로 보이는 나와 남편은 열심히 맞벌이하는 부부, 돈을 버느라 아이도 안 낳고 사는 사람들로 인식됐다.
아주 사소한 일로도 의견일치를 볼 수 없는 우리 부부는 결혼 초부터 으르렁거렸다. 집안 어른의 소개로 만나서 서로를 알 충분한 시간적인 여유도 없이 서둘러 결혼을 해서 그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 지붕 아래 살지만, 밥도 같이 잘 먹지 않는 남편과 아내, 서재 남자와 침실 여자로 지낸 지 벌써 칠년, 민수연이 백수연으로 된 세월도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부부다.
이런 식으로라도 갈라서지 않고 사는 게 상책일까. 남편의 생각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내 생각엔 두 가지 확실한 사실을 알기에 오늘까지 이혼을 감행하지 않았다.
첫째는 이혼하는 딸의 아픔을 바라볼 부모님을 대하는 게 두려워서고, 둘째는 다른 남자를 만난다고 특별히 지금의 남편과 다를까 하는 전반적인 남자에 대한 불신에서다. 그렇다면 혼자 사는 것보다는 그래도 모양새나마 갖춘 부부로 남아 있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이다.
결혼했으면 아이 먼저 갖는 게 순서지. 도리어 집은 나중에 장만해도 돼.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임신해야지. 초산이 너무 늦으면 어려움이 많아.
집을 먼저 사고 난 후에 아이 계획을 하겠다는 내게 친정 엄마는 늘 아이 먼저 낳으라고 걱정했다. 그런 식의 걱정이 몇 년 전부터는 산부인과 진찰을 받으라고 성화다. 백서방인지, 아니면 네 탓인지 알아봐야 할 게 아니니? 결혼해서 오년이 넘도록 애가 없는 것은 분명히 뭐가 잘못 됐지. 어서 가서 검사를 해 봐!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버렸다. 전에 내가 우리 부부의 해결되지 않는 언쟁을 얘기했을 때 엄마가 '부부싸움 할수록 정들어.'라고 귀 넘어 들었듯이. 내겐 이상 없어요. 섹스도 제대로 하지 않는 부부에게 임신이라고, 애를 못 배는 것이 당연한데 의사는 왜 찾아가?
시간이 흘러 달이 가고 햇수가 거듭될수록 남편과의 사이는 점점 더 멀어졌다. 보기 싫어하거나 증오하는 감정은 그래도 가까운 거리임을 알았다. 최소한의 배려와 통하는 감정이니까. 내가 무엇을 하든, 남편이 어떻게 시간을 보내든 서로 관여를 하지 않는 단계. 차라리 남남끼리 방을 나눠 쓰는 룸메이트라도 들어오고 나가는 시간쯤은 알리고 지내지 않는가.
고정된 시간에 출근해서 정해진 일을 하다가 똑같은 시간에 퇴근을 하는 남편은 저녁에 친구들과 어울려 한 잔 걸치는 경우도 없었다. 집하고 사무실을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던 남편이 얼마 전부터 골프에 맛을 들였다.
새 골프채와 구두가 현관이나 거실 구석에 놓인 것을 보았다. 전신이 보이는 거울 앞에서 스윙 연습을 하는 그의 모습은 내게 오히려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사람이 아니고 로봇을 연상하게 하던 무표정한 태도와 꽉 다문 남편의 입은 나의 숨을 꽉 조이곤 했는데, 전혀 예상 밖의 골프채를 휘두르는 그의 행동은 차라리 내 숨통을 터 주었다.
주말마다 집에 없었다. 그것도 새벽부터 나갔고, 해가 긴 여름에는 두 번을 도는지 늦은 저녁에 집에 돌아와 서재에 들어가곤 했다.
차고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와 샤워장의 물을 트는 소리로 사람이 들어왔구나 감지했다. 언제나 내가 먼저 출근을 하는 아침에는 그가 아내의 외출을 느끼겠지. 우린 그렇게 살았다. 꽤 오랫동안 그러면서도 밖으로는 문제 없는 부부인 양 아무 내색도 하지 않으면서…
그에게나 나에게 오직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은 삶의 시간들을 이런 식으로 삭제해 나가도 되는지 회의가 들던 어느 날 오후였다. 삼십이 넘어서도 결혼을 하지 않은 내 막내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누나, 지난 토요일에 리버릿지 골프장에서 나 매형 봤어. 근데 어떤 여자하고 치던데…"
"그래 아는 척했니?"
"내가 어떻게 아는 척을 해? 이 근처도 아니고 그렇게 먼 곳에 가서 누나 아닌 다른 여자와 골프 친다. 누나네 결혼생활 문제 있는 거지? 먼저 결혼한 사람들이 이 모양이니 내가 어떻게 믿고 결혼을 하겠어?" 동생은 자신이 늦도록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이 마치 내 책임이라도 되는 것처럼 핑계 댔다.
그런 전화를 받고도 별다른 느낌이 없으면 문제가 있어도 큰 문젠데, 나는 그저 무덤덤했다. 이웃이나 나이 찬 사람에게 데이트 상대가 생겼다는 말을 듣는 것만큼이나 감흥이 없었다. 단지, 이 생각은 들었다. 그 여자는 일본 여자처럼 상냥하고 애교가 많을까.

"지나씨, 식사가 나오는데 드시겠어요?"
비행기가 공중을 나는 요란한 소음 속에서도 그녀는 잠을 잘 잤다. 첫번 나오는 기내 식사도 거르고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일도 없이, 그렇다고 책을 읽지도 않고 처음부터 담요를 뒤집어쓰고 잠을 자기 시작했다.
