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봄나들이

2006.04.01 08:10

남순애 조회 수:113 추천:35

수요 기초반 군산 봄나들이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기) 남순애


변덕쟁이 내 마음을 닮은 봄 날씨입니다. 어제만 해도 마치 한 겨울 중턱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는데 수필 기초반 문학기행을 떠나는 오늘은 그래도 봄이 제 자리를 찾은 듯해서 다행이었습니다.

문학기행이라고 하니 어딘지 좀 무거워 보이고 기초반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봄나들이쯤으로 해두기로 했습니다.

목적지는 주꾸미 축제가 열리는 항도 군산이었습니다. 군산가는 버스를 굳이 사양하고, 봄기운을 만끽하고 싶어 전주역에서 9시 19분에 군산으로 떠나는 완행열차를 타기로 하였습니다. 내가 총무로서 맨 먼저 전주역에 도착하였는데 조금 뒤 김금례 님, 김행모 님이 도착하셨고 바로 교수님도 나오셨습니다. 이어서 박학봉 회장님을 비롯하여 박세규 님도 도착하셨지요. 우리는 플랫트홈으로 나갔습니다. 잠시 후 기차가 도착하여 차에 올랐더니 아중역에서 먼저 탄 조은숙 님과 김민영 님을 만났습니다. 마치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것처럼 반갑게 맞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익산역에서 박성희 님과 오숙경 님의 합류로 모두 열 분이 되었습니다. 김제와 정읍역에서 기차편으로 익산역까지 오신 것이지요. 우리 기초반은 박학봉 회장님의 단합강조에 힘입어 이미 서로가 오랫동안 만나온 것처럼 친숙한 분위기에 젖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엊그제 만난 게 아니라 어디선가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던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랍니다. 정읍에서 온 활달한 성격의 오숙경 님은 딸기며 음료수 한 박스를 챙겨오실 정도로 세심한 분이셨습니다.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죠.

군산 가는 버스가 많이 있음에도 우린 모두 만장일치로 기차를 타기로 했습니다. 기차가 주는 묘한 여행기분을 만끽하고 싶어서였을까? 조그마한 역까지도 놓치지 않는 느릿느릿한 기차를 타고 창 밖을 내다보는 맛도 좋았습니다. 한두 사람이 타거나 내리는 쓸쓸한 간이역이 많았는데 우리가 탄 완행열차는 그 간이역도 차별하지 않고 모두 쉬었습니다. 전주에서 군산까지 요금은 고작 1,200원! 자주 기차여행을 하며 차창 밖으로 보이는 계절의 변화를 읽어볼 일입니다. 빨리빨리문화에 익숙해진 우리들에게 완행열차 여행은 많은 교훈을 느끼게 해줍니다. 65분만에 드디어 군산역에 도착했습니다. 돌이켜 보니 전주시를 떠나 김제시, 익산시를 거쳐 군산시에 도착했으니 전라북도 4개시를 둘러본 셈이 아닌가요?

군산시 해망동에도 자갈치시장이 있었습니다. 자갈치시장은 부산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자갈치 시장 내에는 우리 기초반 한현옥 님 내외가 운영하는 ‘춤추는 조개구이’란 식당이 있습니다. 반갑게 맞아주는 한현옥 님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더군요. 그 식당에 도착하니 멀리 고창에서 2시간이나 차를 타고 와서 먼저 도착한 염미경 님이 기다리고 있데요. 봄을 닮은 염미경 님의 해사한 미소가 우리를 한결 더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때 이른 점심을 뒤로 미룬 채, 한현옥 님의 안내를 받으면서 월명공원을 산책하기로 하였지요. 해망굴 옆 희천사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목탁소리, 염불소리가 산사의 고즈넉함을 전해 주었습니다. 천당과 지옥은 이웃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네 인생의 모든 만남을 좋은 인연이라 생각한다면, 우리 인생은 늘 봄날이다."라고 씌어진 글을 보면서 공원 114개의 계단을 올랐습니다. 그런데 그 계단을 쓸고 계시는 어떤 노인 한 분이 계시더군요. 순간적으로 교수님께서는 "수고하십니다!"라는 인사를 건네셨습니다.  공원에 오르자 인연이란 또 다른 글이 스쳤습니다.

   인간은 홀로 존재할 수 없기에 젖은 어깨 털어 주고
   때묻은 마음 헹구어 내 잘 익은 봄 길로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만남은 소중해야 합니다. 인연은 아름다워야 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복중에 가장 큰복이 인연 복이라 했나봅니다. 기초반! 우리의 만남도 분명 인연이 있기에 만난 것이리라. 우리가 만난 것은 수필이 중매를 섰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늘 수필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습니다.
수시탑(守市塔)이나 전망대에서는, 군산 앞 바다를 오가는 작은 어선과 대형 선박들, 금강 건너편의 장항 일대가 시원스레 내려다 보였습니다. 장항 제련소의 모습은 옛날이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쪽빛은 아니지만 그래도 바다가 주는 포근함을 느끼며 넋을 잃고 바라보았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바다였습니다. 그리고 월명공원을 산책하며 조각공원에서 다양한 조각작품들을 감상하기도 했습니다. 찰칵! 한현옥 님이 몇 장의 스냅사진을 찍었지요.

