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 피는 계절이 오면
2006.04.05 07:35
목련꽃 피는 계절이 오면
행촌수필문학회 이은재
어느 봄날, 잠자던 나뭇가지에서 화들짝 하얀 웃음이 터졌다. 꽃샘바람에 잔뜩 웅크렸던 나목(裸木)은 4월의 미풍에 그만 활짝 웃어버렸다. 밤새 휘몰던 바람도 잦아진 고요한 새벽에 똑! 똑! 똑! 누군가 창문을 두드린다. 단잠을 깨운 그대, 밤새 바람과 맞서며 해산한 그대는 하얀 목련이었다. 톡! 톡! 터지는 균열소리는 그대의 해맑은 웃음소리였던가.
내 젊은 날의 봄은 MBC 문화방송 맞은편 시민회관에서 열리는 신춘음악회로부터 시작되었다. 연례행사처럼 열렸던 신춘음악회에는 테너 엄정행의 ‘목련화’가 항상 있었다. 음악회가 무르익어 가는 뒤뜰에선 목련이 향기를 토하며 봄바람과 유희를 하고, 연인들은 그 거리를 오가며 사랑을 엮어갔다. 너무도 감미로웠던 4월의 밤, 목련이 하얗게 웃던 밤이었다.
20대 시절에 나의 자취 집 마당 한켠에 우물이 있었고 그 곁에 목련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나는 우물가에서 세수를 하다가 바람에 밀려온 목련꽃 향기에 농익은 세레나데가 되곤 했다. 사각사각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는 그리운 님의 행차인가 하고 돌아보면 목련꽃 떨어지는 소리였다. 가지마다 하얀 등을 달고 그리움을 삼키는 목련꽃보다 더 깊은 그리움이 4월 내내 나를 결박하던 밤, 목련이 하얗게 웃던 밤이었다.
내 자취 집 문간방에 남자대학생들이 들어왔다. 그 대학교에선 해마다 부활절을 기념해서 4월에 축제를 열었다. 나는 문간방 대학생들에게 끌려 축제에 참가하곤 했었다. 축제가 열리는 캠퍼스엔 아름드리 목련나무가 봄바람과 조우하고 별들은 휘영청 광채를 뿌렸다. 죽은 듯하던 옹이진 가지에선 생명이 움트며 꽃을 피웠다. 그 향기로운 목련꽃 아래에서 울려 퍼지던 헨델의 '할렐루야' 합창소리는 너무도 은혜로웠다. 어둠을 이기고 승리한 부활의 기쁨이 순백의 향기를 타고 상아탑에 모인 젊은이들을 축복했다. 축제가 절정에 이르던 밤, 목련은 더 큰 소리로 하얗게 웃었다.
목련꽃이 지던 날, 문간방에서 자취하던 대학생들의 흔적도 사라졌다. 섬돌 위에 놓여있던 대학생들의 하얀 운동화가 여러 날 보이지 않았다. 굳게 채워진 자물통만이 문간방을 지키고 있었다. 민주주의를 외치다 경찰에 쫓기던 문간방 대학생들은 그렇게 봄이면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다.
어느 해인가는 목련이 피었다 지고 잎이 우거질 때까지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군부의 학정으로 흉흉해하던 학원가, 지식을 연마하고 꿈의 나래를 펼쳐야 할 학원가는 최루탄 가스와 몽둥이가 난무했다. 유혈이 낭자한 봄날은 진달래꽃보다도 더 짙은 슬픔을 안고 오월의 붉은 장미로 피어났다.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경찰에 대항하기 위해 흉기로 돌변한 보도블록은 한 때 대학교 주변 도로엔 금지되기도 했던 그 시절에, 내가 소속했던 감리교회 청년부 대학생들은 정의를 갈망하며 투쟁에 나선 진정한 용사들이었다. 그 집회를 주도한 사람이 문간방 대학생들이었다. 그들은 봄 내내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나는 밤마다 문간방을 서성거렸다. 문간방에 불이 켜질 날을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인기척에 문간방 대학생들인가 싶어 나가보면 목련꽃을 흔드는 황량한 바람소리였다.