엘에이 땅을 이륙해 일곱 시간이 지났으니 세 시간만 더 가면 도쿄에 도착한다. 그 오랫동안 나와 지나는 서로 엘에이 공항에서 통성명을 한 것 외에는 별다른 말을 나누지 못했다. 웅크렸던 몸을 펴기라도 할 듯이 그녀는 기지개를 크게 했다. 두 팔을 위로 쭉 뻗으며 일어나 상반신을 좌우로 흔들었다. 자그마한 몸집이라 좁은 공간에서도 불편 없이 움직였다. 비행기 여행을 많이 해본 익숙한 태도다.
"거의 다 왔지요? 지금 몇 시쯤 됐어요? 엘에이 시간으로… 이젠 나이가 있어서 비행기 오래 못 타겠어요. 아주 힘들어요. 그래도 오늘은 잠을 잘 잤으니, 일본에 가서는 거뜬하겠지. 참, 몇 살쯤 됐어요? 나보다 많이 어려 보이는데… 내 이름 부르지 말고 언니라 하든가, 아니면 형님이라고 불러요."
"다음 달이면, 저는 꼭 마흔이 됩니다. 하지만, 형님이라 부르기엔 좀 어색하지 않아요?"
"어색하긴 뭐가 어색해? 나보다 십 년도 훨씬 아랜데…"
그녀는 당장에 말투를 바꾸면서 연장자로서의 위엄을 드러내며, 그에 따른 마땅한 대우를 눈빛에 힘을 주어 내게 강요했다. 첫 인상에서 풍기던 조용하고 다정함과는 다른 면모다.
나리타 공항에 내리자마자 엘에이에서 느껴 보지 못했던 열기가 온몸으로 전해왔다.
입고 온 옷이 엘에이 기온에 맞춰 입었기에 못 견딜 정도로 더웠다. 지나는 카디건 재킷을 벗고 금새 소매 짧은 셔츠의 시원한 차림이 됐으나, 나는 안에 소매 없는 셔츠를 입고 그 위에 두꺼운 재킷을 입어서 벗기에는 마땅치 않았다.
"여긴 왜 이렇게 덥지요? 정말 찌는군요."
"그러니 일본 열도지. 우리가 사는 남가주의 사막 기후와는 다를걸."
입국 수속을 하는 한 시간 남짓 땀깨나 흘렸다. 미국 시민권자를 위한 줄은 그다지 길지 않고 복잡하지 않아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았지만 다른 관광객들을 기다리느라 한참 걸렸다. 출구로 나와보니 여행사에서 나온 가이드 신호철이 피킷을 들고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이드는 살집이 꽤 좋은 편에 속하는 몸이라 날렵하게 움직일 수는 없을 것같으나, 너그럽고 맘 좋은 인상이 며칠간 믿고 따를 수 있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 두세 명의 관광단이 타기에는 비좁은 미니 버스를 끌고 나왔다. 사람들은 그런 대로 좁혀 앉으면 되는데 한 사람이 적어도 한 개 내지 두 개씩 들고 온 짐들이 문제였다. 그 가운데 육십이 훨씬 넘어 뵈는 한 부부는 마치 이민 오는 사람들처럼 커다란 짐 두 개씩에다 작은 손가방 하나씩을 더 들어 그 사람들의 짐만 해도 여섯 개나 됐다.
"이봐, 가이드, 사람이 몇인데 이렇게 작은 버스를 준비했어?"
늙어가면서 지혜와 덕이 붙은 얼굴이 아니라 세월의 욕심과 묵은 이기심만이 덕지덕지 붙은 것같이 볼퉁이에 살이 늘어져 있는 짐 많은 노부부가 다짜고짜 반말로 나왔다.
"네, 어르신, 저는 이렇게 짐이 많은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뉴욕에서 오신 여행객들이 합류를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오후만 참으시면 내일은 큰 버스를 마련하겠습니다."
가이드 신호철은 미안함이 가득 찬 음성으로 설명을 했다. 마이크를 통해 나오는 그의 목소리는 또박또박 내용 전달이 잘 됐다. 호텔에 들어가기 전까지 도쿄 시내 관광과 전체적인 스케줄을 자세히 설명했다. 첫 방문지 황궁을 향해 가는 도중에 버스 안에서 언쟁이 붙었다. 짐을 많이 갖고 온 김 부부와 연령이 비슷하든가 아니면 몇 살쯤 위로 보이는 뉴욕에서 온 최 부부 사이에 붙은 말싸움이다.
"여행을 많이 다녀 보시지 못했나 보죠." 최 부인의 말.
"아니요, 우린 해마다 해외에 나가지 않으면 좀이 쑤셔요. 작년엔 동구라파에 다녀왔어요. 일본만 해도 이번이 세 번짼 걸요." 김 부인의 대답.
"그런데 이렇게 짐을 많이 갖고 다녀요? 여행길의 무거운 짐은 고역인데. 짐은 가볍게 옷차림도 간단히, 여행의 필수 조건인 걸… 며칠간 고생 좀 하겠습니다. 젊은 나이도 아닌데…"
"남이야, 짐을 많이 갖고 여행을 하건 말건 무슨 상관이요? 내 돈 들여 길 떠났는데. 별 재수 없는 인간 다 만났네… 여보, 대꾸하지마!"
꽤 큰 싸움으로 번질 조짐이 보였는데, 신호철이 삼십 초반의 나이로는 생각해내기 어려운 기지를 발휘해 그들의 마음을 진정시켰다. 잘난척하는 양쪽 다 말을 할 수 없게 대화의 막을 치는 솜씨가 이런 일을 한 두 번 겪은 게 아닌 모양이다.
"지나씨." 그녀는 두 눈을 감은 채 팔짱을 끼고 잠들어 있는 듯하더니, 내가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약간 화가 난 듯한 음성으로 "그래두, 또. 이름 부르지 말고 언니나 형님이라고 했잖아! 미스 백인가, 아니면 미세스인가?"
