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

2008.02.10 21:22

김금례 조회 수:721 추천:2

빛과 그림자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목요반 김금례



행복한 꿈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그 행복이 깨질까 봐 마음을 졸인다. 불행은 빨리 가라고 밀어낸다. 인간은 누구나 희∙로∙애∙락의 삶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행복과 불행은 빛과 그림자처럼 함께하는 것일까. 내가 행복에 잠겨 있을 때 네 편지가 왔다.
2007년 12월에 실시한 종합건강검진결과 통보서였다. 모두 정상이었으나, 유방암 종합 판정란에 종양이 눈에 들어오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는 전율을 느꼈다.
“정상 이외의 판정을 받은 경우 빠른 시일 내에 전문가의 진단에 따른 조치를 취하시기 바랍니다.”
위의 글귀가  또다시 눈물짓게 했다.  4남매를 모유로 키웠기 때문에 유방 속에 종양이 있다고 생각지 않았는데 또 수술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나간 아픈 삶이 다시 되살아났다. 그래도 생명의 끈을 연장하고파 대학병원 안에 들어서니 아픈 사람들이 참 많았다. 나는 유방외과를 찾았다. 고통을 혼자 하려고 홀로 병원을 찾아갔는데 진료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힘들어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병원인데요.”
“뭐 병원?”
불자동차처럼 달려와 놀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 종양이 유방에 있다네.”  
남편은 침묵에 잠겼다. 내 손을 꼬~옥 잡고
“괜찮아. 또 떼어내면 될 거야.”
남편과 대화하는 동안 의사의 부름을 받았다. 진찰 뒤 초음파 검사실로 보내면서 결과는 2008년 1월 29일 14시 30분에 다시 오라고 했다. 아름답게 열매를 맺을 나이 47세, 예고 없이 밀어닥친 병고[子宮]앞에 생사의 갈림길에서 조직검사도 없이 수술을 했었다. 나와 고통을 함께했던 사람들은 하나 둘씩 이 세상을 떠났다. 그 뒤 나는 6개월, 1년 단위로 종합검진이 시작되었다. 10년 뒤 위에서 또 종양이 발견되어 수술을 했다. 두 번 수술을 하고나니 하루하루의 삶이 너무  힘들었다.
“재산을 잃으면 반을 잃고  건강을 잃으면 모두 잃는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건강을 찾으니 행복과 희망이 샘솟았는데 불청객처럼 나타난 종양이 한없이 미웠다.
“잡초 뿌리처럼 끈질긴 너는 누구냐?”
하늘을 보며 소리쳤다. 푸른 하늘은 노랗게 보였다.  내 마음을 쉼 없이 갉아먹는 종양이 양성이기를 바라면서 하염없이 발 가는대로 가다보니 건지산을 오르고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기보다는 연인도 아닌, 친구도 아닌 편한 마음으로 불현듯 찾아가면 보듬어 줄 수 있는 곳이 산이다. 기도로써 채워지지 않은 허약한 부분까지도 채워주는 아름다운 삶의 여정이기에 사람들은 힘들면 산에 오르는가보다. 그래서 예수님도 힘들 때 마지막에  산으로 올라 가셨는가 보다.
‘인생은 어차피 홀로 걸어가는 걸까.’ 나는 덥석 벤치에 앉았다. 햇빛이 쨍하더니 갑자기 눈보라가 쳤다. 겨울은 겨울인가 보다.  바람에 이리저리 나부끼며 눈보라는 내 볼을 쳤다. 정신 차리라는 듯 더욱 힘차게 쳤다.  봄, 여름 울창했던 이파리를 모두 떨어뜨린 나무들이 겨울을 원망하지 않고 빈 가지로 서있다. 앙상한 나무들은 추위에 떨면서 투정도 없다. 나뭇가지 사이로 새 둥지가 보였다. 희망이 보인다. 몇 년 전 ‘MBC 칭찬합시다’에서 소개된 오아볼로 씨의 모습이 떠오른다. 중증장애로 태어나 자신도 절망상태에 있지만 세상에서 상처받은 사람, 좌절하는 사람들과 주고받은 글들이 60만 통이 넘어 자신의 절망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삶이 머릿속에서 영화필름처럼 돌아가고 있다. “그래, 너희들 보면 두려워 떨면서 떼어내고  또 떼어내고 했지만 그림자처럼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19년 세월 사랑으로 감싸주리라.”
사랑은 무쇳덩어리도 아이스크림 녹듯 녹인다고 했다. 겨울나무 사이로  “사랑해 사랑해!”
소리쳤다. 다시 메아리가 되어 나에게 되돌아 왔다. 가슴을 어루만지며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투정 부리지 말고, 화내지 말며, 싱거우면 소금이 되어주고 짜면 물이 되어주는 귀한 만남으로 서로 사랑하자. 어느 날 홀연히 바람처럼 사라지는 날, 너와 함께하니 외롭지 않겠지. 사랑은 사람을 성화시키며 아름답게 한다. 해는 서산 울타리에 걸치고 발걸음은 가벼웠다.”
아침 해가 밝았다. 남편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두려움 없이 의사 앞에 앉았다.
“아주 작습니다.  없어질 수도 있고 그대로 있을 수도 있고 클 수도 있으니 6개월 뒤 검사를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사랑한다며 어젯밤 잠을 청해 보았지만 형틀에 누운 것처럼 견디기 힘들어 눈물을 적셨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종양을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으로 여행 보내자!”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병원 문을 나서니 파란 하늘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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