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 졸업 후 30년

2008.02.05 10:33

배영순 조회 수:732 추천:2

여고 졸업 30년 후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수요반 배영순




  열아홉 살 단발머리 계집아이들이 쉰 살 아줌마가 되어 모여들었다. 여고 졸업 후 30년 만에 만난 동창들은 비록 뚱뚱한 몸매에 탄력을 잃은 피부였지만 얼굴만은 여전했다. 반가운 얼굴들이지만 이름을 떠올리지 못할까봐 가슴에 각자 명찰을 달고서 만났다. 500여 명 중 200명 가까이 참석했으니 친구들도 가는 세월이 아쉬웠던 모양이다. 이젠 7,80대 노인이 되신 은사님들께서도 자리를 같이 해 주시니 동창회는 화기애애했다. 백발에 노구를 힘겹게 움직이는 은사님들의 모습은 30년 후의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노  스승님들을 모시고 반 별로 10대 소녀들이 되어 한바탕 재롱잔치를 벌이니 어느 누가 머지않아 할머니 될 사람들이라고 하겠는가. 성악가가 된 동창생의 축가를 들으며 난 30년 전 시베리아 벌판으로 날아갔다.

추억은 아픔도 아름다워라.

내 모교인 J여고는 당시 허허벌판이었던 곳에 새로운 건물을 지어 이사한 다음 해에 우리가 입학했으니 허허벌판에 본 건물만 덩그러니 지어진 학교여서 건물모퉁이는 시베리아 벌판이 따로 없었다. 지역의 명문여고에 입학했다는 자부심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1학년을 보낸 뒤, 한의사를 꿈꾸었던 난 이과 반을 선택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에게 고등학교 2, 3학년은 친구도 추억도 남아있는 게 없다. 오직 문학과 어학만을 좋아했던 나에게 수학2, 물리2, 화학2 등 이과 과목은 강의 자체가 내 귀엔 아라비아어로 들렸다. 흥미도 없었을 뿐 아니라 내 뇌 구조자체가 이해하기를 거부하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에서 화학을 가르치는 L이 여전히 허스키한 목소리로 "넌 낙천적이고 음식을 언제나 조금밖에 먹지 않았다."면서 나에 대한 기억을 말해주었다. 별로 친하지 않았던 그 아이에게 공부를 포기한 내 모습이 낙천적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방황의 2년을 보낸 뒤 대학에서는 영어를 전공했다. 원하지 않았던 대학이었지만, 적성에 맞는 공부를 할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교직에 선 난 방황했던 고등학교 시절의 아픈 경험을 교훈삼아 직업을 선택할 때 보기 좋은 일이 아니라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권한다.

동창회는 좋은 소식을 날라다 준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나와 같은 반이었던 J는 참으로 영특한 아이였다. 자그마한 키에 항상 공부만 했던 그 아이와 난 한 번도 대화를 나누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당시 난 제법 키가 큰 편이었고, 키 순으로 번호가 주어지고, 자리 또한 번호 순으로 정해졌기 때문에 주변 친구들하고나 대화를 했지, 키가 작아 맨 앞자리에 앉아서 공부만 하던 그 애와 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전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만 했던 그 아이가 서울의 명문대 의대에 6년 장학생으로 선발된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친구들이 졸업 후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할 때, J는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상태는 더욱 더 악화되어 학업도 포기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을 뿐이었는데, 이번 모임에서 J가 몇 년 전 완치되어 좋은 사람과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그 친구의 정신을 혼란시킨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다만, 잘못 선택한 진로가 원인이 아니었을까 추측할 뿐이다.


동창회에서 만들어 준 수첩 안엔 단발머리 소녀들의 사진과 간단한 신상명세서가 들어있다. 다른 나라에 가서 살고 있는 친구들도 있고, 서둘러 이승을 떠난 친구들도 몇몇 있다. 같이 고민하고, 울며 부대끼던 친한 친구들이 있는 페이지엔, 그 친구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기를 바라면서 예쁜 책 갈피를 꽂아 두었다. 인연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이 소중한 인연들을 잘 관리하지 못하는 것 또한 직무유기다. 불교에서는 옷깃 한 번 스치는 것도 전생에서 500겁(생)의 소중한 인연이 있어야 한다던가. 가족들과의 인연, 색깔이 각각인 친구들과의 인연, 수필 반 친구들과의 인연은 얼마나 소중하며, 이 모든 인연들이 내 삶의 버팀목이 아니겠는가.


30년이란 세월은 참으로 많은 걸 바꾸어 놓았다. 또 다른 30년 뒤의 내 모습을 그려본다. 그때까지도 내가 살아있다면, 외형이 아닌 내면으로 진정 잘 살아왔노라고 흐뭇한 미소로 답할 수 있다면 좋겠다.
                             (2008.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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