"아직은 미세습니다. 그런데 저 양반들은 무슨 목적으로 여행을 하기에 저렇듯 짐들이 많을까요?" 나는 혹시 들을까 봐 한껏 목소리를 낮추어 거의 그녀의 귀에 대고 물었다.
"아마 보따리 장사하는 모양이지. 한국과 중국 들락거리면서… 근데, 아직 미세스라니 무슨 뜻이야?"
"아직은 누구의 아내로 있다 말입니다. 그런데, 언니는 혼자 사세요?"
"그럼 멀지 않은 장래에 독신이라도 된다는 얘긴가?"
"그럴 수도 있겠죠. 제 얘긴 오늘밤 호텔에 들어가서 말할게요. 언니도 그 연령에 혼자 여행하는 것 좀 이상하잖아요?"
첫날 도쿄 시내 구경은 심신이 피곤한 탓에 좋은 줄 모르고 따라다녔다. 열 시간 넘는 비행에 오는 도중 상공에서 밤을 잃어버리고 다음날 새벽으로 밝아 버렸으니 하루를 꼬박 새운 셈이다. 지나가 왜 그렇게 비행기 안에서 먹지도 듣지도 보지도 않고 잠만 잤는지 이제야 알 것같았다. 그녀는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여기저기 잘도 살폈으며, 언제나 신호철 옆에서 열심히 설명을 들었다. 오십 중반의 나이, 믿기지 않는 젊음이고 열정이다. 나도 십년 후에 저런 모습과 에너지를 간직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우리 일행은 저녁 여덟 시가 넘어서야 선샤인 프린스 호텔에 들 수 있었다. 참으로 길고 먼 하루였다. 호텔은 제법 아늑하고 깨끗했다. 미국에 비해 화장실이나 방이 좁은 게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땅도 작고, 원래 축소지향주의인 일본인들의 취향을 알만도 할 것 같았다.
시간이 달라져서인지 몸이 몹시 피로하고 눈이 아파 왔으나 쉽게 잠이 올 것같지 않았다. 내일 아침 식사 시간이 7시며, 다음 행선지로의 출발은 8시 30분이라니 잠은 자둬야 할 것같기에 침대에 누웠다. 지나도 옆 침대 위에 길게 누워 TV 채널을 여기저기 돌렸다.
"일본말 좀 아세요?"
"아니, 하나도 몰라."
"근데 꼭 아는 사람처럼 보여요." 모르는 것도 아는 것처럼 보이는 처세, 그녀만이 같고 있는 장기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마워요. 당신이 이번 여행길에 없었다면, 일본에 올 수 없었을 겁니다. 일주일간 저의 좋은 파트너가 돼 주세요. 나는 속으로 말했다.
"억지로 잠들려고 하지마. TV를 보든가, 얘기를 하다가 저절로 잠이 올 때 자도록 해. 그게 숙면을 취하는 방법의 하나야. 참, 아까 버스에서 하다가 만 얘기 계속하지."
"저는 그냥 눈감고 있고 싶어요. 언니 얘기나 좀 들려주세요. 알고 싶고 듣고 싶은데."
지나의 얘기는 마치 잠들고 싶어하는 어린애 옆에서 책을 읽어주듯 쉽게 술술 흘러나왔다.
'나는 연하 남자와 살고 있어. 그것도 나보다 다섯 살이나 아래인 사람하구. 연애할 때 주변이 다 떠들썩했지. 남편 인물이 아주 잘났거든. 지금도 여자들은 그 남자를 그냥 놔두질 않아. 근데, 보다시피 난 뭐 잘난 데가 있어? 키도 작고 몸집이 없어놔서 별로 눈에 띄질 않았는데 유독 그 남자만이 나에게 죽고 못 살만큼 반한 거야.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여자라는 거야. 사랑스럽고… 처음엔 나도 그의 눈에 뭐가 씌어서 그렇다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열정적으로 내게 다가오니 나도 그만 그에게 빠져버렸지.
한순간도 없으면 못 살 것처럼 말이야. 양가 부모들의 반대, 특히 남편 쪽의 부모는 펄펄 뛸 정도의 반대였지만 우린 결혼을 감행했지. 허락 안 해주면 그냥 둘이 나가서 살림부터 차릴 거라며 협박까지 쳤지.
그 요란을 떨면서 결혼을 했는데, 아이가 생기지 않는 거야. 결혼해서, 한 오년간은 기다리지도 않았어. 둘이서만도 충분히 재미있었거든. 나와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주위에서 더 야단인 거야. 남편 나이는 괜찮지만, 여자는 워낙 늦게 결혼해서 초산이 너무 늦어진다며 시부모는 혼인한 지 몇 달도 안 돼서 한약을 먹인다, 어디에 용한 의사가 있다, 온갖 정보는 다 내놓는 거야. 그렇지만 나는 끄떡도 하지 않았어. 물론 사온 한약은 먹는 척 시늉만 했지 다 버렸거든. 그때 생각엔 시커먼 물이 꼭 사약 같았어. 나중에 기다려도 임신이 안 되니까, 내가 혹시 그때 보약을 소홀히 취급해 벌을 받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 결혼생활 십년까지 아이가 생기지 않자, 나 자신도 초조해졌어. 혼인을 늦게 한 탓으로 난 벌써 마흔 한 살이었거든. 그래서 혼자 산부인과를 찾아가 정밀검사를 했지. 근데 아무 이상이 없다는 거야. 자궁이 좀 약한 것같지만, 그런 경우도 많이들 정상 임신을 한다면서 남편을 데리고 오라는 거야.
"여보, 당신 내키지 않겠지만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봐요? 난, 아무 이상이 없다니…"
"관둬. 나는 아이 없이도 행복해. 지금 이 나이에 아기 나서 언제 키우고 교육시켜?"