신 새벽 뒷골목에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쓰다가 붙잡혀 고초를 당하던 슬픈 계절,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처럼 젊은이들은 민주주의를 갈급하다가 폭도로 규정되었다. 자유를 외치다 목련꽃처럼 스러져 간 이 땅의 젊은 학생들은 황사바람에 동강난 목련꽃처럼 산산이 떨어져 짓밟혀졌다. 밤새 호루라기 소리에 쫓겨다니던 그때 목련은 하얗게 울었다.
꽃은 옥이요, 향기는 난초 같다 하여 '옥란'이라 하고, 옥처럼 깨끗하고 소중한 나무라 하여 ‘옥수’, 나무에 피는 크고 탐스런 연꽃이라 하여 '목련', 꽃봉오리가 모두 북쪽을 향했다고 하여 '북향화', 꽃봉오리가 붓끝을 닮았다고 하여 '목필'이라고도 하는 등 목련을 부르는 이름도 다양하다. 전설 또한 슬픈 꽃말이 되고 있다.
목련꽃은 왜 남쪽이 아닌 어둡고 추운 북쪽 하늘을 바라보고 피어날까. 옛날 하늘나라에 백옥같이 희고 아름다운 공주가 살고 있었는데, 뭇 남성들의 연모를 외면하고 오직 북쪽 바다의 사나운 神‘매오로시’만을 사랑했다. 공주는 사랑을 찾아 북쪽바다로 건너갔지만 북쪽 신에게는 이미 아내가 있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하고 공주는 바다에 뛰어들었다. 북쪽 바다의 신은 공주의 죽음이 자신에게 아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자기 아내에게 약을 먹여 죽게 하였다. 하늘나라 임금은 이를 가엾게 여기고 공주는 희고 아름다운 백목련으로, 그의 아내는 자목련으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북쪽 바다의 신을 사랑했던 두 여인은 죽어서도 북쪽 바다의 신이 그리워서 북쪽을 바라보며 피었다. 그런 전설 때문에 목련꽃봉오리들은 일제히 북쪽을 지향하고 있는 것일까. 한 번 보라. ‘북향화’란 이명(異名)을 뒷받침하듯 신기하게도 목련꽃봉오리들은 모두 북쪽 하늘을 향해 피어 있다.
지금, 거리마다 목련꽃이 우아하게 피어있다. 얼마 전 춘설이 내리고 비바람의 시샘 속에서도 목련은 어김없이 꽃봉오리를 내밀었다. 간밤에 비가 내리더니 목련은 꽃봉오리 끝자락마다 빗방울을 대롱대롱 매달아 놓았다. 그 모습은 마치 하얀 물을 머금고 있는 붓 자루 같다. 그래서 목련을 ‘목필’이라고도 하는가 보다. 요즈음, 출근할 때마다 너무도 아름답고 우아한 목련꽃과 통정하다가 통근기차를 놓칠 뻔했다. 정신 없이 기차역으로 뛰어가는 내 모습을 보고 햇살도 함께 달리며 배시시 웃었다.
봄이 약동하는 들녘으로 광주행 호남선 기차가 달린다. 잘려나간 볏짚 사이로 파란 싹이 돋아나고, 보리도 한 뼘이나 자랐다. 겨우내 황금색으로 죽은 체하던 대나무도 어느새 푸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기차는 덜컹덜컹 평행선 레일로 미끄러져 달려가는데 MP3에서 흐르는 엄정행의 ‘목련화’ 노랫소리에 마음이 설렌다.
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희고 순결한 그대 모습 봄에 온 가인과 같고
추운 겨울 헤치고 온 봄 길잡이 목련화는
새 시대의 선구자요 배달의 얼이로다.
