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고마비의 계절

2019.12.31 16:13

김용권 조회 수:2

잔고마비의 계절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김용권

 

 

 

 삶이 분주하게 돌아가다 보니 내 일정과 같이하던 자동차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여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번 자동차 점검을 받는 중에 배터리교체 시기가 되었다는 안내를 받았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며칠이 안 되어 문제가 발생되고 말았다. 참 난감한 일이다.

 

 주일아침 교회에 가려고 시동을 걸었는데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아차했다. 어쩔 수 없이 보험회사에 긴급출동 서비스를 신청했고, 핸드폰 몇 번의 지시에 긴급출동이 접수가 되었으며, 차량위치를 확인해주고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마을길 안쪽에 밤나무가 있기에 밤을 주우러 숲에 들어서니 이곳저곳에서 알밤들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잠깐사이에 수북하니 주웠다. 토종밤이라서 그런지 크기는 작지만 토실토실하여 먹음직했다. 봄에 꽃을 피우면서 존재감을 과시하며 밤꽃 특유의 꽃 냄새를 발산하더니 비바람과 작열하던 태양에 맞서고, 몇 차례 거친 태풍도 이겨내며 햇살에 살찌우고 어느새 가시 돋친 입을 하품하며 밤톨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른 아침 침입자의 인기척에 놀란 꿩들이 소리치며 솟구치니 "너만 놀랬냐? 나도 놀랬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한숨을 짓는데 눈길 저만치에서 움직임이 보였다. 다람쥐 식구들이다. 나와 같은 목적인지, 낫선 침입자를 경계하는 것인지 나보다 더 분주하다. 살며시 작은 밤톨을 다람쥐 양식으로 양보하고 숲에서 나왔다. 이내 서비스 출동차량이 도착하여, 늦어서 미안하다고 인사를 한다. 이 분은 정읍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광주에서 왔다며 명함을 건넨다. 왠지 모르게 나의 불찰로 인하여 일요일 아침부터 고된 일과를 시작하게 했으니 내가 더욱 미안했다. "하나님, 이분에게 축복을 내려주세요!" 라고 기도를 했다. 불과 2~3분도 안되어 건강한 소리가 요란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며 주웠던 밤을 모두 그에게 건네주었다.

 

 교회 가는 길, 라디오에서는 올 가을 중 날씨가 제일 좋은 날이라고 했다. 이러한 날들이 지속되었으므로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한다. 하지만 서민들의 지갑은 각종행사에 소비를 충동질하는 ‘디드로효과’ 때문에 가을을 만끽할 틈도 없이 잔고마비의 계절이 되어 버렸다고 했다. 귀가 번쩍 띄었다. ‘디드로효과’가 뭐지? 가는 차를 세우고 즉시 검색하여 감정을 이어 갔다. ‘디드로 효과’ 란 물건을 구매하면서 흔하게 겪는 것으로 하나의 물건을 구입하면서 이 제품에 맞추어 다른 제품을 계속해서 구매하는 현상을 말했다. 즉 내가 구매한 제품과 잘 어울릴 디자인을 고르는 현상으로 ‘디드로 통일성’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 뜻을 이해하고 나니 우리를 소비의 늪에 빠지게 하는 이 ‘디드로 효과’라는 말에 내 마음도 동했는지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교회 가는  길에 바라본 가을하늘은 오늘따라 더욱 높고 푸르다.  

                                                                                  (2019.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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