"왜요? 내가 늦어서 그렇지, 당신이야 이제 삼십 중반인데… 빨리 가서 검사해 봐요."
"글쎄 싫다니까 그러네. 정 아기 원하면 입양해서 키우면 될 거 아니야?"
남편은 강경했다. 나는 속으로 감격했어. 이 남자가 아직도 나만을 지극히 사랑하고 있구나. 나는 참으로 복도 많은 여자다. 어떻게 하든 남편에게 충성을 다해야지.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사랑해줘야지 생각했어. 나도 참 바보 같지?
결혼 초부터 그토록 졸라대던 시어머니가 어느 때부턴지 모르게 내게 아이 낳는 얘기를 하지 않았거든. 어느 날 갑자기, 시어머니 입에 달고 살던 애 낳는 타령이 없어졌어. 마음에 섬뜩한 느낌이 들었어. 포기했다 하기에는 어딘지 심상치 않은 구석이 있을 뿐만 아니라, 너무 쉽게 그 집착을 접었다는 생각이 들더란 말이야.
나는 다시 한 번 남편을 졸랐어. 그때는 좀 더 강한 의도를 갖고 병원에 먼저 전화 걸어 예약부터 해 놨거든. 내가 운전해서 가려고 남편에게 타라고 야단을 했지. 그랬더니 벌컥 화를 내면서 싫다는데 왜 이리 극성을 부리냐고, 난 검사해 볼 필요 없어. 지극히 정상인 사람 병신 취급할 거야? 남편은 내 차가 아니고 자기 차를 몰고 화닥닥 집을 나가버렸어
처음 보는 그의 모습이었어. 이 일이 정말 그렇게 화를 낼 일일까 생각했지. 난 남편의 행동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즉시 시부모의 집으로 달려갔어. 며느리로서 박씨 집안 자식을 낳아야겠다는 분명한 의도도 밝히고 남편의 생각을 돌리는 데 시어머니보다 더 좋은 지원병은 없잖아? 근데 뜻밖에도 시어머니 역시 냉담한 태도였어. 전에 사람을 볶아대면서 이걸 먹어라, 아무 데 용한 한의가 있다는데, 라고 수선을 피우던 어머니가 아니더란 말이야.
"그 앤 아무 이상 없다. 문제가 있다면 너한테 있을 테니 너나 가서 검사해 봐!"
"어머니, 전 정밀 검사를 했어요. 제게 아무런 이상 없다고 남편을 데리고 오랬어요."
어머니는 나를 정말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빤히 쳐다보는 거야. 그러더니 자기 옆으로 내 팔을 잡아끌어 가까이 앉혔다. 얘, 내 말 좀 들어봐라. 내 아들보다 다섯 살이나 연상인 며느리가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면 불안하고 초조해 하지 않을 시부모가 어디 있겠니? 너도 우리 입장이 돼서 한 번 생각해 봐. 아마, 너의 부모라고 해도 우리와 같은 결정을 내렸을지 몰라.
벌써 오륙 년은 됐다, 애비가 지금의 여자와 살림을 차린 지. 여기 주소가 있으니 찾아가서 확인해 봐. 분명 내 아들은 자식을 갖는 데 아무 문제없다는 것을 알게 될 테니…
나는 내 귀를 의심했어. 시어머니의 입을 통해 나온 말, 아비면 누구의 아비란 말인가.
갑자기 눈앞이 아득해지면서 양다리에 힘이 쭉 빠지겠지. 어지럽기도 하고 방안의 풍경이 빙빙 도는 듯한 느낌 있잖아. 꼭 쓰러질 것같았는데, 다행히 거기서 넘어지지는 않았어.
인간이 무서워지기 시작하더라. 사람이 이럴 수 있는 동물이구나 생각하니 남편의 얼굴을 마주 대할 걱정이 앞서더군. 그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똑같은 시간에 퇴근을 해 집에 왔어. '별 일 없었지?' 하며 내 등을 쓰다듬는 제스처도 똑같았어. 전에는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내겐 등을 두드리고 그 여자에겐 키스를 하겠지, 하는 엉뚱한 발상은 아주 유치한 질투 감정을 부르며 속에 있던 궁금한 점들을 마구잡이로 꼬집어 내 따지고 물었지.
내 생애에 이렇게 무식하고 교양 없이 굴었던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입에 거품을 물었어. 남편의 반응은 나를 천길 낭떠러지 벼랑으로 미는 것보다 더 아찔하고 질리도록 만드는 것이었어. 상상할 수 있니? 절대로 그런 일 없다고 딱 잡아떼거나, 괜히 어머니가 아이 못 낳는 며느리 앞에서 허세 부리는 것이니 그 집 주소로 찾아가 보라며 큰소리쳐 주길 기대했거든. 그러면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눈감아 주려고 했어.
"여보, 용서해 줘. 난 미혜를 떠나선 살 수 없어. 나하고 미혜 사이에 태어난 아들과 딸이 있어. 큰애는 세 살이고, 작은애는 이제 아홉 달째야."
"당신 내게 이렇게 대할 수 있어? 난 지금까지 당신에게 뭐였어? 너 정말 인간도 아니다! 에잇, 더러운 놈. 그 동안 다른 밭에 가서 씨뿌리면서, 날 얼마나 비웃었니? 수태도 못하는 년이라고… 그리고 다른 여자와 몸 섞고 아이를 둘씩이나 내지르도록 아무것도 모르고 철통같이 남편만 믿고 있는 둔하고 미련한 년이라고 매일 고소한 느낌이었겠지. 야, 이런 사이가 목사 앞에서 혼인 서약하고 십년 넘게 산 부부 관곈 줄 몰랐다."