가곡 '목련화'는 작곡자 김동진이 경희대 음대학장으로 재직하던 1974년에 경희대 개교 4반세기를 기념하는 축제가 벌어졌었는데, 그 때 당시 경희대학교 총장이던 조영식 박사가 작사한 칸타타 '대학송가' 제2부에 들어 있는 곡을 작곡한 것이라고 한다. 상아탑을 찾아 모여든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애정과, 장차 짊어지고 나갈 조국의 앞날을 축복하는 뜻을 순결한 목련화에 비유하여 예찬하고 있다.
목련꽃이 필 때면 으레 비바람이 휘몰아친다. 목련은 눈보라 속에서도 고아(高雅)한 위풍을 지키다가 잎이 피기 전 유백색 꽃봉오리로 홀로 나와 봄이 왔음을 알리는 전령사 역할을 한다. 가인박명인가. 휘몰아치는 춘설과 비바람에 꽃잎을 참혹하게 다 찢기고 만다. 가뜩이나 개화기가 짧아 안타까운 목련꽃에 비바람까지 낙화에 일조를 하니 목련이 필 때 내리는 비바람 때문에 내 가슴이 무너진다.
잠깐 피었다 지는 것이 어디 목련뿐이랴. 아름다운 것들은 더 빨리 사라지는 것을……. 목련꽃 피는 계절에 숨어 다녔던 그 대학생들은 불혹의 인생을 넘어 지금 어디서 이 봄을 바라보고 있을까. 계절은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오는데 한 번 흘러간 강물은 돌아올 줄 모른다. 인생은 끝없는 레일을 따라 앞만 보고 달려가는 기차와도 같은 것, 목련꽃 피는 계절이 오면 나는 알 수 없는 그리움에 몸살을 앓는다. 그래서 기차를 탄다.
호남선 기차가 달린다. 100M 달리기 선수처럼 빠르게 달린다. 목련꽃이 하얗게 핀 4월의 두 줄기 레일을 타고…….
행촌수필문학회 이은재
어느 봄날, 잠자던 나뭇가지에서 화들짝 하얀 웃음이 터졌다. 꽃샘바람에 잔뜩 웅크렸던 나목(裸木)은 4월의 미풍에 그만 활짝 웃어버렸다. 밤새 휘몰던 바람도 잦아진 고요한 새벽에 똑! 똑! 똑! 누군가 창문을 두드린다. 단잠을 깨운 그대, 밤새 바람과 맞서며 해산한 그대는 하얀 목련이었다. 톡! 톡! 터지는 균열소리는 그대의 해맑은 웃음소리였던가.
내 젊은 날의 봄은 MBC 문화방송 맞은편 시민회관에서 열리는 신춘음악회로부터 시작되었다. 연례행사처럼 열렸던 신춘음악회에는 테너 엄정행의 ‘목련화’가 항상 있었다. 음악회가 무르익어 가는 뒤뜰에선 목련이 향기를 토하며 봄바람과 유희를 하고, 연인들은 그 거리를 오가며 사랑을 엮어갔다. 너무도 감미로웠던 4월의 밤, 목련이 하얗게 웃던 밤이었다.
20대 시절에 나의 자취 집 마당 한켠에 우물이 있었고 그 곁에 목련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나는 우물가에서 세수를 하다가 바람에 밀려온 목련꽃 향기에 농익은 세레나데가 되곤 했다. 사각사각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는 그리운 님의 행차인가 하고 돌아보면 목련꽃 떨어지는 소리였다. 가지마다 하얀 등을 달고 그리움을 삼키는 목련꽃보다 더 깊은 그리움이 4월 내내 나를 결박하던 밤, 목련이 하얗게 웃던 밤이었다.
