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28 06:09
어머니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김세명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너무 어려운 시기에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일제의 억압이 한창이던 1917년에 태어나셨다. 16세에 아버지를 만나 일제강점기와 6.25를 겪으시면서 어려운 시대에 8남매를 낳아 키우셨다. 그 시대의 참상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장남인 나는 어머니의 고생을 직접 보고 피부로 느끼면서 자랐다. 6.25후 폭격으로 불타버린 잿더미에서 다시 시작하셨다. 우리 가족은 춘궁기에 보릿고개를 겪으며 초근목피로 연명했었다.
당시 무주읍을 폭격한 건 B-29라는 미군 비행기였다. 주민들에게 피난을 가라는 방송을 한 뒤 시가지 일대를 폭격하여 불태웠다. 그 이유는 '딘' 미군 소장이 북한군에게 포로로 잡힌 곳이 무주 부근이기 때문이었다. 미군 사령관인 '딘'소장이 포로로 잡힌 경위도 아이러니하다. 당시 딘 소장은 부관과 찦차로 대전에서 군산으로 가려고 주민들에게 영어로 물어보니 주민은 '군산'을 '금산'으로 알아듣고 그 방향으로 안내했다. 당시 도로 여건이 좋지 않아서 차가 빠지는 바람에 금산에서 차를 버리고 도보로 무주 배방리까지 오게 되었다. 그들은 주민의 도움으로 토굴 속에서 숨어 지내다가 안천에서 북한군에게 포로가 되었다.
당시 미군들은 무주 산골 일대를 적군의 소굴로 판단하고 폭격을 감행한 것이다. 그러나 양민들의 피해가 더 컸다. 피난을 가라는 방송을 듣고 소달구지에 어린 나와 할머니를 태우고 아버지는 식량과 식사 도구 등을 싣고 피난길에 올랐다. 당시 흰옷을 입은 할머니는 미군의 비행기에서 쏘는 기총소사로 사망하셨다. 피난에서 돌아와 보니 집은 불타서 없어지고 말았다.
내 고향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덕유산(德裕山)과 적상산(赤裳山) 계곡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산동네, 그곳에서 어머니는 태어나시어 그곳에서 삶을 마감하셨다. 어머니는 생전에 기차 한 번 타 보는 게 소원이라고 하셨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 뒷동산에는 6.25전쟁 후 버려진 탱크와 야전포 불발탄이 널려 있어서 어린이들의 장난감이 되었다. 미국에서 보내 준 구호물자를 선생님이 나누어 주신 유리구슬로 구슬치기를 하거나 딱지놀이를 하기도 했다.
쇠구슬이 좋아서 아이들은 서로 쇠구슬을 가지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불발 폭탄 속에 쇠구슬이 있다는 말에 아이들은 폭탄의 위험도 모른 채 돌로 날개를 두드려 빼려다가 폭발하여 구경하던 학생들까지 30여 명이 죽는 큰 참사가 있었다. 폭발 소리에 놀라 어머니는 학교로 달려와 피투성이로 변한 아이를 안고서 울고 계셨다. 그 아이가 나로 착각하신 거다. 내가 본능적으로 어머니를 부르니 어머니는 놀라움과 안도의 한숨을 쉬며 우셨다. 나를 품에 꼭 껴안고 울부짖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그곳에 없던 것은 천우신조다. 그 전날 나와 친구들은 그 폭탄을 새끼줄에 매달고 끌고 다녔기 때문이다. 내 친구들은 그날 이후로 볼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의 슬픈 추억이다. 돌이켜 보면 고생하면서 사는 건 불행한 일 같지만, 동창회 때면 그 시절 이야기가 두고두고 화제에 오른다. 새벽 네 시면 통금이 해제되었다. 새벽에 밥을 지어주시면서 어머니는 너만 믿는다. 네 동생들 잘 거느리려면 형은 국량이 넓어야 된다’고 하셨다. 철이 없던 나는 어머니의 말씀을‘쌀이 귀하여 국이라도 많이 먹여 학교에 보내려고 국량이 크커야 한다고 하시나 보다.'생각했다. 국량이란 말이 남의 잘못을 이해하고 감싸 주며 일을 능히 처리하는 힘이었으며 마음이 넓어야 된다는 뜻이었음은 성장한 뒤에야 알고 밥상을 대할 때면 어머니 생각에 눈물을 삼키기도 한다.
어머니는 나를 사랑하셨고 장남으로서 책임감도 부여하셨다. '인심은 천심이다. 마음씨 착하고 성실하면 된다!’ 충고하시던 어머니셨다. 공부를 열심히 하여 아버지처럼 힘든 농사일을 하지 말고 공무원을 하라시면서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던 어머님이셨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고된 농사일로 평생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셨다. 동생들이 다 자라기도 전에 삶을 마감하시니, 나에게는 효도할 기회조차 주지 않으셨다. 어머니 말씀대로 나는 공무원이 되었다.
지금도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자식들의 효도 한 번 못 받으시고 그렇게 서둘러 먼 나라로 가셨는가? 하늘이 원망스럽고 그저 한없이 안타깝다. 오늘 나는 어머님께 이 글을 올리면서 어머님께 감사하고 고맙다는 말씀을 백 번, 천 번, 아니 억만 번이라도 더 하고 싶다.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2018.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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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명 선생님
언젠가 저의 책을 읽고 따뜻한 독후감을 써 주셨던 분......
은혜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도 많은 요즈음인데 이렇게 기억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지요.
그런데 이토록 가난했던 나라를 지금까지 누가 잘먹고 잘 살게 해주었는지
글을 칭찬하듯이 깊게 넓게 정치지도자를 향해 비판하지 않고
역사를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 정말 슬프답니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일부의 국민들, 한나라에 두 이념이 어찌 공존 합니까.
세상에 우리민족끼리 무엇을 할수 있다 말입니까.
지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이나라의 운명으로 당연히 선택해야 되어야지 않을까요.
역사가 거구로 가서 가난한 나라 사회주의로 가서는 안되겠지요.
민주 공화국이 아닌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뭉쳐지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