"아니야, 절대로 그렇지 않았어. 첫 애 낳고는 당신에게 고백하고 싶었어. 다만 기회를 잡을 수가 없었고, 정말 나만을 믿고 의지하고 따르는 당신을 실망시킬 수 없었어. 당신만 이해하고 날 용서해준다면, 당신은 내게 영원한 조강지처야."
"지금이 뭐 조선시댄 줄 착각하는 모양이지. 조강지처에 첩까지 거느리고 살겠다는 거야? 자알 놀고 있다. 당장 갈라져! 이혼해야지!"
길길이 날뛰고, 눈이 퉁퉁 붇도록 울기도 했지만, 가슴을 찢어도 시원치 않을 나의 억울함은 도저히 가시지 않았다. 몇 년 동안 시집 식구들이 자신을 철저히 속인 데 대한 분함은 옆에 총이라도 있으면 있는 대로 쏘아붙여도 영영 풀리지 않을 것같았다.
그 순간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갈라져 재산 이등분해서 그 연놈 안 보고 싶었지. 그런데 그렇게 못했어. 지금까지 떳떳치 못한 것은 다른 여자와는 아이를 잘 낳는 남자인데, 왜 내 자궁 속에는 그 씨가 들어서지 않았냐는 사실이었어. 결국은 난 수태 못하는 병신이구나 하는 생각이 박씨 집안 식구들 앞에서 나를 끝끝내 주눅들게 만드는 죄인으로 하락시키고 말았지. 아이 못 배는 여자라는 점은 남편이 다른 여자와 따로 살림을 차리고 아이를 둘씩이나 낳아 깨를 볶으며 살아도 할 말이 없게 입을 막아 버리고 마는 것 있지? 입을 막아버릴 뿐만 아니라, 본처 자리도 내어주고 말았어. 평생 먹고살 수 있도록 경제적인 뒷받침해 주고 나의 인생을 책임져 준다는 바람에 마스터 베드룸을 그녀에게 내주고 말았어.
그 여자가 본마누라처럼 말이야. 나는 그 동네 작은 콘도를 얻어서 따로 살고 있지. 남편은 매달 꼬박꼬박 생활비 보태주며, 가끔 들러서 어설픈 포옹하는 것을 커다란 자선 베푸는 것처럼 하나도 미안하지 않게 행동한다. 하기야 자선은 자선이지. 내게 이혼녀란 딱지 붙여주지 않았고, 생활비보다 훨씬 넉넉한 돈을 줘서 이렇게 일년에 두어 번씩 해외 여행을 다닐 수 있게 해주니 말이야. 이제, 내 얘기 끝났어. 어때? 나, 정말 바보 같지?

지나의 얘기는 맥놓고 앉아 있는 내게 찬물을 끼얹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도 더 또랑또랑해지며, 마음으로 서늘한 감각이 전해왔다. 그녀의 인생여정을 듣는데 왜 이렇게 팔뚝과 가슴에 소름이 돋는지 모르겠다. 아니 온몸에 오한이 나는 것처럼 떨림이 느껴졌다. 어째서 남자들은 이 모양일까. 세상 모든 남자들이 그렇지는 않을 거야. 나와 지나 언니가 만난 남편들만 그런 거겠지. 남자들은 다 같애. 그래서 세상 모든 여자들이 나름대로 다른 문제를 안고 살아갈 거야. 절대로 우리만 남편에게 뒷전인 여자들이 아니다. 그렇게 믿고 잠을 자도록 하자. 내일을 위해서…
지나 언니는 내게 등을 보이며 돌아누웠다.
오늘밤까지 지새우면 연달아 삼일 저녁을 잠을 못 자는데… 이곳에 떠나오기 전 날 밤도 나는 미지의 세계가 가져다 줄 흥분 때문에 잠을 설쳤다. 내일 관광을 무리 없이 할 수 있을지 염려하다가 어느 틈에 잠이 들었는가보다. 창가에 새벽이 밝아오는 허연 빛이 커튼 틈새로 새어들어오는 바람에 눈이 떠졌다.
일본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셋째 날 스케줄이다. 신간선을 타고 교토로 이동한다. 기차를 타려면 커다란 짐이 없어야 한다. 따로 짐칸이 있는 게 아니고, 들고 타기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내일 저녁에 4인 1실의 관서 기선을 타야 할 때는 옮기기 힘든 짐들은 더욱 문제다.
자칫하면 어제처럼 관광객들 사이에 언쟁이 붙을 것같은지 가이드 신호철이 제의했다.
"들고 다니기에 너무 큰 짐들은 따로 선편으로 부칩니다. 기차나 배를 탈 때 불편을 줄이기 위해 취하는 조처이니 부디 따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지막날 아침에야 벳부항에서 큰 짐들을 찾게 되니 오늘, 내일 쓸 옷이나 물건 등은 꼭 따로 챙기십시오.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 말씀드립니다. 내일 저녁에 탈 관서 기선엔 네 분이 선실 하나를 사용해야 하니까 마음 맞는 부부끼리 짝을 지으십시오. 이제 두 시간 가량 기차를 타고 교토로 가서 청수사와 금각사를 보고 그리고 사슴공원을 들를 생각입니다. 그 후에 나라로 옮겨 동대사를 볼 예정입니다."
교토에서 두 게이샤가 얼굴에 하얗게 회칠을 하고 게다를 신고 종종걸음을 치는 것을 보았다. 관광객의 눈을 끌기 위한 몸짓이고 옷차림이다. 무대 위에 세워놓은 꼭두각시 인형을 보는 듯했다. 전혀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내가 이번 여행에서 셋째 날이 하이라이트라고 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교토는 고도로서 이 도시의 문화와 역사 전통을 일본인들 자존심처럼 내보이는 곳이라고 들었다.
