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에 취해 10년

2020.06.25 16:56

구연식 조회 수:42

묵향(墨香)에 취해 10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구연식

 

 

 

 공직에서 정년퇴직을 한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퇴임하던 해 여름부터 묵향(墨香)에 취해 10년째 먹을 갈면서 거칠고 들뜬 인격을 다듬고 억누르며 하얀 한지에 한 획 한 획 글씨를 써 내려간다. 그러나 아직은 인격 수양이 미천한지 글씨는 삐뚤빼뚤 들쑥날쑥하여 지도하시는 서예실 원장님과 문하생들에게 나의 치부를 드러낸 것 같아 부끄럽다. 재능(才能)은 최선의 노력을 다해도 선천적 끼가 없으면 안 된다고 자기 방어적 모순된 푸념만 늘어놓다 보니 소경 개천만 나무라는 격이다.

 

 내가 퇴직 무렵에 아내는 명예퇴직을 했다. 그래서 익산에 있는 지인의 조그마한 서비스업을 인수하여 운영해 보기로 했다. 나는 군산에서 아내와 아침 식사 후 익산으로 출근하여 오후에 퇴근을 도와주는 출퇴근 기사가 되었다. 퇴직 후 얼마 되지 않은 시기라 사회적 분위기는 어설프고 현직 때의 여운이 남아있어 퇴직자들의 전염병 격인 소위 우울증의 시기였다. 그때부터 아내를 출근시키고 퇴근 때까지 나의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자료를 뒤적거려보니 교습소, 동호회 그리고 학원 등이 즐비하게 있었다. 그중에서 아내의 업소 거리와 제일 가깝고 나의 분위기에 맞는 정중동(靜中動)서예 교실이 눈에 들어왔다.

 

  전에는 그 길을 여러 번 오갔어도 관심이 없어서 그랬는지 보이지 않더니, 아내 근무처에서 직선거리 200m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이소헌서예실이다. 2층에 올라가 보니 송진 끄름으로 제조하여 만든 특유의 묵향(墨香)이 반겨주었다. 공간에는 연륜이 들어 보이는 문방사우(文房四友)이 여기저기 널려있어서 또 다른 세계에 내가 와 있음을 직감했다. 이 세계에서 어떻게 적응해야 할까 하는 두려움도 느꼈다. 열서너 평의 서예실에는 7~8명이 방문객은 아랑곳하지 않고 임서(臨書)에만 열심이었다. 상투를 튼 사람은 지리산 청학동에서 수도하시면서 서예를 하시는 도사로 보였다. 어떤 젊은이는 상투 틀기는 머리카락이 아직은 짧은지 꽁지머리를 하고 검은 수염은 제각기 쫑긋쫑긋 쏘가리 수염처럼 뻗었고, 쭉 째진 눈꼬리는 서예실 분위기를 압도하여 그 성질을 죽이고 글씨 쓰는 모습이 대견스럽기도 했다. 또 한쪽을 보니 머리형은 원불교 정녀(貞女) 머리인 비녀를 꽂지 않은 쪽머리로 수도 신분인 성직자도 서예를 통해 수도하시는 것으로 보였다. 이렇게 밖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복장과 외모로 서예학습을 하는 문하생인 걸 보니 별천지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내 고향 익산 왕궁 부상천 마을에도 어린 시절에는 서당(書堂)이 있었다. 그 서당의 훈장님은 돌아가시고 집들만 남아 지붕의 이엉은 썩어 잡초가 무성하고 썰렁한 문간에는 거미줄이 이리저리 뒤엉켜 세월이 흘렀음을 알려주었다. 나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그 서당의 울타리 사이로 글읽는 소리와 붓글씨 쓰는 모습을 보았다. 휴식 시간이면 으레 서당 앞 연못에서 학동(學童)들은 얼음지치기하던 모습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우리 집에는 어머니가 생전에 쓰시던 붓과 벼루 그리고 몽당 먹조각이 남아있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 습자 시간에 써봤던 것이 서예와의 인연 전부였다.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관촌(官邨) 박태평 원장님과 면담을 했다. 박 원장님은 일찍이 대한민국 서예대전을 비롯한 여러 서예대전에서 여러 차레 입상하셔서 큰 상만 8, 전시회 100여 차례를 연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서예가였다. 관촌 박태평의 글씨체를 예술로 승화시킨 서예 5(····초서) 중 입신의 경지에 속하는 행·초서에 능한 서예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시다. 각종 대회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으로서도 활약하고 계신다. 전북서도협회 부회장, 마한서예문인화대전 이사장 등을 역임하고 계신다. 대한민국에서 실력 있는 떠오르는 젊은 별로 촉망되는 분이시다. 우선 면담 카드에 인적사항을 적으면서 어떻게 그리고 누구의 권유로 오게 된 동기를 물으시고, 앞으로 서예(書藝)에 필요한 Α에서 Ω까지 상세히 일러주셨다. 그중에서 서예의 시작은 먹을 가는 것부터라며, 먹과 벼루와 물이 만나 미세한 감각으로 적당한 농도의 먹물을 만드는 시간은 한편으로는 마음을 정리정돈하는 시간이어야 하며 그만큼 서예는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까지 일치돼야 하는 예술이라는 말로 마치, 칼을 쓰는 무공(武功)과 서예는 거의 같다고 볼 수 있디고 했다. 수양이나 수행이 되어야 제대로 서예를 할 수 있으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예술적 서예로 승화할 수 있다는 말씀이 서예에 문외한인 나에게는 지금도 초등학교 입학 때 담임선생님의 말씀처럼 기억에 오래 남는다. 이렇게 입문의 절차를 마치고 먹 가는 법, 붓 쥐는 법, 그리고 연습지() 접는 법 등 기본 학습 자세와 예절을 익히면서 서체별 원장 선생님의 체본(體本)을 보고 임서(臨書)에 열중했다.

 

 우리가 평소에 무공(武功)을 연마하는 것은 전쟁이나 적을 만났을 때 적에 대처하고 자신을 보호하는데 있다면, 자기의 무공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은 실전에 임해보는 즉, 많은 대회에 작품을 출전하여 보는 방법이 있다. 그래서 나도 서서히 전국 서예대회에 작품을 내보기 시작했다. 첫 작품 때 입선을 하여 전시실에 나의 작품이 전시되었을 때는 기쁨에 들떠 자만심까지 생겼다. 그 뒤에도 틈만 있으면 서예실에서 살다시피 하여 특선, 특선상, 그리고 10여 년쯤 지난 뒤에는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을 두 번이나 받게 되었다. 그 무렵 아내의 업소도 정리하고 전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서예실에 나가는 횟수도 조금은 뜸해졌다. 학문에는 끝이 없다고들 한다. 학문을 지도하는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소리는 10년쯤 되었으니 하산해야겠다는 소리란다. 스승의 입장에서는 이제 걸음마 단계인 10살짜리가 다 배웠다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모습 같단다. 서예와 수필은 내 손에서 붓을 쥘 힘만 있으면 언제까지나 하고 싶은데, 요사이 게을러진 내가 철모르는 제자로 비쳤을까 두렵다.

 "원장 선생님, 저는 10년 가지고는 어림없어요. 계속 지도해주세요."

                                                                                    (202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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