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이불

2020.06.26 19:04

정근식 조회 수:1



어머니의 이불 / 정근식


그날은 시외 출장 중이었다. 추운 겨울날이었다. 국민연금을 상담하고 있는데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떨리는 목소리였다. 지금 병원인데 어머니가 상태가 좋지 않다며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암이라고 한다. 당황한 나는 민원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급히 사무실로 돌아왔다. 동생은 어머니를 대학병원 응급실에 모셔다 놓고 내가 도착할 시간에 직장일이 있어 먼저 돌아갔다.

어머니는 혈액암이었다. 어머니는 평생 늙지 않으시리라고 믿었는데 암 진단은 충격이었다. 직장을 핑계로, 아이들을 핑계로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어머니는 몇 달 전부터 허리가 아프다고 하셨지만 나는 건성으로 받아 들였다. 노인이면 누구나 오는 관절염이거니 하며 가까운 정형외과에는 다녔지만 신경을 쓰지 못했다. 어머니의 통증이 갈수록 심해졌다. 동네 의원에서 진통제를 맞아도 고통이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보다 못한 동생이 인근 병원에 가서 종합검사를 받았는데 중병이었다.

뒤에 알았지만, 어머니는 들일을 하실 때에는 허리가 아파 평평한 합판을 허리에 감고 일을 하셨다고 한다. 담당의사는 혈액종양 내과가 있는 대학병원에 입원을 권유해서 구급차를 타고 급히 응급실에 입원을 한 것이다.
 양복을 입은 채로 도착한 대학병원 응급실. 시장 통처럼 시끄러웠다. 교통사고로 세 명이 구급대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고 있다. 응급실 안쪽에서 어머니를 발견했다. 아내도 아이 때문에 집으로 돌아갔고 혼자 누워 있었다. 팔에는 링거병과 혈액을 주렁주렁 달고서 연한 하늘색 이불을 덮고 눈을 감고 있다. 나는 어머니의 암 진단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어머니가 눈을 뜨는 것이 두려웠다. 눈길을 마주칠 자신이 없었다.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몰랐지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한참 뒤 눈을 떴다. 그리고는 나를 보자 ‘왔나’ 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부모님은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힘든 환경에도 이제 우리 삼남매가 자기 앞가림은 할 정도가 되어 아무런 걱정이 없었는데, 갑작스런 어머니의 암 진단은 충격이었다. 어머니의 병은 혈액암인 다발성 골수종이었다. 나이 때문에 수술이 불가능하며 먹는 항암제만이 유일한 치료제라고 한다. 더구나 의사는 3기라 생존기간이 길어야 30개월이라고 하며 무조건 몸조심을 해야만 한다고 했다. 면역력이 극도로 약해지는 병이라 지나가는 감기도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이번 추석까지 살 난지 모르겠다.” 어머니가 툭 던진 한마디에 가슴이 막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어머니도 당신의 병을 알고 계신 듯했다.
 나는 그날 저녁 난생 처음으로 어머니를 위해서 하룻밤을 보냈다. 어머니는 병실이 없어 응급실에서 잠을 자야 했다. 어머니는 응급실 침대에 나는 병원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잠을 청했다. 출장 탓에 많이 피곤했다. 눈만 감으면 세상도 모를 것 같았다. 밤이 깊어지자 나는 꾸벅꾸벅 거리다가 어머니 침대 아래에서 잠이 들었다.

한참이 지났을까. 잠에서 깬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럴 수가! 연한 하늘색 이불이 내 몸을 덮고 있는 게 아닌가. 벌떡 일어나 어머니가 누워있는 침대를 보았다. 추운 겨울날 병원 응급실에서 주무시는 것도 힘들 텐데 어머니는 환자복만 입은 채 주무시고 있었다. 추워서 몸을 움츠리고 누워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뜬 어머니께 이유를 묻지 않았다. 이불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마음을 고스란히 받은 그 날,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놓을 수가 없었다.

오늘도 어머니가 계시는 병실로 퇴근을 한다. 가만히 잠든 어머니의 여윈 얼굴을 내려다보며 바람이 들까봐 이불 한 자락을 여미어드린다. 한세상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깊은 잠에 빠지셨다. 이제는 내가 어머니의 이불이 되어 가냘픈 어깨를 포근히 감싸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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