사근사근한 미인이 많은 고장이 교토이기 때문에 교토 여자들을 제일로 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런저런 사전 지식이 오기 전부터 교토에 들르면 꼭 음식점과 술집을 들어가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일본 여자의 본색과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도 교토 여자의 진면목을 보고들을 수 있었기에 기억에 남을 날이 될 거라 생각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저녁 식사를 끝내고 나도 7시밖에 되지 않았다. 초저녁이다. 어쨌든 관광 스케줄 외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신호철씨를 꼬셔야만 했다. 말도 모르고 지리도 모르는 곳에선 별 수 없는 일이다.
"미스터 신, 내가 오늘 저녁에 한 잔 쏠 테니 교토의 근사한 술집 안내할 의사 있어요?"
"물론이죠. 어떤 술집을 원하세요? 여자가 나오는 곳 아니면 스나쿠행? 여자가 나오는 곳은 너무 비싸니까, 내가 잘 아는 스나쿠로 모실게요. 값도 저렴하고 무엇보다 주인 여자가 아주 친절하고 양심적인 것이 맘에 들어요. 우리 둘만 갑니까?"
"아니죠, 오해받으면 어쩌라고. 내 룸메이트 박지나씨도 함께 가요."
"미스터 현 부부도 함께 가자고 물어볼까요? 그들도 젊어서 우리와 잘 통할 것 같은데…"
일행 중에 40대 초반의 부부가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꼭 신혼부부처럼 생생하고 젊었다. 키가 날씬하게 큰 여자가 무릎이 찢어진 진 바지를 입고 왔다갔다하기에 꼭 20대 결혼 초년생인 줄 알았다. 그녀에 비하면 나는 삶의 중턱을 넘어선 중년 여인인 듯 생각되니 세월을 앞당겨 산 모양이다. 옷차림부터 다르다. 나는 무릎 밑까지 덮는 스커트를 입었고 그 위에 카디건 스웨터를 받쳐입었다. 아기도 낳아 보지 않은 내 몸매는 허리와 둔부 근처가 두리뭉실했다. 외관상이나 내면적으로나 영락없는 중년 여인인 것이다.
현 부부, 나와 지나 언니, 그리고 신호철 다섯 명은 스나쿠로 갔다. '이랏샤이(어서 오세요)' 하이 소프라노의 음성이 들렸다. 이런 여자의 목소리, 상냥한 태도, 지극히 여성다운 자태를 남편이 좋아하는 것일까, 저런 모습 때문에, 나는 절대로 흉내도 낼 수 없는, 아니 따라하기 싫은 여자의 속성을 남편은 원하기 때문에 어떤 일본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나보다.
"여기 여자들은 언제나 저렇습니까?" 나는 신호철을 쳐다보며 물었다.
"저렇다니요? 뭐가요?"
"노상 친절하고, 상냥하고 애교가 많으냐 말입니다."
"일본 여자들의 저 상냥하고 매끄러운 매너 뒤에는 따가운 가시가 있어요. 그 웃음과 말을 그대로 믿으면 큰 탈 나지요. 일본인들은 웬만해서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데, 여자는 더 해요. 심지어 부부끼리도 여자는 속을 보이지 않아요. 그러니 부부싸움도 할 필요가 없지요. 여자는 평생 남자 밑에서 하라는 대로 하고 살다가 자기자신을 찾는 때는 다 늙어서 정년이 된 나이지요. 그래서 황혼 이혼이니, 정년 이혼이니 하는 말이 일본에서 유행되는 것입니다. 절대 일본 여자 부러워하지 마세요. 여자는 한국 여자가 최고죠. 얼굴도 일본 여자보다 훨씬 이뻐요. 내일 거리에서 자세히 보세요. 안짱다리에 이목구비가 제대로 박힌 여자가 몇이나 되나? 한국 여자들은 일본 여자처럼 애교 많고 상냥하지는 못 하지만 원판이 잘 생긴데다 진실하고 성실한 마음 지녔잖아요."
신호철은 술을 잘 마시지 않았다. 내일 관광 가이드를 위해서 몸을 사리는 듯했다. 현 부부는 맥주를 마시고, 나와 지나 언니는 정종을 시켰다. 깨끗하고 상큼한 안주를 곁들인 따뜻한 사케 맛은 달콤했다. 입에 당기고 마음이 받아들이는 바람에 내가 제일 많이 마셨다.
취하면 실실거리며 웃다가 더 만취하면 찔끔찔끔 눈물을 흘리는 내 버릇이 나왔던 모양이다. 다행히 지나 언니가 같이 마셨는데도 정신을 놓지 않아 내 일거수일투족을 보살필 수 있었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호텔로 돌아왔다고 하니 꽤나 오랫동안 마시고 노닥거린 것같다. 언제부터 내 필름이 끊겼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신호철이 한 말은 생생히 기억났다. '여자는 한국 여자가 최곱니다. 일본여자 부러워하지 말아요.' 그 후론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오사카는 도쿄나 교토에 비해 신흥도시인 듯 보였다. 많은 빌딩들이 현대식 건물들이며 그 높이가 하늘을 치솟고 있다. 길도 널찍널찍 해서 캘리포니아의 오렌지카운티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상업도시로 대대적인 경제 성장을 기하고 있는 도시라서 백화점 순방도 했는데, 특이한 점은 백화점 내에서 음식을 팔기도 하는 것이었다. 꼭 한국의 동대문 시장의 야채나 어시장을 방불케 하는 복잡함과 상인들이 손님을 부르는 함성 따위가 아주 이색적이었다. 생선을 취급하는 분야에서도 전혀 더럽고 지저분한 느낌이 없고, 깨끗하고 싱싱함만이 펄펄 뛰고 있어 저절로 사고 싶고 먹고 싶은 충동이 일게끔 만들어 놓았다. 이런 점은 누구나 본받아야 할 상도인 듯싶다. 나는 지나 언니와 거기서 점보 새우 튀김을 두 개 사 먹었다.