내 자취 집 문간방에 남자대학생들이 들어왔다. 그 대학교에선 해마다 부활절을 기념해서 4월에 축제를 열었다. 나는 문간방 대학생들에게 끌려 축제에 참가하곤 했었다. 축제가 열리는 캠퍼스엔 아름드리 목련나무가 봄바람과 조우하고 별들은 휘영청 광채를 뿌렸다. 죽은 듯하던 옹이진 가지에선 생명이 움트며 꽃을 피웠다. 그 향기로운 목련꽃 아래에서 울려 퍼지던 헨델의 '할렐루야' 합창소리는 너무도 은혜로웠다. 어둠을 이기고 승리한 부활의 기쁨이 순백의 향기를 타고 상아탑에 모인 젊은이들을 축복했다. 축제가 절정에 이르던 밤, 목련은 더 큰 소리로 하얗게 웃었다.
목련꽃이 지던 날, 문간방에서 자취하던 대학생들의 흔적도 사라졌다. 섬돌 위에 놓여있던 대학생들의 하얀 운동화가 여러 날 보이지 않았다. 굳게 채워진 자물통만이 문간방을 지키고 있었다. 민주주의를 외치다 경찰에 쫓기던 문간방 대학생들은 그렇게 봄이면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다.
어느 해인가는 목련이 피었다 지고 잎이 우거질 때까지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군부의 학정으로 흉흉해하던 학원가, 지식을 연마하고 꿈의 나래를 펼쳐야 할 학원가는 최루탄 가스와 몽둥이가 난무했다. 유혈이 낭자한 봄날은 진달래꽃보다도 더 짙은 슬픔을 안고 오월의 붉은 장미로 피어났다.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경찰에 대항하기 위해 흉기로 돌변한 보도블록은 한 때 대학교 주변 도로엔 금지되기도 했던 그 시절에, 내가 소속했던 감리교회 청년부 대학생들은 정의를 갈망하며 투쟁에 나선 진정한 용사들이었다. 그 집회를 주도한 사람이 문간방 대학생들이었다. 그들은 봄 내내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나는 밤마다 문간방을 서성거렸다. 문간방에 불이 켜질 날을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인기척에 문간방 대학생들인가 싶어 나가보면 목련꽃을 흔드는 황량한 바람소리였다.
신 새벽 뒷골목에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쓰다가 붙잡혀 고초를 당하던 슬픈 계절,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처럼 젊은이들은 민주주의를 갈급하다가 폭도로 규정되었다. 자유를 외치다 목련꽃처럼 스러져 간 이 땅의 젊은 학생들은 황사바람에 동강난 목련꽃처럼 산산이 떨어져 짓밟혀졌다. 밤새 호루라기 소리에 쫓겨다니던 그때 목련은 하얗게 울었다.
꽃은 옥이요, 향기는 난초 같다 하여 '옥란'이라 하고, 옥처럼 깨끗하고 소중한 나무라 하여 ‘옥수’, 나무에 피는 크고 탐스런 연꽃이라 하여 '목련', 꽃봉오리가 모두 북쪽을 향했다고 하여 '북향화', 꽃봉오리가 붓끝을 닮았다고 하여 '목필'이라고도 하는 등 목련을 부르는 이름도 다양하다. 전설 또한 슬픈 꽃말이 되고 있다.
목련꽃은 왜 남쪽이 아닌 어둡고 추운 북쪽 하늘을 바라보고 피어날까. 옛날 하늘나라에 백옥같이 희고 아름다운 공주가 살고 있었는데, 뭇 남성들의 연모를 외면하고 오직 북쪽 바다의 사나운 神‘매오로시’만을 사랑했다. 공주는 사랑을 찾아 북쪽바다로 건너갔지만 북쪽 신에게는 이미 아내가 있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하고 공주는 바다에 뛰어들었다. 북쪽 바다의 신은 공주의 죽음이 자신에게 아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자기 아내에게 약을 먹여 죽게 하였다. 하늘나라 임금은 이를 가엾게 여기고 공주는 희고 아름다운 백목련으로, 그의 아내는 자목련으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북쪽 바다의 신을 사랑했던 두 여인은 죽어서도 북쪽 바다의 신이 그리워서 북쪽을 바라보며 피었다. 그런 전설 때문에 목련꽃봉오리들은 일제히 북쪽을 지향하고 있는 것일까. 한 번 보라. ‘북향화’란 이명(異名)을 뒷받침하듯 신기하게도 목련꽃봉오리들은 모두 북쪽 하늘을 향해 피어 있다.