  조각공원에서 좀 더 걸으니 소설가 채만식 선생의 문학비가 보였습니다. 비문에 그의 일대기가 자세하게 씌어져 있었습니다. 대표작은 장편소설 '탁류'로서 부조리에 얽힌 사회상을 풍자한 작품이라고 하네요. 군산을 무대로 일제식민지 시대의 억눌린 서민들의 삶을 기록한 수작이라지요. 읽은 기억을 아무리 더듬으려 해도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꼭 다시 읽어 볼 거라고 다짐해 두었습니다.

손 때 묻지 않은 월명공원, 그래서 더 편안한 느낌의 공원입니다, 문화유적지나 위락공간이 없는 군산시민의 휴식처로 많은 아낌을 받는 공원일 것입니다. 시멘트 포장길에 우레탄을 덧입혀놓아서 걷거나 뛰기에 좋았습니다. 아침마다 많은 시민들이 이곳을 찾을 것입니다. 서해방송과 군산방송국에서 모두 12년이나 근무했다는 교수님은 이 월명공원이 얼마나 좋은지 설명하기에 바빴습니다. 이 산의 이름은 원래 설림산(雪林山)이었는데 일제 때 이름이 월명산으로 바뀌었다고 들려주셨습니다. 눈이 내리는 겨울이면 딱 어울리는 이름이 아닌가요? 또 우리는 월명(月明)이라는 말보다는 명월(明月)을 즐겨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기생 이름에도 명월이는 있지만 월명이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 역시 일본식 표기라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아직까지 군산에는 월명동이 있고 월명공원이 있으니……. 교수님은 연인이나 사이가 좋지 않은 부부가 겨울철 눈이 많이 내린 날 이 월명공원을 한 바퀴 돌면 아주 사이가 돈독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춤추는 조개구이' 식당으로 돌아가 자리 잡은 우리는 교수님의 강의가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았습니다. 아침도 거른 뱃속에선 눈치도 없이 꼬르륵거리고 있었으니까요. 일행 중 누군가가 서둘렀습니다. 마치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맛있는 음식을 들며 술잔을 건네는 다정한 클라스메이트들, 그들은 이미 시공을 초월하고 나이를 초월해 버린 동창생들답게 격의 없는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포도주나 마시면서 죄 없는 잡담이나 하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이라던 헤르만 헤세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이명(耳鳴)처럼 들리는 듯했습니다.

한 잔의 반주로 우리 모두는 기분 좋은 벗들이 되었습니다. 한 잔 두 잔 건네는 술잔, 오늘은 넉살 좋게도 잘 받아 마셨습니다. 모처럼 올려다 본 하늘도 가을 하늘처럼 맑았습니다. 주꾸미 무침, 주꾸미 회, 데친 주꾸미 등 다양한 주꾸미 요리를 안주 삼아 즐겁게 술을 마셨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취하지도 않았습니다. 점심식사는 가볍게 해물칼국수로 들었더니 속이 풀리지 뭡니까? 그 해물칼국수 국물 맛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우리는 해망동에서 택시를 타고 버스터미널로 갔습니다. 그냥 헤어지기 섭섭하다며 박학봉 회장님이 서둘러 근처 노래방을 찾았습니다. 왜들 그리도 잘들 노는지, 왜들 그리도 노래는 잘 부르는지 놀라웠습니다. 많은 연습을 하고 무대에 선 가수들 같았습니다. 박 회장님의 레파토리는 무진장이었고, 박세규 님은 자연산 딴따라의 대표였습니다. 휴지를 풀어서 이마를 질끈 묶고서 춤을 추는 모습은 개구쟁이 시절의 모습을 연상케 했습니다. 벌써 두 번째 찾은 노래방이라서 그런지 더 잘들 노시더군요.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운 좋게도 교수님과 같이 한 자리, 덤으로 주어진 한 시간의 귀한 특강!

글이란, 인생의 의미가 담겨 있어야 하고,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감동이 일게 하여야 하며, 생명력이 긴 글이 되어야 하고, 그래서 글 쓰는 목적도 분명히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가슴에 새겨지는 하루였습니다. 자신감이 불끈 일어서고, 뭔가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꿈틀대고, 무엇보다도 인생의 언니, 오빠들을 한꺼번에  얻은 것만 같아 큰 기쁨이었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다면……. 우리 기초반의 앞날은 늘 행복 플러스일 것입니다. 기초반 언니와 오라방들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