먹는 즐거움, 보는 즐거움이 오늘처럼 크게 생각된 적도 없었다.
오사카의 상징인 오사카 성의 천수각은 지금껏 보았던 것과는 규모가 놀랍게 컸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생애를 소개하는 역사적인 박물관의 7층은 참으로 볼 만했다. 오사카 성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대의 재건과 쇼와의 천수각 복원을 거쳐, 평성의 대대적인 개조를 통해 다시 태어난 천수각은 국내외로부터 주목을 받으면서 일본의 귀중한 역사, 문화 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 남아 있다.
오후에는 고베로 갔다. 고베 하면 몇 년 전에 있었던 큰 지진으로 신문상에서 본 기억에 남는 이름이다. 우메다 상점가로 신호철은 우리를 안내했다. 거기서 일본의 전통 의상 패션 쇼를 구경하고 음악도 함께 들었다. 그 여인들이 입은 기모노는 뒤에 아기를 업은 것처럼 쿠션을 매단 것을 제외하면 색상이나 몸을 감싸는 흐름이 아주 아름다웠다. 그들이 신은 조리 역시 요즘의 샌들을 연상시켜 지극히 여성다웠다.
내일 관광하게 될 벳부항에 가기 위해 오늘 저녁에 관서 기선을 타기로 돼 있다. 고베 항구에 가서 배를 타기 위해 우리 일행은 버스를 탔다. 하루 종일 걷다가 버스에 오르고 나니 피곤이 몰고 오는 잠이 쏟아졌다. 버스가 움직이자, 눈을 감았다.
"남편이 일본 여자와 바람이 났어?" 갑작스런 지나 언니의 질문에 눈이 번쩍 띄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어젯밤에 미세스 백, 완전 갔던 거 알아? 자기가 그렇게 얘기했어. 남편은 일본 여자가 좋대요. 나하고 잠을 같이 안 자도 그 여자하고 먹고 자고 다 한대요. 근데, 신호철씨, 일본 여자는 본심을 드러내지 않는다구요? 속은 어떤데요? 그러면서 가이드 팔을 마구 잡아흔들었단 말이야. 그때가 벌써 11시가 가까워서였어. 젊은 현 부부는 먼저 들어가고 없었어. 결국은 신호철씨와 나하구 부축해서 데려왔던 거야."
"아이 창피해서 어떻게 하지?"
"오늘 보니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가이드 잘 따라다니던데. 가이드도 속이 깊은 남자야. 미세스 백 대하는 게 어제와 똑같았잖아."
"이따가 사과해야겠지요?"
관서 기선을 타기 위한 방을 정하면서 4인 1실의 조를 짜는데 어려움이 생겼다. 나이든 부부들이 서로 화합을 이루지 못해 단 하루 저녁도 같은 방의 선실을 사용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서로 이 부부와는 싫고, 저 부부와도 어울리기 싫다는 것이다. 처음에 짐 때문에 싸우던 두 부부는 또 한바탕 할 기세로 서로 째려보면서 같은 방을 쓰게 될까 봐 겁을 냈다. 이토록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으로 어떻게 여행을 하겠다고 길을 나섰는지 모르겠다. 신호철은 근심스런 낯빛으로 우리에게 의논을 청했다.
난감한 표정을 얼굴에 드러내며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신호철에게 젊은 현 부부가 의견을 냈다. 누구와도 같이 잠을 못 자겠다는 부부에겐 각 방을 주십시다. 그리고 제일 연세 드신 노인분에게도 방을 하나 주고 우리 젊은 층들은 신호철씨 방에 모여 밤을 새웁시다. 아니면 서로 엉켜 새우잠을 자도 괜찮고… 그래도 되겠습니까? 똑같은 관광비 내고 하는 여행인데,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가이드가 이마에 땀을 다 흘리면서 미스터 현을 향해 말했다. 괜찮아요. 두 분은 어떠세요? 이해하실 수 있지요? 어제 저녁 술 드시는 것 보니 마음이 화하신 것같던데… 현은 나와 지나 언니를 쳐다보았다. 내가 대답하기 전에 지나 언니가 먼저 대꾸했다. 그래도 젊은 분이 생각이 넓네. 그럽시다. 우리가 양보해서 가이드 좀 편케 해줍시다. 저것 좀 봐요. 얼굴에 비지땀 흐르는 거. 오늘밤은 선상 파티라. 야! 기대되는데…
신호철은 워낙 연세가 많은 노인 두 분이 있어서 배를 예약할 때 여분으로 방을 하나 더 달라고 부탁을 했단다. 또 가이드 방이 하나 더 나와서 천만다행이었다. 그리고 지나 언니가 모든 걸 좋게 생각하고 이해하니 나는 약간 불편하고 껄끄러우면서도 따라 할 수밖에 없었다. 가이드에게 어제 저지른 무례함을 사과하는 뜻에서도 내 불편은 참기로 했다.
지도상으로 보면 아주 가까운 거리인 듯싶은데, 아무튼 밤새도록 배는 항해했다. 가는 건지 그냥 물 위에 떠있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흔들림이 없었지만, 간혹 홀에 나가서 보았을 때 바깥 물체가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배는 분명 가고 있었다. 배는 2차 대전 시 군수품 운반할 때 쓴 것처럼 낡고 더러웠다. 목욕실과 화장실도 공동으로 쓰게끔 돼 있다. 하룻밤쯤으로 족하지 다시 탈 물건은 못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세 드신 두 분의 노인과 몰상식한 세 부부들에게 양보하자는 뜻에서 가이드 방에 모인 젊은 층 다섯 사람은 의외로 뜻깊은 밤을 보내게 됐다. 가이드에게 할당된 방은 다른 방과는 달리 더블 베드가 둘이라서 네 사람은 족히 누울 수 있었다. 그리고 가운데 커다란 책상 겸 티 테이블이 놓여 있어 맥주 파티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미세스 현은 알뜰하게도 오징어포와 땅콩, 양념 고추장까지 안주 감을 내놓았다. 나와 지나 언니는 술을 샀다. 술은 샀지만 나는 오늘은 취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싫기도 하고, 취해서 내 말만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고 싶어서였다.
