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과 그리움

2018.07.31 05:43

전용창 조회 수:9

외로움과 그리움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전 용 창

 

 

 

 

  “피우 피우” 아들의 소림사 권법은 밤이 깊도록 이어졌다. 손목을 구부리며 ‘성룡’을 흉내낼 때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아빠와 함께 종편방송에서 ‘취권’을 보았는데 흉내를 낸다는 게 참으로 대견했다. 나도 덩달아서 “피우 피우”하며 아들과 맞장구를 치며 대련을 했다. 아들은 너무도 좋은가 보다. 한참 놀고 나면 “충성, 충성”하며 거수경례를 하고 마친다. 그러면 이번에는 침대에 엎어지며 아빠 등을 안마하라고도 했다. 발을 갖다 대주면 발다닥에 간지럼을 먹이며 “하하 호호” 웃는다. 나이는 마흔에 가깝지만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으니 정신연령은 아직도 10대에 불과하다.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 낮에는 분주히 나다녀서 모르고 지내다가도 밤에 아들과 장난을 치고 나면 외로움을 느낀다.

 

  미국에 사는 큰딸이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하느라 몸살이 났다기에 아내가 미국으로 간지도 벌써 한 달이 다되어 간다. 그러니 집에는 남자만 셋이 남았다. 말로는 한국이 너무 더우니 그곳에서 여름을 나고 오라고 했지만 내심 빨리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다. 한 달쯤이야 걱정마라며 내가 아들들을 잘 데리고 있을 테니 푹 쉬고 오라며 큰소리를 쳤지만, 아침을 먹고 조금만 지나면 점심때가 되고, 잠시 나갔다 오면 또 저녁을 준비할 시간이다. 오랜 기간 날씨는 덥고 몸은 피곤하니 식욕이 떨어져서인지 아들은 밥을 잘 먹지 않는다. 아내는 더운데 고생하지 말고 시켜서 먹으라지만 그게 한두 끼도 아닌데…. 더구나 외식에 익숙해지면 내가 해주는 음식은 맛이 없을 테니 어쩌다 한 번씩만 극약 처방을 했다. 보름쯤 지나니 끼니때마다 무슨 국을 끓여야 할지? 찌개는 어떻게 해야 할지가 걱정이었다. 더구나 막내는 아침밥상을 차려놓으면 함께 들어야 하는데 늦잠을 자니 울화가 치밀어 오를 때도 많다. 그럴 때도 아무 말 안 하고 기다려주었다.

 

  처음에는 계란탕과 꽁치 찌개만 해도 잘 먹었다. 간간이 애호박으로 끓이는 된장국도 인기였다. 그런데 몇 번을 먹고 나더니 손을 대지 않는다. 그래도 콩나물과 두부는 우리네 식탁에서 보배인 것 같다. 다시마와 멸치, 조개를 분말로 만든 다시다는 콩나물국을 끓일 때 육수물 양념으로 최고였다. 거기에다 파와 다진 마늘을 조금 넣고 조선간장과 고춧가루를 뿌려주면 아내가 끓여준 콩나물국 맛에는 못 미치지만 아들은 맛있다고 했다. “아빠가 끓인 콩나물국이 맛있어요!” 그 한마디가 나의 피로를 싹 가시게 했다. 두부튀김은 막내아들에게 하도록 했다. 아들도 흥이 나서 튀김냄비에 식용유를 풀고 두부를 얇게 썰어 놓고 양파와 마늘을 버물러서 곧 잘 맛있는 두부튀김을 만들었다. 나도 “가현아, 참 맛있다.”며 칭찬을 해주었다. 이런 날을 대비하여 아내한테 요리하는 방법을 좀 배워두었으면 좋았을 텐데. 사실 아내에게 물어본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당신이 뭐 하러 부엌에 들어가려고?”하며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하며 나를 배려해 주었다.

 

 한 달이 가까워지자 아내의 빈자리가 집안 구석구석에서 느껴졌다. 막내아들은 연신 나에게 엄마 언제 오느냐고 묻는다. 나보다도 더 자주 전화를 하련만 감히 엄마한테 빨리 오라는 말을 못하고 아빠가 대신해주기를 바라나보다. 이제 10여 일만 지나면 더위가 끝난다니 조금만 참고 기다리자. 아들과 나는 서로를 위로하며 아내의 빈자리를 채워가고 있다. 어느 땐 잠자리에 누워있으면 홀로서기 연습인가? 이별연습인가? 곰곰 생각해 보기도 했다.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이럴 때를 두고 생긴 말인가 보다. 대화를 할 상대가 없다는 게 무척이나 외롭다나의 외로움이야 모악산까지 2만 보 가까이 걷거나, 친구들을  만나 당구도 치며 잊을 수 있지만, 아들의 그리움은 오직 ‘어머니’였고,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나도 아내와 첫사랑에 빠졌을 때는 낮이나 밤이나 ‘그리움’으로 가득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외로움’으로 변한 것 같다. ‘그리움’이 상대방을 위한 것이라면 ‘외로움’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던가? 이제 아내가 돌아오면 하루하루를 그리움으로 살아야겠다. 아들은 자다가 일어나서 베란다 꽃나무에 물을 주고 있다. 베란다 꽃들은 아내가 소중히 여기는 분신들이다. 아들은 잠결에 엄마가 그리웠나 보다. 그래서 꽃나무를 찾아갔으리라.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내일은 아내한테 보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야겠다며 오늘 하루도 우리 가족을 보호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2018.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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