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난로 앞에서

2020.12.11 11:49

윤근택 조회 수:7

나무난로 앞에서


        - 일백다섯 번째, 일백여섯 번째 이야기 -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105.

  이번엔 이 외할애비가 뒷동산에 여러 그루 심어둔 ‘구지뽕나무’가 말썽이다. 외손주녀석은 그 오솔길을 걷다가 실수로 그 구지뽕나무 가지에 돋아난 창(槍)같이 생겨먹은 굵은 가시를 그만 짚었던 모양이다. 나무난롯가에 와서 칭얼댄다.

 “한아버지, 으뜸이의 이 오른손바닥 좀 봐. 피가 송글송글 맺히고 몹시 욱신거리는 걸!”

  해서, 내가 평소 익혀 실천하는 대로 돋보기· 바늘· 손톱깎이·‘화살나무 태운 재’등 ‘가시 뽑기’도구 및 보조재료를 총동원하여(?) 녀석의 손바닥에 깊이 박힌 구지뽕나무 가시를 뽑아주었다.

  녀석은 이 노변담화 제 75화에 소개했던 ‘화살나무 태운 재’의 효능을 이내 기억해낸다.

  “한아버지, 언젠가 으뜸이한테 가르쳐줬다? 가시를 뽑는 데에는 ‘화살나무의 재’가 아주 쓸모있다고 말이야. 줄기에 화살 날개같이 생긴 게 달려 생긴 이름 화살나무. 그 화살나무의 줄기를 태워 재를 만든 다음, 그 재를 가시 박힌 살점 위에다 묻혀 두었다가 가시를 빼면 쉬이 가시가 빠진다고 하였다? 그래서 화살나무를 ‘가시나무’라고도 부른다고 가르쳐줬다? 글고(그리고)화살촉이 또 다른 화살촉인 가시를 뽑는다고까지 으뜸이한테 가르쳐줬다?”

  고 녀석, 기억력이 참으로 빼어나다.

  “한아버지, 근데(그런데) ‘화살나무’는 화살의 깃처럼 생긴 코르크의 날개가 달려서 붙여진 이름인 건 알겠는데, ‘구지뽕’은 또 어떤 뜻을 지녔어?”

  아주 좋은 질문이다. 그렇잖아도 이야기꺼리 가 쪼들리던 터에.

  “으뜸아, 우리말에 ‘굳이’라는 말이 있잖니? ‘고집스럽게 구태여’라고 우겨댄다는 뜻을 지녔지. 자기가 뽕나무가 아니면서 굳이 뽕나무라고 우겨대는 통에 ‘굳이뽕’이라고 불러주었던 거야. 본디는‘굳이뽕’이었지만, ‘구지뽕’ 혹은 ‘구찌뽕’으로 달리 부르게 된 것이고. ”

  녀석은 얼른 이해가 아니 되는 모양이다. 고개를 갸우뚱댄다.

  “ 으뜸아, 누에를 키우기 위한 목적으로 사람들로부터 대접을 받는 뽕나무가 부러워 ‘굳이 자기도 뽕나무를 하겠다고 우겨서’ 붙여준 이름이래. 그 이파리 모양이 다른 종류의 뽕나무들과 비슷하지 않던? 다만, 구지뽕은 다른 종류의 뽕나무와 달리, 네 손바닥을 아프게 찌른 가시가 달려 있을 뿐. 그리고 사실 구지뽕의 잎으로도 누에를 칠 수 있대. 오히려 그 누에고치에서 얻은 명주실이 가야금과 거문고의 악기줄로는 최상품이라고 해.”

  외손주녀석 으뜸이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 할애비보다 훨씬 뛰어난 이해력을 지녔다.

  “한아버지, 구지뽕의 잎들은 악기줄을 만들어주는 훌륭한 1차 재료이기도 하지만, 한아버지의 혈당과 혈압을 낮춰주는 약재이기도 하니, ‘굳이뽕’이라고 우길 필요 없이 더 좋은 이름을 갖다 붙여주어야겠는 걸! 앞으로 내 이름을 따서 ‘으뜸나무’라고 하면 어떻겠어?”

  이에, 흥이 난 이 할애비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으뜸아, 하여간 ‘굳이뽕’은 그러한 전설에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렇다면 ‘광대싸리’는 또 어떻게 해서 붙여진 이름이게?”

  나무난로 맞은편 접의자에 앉은 녀석은,이은하 가수의 노래를 흉내내어 “아리송해! 아리송해!”한다.

  “ 으뜸아,‘광대’· ‘광대놀음’·‘어릿광대’·‘꼭두각시’등은 서로 통하는 말이거든. 모두 남의 조종에 따라 주체성 없이 맹목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야. 우스운 짓이나 말로 사람을 잘 웃기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고. ”

  이 할애비가 이 말을 하자, 녀석이 이내 짚이는 게 있는지 말한다.

  “한아버지, 아하, 이제야 알겠다? ‘싸리’가 아니면서 자기가 ‘싸리’라고 광대짓 즉 ‘꼭두각시노릇’한다도 붙여진 이름 같애.”

  녀석이 어떻게 그걸 이내 유추해냈을까? 하기야 내가 위에서 ‘굳이뽕’이야기를 들려주긴 했지만... .

  “으뜸아, 맞는 말이야. ‘광대싸리’는 그 겉모습은 흡사 ‘싸리’이지만, 싸리와 다르단다. 싸리는 ‘대극과(大戟科) 싸리속(-屬)’, 광대싸리는 ‘대극과 광대싸리속’에 자리한단다. 즉, 같은 ‘과(科)’가 아니란다. 비록 진자 싸리는 아니지만, 광대싸리도 구지뽕과 마찬가지로우리한테 아주 유익한 걸! 혈액순환·류머티즘 허리통증 치료·안면신경마비 치료·소아마비 후유증 치료 등 약재로 두루 쓰인다는 거 아니니?”

  외손주녀석 으뜸이가 이번에도 노변담화를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이는 촌평(寸評)이기도 하다.

  “한아버지, 설령 우리가 나쁜 이름으로 부르더라도, 나무들은 제각각 몫을 단단히 하는 것 같애. 세상의 모든 나무들, 팟팅(파이팅)!”

 

  106.

  마른 행주 쥐어짜듯, 제 ‘나무난로 앞에서’ 시리즈물은 계속 이지어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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