"백수연씨, 기다리세요. 남편 떠날 생각 말고 돌아올 때를 기다리세요. 일본 여자와 바람이 났다면, 곧 마음 다잡고 와이프에게 돌아 올 겁니다." 얼굴에 벌겋게 술기운이 달아오른 신호철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젯밤에 내가 술에 취해 주절거린 하소연 속에 남편을 떠나고 싶다는 말이 있었나 보다.
"남편과 사귀는 여자 때문이 아니라, 저도 그 남자에게 정이 없어요. 세월이 흐르면 미운 정이건 고운 정이건 뭔가 생길 텐데… 전혀 무감각하단 말입니다."
"그렇다면 수연씨도 문제 있는데요. 부부가 같이 즐길 수 있는, 아니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뭔가를 찾았어야 됐지요. 결혼하신 지 얼마나 됐어요?"
"십 년짼데…"
여행 가이드인지, 결혼생활 상담인지 모를 정도로 신호철은 진지하게 들어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인생의 경륜이 꽤 든 사람처럼 지혜롭고 듣기에 하나도 거북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싸하게 들리며 마음에 와 닿았다.
새벽녘이 다 돼서야 우린 조금 눈을 붙였다. 현씨 부부와 지나 언니, 나는 침대 위에서, 가이드는 그냥 밑바닥에 담요를 깔고 한 서너 시간 잠을 잔 것같다.
마지막 날 시간을 보낼 여행지는 일본의 최남단 오이타 현의 벳부시다. 벳부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온천장으로 곳곳에서 연기를 뿜어내고 있어 어디보다 더 이국적인 냄새를 풍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벳부는 미군의 정책적인 배려로 폭격을 당하지 않았을 만큼 경관이 좋고 온천의 효능이 뛰어나다는 곳이다.
바다지옥이라 불리는 온천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섭씨 90도에서 최고 1백 50도의 열탕이 끓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정말 지옥이 이런 곳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온천의 성분에 따라 짙푸른 코발트색에서 황토색까지 색깔과 형태도 다양했다.
벳부시에서 머문 호텔은 아주 호화판이다. 음식도 일식, 중식, 미국식을 포함한 뷔페 스타일이라 입에 맞는 것을 골라 먹을 수 있어 편했다. 게다가 호텔에서 할 수 있는 온천욕이 일품이다.
지나 언니와 나는 이른 저녁을 먹고는 한 시간쯤 후에 목욕을 하기 시작했다. 물이 얼마나 좋은지 몸을 담그고 얼마 안 있어 꼭 비누질한 것처럼 매끈거렸다. 전신의 피곤이 싹 가시는 것같았다. 몸의 구석구석 때를 말끔히 밀었다. 내 몸 속에 있는 오물이나 허물까지도 깨끗이 씻어내는 기분으로 닦아냈다.
"참 좋지? 일본 온천이 좋다고 말만 들었지, 이렇게 물이 좋은 줄은 정말 몰랐는데."
지나 언니는 이리저리 탕을 옮겨다니며 좋아했다. 오십을 넘긴 여인치고는 몸이 젊었다. 아이를 낳지 않아서 그렇겠지만, 몸을 잘 가꾸는 것같다. 우선 탄력이 그래 보였다. 밑 배도 하나 없이 균형 잡힌 몸매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언니는 몸이 하나도 망가지지 않았어요. 나이 먹으면 밑 배도 생기고, 살도 붙잖아요?"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하지. 운동도 열심히 하고, 먹는 것도 조심하고… 또 피부에 좋지 않다면, 피곤하게 하지도 않고, 먹지도 않아. 노력한 만큼 젊어지고 예뻐지는 거 아니겠어? 미세스 백도 자신을 위해 투자를 해. 얼굴 마사지도 정기적으로 하고, 운동도 해서 몸을 날씬하게 만들어 봐. 그러면 저절로 남편의 관심을 사게 될 테니. 미세스 백의 남편은 일본 여자 근성을 좋아한다니까 해 본 말이야."
"아니요, 전 그러고 싶지 않아요. 나를 가꾸고 바꿔보려는 노력은 하겠어요. 그러나 그건 남편을 위하거나 그가 돌아올 때를 기다린다는 뜻은 아닙니다."
"……"
후쿠오카 공항에서 일본 여행 팀들은 인천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렸다. 일주일간 함께 먹고 자고 행동한 가이드 신호철은 여기서 그의 집이 있는 도쿄로 돌아간다. 짧았지만 만나서 즐거웠던, 그리고 많은 도움을 받은 그와 헤어지려니 서운했다. 그는 명함을 주면서 악수를 청했다. '내가 e-메일 보내도 될까요?' 속으로만 물었다.
인생은 이런 여행. 묻고 싶은 말, 하고 싶은 말 다 못하고 그냥 가슴에 담아둔 채 스쳐 가는 길인 모양이다.
인천 공항에선 지나와도 이별을 해야 한다. 나는 엘에이로 돌아가고, 그녀는 한국에 얼마간 남을 예정이다. '다시 여행 파트너로 만나게 될까요? 언제?' 대답은 없었다.
다만, 그녀의 따뜻하고 기대에 찬 시선이 새로운 길 위를 응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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