지금, 거리마다 목련꽃이 우아하게 피어있다. 얼마 전 춘설이 내리고 비바람의 시샘 속에서도 목련은 어김없이 꽃봉오리를 내밀었다. 간밤에 비가 내리더니 목련은 꽃봉오리 끝자락마다 빗방울을 대롱대롱 매달아 놓았다. 그 모습은 마치 하얀 물을 머금고 있는 붓 자루 같다. 그래서 목련을 ‘목필’이라고도 하는가 보다. 요즈음, 출근할 때마다 너무도 아름답고 우아한 목련꽃과 통정하다가 통근기차를 놓칠 뻔했다. 정신 없이 기차역으로 뛰어가는 내 모습을 보고 햇살도 함께 달리며 배시시 웃었다.
봄이 약동하는 들녘으로 광주행 호남선 기차가 달린다. 잘려나간 볏짚 사이로 파란 싹이 돋아나고, 보리도 한 뼘이나 자랐다. 겨우내 황금색으로 죽은 체하던 대나무도 어느새 푸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기차는 덜컹덜컹 평행선 레일로 미끄러져 달려가는데 MP3에서 흐르는 엄정행의 ‘목련화’ 노랫소리에 마음이 설렌다.
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희고 순결한 그대 모습 봄에 온 가인과 같고
추운 겨울 헤치고 온 봄 길잡이 목련화는
새 시대의 선구자요 배달의 얼이로다.
가곡 '목련화'는 작곡자 김동진이 경희대 음대학장으로 재직하던 1974년에 경희대 개교 4반세기를 기념하는 축제가 벌어졌었는데, 그 때 당시 경희대학교 총장이던 조영식 박사가 작사한 칸타타 '대학송가' 제2부에 들어 있는 곡을 작곡한 것이라고 한다. 상아탑을 찾아 모여든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애정과, 장차 짊어지고 나갈 조국의 앞날을 축복하는 뜻을 순결한 목련화에 비유하여 예찬하고 있다.
목련꽃이 필 때면 으레 비바람이 휘몰아친다. 목련은 눈보라 속에서도 고아(高雅)한 위풍을 지키다가 잎이 피기 전 유백색 꽃봉오리로 홀로 나와 봄이 왔음을 알리는 전령사 역할을 한다. 가인박명인가. 휘몰아치는 춘설과 비바람에 꽃잎을 참혹하게 다 찢기고 만다. 가뜩이나 개화기가 짧아 안타까운 목련꽃에 비바람까지 낙화에 일조를 하니 목련이 필 때 내리는 비바람 때문에 내 가슴이 무너진다.
잠깐 피었다 지는 것이 어디 목련뿐이랴. 아름다운 것들은 더 빨리 사라지는 것을……. 목련꽃 피는 계절에 숨어 다녔던 그 대학생들은 불혹의 인생을 넘어 지금 어디서 이 봄을 바라보고 있을까. 계절은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오는데 한 번 흘러간 강물은 돌아올 줄 모른다. 인생은 끝없는 레일을 따라 앞만 보고 달려가는 기차와도 같은 것, 목련꽃 피는 계절이 오면 나는 알 수 없는 그리움에 몸살을 앓는다. 그래서 기차를 탄다.
호남선 기차가 달린다. 100M 달리기 선수처럼 빠르게 달린다. 목련꽃이 하얗게 핀 4월의 두 줄기 레일을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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